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한국 정부를 대상으로 칩4(Chip4) 결성을 제안했다고 서울경제가 지난 27일 단독 보도했다. 칩4 동맹은 반도체 부문에서 미국이 주요 반도체 생산국가와 협업 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맺고자 하는 동맹이다. 미국은 한국·일본·대만에 칩4 동맹 참여를 제안한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우리 정부가 미국의 모든 요구를 받아들이기에는 어려울 것이라고 예측한다. 하지만 한국이 중국보다 미국과의 협업에 좀 더 무게를 두는 기조 자체에는 당분간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또, 새롭게 출범할 윤석열 정부가 중국을 견제하고 미국과의 기술동맹을 구축할 것이라고 발언한 것을 감안하면 칩4 동맹에 합류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다만 미국의 칩4 합류 제안과 관련해 산업통상자원부 미주통상과 관계자는 “국가 간 협의 사항이기 때문에 확인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그간 반도체를 비롯한 기술 시장을 살펴보면, 미국·유럽·일본·대만이 하나의 진영을 이루고, 중국·러시아가 반대 진영을 이루는 양상을 보여 왔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신중한 태도를 보여 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미국이 지속해 반도체 동맹 형성 의지를 보이고 있고, 우리 정부 역시 이에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앞서 언급한 산업부 관계자는 “2021년 6월에 공개된 미국 행정부 공급망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앞으로의 파트너십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고, 한국과도 협업을 강화해 나갈 계획”이라며 “양자 차원에서는 한국과 미국이 2021년 12월부터 한-미반도체 파트너십 대화를 출범해 협력하고 있으며, 다자 차원에서는 한국, 미국, 유럽 등을 포함한 6개국이 ‘반도체 생산국 정부간 연례 회의(GAMS)’를 개최해 반도체 부문에서 협업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우리가 미국과 반도체 협업 체제를 구축하는 것은 생존전략에 가깝다. 반도체 산업에서 미국이 제재를 가하면 반도체 사업을 영위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 대표적인 사례로, 미국의 제재에 의해 중국 기업은 ASML의 EUV(극자외선) 노광장비를 들이지 못하고 있다. EUV 노광장비는 7나노 미만 공정을 구현하기 위해 필수로 도입해야 하는데, 결국 중국 기업은 7나노 미만 반도체를 생산하지 못하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우리나라도 미국의 제재를 피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눈치를 봐야 하는 실정이다.

미국이 협업을 강조하는 이유는 자국 중심으로 반도체 공급망을 개편하고자 하는 계획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글로벌 주요 반도체 기업을 모아 놓은 자리에서 반도체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하며 “미국은 반도체 선두국가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다른 국가에 의존하지 않도록 반도체 개발·협업 전반에서 경쟁력을 갖추고자 하는, 미국 대통령으로서의 야심이 담긴 것이다.

한 국내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세계 반도체 시장 전망과 관련해 “지금 중국은 과거 일본이 미국에 의해 반도체 경쟁력을 잃었던 것과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다”며 “지금 타깃은 중국이지만, 이후에도 미국보다 앞서려고 하는 국가가 있으면 마찬가지로 견제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일본은 NEC, 후지츠 등 주요 반도체 기업을 중심으로 메모리 강국 입지를 다지고 있었다. 미국은 반도체 패권을 일본에 넘겨주지 않기 위해 제재를 가했고, 결국 일본은 1986년 자국에게 불리한 내용이 담긴 ‘미일반도체협정’에 서명했다. 해당 조약은 ▲내수시장의 최소 20%를 외국기업에게 내줄 것 ▲정부보조금을 기반으로 저가공세 금지 등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었다. 이후 일본은 반도체 시장에서 도태됐다는 것이 앞서 언급한 관계자의 설명이다.

지금은 이 같은 제재를 중국에 가하고 있다. 중국은 2014년 6월 반도체 제조 경쟁력을 강화하고 미국이 쥐고 있던 반도체 패권을 차지하겠다는, 일명 ‘반도체 굴기’를 이룰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미국에 정면으로 대결을 신청한 것이다. 이에 미국은 중국 기술 제재로 대응했고, 장비와 기술 등을 공급받지 못한 중국은 반도체 굴기 측면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후에도 미국 반도체 산업 경쟁력을 뛰어넘으려 하는 국가가 등장하면 미국은 또 다시 제재를 가할 것이라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현재 대만과 TSMC는 중국과 선을 긋고 미국과 협업 관계를 맺고자 하는 의지를 내비쳐 반도체 사업을 지속하고자 한다”며 “하지만 미국은 자국 중심으로 반도체 산업을 재편하고자 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대만과 TSMC가 미국을 넘어선다고 판단할 시 미국은 제재를 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백악관은 지난 해 말, 국내 기업을 포함한 주요 반도체 기업을 대상으로 고객사 정보와 같은 민감한 내용이 포함된 정보를 요청한 바 있다. 이처럼 미국은 지속해서 반도체 주권을 찾기 위한 시도를 하고 있다. 그 가운데 우리 정부는 반도체 산업 부문에서 미국과 협업 체제를 유지하되, 일정 기준을 가지고 접근해야 우리나라가 반도체 주권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배유미 기자>youme@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