반도체 수급난 완화 조짐, 장비업체 하락세 타나
2년 넘게 이어져 온 반도체 수급난이 점차 풀린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반도체 수급난이 발생한 이후 한동안 위탁생산(파운드리) 기업의 공장을 100% 가동해도 수요를 따라잡기 어려운 상황이 지속됐다. 그런데 최근들어 수요가 줄고 공급이 늘어나면서 공장을 풀 가동 하지 않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단적인 예로 올해 2분기에 파운드리 가동률이 가장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 역시 수요 감소에 따른 현상이다. 일각에서는 공장 가동률 감소가 반도체 장비업체 실적 하락세로 이어질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2분기 반도체 기업의 8인치 웨이퍼 공장 가동률은 90~95% 정도를 기록했다. 8인치 웨이퍼는 주로 90나노미터 이상의 레거시(Legacy) 반도체를 생산할 때 필요하다. 12인치 웨이퍼를 기반으로 하는 40나노미터 이상의 반도체 생산라인도 90~99%의 가동률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년 간 반도체 수급난이 이어지면서 100% 이상을 이어왔던 생산라인 가동률이 하락세에 접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가장 많은 이슈가 됐던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도 완화될 기미가 보이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은 올해 4월을 기점으로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주요 차량용 반도체 업체가 수급난을 해결하기 위해 생산라인을 증설하고 생산량 늘리기에 박차를 가했던 한편, 올해 2분기에 접어들며 경기 위축으로 관련 수요도 감소했기 때문이다.
트렌드포스 측은 보고서를 통해 “디바이스⋅완성차 업체는 부품 재고를 조정하고, 파운드리 기업은 웨이퍼에 대한 투입을 축소할 계획을 하기 시작했다”면서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반도체 수급난이 장기간 이어져 왔는데, 올해 2분기에 8인치 생산라인 가동률이 가장 많이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반도체 공장의 가동률 감소는 공급망 안정화 측면에서 희소식일 수 있다. 하지만 반도체 장비업체 입장에서는 우려할 만한 상황이다. 반도체 장비업계가 반도체 수급난 수혜를 입었기 때문이다. 반도체 부족현상이 발생하면 각 기업은 공장을 증설하는데, 늘어나는 생산라인에는 새로운 반도체 장비가 들어가야 한다. 이 과정에서 장비 수요가 증가한다. 반면 기업이 생산라인을 증설하지 않으면, 이에 투입되는 장비 수요도 감소한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장비업체는 시장 상황에 따라 수요와 실적 등락폭이 큰 편”이라며 “반도체 공급망이 안정되고 생산라인 증설이 더 이상 이뤄지지 않으면, 장비 수요가 감소해 추후 장비업체의 실적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장비업체가 단시간에 큰 타격을 입지는 않을 수 있다. 장비 업체 대부분 몇 개월 앞서 선주문을 받고 제품을 납품하기 때문이다. 한 반도체 장비업체 관계자는 “아직 장비업계에서 급격한 수요 하락세를 겪고 있다는 이야기가 오가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추후 장비업체 매출 감소에 대한 신호는 존재한다. 한 반도체 시장 전문가는 “반도체 수급난이 시장 내 큰 문제로 대두됐을 당시, 많은 기업이 반도체 생산에 팔을 걷어 붙이면서 공급이 늘어났다”며 “반면 반도체 수요가 감소하면서 주요 반도체 기업은 생산라인과 장비에 대한 투자 규모를 줄이려고 하고 있는데, 그만큼 반도체 장비 구매도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뒤이어 해당 전문가는 “곧 주요 반도체 기업 실적발표가 이어질 텐데, 이 때 각 기업의 재고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눈여겨봐야 한다”며 “재고 수준 증가폭이 크다면, 추후 과잉공급과 장비업체의 실적 하락 등을 고려해 대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5나노 이하의 최선단 공정 부문의 경우에는, 공장 가동률이 여전히 최대 부하에 가깝게 유지되고 있다. 서버⋅데이터센터에 납품할 고성능 반도체 수요가 견조하기 때문이다. 고성능 반도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반도체 소자를 더 미세하게 만들어 밀도 있게 배치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최선단 공정이 필요하다.
고성능 반도체 수요가 높아진다는 것은 곧 최선단 공정 사용량이 많아짐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최선단 공정을 위한 장비 수요는 이후에도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주요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선단 공정을 중심으로 반도체 부족 현상은 여전히 일어나고 있으며, 선단 공정 수요는 지속해서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배유미 기자>youme@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