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세지는 미국 압박…반도체社 “기밀 보호냐, 고객사냐” 고심

반도체 기업을 대상으로 제품 판매와 관련한 기밀을 공개하라는 미국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면서 현지 생산라인 증설을 검토하고 있는 삼성전자 등 국내 기업들의 긴장도도 커지고 있는 형국이다.

27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미국 행정부는 삼성전자, TSMC 등 반도체 기업을 대상으로 45일 안에 재고, 수요, 판매 정보 등을 담은 설문지를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재고, 수요, 판매 정보 등은 기업의 실적 및 경영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어 대부분의 업체들이 극비에 부치는 내용들이다. 하지만 미국 정부가 이 정보를 공개하라고 요청한 것이다.

 

메모리는 그나마 다행, 파운드리·車반도체 어쩌나

반도체 수급난이 심화되면서, 바이든 행정부는 세 차례에 걸쳐 반도체 및 완성차 업체들을 불러모아 반도체 공급망 긴급회의를 실시했다. 첫 회의에서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반도체 투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두 번째 회의는 반도체 업체들의 현황을 점검하고, 미국 내에 생산시설 확충 제안을 골자로 했다. 두 번째 회의까지만 해도 완곡한 제안 쪽이 좀 더 가까웠다.

그런데 이번 3차 긴급회의에서는 미국 행정부가 기존에 비해 훨씬 강경한, 압박성 요구를 했다. 지나 레이몬도(Gina Raimondo) 미국 상무장관은 이번 반도체 기업 정보 공개와 관련해 “기업들이 정보를 제출하면 반도체 수급난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라며 “기업들이 협조에 응하지 않으면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반도체 기업들에게 압박을 가했다.

현재 미국 행정부에서 가장 주시하고 있는 부문은 차량용 반도체와 파운드리다. 익명을 요청한 한 반도체 업계 종사자는 “메모리 사업의 경우에는 현재 공급이 많아지고 있는 상황이기에 이 사안과 거리감이 있으나, 파운드리 및 차량용 반도체 부문에서는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상황”이라며 “다만 메모리 기업들도 미국 측이 어떻게 나올 지 모르기 때문에 사태는 파악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번 미국의 압박으로 가장 긴장하고 있는 기업은 삼성전자다. 삼성전자는 미국 내 생산라인 증설과 투자를 논의하고 있는 중이었다. 또한, 이번 3차 긴급회의에 참석했으며 세계 파운드리 점유율 2위를 달라고 있는 기업이다. 현재 미국 정부의 명확한 타깃인 셈이다. 따라서 삼성전자는 정보 공개 여부를 두고 특히 고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미국 진출 계획했는데… 삼성전자 ‘진퇴양난

재고, 수량, 고객사 등의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삼성전자에게 매우 불리할 수밖에 없다. 미국 측에서 반도체 수율이나 재고, 생산주기, 원가 등 사업을 영위하기 위한 대부분의 정보를 알게 되면 그만큼 삼성전자의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

우선 미국 기업들에게 기술이 유출될 가능성이 있다. 삼성전자의 메모리 기술은 미국 메모리 업체이자 세계 3위를 달리고 있는 마이크론에게 유출될 수 있다. 파운드리 기술은 최근 IDM 2.0을 통해 파운드리 사업에 팔을 걷을 것이라고 선언한 인텔에게 유출될 수 있다. 심지어 이 기업들은 미국 정부 친화적인 기업으로, 기술 유출의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또한, 삼성전자의 수익 면에서 피해가 갈 수 있다. 반도체 사업을 영위하려면 경영 전략이 중요하다. 전략적으로 생산량(CAPA)을 변동하거나, 생산비용은 줄이고 경쟁력만큼 가격은 높일 필요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정보를 미국에 전달하면 강제적으로 반도체 가격을 낮춰야 하는 상황이 올 가능성도 있다. 결국 구매협상 면에서 불리한 위치가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이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것도 어렵다. 파운드리 고객사는 주로 미국에 분포해 있기 때문이다.

파운드리에 위탁생산을 맡기는 기업은 생산라인이 없는 반도체 설계업체 팹리스(Fabless) 기업들인데, 대부분의 팹리스 기업들이 미국에 위치해 있다. 미국은 현재 자국에 생산라인을 가지고 있는 기업을 대상으로 주문을 수주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할 예정인데,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다는 것은 곧 미국에 진출하지 않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결국, 기밀을 유출하고 미국에 진출하거나, 정보를 보호하고 미국 고객사를 포기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왔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미국이 현재 반도체 사업 부문에서 강경하게 나오고 있는 상황이기에, 결국 반도체 판이 미국 중심으로 개편될 가능성이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한편, 삼성전자 관계자는 “백악관에서 논의된 내용이기에 기업 입장에서는 할 수 있는 말이 없다”며 말을 아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배유미 기자> youme@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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