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재밌니?] 은희는 한수를 한 눈에 알아봤다

경기도 시흥에서 강남으로 가는 3200번 버스가 있습니다. 이 버스는 2층입니다. 운이 좋으면 시야가 탁 트인 맨 앞자리에 앉을 수 있겠지만, 아직 제게는 그런 행운이 일어나진 않았습니다. 그래도 두번째 자리 정도는 종종 제 차지가 됩니다. 이 자리에서도 고개를 빼꼼히 내미면 건물 사이로 하늘이 쏟아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바라보고 있으면 제법 가슴이 트입니다.

물론, 제주의 푸른 하늘 만큼은 아니지만요. 제주의 푸르름을 육지에서나마 마음껏 감상할 수 있는 드라마가 나왔습니다. 노희경 작가의 ‘우리들의 블루스’입니다. tvN 드라마고, 티빙과 넷플릭스에 들어가 있습니다. ‘나의 해방일지’에 대한 감상을 공유하고 나서 가장 많이 들은 피드백은 흥미롭게도 “우리들의 블루스는 봤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나의 해방일지도 재미있지만, 우리들의 블루스도 괜찮으니 꼭 보라”는 얘기였죠.

그도 그럴 것이, 우리들의 블루스도 또 한 명의 스타작가가 집필했습니다. 처음으로 드라마 마니아 동호회를 만들어냈다는 노희경 작가의 신작이죠. 게다가 차승원, 신민아, 이정은, 이병헌, 김우빈, 한지민, 고두심, 김혜자 등등, 어떻게 한 드라마에 모두 모았지 싶은 배우들도 대거 등장하고요. 딱 한 마디로 감상을 말하라고 하시면, 제주의 하늘은 반짝이고 배우들은 아름답습니다.

우리들의 블루스 메인 포스터 ,출처=tvN

더 소개를 하자면, 드라마는 옴니버스 구성입니다. 얽혀서 흘러가는 일상을 보여주다가, 어느 순간 카메라가 특정 인물의 삶으로 깊숙이 들어갑니다. 누구에게나 자신에게는 특별한 스토리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듯이, 클로즈업 된 인물의 이야기는 흡입력을 갖고 시청자를 빨아들입니다. 인물들의 이야기를 모두 담으려고 그랬는지, 일반 드라마보다 조금 길게 편성됐습니다. 총 20부작이 예정됐는데요, 지난 주말에 8화까지 방영됐습니다. 저는 현재 6편까지 본 상태입니다.

개인적으로는 4편까지는 별로 속 시끄럽지 않게 무난히 봤습니다. 배우 이정은 씨가 은희, 차승원 씨가 한수로 분한 ‘한수와 은희’ 편이 시작입니다. 대략 40대 후반의, 현실을 열심히 살아내느라 꿈은 흩어진지 오래인 그런 인물들로 나옵니다. 대학을 진학하면서 고향을 떠난 한수가, 20여년만에 제주 지사로 발령받아 오면서 동창인 둘은 재회합니다.

은희에게 한수는 첫사랑입니다. 그렇게나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 은희는 한수를 한 눈에 알아봅니다. 한수의 등장으로, 잊혔던 학창시절이 소환됩니다. 두 사람의 재회에 아름다운 이야기만 있을까요? 관계는 기대하면 무너지고, 실망하면 되살아 나나봅니다. 나이를 충분히 먹은 후에도, 그래서 내 인생은 어쩌면 이렇게 살다 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후라도 다시 성숙할 수 있다는 걸 두 사람은 보여줍니다.

은희와 한수 편에서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회자되는 장면은, 노래방 쇼파 위로 뛰어오른 두 사람이 가수 최성수 씨의 ‘위스키 온 더 락’을 열창하는 부분입니다. “아름다운 것도, 즐겁다는 것도 모두 다 욕심일 뿐, 다만 혼자서 살아가는 게 두려워서 하는 얘기”를 열창하는 두 사람의 모습이 아래 링크에 담겨 있습니다.

YouTube video

(영상 설명= 은희와 한수가 부르는 ‘위스키 온 더 락’. 가수 최성수 씨 원곡인데, 오늘은 드라마 주인공들의 목소리로 들어보시죠.)

아무래도 이 둘을 옴니버스 첫 머리의 주인공으로 편성한 것은 노희경 작가 팬들의 나이와 정서를 고려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네요. 노 작가의 드라마는, 줄곧 그래왔지만 연민을 건드립니다. 저는 노희경 작가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드라마가 ‘바보같은 사랑’인데요. 최소한 제 드라마 역사 상에서는 처음으로 화려하지 않은 이들의 사랑을 그렸습니다. 부자도 아니고, 뛰어난 능력을 가진 이들도 아니죠. 둘은 여러모로, 미디어에서 그려지는 사랑과는 거리가 먼 이들이었습니다. 등장 인물들은 때론 안쓰러운데,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래도 그때와 비교하면, 2022년의 노희경 작가는 무척이나 밝고 씩씩해졌네요. (그런데, 바보같은 사랑을 기억하는 독자님이 계신가요? 여러모로 친구님, 반갑습니다). “나이를 먹는 다는 건,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가사가 이 드라마를 관통하는 하나의 열쇠 말 같습니다.

물론 이 드라마가 계속 재미있기만 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두 가지 면이 조금 심란(?)했는데요. 하나는, 옆집 숟가락 숫자까지 다 아는 다정한 이웃의 관심입니다. (다른 친구의 연애사까지 친구들이 너무 간섭합니다. 사생활이 없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나의 해방일지’보다는 조금 덜 쓸쓸하고 사람냄새가 많이 묻어나서 어딘가 더 따뜻해 위로가 되기도 하지만 숨이 막히기도 하고요.

다른 하나는 청소년의 임신입니다. 이 부분은 속이 조금 시끄럽습니다. 청소년의 임신이 문제라는 게 아니라, 이 사건을 풀어가는 과정이 어딘가 너무 어른의 관점이 아닌가 싶어서요. 이 문제는 조금 더 생각을 정리해서 독자님을 찾아뵈어야 할 것 같습니다.

OTT 플랫폼이 늘어난 것이 제 지갑을 얇게는 하고 있지만, 그래도 그만큼 볼만한 드라마가 늘어난 것만큼은 즐겁습니다. 넷플릭스의 가입자가 줄어 주가가 폭락하는 등, 고전한다는 기사를 봤는데요. 넷플릭스의 값이 올라간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은, 그만큼 대체할 수 있는 채널이 늘어나고 있다는 뜻도 되겠죠. 플랫폼이 경쟁하니까 제 시간을 가져가는 콘텐츠의 수도 늘어나네요. 마음씀이 예쁜 은희야, 만나서 반가웠어. 너도 더 행복해지길 바랄게.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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