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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스타트업 마스터 ‘노정석’이 화장품 만드는 이유

‘노정석’은 테크 업계에서 꽤 유명한 이름이다. 국내 스타트업 중에선 처음으로 구글이 사들인 ‘태터앤컴퍼니’를 만들었고, 이후 여섯번을 더 창업했다. 그중 하나인 파이브락스는 미국 실리콘밸리의 탭조이가 인수했다. 전산학과 출신으로 태생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인 그의 일곱번째 창업은, 예상 외로 ‘화장품 회사’다.

비팩토리는 화장품을 만드는 공장이다. 경기도 판교 코스맥스 건물 5층 한 켠에 차려진 연구실에는 공병을 든 로봇팔이 짜여진 프로그래밍 대로 부지런히 움직이며 원료를 받아낸다. 로봇팔이 움직이기 시작한지 2분여만에 새로운 화장품 하나가 뚝딱 생겨났다. 비팩토리 연구원이 새 화장품의 QR코드를 스캔했더니, 노트북 화면에 원료 정보가 떴다. 이 시스템의 최소 생산 수량은 화장품 한 개다.

“이거 화장품 3D 프린터에요. 화장품이 사실은 원료의 혼합물이잖아요. 원료를 잉크삼아서 주문자가 원하는 제품을 만들어내는 거죠. 요새 롱테일 셀러들이 인스타그램 같은데 많은데, 화장품 하나를 만들어 팔고 싶어도 공장에선 최소한 1000개 이상씩 만들어야 하죠.”

지난 23일, 비팩토리 연구실에서 만난 노정석 대표는 시장의 변화를 말했다. 인스타그램에서는 수많은 셀럽이 직접 론칭한 브랜드 상품을팔고 있다. 점점 더 생산과 소비의 장벽이 무너질텐데, 이전의 대량 생산 시스템으로는 새 시장을 뒷받침할 수 없다.

노 대표는 로봇팔이 움직이는 연구실을 요즘 자신이 가장 많이 머무르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유연한 제작 시스템의 중심에는 소프트웨어가 있다. 그동안 공장의 중심은 생산 장비에 있었는데, 노 대표는 이 상식을 엎고 소프트웨어가 짜준 길을 따라 움직이는 하드웨어 시스템을 고안했다.

그러나 그 길이 쉬운 것만은 아니다. 창업 후 1년은, 노 대표 표현에 따르면 ‘삽질’의 연속이었다. 주변에서도 긍정적인 분위기만 있던 것도 아니다. 소프트웨어 하던 이가 화장품 회사를 하다니, 안 될 거라고 말하는 목소리가 있다는 건 노 대표도 안다. 하지만 이 말을 하는 그의 얼굴이 여유로워 보였다.

“일론 머스크가 테슬라를 맡은 것은 2007년이죠. 지금의 테슬라가 오기까지 13년이 걸렸어요.”

자율주행차의 탄생은 자동차 생산의 무게 중심이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옮겨졌기 때문에 가능했다. 자율주행차의 대장격인 테슬라도 성공으로 오는 시간은 길고 지루했다. 노 대표는 화장품을 비롯한 바이오 산업 역시 더디지만 결국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옮겨질 거라고 본다.

“이제 머릿속에 날실과 씨실이 얽히더라, 이제야 되겠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하는 노정석 대표에게 왜 이 사업을 하는지, 그리고 미래는 어떻게 될 거라고 보는지를 물었다. 그는 비팩토리가 자신의 마지막 창업이 될 거라고 말했다. 앞으로 30년은 충분히, 이 사업을 하면서 변화와 성취를 느끼게 될 것이라고 자신하는 말투였다.

노정석 비팩토리 대표.

지난 일년간 삽질을 많이 했다고 한 말이 인상적이다. 노정석이라는 이름은 테크 업계에선 성공의 아이콘 같은 느낌인데 이런 사람도 새로 사업하면 이렇게 힘들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오늘 아침에 다른 회사 사장이랑 통화하면서 “이젠 난 다시는 창업은 영원히 안 할 거야, 이게 마지막이야” 이런 말을 했다. 이 회사를 창업하면서 뭔가 생각했던 대로 돌아가지 않는, 모든게 무너지는 것 같은 시기를 1년 정도 겪었는데 그건 지나온 것 같다. 처음에 아무것도 모를 때, 사업을 시작할 때는 즐거웠다가 한 1년 반 가까이 거의 바닥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내가 뭘 해야 하고, 뭘 하면 안 되는지 안다. 이게 자산이다.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얻은 것은 무엇인가?

구글이 소프트웨어 회사를 사면 사람들이 “소프트웨어 코드는 깃허브에 다 나와 있는데 왜 사냐”라고들 한다. 하지만 사실 코드 덩어리 자체는 그냥 결과물이다. 그 코드 안에 녹아있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알고, 그것이 왜 그렇게 구성되어 있는지 그 설계를 갖고 있는 사람이 핵심 자산이다. 이건 글로 써준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가져갈 수 있는 게 아니다.

밖에서 다른 사업가 후보님들한테 얘기를 할 때 “머릿속에 무언가 확 펼쳐져서 씨실과 날실이 다 엮이는 상황이 오면 당신은 이제 망하지 않는다”고 말하곤 하는데, 내가 그 단계가 된 것 같다. (특히 이 분야에서) 이제 나는 절대 안 망해(미소).

지금까지 창업했던 모든 분야는 소프트웨어였다. 처음으로 손으로 만져지는 제품이라는 영역에 도전하는데

소프트웨어를 굉장히 많이 해봤다. 굉장히 부가가치가 높고 좋다는 건 아는데, 지금 메타버스로 뭐로 점점 더 가고 있지 않나. 그런데 솔직히 제가 게임과 가상 세상을 별로 안 좋아하더라. 왜냐하면, 진짜 가치는 리얼월드에 있어서다.

남자애들이 아무리 게임 많이 하고 그래도 여자친구 만나러 가자고 하면 게임 딱 덮고 바로 따라 일어난다(웃음). 가상세계를 다룬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의 원작 소설을 보면, 주인공이 리월월드에서 키스를 하면서 끝난다. 맨 마지막 문장에는 “너무 달콤하고 좋아서 다시는 가상 세계로 안 돌아가겠다”라고 결론이 난다.

결국에는 리월월드다

기술의 발전 방향이 (가상세계로 가는 게) 맞고, 저도 그쪽으로 투자한 포트폴리오가 굉장히 많다. 그렇지만 나는 인간이 육체라는 하드웨어 안에 갇혀 있는 한 영원히 발생하는 밸류 포인트로 사업을 하고 싶었다.

우리가 살아가려면 현실에서 꼭 필요한 것들이 있다

나이가 들면서 크게 한 번 아픈 적이 있다. 그러면 영원히 살고 싶다,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분야 공부를 하다보면 필연적으로 바이오에 관심을 갖게 된다. 이 산업에 한 번 끼여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신기하게도 소프트웨어를 열심히 하던 대표님들이 40대가 지나면서 바이오 사업을 시작하는 경우가 있다. 나이 대에 따른 자연스러운 관심의 변화가 창업으로 이어지는 걸까?

너무 자연스러운 것 같다. 실리콘밸리의 구글 창업자부터 온갖 부자들이 ‘영생’과 관련한 회사에 돈을 쏟아 붓고 있다.

21세기의 불로초가 바이오 기술인가?

모든 물질적, 사회적 성취를 다 끝내고 나면 다들 굉장히 공허한가 보더라. 그러면 그다음 목표로 영원히 풀리지 않는 것을 하려 한다. 저도 그런 것을 해봐야 겠다는 생각을 하던 와중에 어디로 끼여볼 것인가를 고민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왜 약이 아니라 화장품일까?

약은, 제가 바로 들어가기에는 아직 타이밍이 덜 왔다고 봤다. 예를 들어서 지식을 유통하는 업무나 방송 미디어, 기자의 일 같은 것은 모두 과거엔 기술과 거리가 있었다. 그런데 소프트웨어가 들어오면서 그 일의 영역이 모두 기술 안으로 편입됐다. 저는 바이오도 필연적으로 그 도착점으로 간다고 본다. 그런데 지금은 바이오를 하려면 생명공학과를 나와야 하거나 의사(MD)여야 하는 한계가 있다.

법적으로 제약이 있나?

그렇진 않지만 영역 자체가 굉장히 전문화되어 있다. 그래서 제가 들어가기에는 타이밍이 조금 빠르다는 생각을 했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될 거라고 생각하는 게, 바이오도 소프트웨어화 되고 있다. 자동화, 기계화가 되고 있다. 연구자가 손에 물을 묻혀가면서 얻어야 해야 했던 화학 실험 결과를 소프트웨어 코드를 통해 대신 얻을 수 있는 시대가 막 열리고 있다.

대표님한테 화장품은 현재의 본업이면서도 미래를 위한 연습 게임이기도 하겠다

사실은 먹는거나, 화장품이나, 제약이나 굉장히 비슷한 화합물을 다룬다. 난이도와 위험도를 갖고 나뉘어 있을 뿐이지, 기본적으로는 다 탄화수소 화합물을 찾아내는 게임이다. 이걸 시작점으로 해서 늘그막까지 계속 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들려 한다. 비백토리의 ‘B’가 뷰티(Beauty)이기도 하고 바이오(Bio)이기도 하다.

비팩토리 화장품은 개인맞춤형이다. 좋지만 대량 생산은 어려워 보인다

책을 한 권 썼다고 가정해보자. 처음엔 얼마나 팔릴지 모르니까 킹코스에 가서 30권만 찍는다. 그러다 반응이 좋으면, 대량생산을 한다. 그때는 킹코스가 비싸니까 공장에 가서 100권, 500권씩 더 찍지 않겠나. 우리는 100권 이하로 책을 찍을 때의 마켓에 관심이 많다. 100권이 넘어가면 기존 시스템으로 가면 된다. 뭔가 하나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요즘은 그냥 하면 되지 않나. 그런 사람들이 우리 서비스를 통해 제품을 만들 수 있다.

오늘부터 화장품을 팔고 싶어지면 샘플을 의뢰해서 소량을 찍어 뿌려보면 되는 것처럼?

그렇다. 예전에는 정말 소수만 생산을 하고, 나머지는 보기만 했다. 그런데 지금은 ‘프로슈머(생산+소비자)’의 영역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피라미드 그래프의 꼭대기에 있는 소수 브랜드가 이끄는 시장과, 피라미드 아래에 엄청나게 많이 분포되어 있는 다양한 요구를 반영할 맞춤형 시장이 완벽히 분화되는 세상으로 들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패션이나 화장품 같은 브랜드 영역에서 중간 시장은 거의 사라지고 있는데, 이 피라미드 구조는 10년 전 미래학자들이 예측한 ‘프로슈머 이코노미’의 끝판왕이다. 그래서 “너를 좋아하는 팬이 몇백명만 돼도 너는 먹고 산다”는 게 된다. 그런 세상으로 진입하고 있다.

그런 세상에서 비팩토리의 역할은 어떻게 되나?

이런 걸 드라이브 하는 것이 사실은 테크놀로지다. 인디 마켓에서 수많은 다양성을 맞추려면 기존의 시스템으로는 불가능하다. 이 시장을 위한 생산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비팩토리를 만들었다. 화장품이라는 제품은 그 안에 칩이 하나도 없는 그런 것인데, 얘를 소프트웨어화한다는 건 뭘까라는 질문에 답을 한 거다.

그러려면 (화장품이 제조되는 모든 과정을) 소프트웨어로 정의하고, (제품을 현실로 만들어내는) 프린터가 있으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테슬라가 자율주행으로 유명한데, 사실 창업 시점은 2003년이고 2007년부터 일론 머스크가 맡았다. 그 이후로도 무려 13년이나 지나 도착한 지점이 지금인 거다.

테슬라의 성공도 단기간에 일어난 것은 아니라는 건데

테슬라가 전기차를 잘 만들려고 노력했듯, 우리도 지금은 화장품을 정말 잘 만들기 위한 파이프라인 빌드에 시간을 쓸 거다. 그러니까, 투자자를 설득할 때도 지금 우리에게 AI 로직을 묻지 말라고 한다. 때가 되면 다 결과로 보여줄 수 있다.

화장품계의 테슬라는 어떤 형태일까?

지금은 화장품을 만들 때 최소주문수량(MOQ)이란 게 있다. 생산시간도 오래 걸리고, 만약 안 팔릴 경우 재고 위험도 떠안아야 한다. 생산 단위가 커서, 한번에 1000개, 3000개씩 한 제품을 만들어서 많이 밀어내는 구조다.

소프트웨어 세상은 이와 다르다. 먼저 그림을 스케치하고, 소프트웨어로 개발 과정을 정의한다. 우리도 소위 ‘디지털 트윈’이라는 걸 만들고, 여기에 맞춰 하드웨어를 굉장히 유연하게 붙였다. 전기차가 기존 자동차와 달리 소프트웨어부터 설계하고 하드웨어를 붙인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되면 주문이 들어온 후에 제품을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 안 팔린다고 하더라도 재고 위험이 없는, 그런 세상을 만들면 되겠다 싶었다. 이런 구조를 가능하게 하는 스마트 팩토리와 백오피스 구축이 핵심이다.

이제는 주문을 받고 제품을 만든다는 이야기인데 이렇게 되면 개인별 최적화된 상품을 개발할 수 있다. 그 경우 여기서 구매하는 사람들의 개별 피부 타입도 데이터로 확보할 수 있나

피부타입을 측정해야 가능한데, 그 부분은 아직까지 어느 누구도 잘 이끌어가지 못하고 있다.그래서 우리도 중간자에게 맡기고 있다

중간자라고 한다면?

맞춤형 화장품 소재 관리사나, 전문성을 가진 인플루언서가 요즘 정말 많다. 그리고 자기가 스스로 원료를 조합해서 쓰는 사람들도 있다. 그게 저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라고 생각한다.

그 미래는 어떤 형태로 오게 될까?

올리브영에서 프로모션 걸린 원 플러스 원을 사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내 사진만 찍으면 그걸 바탕으로 추천해줄 수 있는 상황이 와야 하지만 그 시기는 조금 더 걸릴 것 같다.

요즘은 손쉽게 자신의 유전자 타입도 분석해준다. 비팩토리도 길게는 유전자 정보를 결합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게 많은 회사의 로드맵에 다 걸려 있다. 그런데 저는 아직 거기에 대해선 약간 회의적이다. 제노타입(유전자형)과 페노타입(표현형)을 완벽히 연결하는 매핑 기술이 지금은 없다. 훨씬 더 데이터셋이 많아져야만 얘기할 수 있다.

각 회사의 (비전) 발표를 갖고 교수님들은 구름 위의 청사진을 보여주곤 하지만 현실은 그것보다는 훨씬 느린 속도로 가고 있다. 사업하는 입장에서는 현실과 이상 사이에 균형을 맞춰야 한다.

지금은 딱 반 발짝만 앞서야 한다는 건가?

맞다. 16컬러 도트 프린터가 처음 나왔을 때 “책을 집에서 만들게 될거야”라고 말하면 인쇄소 사장님들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라고 답했다. 지금이 딱 그 시대로 보인다. (지금은 아직 빠르다고 생각되지만 앞으로는) 화장품 뿐만 아니라 모든 공산품이 그렇게 될 거다. 일반 소비자가 기술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단계까지 가는데 시간이 항상 필요하다.

그렇지만 그때도 항상 실험적인 프로젝트는 있었다. 그 새로운 시도가 수많은 전통적인 바이오 사업가를 밀어내게 될 거다. 지식과 소프트웨어 코드를 다루는 스킬이 있는 사람이 뭐든 할 수 있는 시대가 되고 있다

그래서 공부를 계속 하는 건가?

제가 이제 이 회사를 마지막으로 그만할 거다. 이 회사를 앞으로 30년은 하겠다는 이야기다.

그러니까, 오래 하겠다는 이야기인데(웃음)

그게 정확한 표현이다. 30년을 내가 뭘 해서 먹고 살 것인가, 어떤 스킬을 준비하고 있어야 살아남을 것인가를 생각하면 그냥 ‘엔지니어’다. 그래서 AI나 블록체인, 심지어 저희 서비스를 만드는 노드 같은 것도 제가 다 코드를 만든다.

계속 배운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어떻게 계속 공부를 할 수 있나? 통상은 어느 정도 성공하면 게을러질 것 같은데

남들에게 보여지는데 시간과 에너지를 쓰지 않는다면, 사실은 지금 대부분의 인간은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고 충분한 시간도 있다. 그래서 나는 소셜미디어와 게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것들이 불필요하게 사람에게 압박감(peer pressure)을 주고, 그 속에서 계층 시스템을 만들어 돌리면서 내가 에르메스 백을 사고 벤츠를 사야 될 것만 같은 세상으로 계속 밀어넣고 있다. 저는 그 세상에서 탈출하는 것이 일단 첫번째로 중요한 것 같다.

계속 공부할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그렇다. 성공한 창업가가 되더라도 그 늪에서 빠져나오는 건 쉽지 않다. 왜냐하면 거기에 들어가버리면 저 위로 김봉진이 있고, 장병규가 있고, 김택진이 있고, 김범수가 있다.

여기에도 피라미드가 있다?(웃음)

오히려 레벨이 더 강렬하게 갈린다. 그러면 그 박탈감과… 저도 거기서 탈출하는데 시간이 꽤 필요했던 것 같다.

코딩도 다시 시작했다고 하지 않았나. 사실 그쯤되면 많이들 손을 떼는데

앞으로 30년 동안 이 세상에서 보조를 맞춰서 가려면 그냥 자본으로는 어렵다. 아무리 부어도 훨씬 더 큰 자본이 있기 때문이다.

진짜 소중한 자원은 젊은 재원들과 같이 뭔가 할 수 있고, 동료가 될 수 있는 능력인데 거기에는 돈의 힘에 더해서 그들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스킬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그들이 짜는 코드를 나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내가 계속 창업을 했던 이유 역시, 창업가들과 이야기하려면 그 고통의 늪에서 계속 그 감정선을 같이 타줄 수 있어야 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비팩토리의 비전으로 돌아가면, 아직 전문가들은 바이오 신기술을 완벽하지 않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저도 블록체인 같은 기술을 보면서 느낀 건데, 어찌 되었건 변화가 일어나면 그 변화의 긍정적인 면을 확대해석하는 쪽으로 계속 움직여야한다.

굉장히 중요한 메시지로 들린다

기득권자 입장에서 보면 100의 확률이 아니면 어떠한 변화도 다 거부할 명분이 이만큼씩 있다. 왜냐하면 새로운 것의 성공 확률이 30정도 나오기 때문이다. 나머지 70 만큼의 공격여지가 있다.

저도 모든 기회를 다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항상 70의 경우에 서는 경우가 많았는데 요즘 생각을 바꿨다. 태터앤컴퍼니를 할 때도 웹2.0이라는 트렌드에 의한 변화를 강하게 받아들였고 수혜를 얻었다.

지금 나오는 변화들, 예를 들어서 웹3.0 키워드도 2~3년 안에 굉장히 세게 올 거라고 본다. 아직은 블록체인 인프라가 받쳐주지 못하지만, 그것도 최근 3~4년 동안 문제들이 해결되어 가고 있다.

소프트웨어가 그냥 전산학의 영역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영역으로 가고 있다. 다 데이터로 만들어 버린 달음에 코드를 통해 그 데이터를 조직해서 기득권자가 갖고 있던 것보다 더 뛰어난 생산성을 더 큰 스케일로 보여주고 있다.

그 영역에 진입하고 싶은 욕심은 없나

그 영역에 진입하려고 지금 준비를 하고 있는 거다. 바이오 공부도 하고, 유전자 공부도 한다. 그렇게 보다보면 이런 분야들이 소프트웨어의 영역으로 빨리 넘어오겠구나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걸 현실화하고 있는 기업들도 나오고 있고.

구글이 인수한 태터앤컴퍼니처럼, 또 다시 대박이 가능하다고 보나?

뉴 테크를 이전에는 기득권 입장에서 “이건 너무 리스크가 큰데”라고 봤었다. 그런데 이제는 확실한 미래가 될 것 같은 몇개를 내 키워드로 삼았다. 바이올로지를 비롯해서 모든 상품의 소프트웨어화, 블록체인 때문에 생기는 모든 서비스의 웹3.0 화 같은 것이 내가 선택한 키워드다.

태터 뿐만 아니라 파이브락스도 엑시트 했다. 이번에는 엑시트 안 하고 쭉 가는 건가?

정성들여서 만든 생산 기반을 남한테 파는 게 바보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산 기반을 새로 만드는데 노력이 너무 많이 들어가더라.

시장의 경쟁자는 없나?

많이 있다. 우리가 만든 프린터 같은 제품을 만든 곳도 있고. 그렇지만 경쟁을 크게 걱정하진 않는다. 이게 기득권자들이 할 수 있는 사업이 아니라서다. 빨리 카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소프트웨어 산업이 기계만 똑같이 만든다고 따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SK나 삼성이 다 네이버가 됐어야 하지 않나?

네이트온을 가진 SK가 메신저 시장에서 카카오톡에 밀린 것과 마찬가지인가?

그렇다. 제 머릿속에 수많은 씨실과 날실로 얽혀있는 전략의 맵이 있다. 웃기지만, 저를 카피할 수는 없다. 기계는 따라할 순 있지만, 저희가 만들어가는 서비스의 인프라와 변화의 속도를 못 따라올 거라고 본다.

갖고 있는 긴 로드맵을 100으로 본다면, 지금의 단계는 어느 정도일까?

지금은 한 3? 우리도 맞춤형 화장품 시장이 바로 올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뜬구름 잡는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

고객들이 아직은 스스로 결정하지 못한다. 누군가가 해줘야 하는 부분이다. 과거에는 기라성 같은 브랜드의 제품이 그 역할을 했다. 그런데 지금은 굉장히 많은 빅마우스가 그 역할을 한다. 지금은 그 중간자(빅마우스)를 위한 화장품 프린터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 현재의 비전이다.

버틸 맷집도 있지 않나

돈도 좀 있다. 원래 이렇게 외치다가 잘 되면 좋은 거고, 아니면 잊혀지는 거다.

자신 있어 보인다

자신 있어진지 얼마 안 된다. 사실 작년에 화장품 사업을 하려고 기성 브랜드를 인수했다. 2030 여성들한테 인지도가 있는 색조 회사 ‘아멜리’다. 마켓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보려고 인수했는데, 회사에 맞는 인재를 셋업하는데도 굉장히 애를 먹었다.

첫 1년은 망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지난 1년 동안 그 회사를 건져내서 올해는 매출이 거의 50억원 나는 회사로까지 키웠다. 회사를 살려낼 때 전통적인 방법은 하나도 안 쓰고, 예전에 태터앤컴퍼니 때 했었던 변경된 미디어의 방식을 활용했다. 1년 동안 회사가 쭉 살아났다. 그래서 좀 자신감이 생겼다.

 

소프트웨어를 잘 만드는 줄 알았던 노정석 대표는, 영업도 잘한다. 인터뷰 말미에 “더 하고 싶은 말은 없는지” 물었더니, 깜빡했다면서 최근 론칭한 ‘킵(Kyyb)’이라는 화장품 브랜드 이야기를 꺼냈다. 계면활성제 없이 기름 형태의 탄화수소 화합물을 몸 속에서 이동할 수 있도록 하는 신약 기술을 화장품에 결합시켰다는 말에 나도 모르게 지갑을 열었다. 이 기사를 쓰고 있는 지금, 벌써 그 화장품이 집으로 배달이 왔다는 문자가 왔다. 한국의 택배는 역시 세계 최고다.

한 사람에게 세번의 영광이 찾아올지 여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이 철저한 준비를 바탕으로 한 꾸준한 도전이라면, 아무래도 성공 가능성은 더 있어 보인다. 40대 중반에 접어든 이 연쇄 창업가의 마지막 도전이 정말로 성공할 수 있을지, 그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꽤나 공부가 될 만한 일일 것 같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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