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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룡 “빈집 재생에 내 이름을 써라”

“작가라고 표현해도 되나? 제 생각을 집에 담아내고 싶었어요.”

배우 류승룡은 바쁘다. 올해 그가 출연한 ‘자산어보’와 ‘장르만 로맨스’가 개봉했고, 영화 ‘비광’은 촬영에 들어갔다. 지난 10월, 서울 강남에 위치한 그의 소속사 프레인에서 인터뷰 차 만난 5일은 디즈니플러스의 한국어 오리지널 ‘무빙’의 크랭크인 전날이었다. 그러나 이날의 약속은 영화 개봉이나 홍보 때문에 잡힌 게 아니다. 그가 알리고 싶은 것은, 한참 공사가 진행 중인 제주의 빈집 ‘하천바람집’이다.

배우 류승룡이 자신의 이름을 빈집 프로젝트에 건다고 했을 때, 수많은 유명인이 그러하듯 좋은 일에 한 발 걸치는 일을 하려나보다 싶었다. 그런데 제주에서 빈집을 재생하는 스타트업 다자요와 연락할 때마다 류승룡의 이름이 언급됐다. 그가 제주에 와서 빈집 다큐멘터리를 찍는다, 현장 아이디어를 이것저것 내는데 마을 재생에 관심이 크더라 같은 이야기였다.

제주에는 버려진 빈집이 많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을 개조해 숙박객을 맞이하는 일을 스타트업 다자요가 한다. 외관은 제주 전통을 그대로 살리면서 내부는 현대식으로 탈바꿈하는 일이 이들의 특기다. 제주 시골동네 삶의 풍경을 담아내면서, 묵는데 불편함이 없게 하는 이 아이디어에 류승룡이 반했다.

“키가 큰 가수 선배가 여기 빨간집에서 하룻밤을 묵었는데, 낮은 천장에 머리를 부딪혔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보면 불편하죠? 그런데 또 고즈넉하고 편안해요. 제주 전통가옥 형태는 그대로 살렸는데 내부는 호텔처럼 현대식이고. 이상하더라고요, 마음이 자꾸 움직이니까.”

좋은 집은 좋은 기억을 남긴다. 그렇다고 모두가 그 일에 직접 뛰어들지는 않는다. 배우가 스타트업 하는 일에 참전한 데에는, 빈집 프로젝트의 현실이 영향을 끼쳤다. 다자요의 빈집 재생은 부침이 많았다. 지금까지 없었던 사업모델이기 때문에 법의 사각지대에 있었다. 행정부는 소관을 정하기 어려운 새 아이디어에 불법 딱지를 붙였고, 최근에야 이를 풀어줬다. 그러나 아직은 영업 일수와 활동 지역에 제한을 둔 한정된 범위 내에서의 자유다.

배우 류승룡이 스타트업 다자요와 하천바람집을 만든다.

누가 먼저 꼬셨나요? 같이 하자고(웃음)

제가 많이요. 빈집 알리게 제가 도와준다는 데도 아 엄청나게 튕기더라고요, 진짜(웃음). 제주에 자주 오고 관심도 많은데 더 적극적으로 나를 활용을 해라, 라고 했죠. 제주의 스타트업과 무언가를 같이 하고 싶었어요.

경험이 좋다고 해서 직접 참여하기는 어렵지 않나요? 어떻게 참여할 생각을 하셨나요?

좋은 경험을 더 많은 사람이 할 수 있는데 기여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규제가 풀리고 있으니까, 이 빈집 재생 모델의 좋은 점을 알려서 더 많은 지자체가 참여하고 숙박객들도 알게 하고 그러고 싶은데. 그러려면 수요를 늘려야 한다는 생각에 참여했죠.

규제가 완전히 풀리지 않았는데 류승룡 배우의 참여가, 어려운 상황에 힘을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렇죠. 그런데 저도 자기 검열도 하게 되고요. 괜히 도와주려다가 오히려 잘못될까, 조심스러운 것도 있고요. 또 제가 스스로 감시자가 되어서 이 빈집 프로젝트가 일을 잘 하는지 더 열심히 감시하게도 되고요.

 

그렇다고 류승룡 배우가 비장한 마음만으로 이 일에 참여한 것으로 보이진 않았다. 어딘가, 로망을 실현한 것처럼 신나보였다. 원시림같은 수목이 좋아 제주를 자주 찾는다는 그는, 하천바람집으로 지역에 자신의 근거지를 마련한 셈이다. 이 집에는 류승룡의 취향을 담는다.

 

 

하천바람집에 건축 작가로 참여했다고 보면 될까요?

작가라도 표현해도 되나? 기획자가 더 맞겠네요. 여기 남성준 대표와 오프라인으로 세 번 정도 만났고, 온라인으로 자주 연락했어요. 제 생각을 좀 담아냈으면 좋겠어서 연락을 계속 했죠.

이 집에서 어떤 경험을 할 수 있을까요?

여기 해먹에서 별도 보고, 류승룡의 플레이리스트를 틀어 음악도 듣고요. 집안 곳곳에 제가 발견한 여러 가지를 적어 놓고 이곳에 머무는 분들과 공유하고 싶기도 해요. “여기 이곳에 앉으면 빗소리를 가장 잘 들을 수 있습니다”나 “여기서는 별이 잘 보여요” 같은 경험이요. 이런 아이디어가 마구 나왔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이 하천바람집을 찾을 때, 류승룡 배우의 취향을 발견하길 바랄 것 같아요

제 취향도 취향이지만 어르신들의 삶과 시간과 세월이 남아 있으면서도, 새로운 감각이 굉장히 조화롭게 어우러진 공간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여기 머무는 사람들이 제가 느꼈던 편안함을 느끼면서도 “아니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지? 이 재간둥이들. 난 놈들이 정말 많아” 그렇게 말해줬으면 좋겠어요.

 

 

그는 스스로의 역할을 앰베서더라고 봤다. 그가 앰베서더인 까닭은, 앞으로 또다른 유명인들이 각자의 취향이나 바람을 담은 집 재생 프로젝트에 참여하길 바라서다. 그리고 이 일이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수익화도 잘 이뤄져야 한다. 그 바람을 담아, 하천바람집이 만들어지는 과정 역시 영상에 담았다.

 

하천바람집이 지금까지 진행된 상황을 다큐멘터리로 남기셨잖아요?

결과도 그렇지만, 과정도 중요하죠. 모든 집에 이렇게 참여해 기록을 남길 순 없겠지만, 그래도 공정이나 과정을 비포 앤 애프터 식으로 담아 놓으려고요. 기록이 굉장히 중요하잖아요? 그 기록을 숙박객이 보고 재미있어 할 수도 있고요.

 

YouTube video

 

주변에서는 뭐라고 하던가요? 빈집 프로젝트를 한다고 하니까요

아직은 잘 몰라요. 그런데 제 주변에서는 좋은 일 한다고 해요. 거창한 도네이션이나 재능기부가 아니라 의미가 있어서 하고 싶어 참여했어요. (그의 말과는 다르게 하천바람집에서 난 매출의 1.5%는 류승룡의 이름으로 마을에 기부된다) 그렇지만 상장은 못 할 것 같고…(동석한 남성준 대표를 바라보고 웃으면서) 미안해.

스타트업하고 일해본 건 처음이죠? 어떤 경험이었나요?

전혀 이질감 같은 건 못느꼈어요. 배우도 하나의 스타트업이라고 생각해요. 일하는 게 촬영현장과 비슷하게 느껴졌고, 그래서 신이 났어요. 가수들도 그렇고 실력은 있는데 아직 알려지지 않은, 숨은 ‘꾼’이 정말 많잖아요? 에이전시 같은 곳에서 발굴해야 하죠. 이미 너무나 뛰어난 아이디어나 실행력이 있는데 규제에 막혔거나, 혹은 알려지지 않았거나 지속가능하지 않아서 사양되는 곳이 너무 많죠. 그런데 스타트업도 최근에 규제가 뚫리고, 관심들도 모이고, 그래서 바람직하게 가고 있다고 생각해서 너무 설레요.

빈집 재생 프로젝트가 사회적으로 던지는 메시지가 있잖아요? 대중에게 이 프로젝트를 어떤 메시지로 전달하고 싶은 걸까요?

마을이 좀 숨을 쉬었으면 좋겠거든요. 빈집들로 구멍이 숭숭 뚫려 있고, 교류가 끊겨져 있고. 다른 곳에서 다른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 빈집에 머무르면서 마을에 생기가 돌고, 그렇게 좋은 방향으로 움직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빈집 재생에 기대하는 바가 있다면요?

정확하게, 왜 이걸 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하죠. 도시재생이라는 말을 많이 하잖아요? 방치된 죽은 공간에 활기를 불어 넣는 것. 그리고 그 공간을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숙박비는 받겠지만요(웃음).

이 프로젝트에서 앞으로 류승룡 배우의 역할은 무엇이 될까요?

계속해서, 빈집 프로젝트로 다자요가 나쁜짓을 하지 않는지 철저하게 감시할 겁니다(웃음). 스타트업과 작업을 하는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에요. 우아한형제들의 ‘배달의민족’ 모델을 했는데, 그때는 제가 손님이었죠. 그런데 다자요는 정말, 제가 주주로 참여하면서 주인의식을 갖고, 애정을 갖고 할 거예요. 리스크가 생기지 않도록요.

 

다자요는 그동안 크라우드펀딩으로 투자금을 모았다. 류승룡은 그렇게 생긴 수백명 주주 중 하나다. 이 주주들은 다자요가 사업적으로 성공하길 바라면서도, 사회적으로도 선한 영향력을 갖길 바란다. 그리고 빈집을 마을 공동체의 일원으로 만들어내어 외지의 사람들과도 공유하길 원한다. 각자의 철학과 가치를 녹인 집들이 쌓이다보면 언젠가는 세상에 없던 새로운 숙박 커뮤니티가 열릴 수도 있지 않을까.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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