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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3D캐드의 혁명을 꿈꾸는 스케치소프트

먼저, 영상부터 보고 오시겠다.

도화지 위에 전후좌우, 360도로 움직이는 삼차원 그림을 그릴 수 있다면 어떨까.

그 상상을 기술로 실현한 스타트업을 만났다. 스케치소프트는 태블릿 위에 그림 그리는 소프트웨어 ‘페더(FEATHER)’를 만든다. 평면 위 이차원(2D) 그림을 실시간 삼차원(3D) 입체로 바꾼다는 것이 강점이다. 자격증을 따야 하는 ‘캐드’를 배울 필요가 없다. 창작자 머릿속 아이디어를 곧바로 3D 모델링으로 변환할 수 있다.

‘신기한 소프트웨어’라고 생각했는데, 회사를 창업한 김용관 대표를 서울 역삼동 스케치소프트 사무실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이 사람이 조금 더 큰 판을 짜고 싶어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림을 그리는 방법이 달라지면 아이디어를 내는 방식과 작업 형태가 완전히 달라진다”는 말은 어딘가 상상을 자극 하는 부분이 있다. 많은 이가 머릿속 상상을 삼차원 콘텐츠로 풀어낼 수 있다면,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열릴 수 있지 않을까.

소프트웨어를 단품으로 파는게 아니라, 서비스로 만들어 공급한다는 생각도 흥미로웠다. 스스로를 기술혁신가라기 보다, 디자이너의 파트너, 예술가들의 친구로 자리매김하려는 시도가 즐거워보였다.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소프트뱅크벤처스가 이 회사를 눈여겨 보다가 투자한 이유를,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한 장으로 요약한 스케치소프트

어디서 기회를 봤나_

자동차나 건축 디자이너는 최초 아이디어를 스케치로 만들어 3D 모델링 전문가에게 작업을 의뢰한다. 이때 전문가는 평면위에 그려진 2D 스케치를 3D로 만들기 위해 계산을 하고 좌표를 찍어야 한다. 디자이너의 머릿속 창작물이 그대로 구현되면 다행이겠으나, 한번에 그런 결과물을 받기는 어렵다. 계속된 커뮤니케이션 과정을 거치면서 시간과 비용을 쓴다.

문제 해결법_

만약 창작자의 스케치를 곧바로 3D 모델링 할 수 있으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에서 기술 개발이 시작됐다. 다른 사람의 손을 거치지 않고 창작자의 스케치를 실시간 변환하므로 쉽고 빠르게 모델링 결과물을 얻을 수 있도록 제품을 구현했다.

수익 모델_

개별 소프트웨어를 판매하는 게 아니라, 이 소프트웨어서 만들어낸 창작물을 저장하는 공간을 판다. 구글 드라이브와 같은 개념이다. 소프트웨어를 통해 창작하는 이들이 많아질수록 회사도 돈을 더 버는 구조가 된다.

지금 가진 과제와 넘어야 할 부분

이용자의 공동 창작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지 고민 중. 창작물이 텍스트가 아니라 그림이기 때문에 더 까다로운 부분이 있다. 태블릿과 펜슬이라는 하드웨어가 있어야 하므로, 디바이스에 종속되는 프로그램이 될 가능성도 있다.

미래 가능성_

아직까지 디자이너의 요구사항을 반영한 대중적 프로그램이 없다. 또 웹툰이나 애니메이션, 메타머스 등 개인의 창작물을 필요로 하는 생태계가 성장하면 창작을 돕는 저작도구의 시장 역시 커질 것으로 보인다.

엑시트 가능성_

더 많은 콘텐츠 생산자를 생태계 구성원으로 끌어들이려 하는 글로벌 플랫폼에서 페더와 같은 프로그램에 관심을 보일 가능성이 있다.

(왼쪽부터) 스케치소프트 양준원 최고 디자인 책임자, 김용관 최고경영자, 홍규형 최고 제품 책임자

어떤 기술을 만들고 있나? 쉽게 요약해달라

종이 위에 펜으로 그리는 그림은 결국 이차원 평면상에 존재하는 입력물이다. 우리가 만드는 기술은 이차원에 그린 이미지를 컴퓨터가 수학적으로 해석해서 삼차원 그림으로 만들어주는 것이다.

기존에도 이차원 그림을 삼차원으 만들 수는 있지 않았나? 그에 비하면 뭐가 어떻게 달라지는 건가?

기존에는 이차원으로 스케치를 한 후에 이걸 그대로 삼차원 변환하는 과정이 없었다. 스케치를 옆에 두고 눈으로 보면서 캐드와 같은 별도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수치나 좌표를 입력해야  하는, 그런 별도의 삼차원 모델링 작업을 거쳐야 했다.

캐드 프로그램 같은 건 자격증이 있어야 하는거 아닌가? 전문가의 영역이라 어렵게 느껴지는데

그림을 그리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다. 가장 어려운 작업은 그림으로 그려진 아이디어를 그대로 삼차원 모델로 가져오는 거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그림이 모델링으로 이어지는 중간과정이 끊어져 있다. 그림을 그린 사람과 모델링을 하는 사람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둘 사이에 커뮤니케이션을 해가면서 작업해야 하는데, 여기에서 시행착오가 생기기도 한다.

만약 아이디어를 처음 낼 때부터 삼차원으로 정보를 남길 수가 있다면 그 정보를 그대로 가져와서 모델링에서 활용할 수 있다.  창작자가 자신의 머릿속에 떠올린 아이디어를 가장 온전한 삼차원 형태로 담아낼 수 있는 도구라 의사소통의 시행착오나 비효율을 줄일 수 있다.

작업 비용도 줄겠다

예를 들어 자동차는 디자인 과정에서 스케치랑 모델링에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분야다. 한 자동차 스튜디오와 제품 프로토타입에 스케치소프트 프로그램을 적용해보는 프로젝트를 했다.

원래는 디자인을 삼차원 모델로 만들고 이를 디자이너의 마음에 들때까지 수정하는 것만 해도 풀타임으로 열명이 넘는 사람이 2주 동안 작업해야 하는 분량이었다. 저희 프로그램을 가져가서 디자이너가 그동안 스케치해왔던 것을 삼차원으로 그려가면서 곧바로 모델링 하니까 해당 작업이 이틀만에 끝났다.

작업의 완성 여부는 결국 디자이너가 스케치에서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 삼차원 모델에서도 잘 드러났느냐 하는 걸로 판단된다. 정량적인 것이 아니라서 디자이너의 마음에 들 때까지 반복 작업해야 했는데, 그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창작자 의도를 잘 살릴 수 있다는 부분에서 자동차 외에도 활용될 수 있는 분야가 많을 것 같다. 예를 들어 애니메이션 같은 분야가 생각난다

제품이든 콘텐츠든 가상의 디지털 정보든 모든 걸 창작이라고 봤을 때, 그 첫 단계에서 스케치를 안 하는 분야는 없다. 대학원에 다닐 때 자동차 디자이너를 돕기 위해서 시작한 기술 연구였는데, 이걸 시장에서 테스트를 해보니까 건축은 물론이고 영화, 게임, 애니메이션에 들어가는 캐릭터나 소픔 디자인 모두에도 사용할 수 있더라. 아예 새로운 삼차원 그리기가 가능하다. 예술 도구의 일환으로 미디어 아트나 설치 미술 등에도 도움이 됐다.

웹툰 같은 영역에서도 계속해 실험적인 기술이 들어가는데, 거기에서도 활용될 수 있을 것 같다

맞다. 특히나 웹툰도 기존의 모바일 2D 플랫폼에서 시장이 완숙된 상태다.  새로운 시도로 콘텐츠를 제공하고 싶어하는 움직임이 있다.

그림을 그리는 도구는 아이패드와 애플펜슬인데

기존의 그림을 그리는 경험과 가장 유사하게끔 설계를 하고 있다. 그림을 배웠던 분이라면 여기서 새로 배울 건 거의 없이 하던대로 자연스럽게 그림을 그리면 된다.

스케치소프트 단체 사진

원래는 뭐하던 사람이었나(웃음)

카이스트에서 산업 디자인을 전공했는데, 학교에서 공학 지식도 쌓았다. 덕분에 디자이너가 무엇을 원하는지 잘 이해할 수 있었고, 그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걸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도 알 수 있었다. 그런 부분을 독학해 가면서 구현했고 첫번째 프로토 타입을 만들었다. 그걸로 연구도 하고 논문도 썼는데 학계에서 반응이 되게 좋았다. 막 상도 타고(웃음).

지금 창업한 이 아이디어로 말인가?

그런데 제가 정말 잘 쓰이길 바랬던 이 제품을 실제로는 디자이너들이 잘 쓰지 않더라. 디자이너들은 내가 논문상을 탔는지, 어느 학술지에 논문이 실렸는지 같은게 중요하지 않았다. 결국에는 시장에서 쓰일만한 소프트웨어가 나오고 그걸로 멋진 결과물을 만드는 사람이 많아져야 한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박사를 졸업하고 창업 준비를 해서 뛰쳐 나왔다.

좋은 연구 성과가 디자이너의 선택으로 이어지지 않은 것은 어떤 이유 때문이었을까?

이걸로 진짜 어떻게 디자인을 하는지 그 사례를 보여주지 않아서라고 생각을 한다. 사실 디자이너에게 논리적으로 설득해서 이 소프트웨어를 쓰라고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게 아니라 정말 훌륭한 디자인, 멋진 디자인을 보여주는게 중요하다. 디자이너가 “어, 너 이거 어떻게 한거야?”라고 묻게 하는 거, 딱 그거다. 그러면 디자이너는 “나도 써볼래”가 된다. 그때부터 설득이 되는 거다. 이 도구가 얼마나 훌륭하고 좋은지를 설명하는 것보다 이걸로 정말 끝내주는 디자인을 우리가 만들고, 믿을 만한 사람들이 쓰는 걸 자주 보게 만들면 사람들이 점차 따라오게 될 거라고 본다.

창업한지 오래되지 않았다. 창업 후 가장 집중한 부분은 무엇인가?

지난해 2월에 창업했다. 나는 어떻게 보면 어디까지나 공돌이다. 그러니까 진짜 아티스트, 디자이너를 모아서 우리 소프트웨어로 아트워크 작업을 해보도록 하는데 집중을 많이 했다. 그래서 우리 팀원중에는 미대 출신이나 아티스트 분이 많다. 우리 기술을 계속해 쓰면서 작품을 만들어내는 걸 중요하게 생각한다.

아티스트에게는 어떤 변화가 있을거라고 기대하나?

생각을 하게 하는 도구가 달라지는 거다. 이렇게 작업하다보면, 사실은 아이디어를 내는 방식이 달라진다. 작업하는 프로세스가 완전히 바뀐다. 애초에 2D로 작업하는게 아니라 3D로 사고하길 원하는 창작자는 과거의 경험으로 돌아갈 수 없을거라고 본다.

메타버스 내의 창작 생태계를 위한 도구가 지금 없는데, 그런 부분에서도 흥미롭다

이런 흐름이 3D 프린팅이 한참 붐일때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3D 프린팅의 특허가 풀리고 누구나 할 수 있는 기술이 됐는데 사람들은 뭘 만들어야 하는지 모르는 상태가 됐다. 누군가 작업해 놓을 걸 나도 다운로드 받아서 뽑아볼 수 있다는 정도였다. (도안을) 창작할 수 있는 도구가 없다고 보니까 출력 기술이 아무리 좋아져도 시장이 흥하지 못했다. 페더에서 스케치한 이미지파일을 표준화된 포맷으로 3D 프린터와 연동해 출력할 수도 있다.

콘텐츠를 유통하고 소비하는 기술은 너무 많다. VR이나 AR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콘텐츠를 만드는 기술은 없다. 만드는게 가장 어려운 것이기도 하고, 내가 창작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생태계 안에서 권력이기도 하다. 단순히 내가 소비자가 될지, 생산자가 될지를 결정하는 관점이다.

메타버스 생태계에서 창작자를 만드는 도구가 될거라고 보나?

이렇게 될지는 예상을 못했다. 디자이너를 도와주는 소프트웨어라고 했는데, 어느 순간 우리보고 “너네 메타버스다”라고 하더라. 궁극적으로는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메타버스라는 공간에서 창작이라는 경험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라는 과제를 받았고, 고민하고 있다.

협업하자는 요청도 있을 것 같은데

저희가 관심있는 분야가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을 만드는 스튜디오다.

직접 스튜디오가 되실 수도 있겠고,

정확하다. 사이드 목표로, 결국에는  이 툴을 훌륭하게 만든 사람이 이 툴을 가장 잘 활용해 디자인도, 작업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희가 디자인 작업을 계속 해보는 것이 꿈이기도 하다.

브랜드 스토리를 쌓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대중에게 어떤 이미지가 되길 바라나

이 도구를 통해 세상하고 소통을 하게 될텐데, 기술적으로 뛰어나다는 걸 강조하기보다 진짜로 내가 원하는 걸 아는 사람이 만들었구나 이런 생각을 갖게 만들고 싶다. 디자이너가 만든 것 같다, 진짜로 창작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만든 소프트웨어다, 이렇게 동질감을 줄 수 있게 말이다. 굳이 말로 소통하려는게 아니라 제품으로 이심전심할 수 있는 이미지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소프트웨어 개발에 기술적으로는 어떤 부분이 가장 도전적이었나?

여러 가지가 있었다. 공동 창작을 어떻게 할 수 있게 할지도 고민이고, 이 소프트웨어를 통해 생겨나는 창작물의 용량이 무한대로 커질 수 있다는 것도 고민 중 하나였다. 쉽게 말하자면 서버 용량을 한 사람이 다 차지할 수도 있다. 게임 같은 경우는 서비스사가 공급하는 데이터를 갖고 재미있게 놀면 되는데, 여기에서는 사람들이 데이터를 무한대로 만들어낸다. 그렇다고 이용자 사용 용량에 제한을 둔다는 것은 우리의 창업 정신과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제한 없이 창작하게 만들자고 했기 때문이다.

비즈니스 모델을 만드는 것과도 직결되는 문제였겠다

창작을 하는 사람이 여기에 충성도가 높아지도록 해야 한다. 여기에서 활동할 수 있는 자유도나 용량을 확보하게 하는 방식을 바랐다. 여기서 특정 기능을 얼마에 판다, 이런 식의 모델은 말이 안 된다고 봤다.

용량을 팔겠다는 이야기인데?

여기에 직접 몰입해서 실제로 의미 있는 결과물을 많이 만드는 것에 집중하게 하려 한다.  그 과정에서 요금이 만들어지는 것이지 소프트웨어가 얼마이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돈을 낸 사람에게만 일부 기능을 쓰게 하는 것은 창작의 즐거움을 해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비용정산은 자신의 창작물 데이터가 얼마나 서버 용량을 차지하는지에 따라 청구할 생각이다.

예를 들어서 애플이나 구글에서 이걸 사겠다고 하면, 파실 생각이 있나?

저희가 이 제품의 방향성을 세상에 한 번도 제대로 제시를 하지 못한 채 팔고 싶지는 않다. 가능성만 보고 사간다, 이렇게 되면 저희는 좀 아쉬울 것 같다. 우리가 이름을 남겨야지. 세상에 이름을 알리고, 그 이후에 우리 능력으로 세상에 이 기술을 더 퍼뜨리기는 어려운 그런 한계가 올 때는 플랫폼과 함께 가는게 맞다고 생각한다. 우리 프로그램이 하드웨어에 조금 종속적인 부분이 있기도 하고. 사실 연필(애플펜슬)이 없으면 안되기도 하고. 만약 애플이 더 이상 애플펜슬을 안 만든다고 하면 저희는 고민이 더 많아지는 거다.

재미있다. 앞으로의 계획을 듣고 싶다

진짜 마음에 드는 3D 스케치 도구를 만들었는데, 이걸 어떤 분야에서 누가 제일 잘 쓸 수 있는지, 이런 것을 아직 확인하지 못한 것 같다. 그래서 이 제품을 들고 굉장히 많은 분야를 찾아다니면서 테스트를 해보고 싶은게 가장 급선무다. 그 과정에서 세상을 놀라게 할만한 결과물을 만들어 멤버를 더 많이 모으는 게 목표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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