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m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한다”

반도체 소식에 관심이 많은 독자라면 Arm이라는 이름을 많이 들어봤을 겁니다. Arm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한다는 말은 이 회사에서 만든 설계도를 기반으로 반도체를 제조할 때 붙곤 하는 설명입니다. Arm 아키텍처는 꽤 많은 곳에 적용되고 있는데요, 우선 애플이 자체적으로 만드는 반도체는 다 Arm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합니다. 삼성, 퀄컴도 Arm 아키텍처를 사용해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plication Processor, AP)를 만들고 있죠.

특히 최근 Arm을 인수하려는 회사와 국가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유난히 이름이 더 많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GPU 제공업체 엔비디아는 Arm을 인수하려했지만 세계 규제당국의 반대로 인수합병에 결국 실패했죠. 지난 2월의 일이었는데요, 3월 말에는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이 한 주주의 질문에 “Arm도 인수는 하고 싶다”라고 발언하면서 이름이 다시 호출됐습니다. 그만큼 많은 반도체 기업이 Arm을 탐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Arm은 워낙 경쟁자가 많아 함부로 가질 수 없는 기업이기도 합니다.

Arm이 걸어온 길

일단 Arm이 어떤 곳인지 살펴봐야겠죠. Arm은 영국에 있는 반도체 기업인데요, 다른 반도체 업체와는 사업 형태에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종합반도체기업(IDM)이나 반도체 설계를 담당하는 팹리스(Fabless) 기업은 자사 이름의 반도체를 판매해서 수익을 창출합니다. 하지만 Arm은 자체 이름이 들어간 제품을 만들지 않습니다. 대신 IP(Intellectual Property)라고 하는 반도체 설계도를 제공하고, 그에 대한 라이선스 비용으로 수익을 창출합니다.

Arm이 IP 제공업체로 자리 잡게 된 것에는 Arm이라는 이름 자체의 유래와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영국 컴퓨터 생산업체 ‘아콘 컴퓨터(Acorn Computer)’는 제품에 탑재하던 프로세서 구조를 아콘 RISC 머신(Acorn RISC Machine)이라고 칭했는데요, 이 앞글자를 딴 것이 ARM의 시초입니다.

1990년대에 접어들어 아콘 컴퓨터는 미국 반도체 제조업체 VLSI, 애플과 합작회사를 설립해 ARM CPU를 개발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 정식 명칭이 Advanced RISC Machine으로 바뀌었죠. 1998년에는 합작회사가 Arm홀딩스라는 이름으로 런던증권거래소와 나스닥에 상장했습니다. Arm은 애초에 CPU 구조를 개발하기 위해 설립된 기업이었지만 지금은 IP 설계 제공업체로서 자리잡게 됐습니다.


이후 2016년에는 일본 소프트뱅크가 Arm을 234억파운드(약 35조원)를 들여 인수했습니다. 소프트뱅크는 Arm이 사물인터넷(IoT) 시장을 주도할 것이라고 판단했고, 성장 가능성을 보고 거금을 들여 인수한 것입니다.

인수 이후 소프트뱅크는 Arm이 더 많은 매출을 낼 수 있도록 자체 반도체를 만들 것을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Arm은 IP 제공업체라는 정체성을 버리지 않은채 기존 사업모델을 고수했죠. 간극은 결국 좁혀지지 않았는데요, 그 가운데 2020년 7월 소프트뱅크는 최악의 적자를 보면서 인수 4년 만에 Arm을 매각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엔비디아가 Arm 인수를 시도했지만 주요 국가 규제 당국의 반대로 무산됐죠.

Arm 아키텍처가 발전하면 생기는 일

Arm에서 제공하는 반도체 설계도는 RISC(Reduced Instruction Set Computer)를 기반으로 합니다. 여기서 RISC란, 명령어 개수를 대폭 줄인 프로세서 설계 방식을 말합니다. 해석해야 할 명령어 개수가 적기 때문에 실행 속도가 빠르고, 명령어를 해석하는 데 드는 에너지 소모가 적습니다. 즉, 저전력으로 구동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Arm 아키텍처는 모바일 기기에 적합합니다.

Arm과 반대의 성격을 띠는 아키텍처는 인텔, AMD 반도체 구조인 x86 아키텍처입니다. x86 아키텍처는 대표적인 CISC(Complex Instruction Set Computer)입니다. CISC란 하나의 코드에 많은 명령어를 담은 구조를 말합니다. 코드의 밀도가 높아 고성능의 프로세스를 구현하기 적합하지만, 전력 소모가 많고 한 번에 처리해야 할 용량이 커 속도가 비교적 느리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두 아키텍처의 특성이 다르므로 업계에서는 ‘Arm은 모바일용, x86은 PC·서버용’으로 사용된다는 인식이 깔려 있었습니다. 실제로 삼성, 퀄컴, 애플 등 기업은 모두 Arm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AP를 제작하고 있고요, 대부분의 컴퓨터와 노트북에는 인텔과 AMD 프로세서가 탑재돼 있습니다. 심지어 애플마저 2020년 11월 M1칩을 공개하기 전까지는 x86 기반의 CPU를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Arm이 모바일용으로 가벼운 프로세스만 처리할 수 있다는 인식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애플이 자체 PC용 칩 M1을 출시한 이후 Arm 기반 PC용 프로세서 시장점유율이 지속해서 성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장조사업체 머큐리리서치(Mercury Research) 등에 따르면, Arm PC 칩 시장점유율은 지난해 3분기 기준 약 8% 정도 됩니다. 애플이 M1칩을 선보이기 전인 2020년 3분기에는 Arm 기반 PC 칩 점유율이 2%정도에 불과했습니다.

한 반도체 시장전문가는 Arm 기반 PC칩 시장과 관련해 “현재 점유율 자체가 높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M1 칩의 등장과 함께 시장점유율이 성장한 것은 Arm 기반 PC칩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 것과 같다”며 “Arm은 더 이상 x86 아키텍처보다 성능 면에서 뒤처지지 않으며, ‘x86은 고성능, Arm은 모바일용’이라는 인식도 사라지는 추세”라고 말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Arm 아키텍처는 서버 시장 문도 계속 두드리고 있죠. 대표적으로 AWS(Amazon Web Service)는 2018년 Arm 아키텍처 기반의 서버 클라우드를 공개했고, 지속해서 Arm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자체 칩을 개발하고 있죠. 마이크로소프트도 2020년부터 Arm 기반 자체 프로세서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현지시각으로 지난 4일에는 Arm 기반 프로세서를 기반으로 자체 클라우드 서비스 애저 가상머신(VM)을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클라우드 제공업체들도 점차 Arm 아키텍처를 주목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Arm 아키텍처 성능이 향상되면, 추후 PC와 서버 시장에 Arm 아키텍처를 사용하려 하는 기업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앞서 언급한 반도체 시장 전문가는 “Arm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프로세서를 제작하면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는 모바일 기기와의 호환성이 좋아질 것”이라며 “애플이 높은 호환성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처럼, 추후 다른 기업도 모바일뿐만 아니라 PC, 서버 등에 Arm 아키텍처 기반의 프로세서를 적용하고 호환성을 높이려 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Arm 인수 시 빠지게 되는 딜레마

제일 처음 언급한 것처럼, 삼성전자, 애플, 퀄컴, 엔비디아, 브로드컴, IBM, 미디어텍 등 주요 반도체 기업은 거의 다 Arm 아키텍처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ARM 기반 프로세서의 성능이 좋아지면서 반도체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력도 점차 커지고 있는 중이죠. 이러한 상황에서 하나의 기업이, 그것도 고객사였던 한 기업이 Arm을 인수하게 된다면 다른 Arm 아키텍처를 사용하던 고객사 입장에서는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판단하게 되겠죠. 하나의 기업이 Arm을 인수할 시 반도체 생태계가 교란된다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 나온 말입니다.

박정호 부회장은 주주총회에서 “한 회사가 Arm을 인수할 수는 없다”면서도 “기회가 된다면 다른 기업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인수하는 방향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컨소시엄 단위로 Arm을 인수한다면 형평성 측면에서는 나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한계는 존재합니다. 2018년 일본 반도체업체 키옥시아를 컨소시엄 단위로 인수했던 것을 떠올리면 알 수 있습니다. 당시 SK하이닉스를 포함한 컨소시엄은 49%의 지분을 받았는데요, 51%의 지분이 도시바와 일본국책기관 소속이었기 때문에 별다른 경영권을 행사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러한 전적이 있었기 때문에 일각에서는 컨소시엄 단위로 Arm을 인수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지적합니다.

또, Arm에 행사하는 영향력을 높이려는 시도를 할 때 영국 정부가 이를 허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영국은 2021년 4월 반도체, AI 등 17개의 첨단분야에 대한 외국의 개입을 제한하는 ‘국가안보-투자법’을 도입한 바 있습니다. 영국 정부 기준에서 외국 기업이 Arm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면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판단하는 것이지요.  안보 위협을 근거로 Arm 인수를 반대할 수 있습니다.


결국 Arm을 인수하는 데에는 딜레마가 발생합니다. Arm에 행사하는 영향력을 높이려고 하다 보면 세계 각국 규제기관, 특히 영국 정부와 주요 기업이 독과점을 이유로 반대할 것입니다. 반면 Arm에 행사하는 영향력을 최소화하면 인수하는 것이 큰 의미가 없어지고요. 딜레마가 지속되면, 결국 Arm은 지금과 같이 특정 반도체 기업에 속하지 않은 채 생태계 균형을 유지하는 역할을 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배유미 기자>youme@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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