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습니다. 스타트업 지원에 적극적인 기업으로는 네이버가,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국내 스타트업으로는 카카오가 꼽혔습니다. 코스피 시가총액 순위에서 네이버는 3위, 카카오는 6위인데요. 똑같이 대기업인데도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네이버는 지원군으로, 카카오는 똑같이 도전하는 자로 여겨지는 셈이죠.

스타트업얼라이언스와 오픈서베이가 최근 ‘스타트업 트렌드 리포트 2021’이라는 것을 함께 발간했습니다. 원본은 스타트업얼라이언스에서 다운로드받아서 볼 수 있는데요. 이 보고서 발표 자리에서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어쩌면 네이버가 스타트업에게 ‘지원군’으로 읽히게 된 이유에 대한 것입니다. 대기업의 ‘오픈 이노베이션’에 대한 관점이죠.

지금 국정감사에서 골목상권 침해로 뭇매를 맞고 있는 카카오의 모습은 네이버에 가까운 과거의 그림자입니다. ‘김범수(카카오 의장) 국감’이 대략 8년 전에는  ‘이해진(네이버 창업자) 국감’ 이었거든요. 당시에 네이버는 기술이나 플랫폼 스타트업의 핵심 아이디어를 베꼈다는 의혹도 받았고, 또 소상공인들의 사업 영역을 침범하고 있다고 비판도 받았습니다. 그런 이슈는 네이버 내부에서도 매우 심각한 것이었죠.

보고서 발표 자리에는 네이버의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팅 기관인 D2스타트업팩토리(D2SF)의 양상환 센터장도 참여했는데요, 그는 “플랫폼 규제 이슈가 시끄러운데 네이버에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이미지를 벗고 스타트업 생태계 내에 녹아들기 위해 분투했단 이야기를 덧붙였죠.

그럼 지난 몇년간, 네이버라는 회사가 사업을 하는 방식이 본질적으로 변했을까요? 해석에 따라 다르겠지만, 회사가 그렇게 급격히 체질 전환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오히려 당시 문제가 됐던 당사자들, 그러니까 스타트업과 협업하는 방식, 태도가 달라졌다고 보는 게 더 합리적일 거라 생각합니다.

네이버가 잘했냐 못했냐, 좋은 기업이냐 아니냐, 그런 것을 논하자는 것은 아니고요. 다만, 양상환 센터장이 말한 ‘대기업의 오픈 이노베이션을 대하는 자세’는 이야기를 나눌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오픈 이노베이션은, 기업의 혁신에 필요한 기술이나 아이디어를 외부에서 가져와 활용하자는 것인데요. 말 그대로 상생을 통해 서로 윈윈하자는 것이죠.

지금 현재 상태로만 본다면, 오픈 이노베이션을 환영하는 것은 대기업입니다. 양 센터장의 말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지난 1년간 대기업 사이에서는 ‘오픈 이노베이션’에 매우 적극적입니다. 양 센터장은 ‘난리’라고도 표현했는데요. 대기업들이 팬데믹 발 경제난을 타개하는 방법론으로 오픈 이노베이션을 택했고요, 그래서 해외 유명 사례를 벤치마킹하는 경우도 정말 많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또 흥미로운 점은, 이 시도가 꼭 성공으로 이뤄지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어느 대기업이 오픈 이노베이션으로 성과를 거뒀다는 말, 들어보신 적 있나요? 드물죠.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요?

(왼쪽부터) 이기대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이사, 양상환 네이버 D2SF 센터장, 권도균 프라이머 대표, 이복기 원티드랩 대표.

양상환 센터장은 원인을 “대기업이 스타트업을 ‘도구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라 진단 내립니다. 자신들에게 혁신이 필요하니까 그 기술을 가진 스타트업을 활용해서 위기를 이겨내자는 생각에는 파트너인 스타트업과 상생은 존재하기 어렵다는 것이죠. 양 센터장은 “오픈 이노베이션은 결국 스타트업이 아니라 대기업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사고 방식 체계”라고 말하더군요.


도구적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대체로 이런 겁니다. “내가 무엇을 해줄테니, 너는 정해진 기간 내에 내가 원하는 것을 가져와서 요구에 충족시켜라. 네가 가진 것을 보여줘봐라, 그중에 괜찮은게 있으면 우리가 쓰겠다” 같은 태도 말입니다. 공간이나 일부 운영 자금을 제공하고 돈을 투자한다고 해서 다 협업이 이뤄지고 서로가 원하는 결과를 맺는 것은 아닙니다. 요즘은 민간 뿐만 아니라 정부 지원도 많습니다. 대기업의 고자세에 질려버린 스타트업이 많다는 거죠.

거래라는 것은 서로가 얻는게 있어야 이뤄지는 거죠. 대기업과 스타트업이 서로 원하는 것을 어느정도 충족시킬 수 있는 어느 중간 지점에서 협업이 이뤄져야 오픈 이노베이션도 가능합니다.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보기에 대기업은 협업에서 상대가 원하는게 뭔지 스타트업의 성장에 무엇이 도움이 되는지에 대한 고려가 상대적으로 덜 되어 있습니다. 스타트업이 원하는 걸 얻지 못하는데 굳이 오픈 이노베이션에 적극적일 필요가 있을까요?

대기업과 협업에 나섰던 스타트업이 “프로그램 자체가 워킹하지 않는다, 내가 가진 자산만 활용되거나 시간만 빼앗긴다”라는 인식을 가지게 되는 이유죠.

대기업과 스타트업이 동등하게 협업하려면, 대기업에서 먼저 “대가 없이 도움을 줘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액셀러레이터인 프라이머의 권도균 대표는 “스타트업이 대기업하고 협업하려고 하면 하지 말라고 조언한다”면서 “힘겨루기가 안 되는 경기를 하러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기대하지 말라는 것”이라고 말했는데요. 이는, 지금까지 대기업이 어떻게 오픈 이노베이션에 접근해왔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의 이기대 이사도 “대기업의 직원이 자신의 리포트를 만들거나 준비할 때 스타트업에 연락을 취하고, 자기 조사만 하고 끝나는 경우가 초창기 많았다”면서 “스타트업 대표의 경우 대기업의 브랜드를 보고 좋은 일이 있을 거라 기대하고 만났다가 실망만 하는 경우가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스타트업 창업자의 목소리도 이 자리에서 들을 수 있었습니다. 최근 상장한 스타트업 원티드랩의 이복기 대표는 “시너지를 만들고 성장의 동력으로 삼으려고 (오픈 이노베이션에 협력)하는데, 대기업 입장에서는 이게 잘돼도 그만, 안 돼도 그만이라 온도차를 많이 느낀다”며 “담당자가 본인의 목표나 성과로 삼고 꾸준히 생태계를 만들고자 노력해야 (오픈 이노베이션이) 작동하지, 그냥 한 번 해보자라고 접근해서는 주요의사결정권자의 (의사가 바뀌는 순간) 방식에 따라 끝나 버린다”고 언급했죠.

이들의 목소리를 정리하자면 관통되는 점은 하나입니다. “오픈 이노베이션을 하려면, 실제로 스타트업에 필요한 것을 내줘라”죠. 이 지점을 대기업이 고민하지 않는다면, 말로만 오픈 이노베이션인 현실이 크게 바뀔 것 같지 않습니다.

최근에 국내 대기업에 다니는 한 친구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었습니다. 요즘 같은 분야에서 A라는 스타트업이 잘 하고 있다고 보고 했더니, “거기 얼마야? 그냥 사버리면 어때?”라는 이야기를 임원으로부터 들었다고요. 왜 돈도 많고 인재도 많은 대기업에서 아직도 ‘이노베이션’이 일어나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바로 이 이야기들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