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이 올해 말 암호화폐 채굴을 위한 블록체인 가속기를 출시한다. 그간 엔비디아, AMD 등 경쟁사도 범용 반도체 GPU(Graphic Processing Unit)를 제공해 암호화폐 채굴시장 수요에 대응해 왔다. 하지만 이들과 달리, 인텔은 블록체인 시스템 처리를 위한 전용 반도체(ASIC)를 새롭게 개발해 선보였다.

인텔이 지난 14일 공개를 밝힌 블록체인 가속기는 블록체인 시스템 처리 속도를 높여 주는 솔루션을 말한다. 블록체인 처리를 하는 데에는 많은 에너지가 들며, 확장성이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시장에서는 확장성을 가지면서 가동하는 데 전력 소모가 덜 드는 블록체인 가속기를 원한다. 미국 정부에서도 채굴 과정에서 과하게 전력이 발생하는 부분에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인텔은 가속기 부문에서 이 같은 필요를 파악하고 있었다. 인텔 관계자는 “보난자 마인 연구를 진행하다 상용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판단했다”며 “따라서 인텔은 보난자 마인을 기반으로 채굴에 특화된 ASIC을 출시하고, 블록체인 잠재력을 최대한 실현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블록체인 가속 솔루션을 개발한 사례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간 엔비디아, AMD 등 인텔 경쟁사는 블록체인 가속을 위한 GPU를 제공해 왔다. 엔비디아는 2021년 상반기 암호화폐 채굴에 특화된 연산장치 CMP(CryptoMining Processor)를 공개한 바 있다. 이를 통해 엔비디아는 채굴에 특화된 GPU를 별도 공개했다. 다만, 기타 일반용 그래픽 칩셋에는 채굴 성능을 절반으로 하락시키는 LHR(Low Hash Rate) 기능을 적용했다.

AMD도 채굴 관련 고객에게 GPU를 제공하고 있다. AMD는 암호화폐 수요와 관련해 “암호화폐 채굴에 사용되는 데 자사 그래픽 칩셋을 사용하는 데 제한을 두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3~4년 전 대중이 암호화폐 시장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때, AMD의 그래픽 칩셋 ‘라데온(RADEON)’은 높은 채굴 성능으로 인기를 얻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AMD는 블록체인 가속기 시장을 의식할 수밖에 없었고, 그 수요를 충족하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인텔이 뒤늦게 블록체인 가속기 시장에 뛰어든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두 업체와 큰 차이라면 인텔 블록체인 가속기는 엔비디아, AMD와 달리 GPU 등 범용 반도체를 기반으로 하지 않는다.

인텔 관계자는 “그간 인텔도 CPU, GPU, FPGA 등 범용 반도체는 개발해 왔으나, 이번에 인텔이 출시하기로 한 블록체인 가속기는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칩”이라며 “아직 칩을 출시하기 전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성능을 공개하기에는 어렵지만, 자사 블록체인 가속기는 범용 반도체를 보완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텔은 10년 전부터 ‘보난자 마인(Bonanza Mine)’이라는 코드명의 블록체인 가속기 연구를 진행해 왔다. 여기에는 암호학, 해싱 기술, 초저전압 회로 등의 분야가 포함되는데, 이 연구는 인텔 랩(Intel Lab)에서 전담하고 있었다. 인텔 랩은 제품 상용화와 별개로 첨단 분야와 관련된 선구적 연구를 진행하는 연구소다.

인텔에 따르면, 보난자 마인은 기존 채굴용 그래픽 처리장치에 비해 와트당 성능이 1000배 이상 우수할 전망이다. 그만큼 에너지 효율성이 높다는 의미다. 여기에 인텔은 에너지 효율이 높은 컴퓨팅 기술을 추가로 개발해 초저전력으로 블록체인 시스템을 구동할 수 있도록 지원할 방침이다.


블록체인 가속기 출시를 위한 전담 팀도 설립한다. 인텔은 가속 컴퓨팅 시스템 및 그래픽 사업부문에 ‘커스텀 컴퓨트 그룹(Custom Compute Group)’을 신설했다. 해당 부서에서는 기존 범용 반도체를 넘어 각 첨단 분야에 최적화할 수 있는 맞춤형 반도체 플랫폼을 제공할 계획이다. 인텔 커스텀 컴퓨트 그룹은 블록체인 가속기 사업을 시작으로 슈퍼컴퓨터 등 다양한 분야에 적용될 맞춤형 반도체를 개발해 나갈 예정이다.

인텔이 커스텀 컴퓨트 그룹을 신설한 것은 단순 범용 반도체가 가지고 있는 한계를 극복하고, 다양한 부문에서 최적화된 반도체를 제공하기 위함이라는 분석이다.

현재 첨단 기술을 구현하기 위해 주로 사용되는 반도체는 GPU다. 엔비디아는 개발자가 편리하게 GPU를 이용할 수 있도록 소프트웨어 스택과 쿠다(CUDA) 언어 프로그램을 탄탄하게 갖췄다. 이를 통해 AI, 블록체인 등 다방면으로 GPU 생태계를 확장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복수의 팹리스 관계자에 따르면, GPU는 애초에 그래픽 처리를 위해 개발된 반도체이기 때문에, 첨단 기술에 적용할 때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어느 정도의 성능은 낼 수 있지만, 데이터를 처리하는 데 비효율적인 부분이 발생하고 전력 소모도 높아진다. 따라서 각 분야마다 특화된 전용 반도체가 필요하다는 지적은 곳곳에서 나오고 있었다.

범용 반도체로는 각 부문마다 조건을 충족하기 어렵지만, 맞춤형 반도체 개발 플랫폼을 구축하면 다방면으로 최적의 반도체를 제공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각 첨단 산업 분야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인텔도 이 같은 이유로 커스텀 컴퓨트 그룹을 신설했다는 분석이다.

인텔 블록체인 가속기를 찾는 기업도 생기고 있다. 로이터통신, 더 버지 등 외신에 따르면, 비트코인 채굴업체 그리드 인프라(Grid Infrastructure)와 잭 도시(Jack Dorsey)의 핀테크 업체 블록(Block)은 인텔 블록체인 가속기를 선주문했다.

인텔 관계자는 “아직 구체적인 매출 달성에 대한 목표를 정하지 않았고 구체적인 성능도 아직 공개할 수 없으나, 시장에서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다”며 “제품 출시 이후 이를 검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텔은 2월 20일부터 시작되는 국제 솔리드 스테이트 서킷 컨퍼런스(ISSCC)에서 블록체인 가속기에 대한 추가 정보를 공개할 예정이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배유미 기자>youme@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