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반도체] 칩셋 도전자들…마지막엔 누가 웃을까?

‘성능 향상, 저전력, 발열 방지’

반도체 칩셋업체가 직면하고 있는 과제입니다. 어쩌면 칩셋 기업의 트릴레마(Trilemma, 세 가지 딜레마)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많은 칩셋 제조회사가 이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기술을 개발하고 신제품을 출시하고 있습니다만, 아직 세상에 완벽한 칩셋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 가운데 주요 빅테크 기업 중에서 자체 칩셋 개발에 팔을 걷어붙인 업체가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간 칩셋 시장을 꽉 잡고 있던 인텔, 퀄컴, AMD와 같은 범용 반도체 제공업체를 탈피해 자사 서비스에 최적화된 반도체를 만들겠다고 한 것이지요. 이번 인사이드반도체에서는 자체 칩셋 개발의 배경은 무엇인고 삼성전자의 자체 칩셋 개발 가능성은 얼마나 높은지, 그리고 추후 수혜를 입게 되는 기업은 어디인지 등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자체 칩셋 개발, 시초는 애플

칩셋을 직접 개발해 자체 생태계를 이룬 대표적인 기업, 하면 애플이 바로 떠오를 것입니다. 애플은 아이폰에 Arm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하는 자체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plication Processor, AP) ‘A 시리즈’를 탑재하고 있죠. 여기에 지난 2020년에는 Arm 아키텍처 기반의 자체 PC용 칩셋 ‘M1’을 공개했습니다. 일각에서는 x86 기반의 애플 PC보다 M1 칩셋 기반의 애플 PC의 성능이 더 좋다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애플은 ‘애플 실리콘(Apple Silicon)’이라는 이름의 자체 칩셋을 지속해서 개발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약간 독특한 점이 있습니다. 다른 반도체 기업은 자체 개발한 칩셋을 타사에 판매하는 반면, 애플은 칩셋을 다른 기업에 제공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자사 디바이스에 탑재하기 위한 용도로 칩셋을 만드는 것이죠.

애플이 자사 전용 칩셋을 만드는 것은 일종의 전략입니다. 아이폰, 아이패드, 맥북 등 애플 디바이스는 모두 자사 운영체제인 iOS를 기반으로 작동됩니다. 이 운영체제는 애플만 사용하고 있는데요, 애플은 범용 칩셋을 사용하는 것보다 이 운영체제에 최적화된 칩셋을 직접 만들어 사용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오로지 자사 시스템에 최적화된, 그런 칩셋을 만들기로 한 것이죠.

애플은 자체 프로세서를 개발하기 위해 기업을 인수합병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CEO였던 스티브 잡스(Steve Jobs)는 2008년 반도체업체 피에이세미(PA Semi)를 인수해 자체 AP 개발의 초석을 놓았습니다. 이후 2011년에는 이스라엘 플래시메모리 스타트업 아노비토 테크놀로지(Anobit Technologies)를 인수해 반도체 엔지니어를 대거 영입했고요. 여기서 아노비트는 본래 애플에 플래시메모리 드라이브를 제공하고 있었는데요, 인수합병을 통해 해당 부품도 내재화했습니다.

팀 쿡이 CEO로 취임한 이후에도 자체 칩셋 설계를 위한 인수합병은 지속됐습니다.  2018년에는 영국 전력반도체 기업 다이얼로그 반도체(Dialog Semiconductor)의 일부 자산을 6억달러(약 7377억원)에 인수했습니다. 이를 통해 프로세스 성능을 최적화해 배터리 효율 개선에 나섰죠. 뒤이어 2019년 7월에는 애플이 인텔 스마트폰 모뎀 사업부를 10억달러(약 1조2295억원)에 인수했습니다. 이처럼 애플은 오랜 기간 걸쳐 자체 칩셋을 만들기 위한 조건을 마련했습니다.

오랜 기간 기반을 다지고 시행착오를 거쳐, 애플은 자사만의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게 됐습니다. 워낙 자사 시스템에 최적화된 칩셋을 사용하다 보니, 성능과 전력 효율이 좋고, 발열은 낮아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애플이 그간 퀄컴으로부터 공급받고 있던 5G RF(Radio Frequency) 칩을 자체 개발하고 TSMC에 위탁생산을 맡겼는데요, 애플은 완전한 칩셋 자립화를 목표로 사업을 영위해 나갈 것으로 예상됩니다.

노태문 삼성전자 MX사업부장(사장) (자료: 삼성전자)

갤럭시만의 AP 만들겠다던 삼성, 가능성은?

애플의 칩셋 자립화는 반도체 시장에 긍정적인 사례로 남아 있습니다. 이는 애플 경쟁사도 인정하는 부분입니다. 그렇다 보니, 자체 칩셋 개발에 팔을 걷는 기업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메타(구 페이스북),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MS), 테슬라 등 미국 빅테크 기업과 샤오미, 화웨이, 오포, 알리바바 등 중국 빅테크 기업도 자체 칩 개발에 뛰어들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노태문 삼성전자 사장이 최근 “갤럭시만의 AP를 만들겠다”고 발언하면서, 애플처럼 자체 칩셋 개발에 나설 것을 예고했죠.

물론 장기적 관점에서는 자체 칩을 개발하는 것이 유리합니다. 시스템 구동 성능과 효율성을 높여 서비스 품질을 높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체 칩셋 개발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애플도 단번에 자체 칩셋 생태계를 구축한 것은 아니었거든요. 분명 자체 칩셋을 개발하는 과정에서는 시행착오에 의한 비용 지출이 있을 것이고, 또 그만한 시간도 소요될 것입니다. 따라서 반도체 역량을 가지고 있지 않은 기업이라면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다만 다른 곳과 별개로, 업계는 삼성전자가 자체 칩셋을 개발한다는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분위기입니다. 이미 삼성전자는 엑시노스를 개발하면서 Arm 기반의 반도체 설계를 해본 적이 있는 데다가, 인공지능 처리의 핵심인 신경망처리장치(Neural Processing Unit, NPU) 개발에도 팔을 걷어붙인 바 있습니다. 삼성 입장에서는 자체 칩셋 개발이 아주 새로운 일은 아닌 셈이죠

한 반도체 시장 전문가는 “엑시노스라는 플랫폼 자체는 꽤 성능이 좋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다만 삼성전자가 오랜 기간 엑시노스에 투자하지 않으면서 발전을 이루지 못했던 것 뿐이지, 다시 투자를 단행한다면 삼성전자 자체 칩셋 개발도 충분한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삼성전자가 칩셋 설계 역량 강화를 위해 인력을 충원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오고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전문가는 “최근 삼성전자가 인텔에서 유명한 반도체 개발자를 다수 영입하고 있다는 소문이 업계에 돌고 있다”며 “인재를 영입한다는 것은 곧 자체 칩셋 개발 역량을 키우고, 반도체 내재화를 이룰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삼성전자의 현 상황상 자체 칩셋을 개발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주요 글로벌 팹리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수율이 좋지 않아 애초에 많은 양의 AP를  만들어내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다른 기업에 칩셋을 납품하지 말고, 칩셋을 적게 만드는 대신 삼성전자 시스템에 최적화된 칩셋으로 최적화해서 자체 칩을 생산하는 것이 더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자체 칩 개발로 이익 얻는 곳은?

장기적 관점에서, 자체 칩셋을 개발하는 기업은 지속해서 증가할 전망입니다. 그 가운데 이익을 보게 되는 기업도 생길 것으로 예상됩니다.

우선 TSMC와 Arm이 수혜를 얻을 것으로 보입니다. TSMC는 파운드리 전문 업체인데요, 오로지 생산만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자체 칩셋을 개발하는 기업은 설계부터 생산까지 모두 하는 종합반도체기업(IDM)인 삼성 파운드리보다 TSMC를 선호하고 있습니다. 팹리스 기업 입장에서는 삼성 파운드리에 생산을 맡길 때, 기술 유출에 대한 위험을 감수하고 설계도를 제공해야 합니다. 하지만 TSMC는 그런 위험이 없죠. 따라서 팹리스는 TSMC를 좀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결국 자체 칩셋을 개발하는 업체가 늘어나면, TSMC 이용 고객사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단, TSMC의 주문이 가득 차게 되면, 2위 업체인 삼성 파운드리가 반사이익을 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겠죠.

장비 업체도 이익을 얻게 됩니다. 물론 생산라인을 증설하는 것이 단기간에 결정하고 실행할 수 있을 만큼 가벼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하지만 반도체 수급난이 발생할 정도로 파운드리 수요가 늘어난다면, 각 기업은 생산라인 증설을 고려하겠죠. 새로운 생산라인에는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장비를 들여야 하는데요, 따라서 파운드리 수요가 증가하면 연달아 장비업체 수요가 증가합니다. 그 결과, 장비업체 매출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Arm도 수혜를 입게 됩니다. 자체 칩셋은 대부분 Arm에서 제공하는 지적 재산권(Intellectual Property, IP)을 기반으로 합니다. 이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Arm에 라이선스 비용을 제공해야 하는데요, 이는 곧 자체 칩셋을 개발하는 업체가 늘어날수록 Arm에 비용을 지불하는 기업도 늘어난다는 말을 의미합니다.

다만, Arm의 수익구조 자체가 좋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기에, 고객사나 주주들의 압박은 지속해서 들어올 것으로 예상됩니다. 더 많은 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칩셋을 직접 판매하거나, 라이선스비를 더 높여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Arm은 칩셋을 직접 판매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표명한 바 있죠. 결국 방법은 라이선스비를 높이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고객사가 비용 부담을 느끼게 됩니다.

Arm의 현재 주인은 소프트뱅크인데요, 소프트뱅크는 엔비디아와 인수합병 실패 이후 상장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상장을 하게 되면 자금을 얻을 수는 있지만, 주주들로부터 수익성 개선에 대한 지적이 나올 수 있습니다. 따라서 Arm의 향방을 좀 더 면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EDA(Electronic Design Automation) 기업이 이익을 볼 전망입니다. EDA란 반도체 레이아웃을 설계하는 소프트웨어 툴을 말하는데요, 반도체 설계, 검증 등을 자동화하는 역할을 합니다. 미세 공정이나 복잡한 구조의 반도체를 구현할 때에는, 이 툴이 있어야 회로 설계와 오류 검증을 더 정밀하게 할 수 있습니다. EDA 시장은 시놉시스, 케이던스, 지멘스 EDA 등이 70% 가량 차지하고 있는데요, 이 기업이 수혜를 입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소비자는 높은 성능의 디바이스, 더 빠르고 효율적인 서비스를 원합니다. 그 대안으로 기술 기업은 ‘자체 칩셋 개발’ 카드를 들고 왔습니다. 어떻게 보면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트렌드 중 하나인 셈이죠. 이 같은 흐름 속에서 각 주요 기업은 인수합병(M&A)나 인재 영입 등의 전략을 통해 반도체 설계 역량을 키우고, 수익을 높이기 위한 방안을 고려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렇게 되면 추후 반도체 인재 쟁탈전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겠네요.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배유미 기자>youme@byline.network

관련 글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