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택배노조는 왜 파업 종료 후에도 ‘강원도’서 농성 중일까?

지난 2일 민주노총 전국택배노동조합(택배노조)의 파업이 장장 65일 만에 끝났다. 택배노조와 CJ대한통운 대리점연합은 ‘표준계약서 부속합의서 개선’을 합의했고, 절차를 거쳐 조합원들의 현장 복귀를 추진했다. 그러다 21일, 택배노조는 돌연 CJ대한통운 춘천 터미널과 강릉 터미널 두 곳을 대상으로 농성에 돌입한다. 어떤 이유에서일까. 왜 택배노조와 택배사 간의 갈등은 끝나지 않는 것일까.

‘과로사 방지’에서 시작된 이야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택배노조의 태업, 농성 등 쟁의행위의 시작은 택배노동자의 과로사 방지책 마련이었다. 택배노조에 따르면 2020년부터 지금까지 택배 과로사로 추정 사망한 노동자는 21명이다. 이에 택배기사 처우 개선의 필요성을 알리기 위해 2020년 7월 노동·시민·사회단체가 모여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를 결성했다.

대책위원회 활동은 같은 해 11월 범정부 차원의 대책 수립으로 이어졌다. 이어 12월에는 더불어민주당 민생연석회의의 제1호 과제로 채택되면서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을 위한 사회적 합의기구’를 출범시키는 데 성공한다. 다양한 사회적 주체가 모여 택배산업, 노동환경, 가격과 거래구조 개선을 위한 논의를 시작한 것이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을 위한 사회적 합의기구

‘분류작업’ 제외하라

사회적 합의기구는 2021년 6월 22일 택배산업 이해관계집단 및 시민사회단체 대표자, 정당 관계자, 정부 당국 관계자 등이 참여한 가운데 ‘택배기사 과로사 대책을 위한 사회적 합의기구 합의문 2차’를 발표한다. 이보다 앞서 1월에 1차 합의안이 마련된 지 5개월 만이었다.

2차 합의문에는 고용보험 및 산재보험 가입 활성화를 통한 사회안전망 강화 방안, 주당 60시간 초과 금지를 통한 장시간 노동 완화 방안, 표준계약서에 기초한 운송위탁계약 체결을 통한 공정거래 안착을 위한 방안, 산업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택배 적정 요금 도입 방안 등이 포함됐다. 그중에서도 주목받은 것은 ‘분류작업’ 완전 배제다. 분류작업은 택배 업무의 약 40%를 차지하는, 장시간 과로의 주된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됐다.

1차 합의문에서도 다룬 ‘택배기사의 분류작업 배제’는 2021년 3월 초 분류인력 투입 실무점검단이 현장을 조사한 바, 잘 지켜지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별도 전담 인력이 현장에 투입됐음에도 택배기사들이 하던 분류작업을 대체하기에는 역부족이란 것이다. “일부 대리점주는 편법을 사용한다”라고도 했다. 이에 2차 합의에서는 2021년 말까지 택배기사의 분류작업 배제를 이행하기 위한 세부 계획을 정했다.

‘택배비 인상’해서라도

2차 합의문 이행을 위해 택배사들은 분류작업자 채용이 불가피해졌다. 이는 택배비 인상으로 이어진다. 관련해 사회적 합의기구가 책정한 택배비 인상 금액은 170원으로, 이는 분류인력 인건비 150원과 기사들의 고용·산재보험에 가입비 20원으로 구성됐다. 택배비를 인상한 뒤 이를 바탕으로 분류작업자 채용 등에 활용하라는 취지다.

2021년 3월 CJ대한통운과 롯데글로벌로지스는 기업고객 운임을 각각 250원, 150원 올렸다. 7월부터는 한진도 기업고객 택배 단가를 170원 인상했다. 당시 택배노조 측은 택배비 인상과 관련해 “환영한다”라는 반응이었다. “택배사들의 택배비 인상 및 분류인력 채용 과정을 지켜보는 중이다. 그 외에도 택배기사의 최대 작업시간인 일 12시간·주 60시간 준수, 건강관리 조치 등 합의 내용대로 지켜져야 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또 2020년 11월 국민권익위원회가 실시한 ‘국민생각함 온라인 의견’ 조사 결과 응답자의 73.9%가 택배비 일부 인상에 대해 ‘택배 종사자 처우개선 등에 사용된다면 동의한다’라고 답해 힘을 실어줬다. 그 외에도 택배 종사자의 산재보험 의무가입 필요성에 대해 응답자의 95.9%가, ‘종사자의 과도한 근로 시간을 줄여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95.6%가 찬성했다.

과로사해결비용으로 이윤 추구?

그렇게 택배비 인상과 함께 분류작업자 채용이 이뤄지며 2차 합의문이 현장에 적용되나 싶더니, 9월 택배노조는 ‘과로사해결비용으로 이윤추구 CJ대한통운 규탄 회견’을 열었다. “CJ대한통운이 과로사해결비용 명목으로 인상한 택배비 절반 이상을 이윤추구에 활용하려 한다”라는 주장이었다.

택배노조 측은 규탄 회견을 통해 “CJ대한통운과 택배대리점연합회 간의 ‘택배요금 인상분 170원의 사용처 관련 합의 내용’을 확인했다”라고 밝혔다. 핵심은 “인상분 170원 중 분류인력 고용비용 50.1원과 산재고용보험 명목 추정치 15원을 제외한 나머지 105원가량을 CJ대한통운이 챙겨간다. 그러면서 분류인력 고용 등은 모두 대리점에게 전가했다. 이 계산대로라면 CJ대한통운은 연간 1800~2000억원의 초과이윤을 얻는다”라는 것이다.

과로사해결비용으로 이윤추구 CJ대한통운 규탄 회견

이에 CJ대한통운 측은 “사회적 합의 이행을 위해 대리점연합회와 협의를 진행 중이며, 아직 정해진 내용은 없다. 추정과 왜곡을 바탕으로 합의 이행 노력을 폄훼하는 일부의 비난 행위에 유감을 표한다. 본사는 자동화 휠소터를 도입하는 등 택배기사들의 분류작업 부담을 줄이기 위한 투자를 진행해왔고, 업계 유일하게 약 2000억원을 투자해 설비를 도입했다. 이번 합의를 이행하기 위해선 1500억원 이상의 추가 투자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반박했다.

‘CJ대한통운 총파업’ 핵심 이유 2가지

12월 23일 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서 택배노조는 ‘CJ대한통운 총파업 찬반투표’를 실시해 노동조합원 93.6%의 찬성으로 총파업에 돌입하기로 결의했음을 밝혔다. 28일부터 총파업에 들어갈 것을 예고했는데, 연말연시 택배 성수기를 노린 결정에 판매자와 소비자 모두 우려를 표했다. CJ대한통운을 강하게 압박하기 위한 결정으로 평가된다.

택배노조가 밝힌 총파업 이유는 크게 2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택배요금 인상을 이용한 돈벌이 반대’다. “CJ대한통운이 추산한 택배 연간 물량 18억 박스마다 270원을 추가하면 연간 4860억원 추가 수익을 얻는다. 이 중 분류 비용(단위당 원가 58원), 산재·고용보험 지원비용은 연간 1379억원 밖에 안 된다. 즉 3481억의 초과 이윤을 CJ대한통운 측이 그대로 가져간다는 의미다. 또 CJ대한통운은 영업점 등에서 요금인상 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하면, 모자라는 금액만큼 수수료를 차감해 지급한다”라고 주장했다.

둘째 ‘불합리한 부속합의서 거부’다. “생활물류서비스발전법 시행에 따라 택배사업자 등록 시 표준계약서를 마련해 운송위탁계약을 체결할 것이 결정됐다. 여기에 CJ대한통운만은 표준계약서에 독소 조항을 넣은 부속합의서를 덧붙였다. ‘당일배송’, ‘주 6일제’, ‘터미널 도착 상품의 무조건 배송’ 등 택배노동자들의 한밤중 퇴근과 과로를 유발하는 조항은 불합리하다”라고 주장했다.

CJ대한통운이 도입한 자동화 휠소터

‘여론 악화’로 인한 회군

택배노조의 파업은 65일 동안 이어졌다. 그 사이 명절 연휴가 지나갔고, 2월 10일에는 서울 중구 CJ대한통운 본사 사무실을 기습 점거했으며, 진경호 민주노총 전국택배노동조합 위원장은 20일부터 6일 동안 물과 소금을 끊는 ‘아사단식’ 끝에 병원으로 옮겨졌다. 또 CJ대한통운 소속 전 조합원이 택배 배송·집화, 쟁의권 유무와 관계없이 파업에 참여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이에 쟁의권이 없는 택배기사의 파업 참여는 불법인지라, 해당 택배기사의 계약해지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도 나왔다.

택배노조의 요구는 “CJ대한통운 본사와 대화하겠다”라는 것이었으나, CJ대한통운 측은 “택배노조의 교섭 상대는 각 대리점인 만큼 원칙대로 응하지 않겠다”라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이에 택배노조는 서울 정부종합청사와 국회 등을 찾아 개입을 요구했으나, 대통령 선거기간과 맞물리며 정치권의 반응을 얻지 못했다는 평가다.

그 사이 국토교통부는 CJ대한통운의 손을 들어줬다. 국토부는 택배기사 과로 방지 사회적 합의의 이행 여부에 대해 현장 점검한 결과 “양호하게 지켜지고 있다”라고 평가했다. 또 비노조택배기사연합이 파업 반대 시위를 열기도 했다. “열심히 일하는 택배기사들이 지금도 실시간으로 거래처를 잃고 있다. 근로자로 일하고 싶다면 CJ대한통운 직고용 택배기사로 지원하라”고 주장했다.

끝내 택배노조는 CJ대하리점 연합회와 협상을 타결하고, 공동합의문 발표와 함께 파업을 중단했다. 이달 3일부터 5일까지 부속합의서를 제외한 표준계약서를 작성하고, 이에 따라 집하 제한을 해제하여 3월 7일 오전까지 조합원들이 현장에 복귀한다는 내용이었다.

택배노조가 이번엔 ‘강원도’로 떠난 이유

파업 종료 이후 현재 택배노조는 사무공간을 서울에서 강원지역으로 옮긴 상태다. 또 CJ대한통운 춘천 터미널과 강릉 터미널 두 곳으로 나눠 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나아가 “조합원들과 함께 현장 투쟁을 전개하고, 조합원 간담회, 대리점 소장과 지사장 면담, 조합원 결의대회, 지역 연대 집회 등을 추진할 것”이라 밝혔다.

택배노조 측은 “여전히 일부 CJ대한통운 대리점들이 공동합의 이행을 거부하고 있다. 이들은 부속합의서를 포함한 표준계약서를 강요하고, 단협이 체결되어야 가능한 쟁의권 포기를 요구하고 있으며, 계약관계를 유지하기로 한 합의를 무시한 채 계약해지 통보를 철회하지 않고 있다”라고 주장한다.

택배노조에 따르면 대리점으로부터 계약해지 통보를 받은 노동자는 총 120여명이다. 앞서 쟁의권 없는 택배기사의 파업 참여 여파와 함께 부속합의서 작성 거부 등의 이유로 인해 부당한 이유로 계약해지를 통보받았다는 것이다.

택배노조는 “특히 강원 지역의 상황이 심각하다”라며 “현재 CJ대한통운 강원지역 전체 조합원 135명 중 부속합의서 강요 등에 따른 표준계약서 미작성자가 107명, 계약해지 통보받은 조합원이 35명으로, 거의 대부분의 조합원들이 표준계약서 작성을 거부당하고 있다. 타 지역의 표준계약서 작성률이 8~90%임을 감안한다면, 이는 지역 차원의 조직적인 합의 거부라고밖에 볼 수 없다”라고 밝혔다.

택배비는 또 오르는데

지난 새해 첫날 CJ대한통운은 기업고객 대상 택배 계약 단가를 30~1000원, 평균 100원 수준으로 추가 인상했다. 기업고객은 온라인 쇼핑몰 등이 주가 되는 만큼 중소규모 셀러나 일반 소비자에게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업계에서는 택배사들의 택배비 도미노 인상을 예상하기도 한다.

‘택배비 인상분에 대한 적절한 분배’를 최우선으로 요구하던 택배노조는 끝내 회군을 선택했다. 모 업계 관계자는 “노조가 쟁의의 방향을 ‘사회적 합의에 따른 표준계약서 작성’으로 설정하면서 택배비 인상에 대한 모니터링 및 견제 기능이 하락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반응이 있다. 아직 과로사 방지, 사회적 합의 관련 논의가 끝난 것이 아니기에 현장 기사들의 생각과 의견을 꾸준히 청취해야 할 것”이라 말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신승윤 기자> yoon@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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