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과 TSMC를 애태우는 ‘슈퍼 을’, ASML의 기술은?

반도체 업계에서 ‘슈퍼 을’이라고 불리는 기업이 있다. ASML이다. ASML은 TSMC, 삼성전자를 비롯한 반도체 대기업을 고객으로 삼고 있다. 계약서의 관점으로는 ‘을’이다. 그러나 반도체 대기업들은 ASML 없이는 첨단 반도체를 생산할 수 없다. 반도체 대기업이 ASML을 슈퍼 을로 보는 이유다. 반도체 업계에서 적잖은 영향력을 가진 ASML은 최근 영국 시장조사업체 퓨처브랜드(Future Brand)가 정한 브랜드가치 순위에서 1위에 오르기도 했다.

ASML을 ‘슈퍼’ 을로 만든 것은 이 회사의 ‘EUV(극자외선) 노광장비’다. 반도체 회로를 그릴 때 반드시 필요한 장비라, 세계적으로 반도체 수요가 증가하고 수급난이 심해지는 상태에서 몸값이 더 올랐다. 특히, 반도체 업계가 7나노미터(nm) 공정에 더욱 관심을 가지면서 초미세공정에 적합한 EUV 노광장비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다만, 전문가가 아니라면 EUV 노광장비는 다소 낯설고 어려운 용어다. 그래서 준비했다. EUV 노광장비란 무엇인가?

(출처: ASML)

ASML을 슈퍼 을로 만든 ‘EUV 노광장비’

ASML은 네덜란드 벨트호벤에 본사를 두고 있는 노광장비 제조업체다.  빛을 이용해 반도체 회로를 그리는 노광장비를 주로 만든다. 반도체 회로는, 기판이 되는 웨이퍼 위에다 빛에 반응하는 감광액을 바르고 그 위에 회로 설계도에 맞도록 빛을 쏘면 만들어진다. 이 공정을 포토 리소그래피(photo-lithography) 라고 하며, 이때 사용하는 장비가 노광장비다.

노광장비는 사용되는 빛의 종류에 따라 구분된다. 여러 종류의 노광장비 중에서도 최근 EUV 노광장비가 주목 받고 있는 이유는, 기존보다 짧은 파장의 빛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빛의 파장이 짧을수록 더 얇은 회로를 그릴 수 있다. 파장이 짧으면 빛의 회절이 줄어들기 때문에 원하는 한 점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정확하게 빛을 집중시킬 수 있다. EUV는 파장이 짧은 자외선보다도 파장이 더 짧은 빛으로, 이 빛을 이용하면 매우 얇게 회로를 그릴 수 있다.

ASML의 EUV 노광장비는 이산화탄소(CO2) 레이저로 플라즈마(이온화된 기체)를 생성해 EUV를 만들어낸다. 이 때 생성되는 빛의 파장은 13.5나노미터(nm) 이하인데, 기존에 사용되던 불화아르곤(ArF)의 파장이 193나노미터였다는 것을 고려하면 매우 짧다. 이 EUV 노광장비가 들어서면서 TSMC, 삼성전자 등 반도체 대기업들도 7나노 미만의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게 됐다.

ASML이 EUV 노광장비를 만들기까지

현재 노광장비를 개발하고 있는 기업은 ASML, 니콘, 캐논 세 곳이다. ASML이 노광장비 시장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85~90%이며, EUV 노광장비의 경우에는 ASML이 유일하게 생산하고 있다.  ASML이 노광장비 시장에서 강세를 보일 수 있던 것은 반도체 장비 중에서도 노광장비 사업을 기반으로 설립된 회사라서다. ASML은 1984년 반도체 제조장비업체 ASMI(ASM인터내셔널)에서 리소그래피(노광) 사업부가 떨어져 나와 네덜란드의 필립스와 합병해 설립한 기업이다. 기반 사업이 노광장비이다 보니, 해당 부문의 기술을 오랜 기간 개발해 나갈 수 있었다.

여러 노광장비 사업 중에서도 ASML은 EUV에 대한 가능성을 많이 봤다. 1990년대 미국, 일본, 네덜란드 등의 주요 국가들이 EUV가 미래 제조 기술이 될 것으로 전망하며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ASML도 EUV 기술에 주목했다. ASML은 2001년부터 EUV 프로그램에 인력과 자원을 할당해 기술을 개발해 나가기 시작했다.

5년간 EUV 노광기술 개발을 준비하고 2006년, 초기 알파 데모 툴 EUV 프로토타입을 개발했다. EUV 프로토타입은 연구소 imec(벨기에)와 SUNY(미국)에 설치됐는데, 이것이 EUV 노광장비의 시초가 됐다. 이때 EUV 장비의 가능성을 확인한 ASML은 다음 해 EUV 리소그래피 전용 클린룸을 건설하고, 본격적으로 EUV 노광장비 개발에 나섰다.

벨트호벤에 위치한 ASML 클린룸 (출처: ASML)

약 3년 뒤인 2010년에는 ASML이 최초의 EUV 노광장비 ‘NXE3100’을 공개했다. 비록 실험용이었지만 ASML은 NXE3100에서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후 ASML은 2012년 반도체 업체들과 협업해 차세대 리소그래피 기술을 개발해 나가기 시작했다. 인수합병도 적극적으로 단행했다. 특별히 2013년에는 미국 장비업체 사이머(Cymer)라는 회사를 인수해 광원 기술을 확보했다. 그렇게 차세대 EUV 노광장비 NXE3300, NXE3360 등의 모델도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현재 반도체 업계에서 주로 사용되고 있는 EUV 노광장비는 2016년 개발된 NXE3400 시리즈다. 당시 ASML은 대만 반도체장비업체 HMI를 3조6000억원에 인수해 반도체 제조공정을 고도화했다. 여러 인수합병과 장비 출시를 거친 후, 2015년에는 처음으로 2017년에 사용될 새로운 장비 NXE3400 첫 주문을 받았다. 이 NXE3400 시리즈가 지금 반도체 업계에서 주로 사용되고 있는 EUV 노광장비다.

그렇게 ASML은 20년이라는 시간에 걸쳐, EUV 노광장비를 개발해 슈퍼 을의 자리에 설 수 있었다. 지금도 ASML은 EUV 노광장비의 양산 비율을 높이고 장비 출하량도 높이기 위해 연구 개발을 지속하고 있다. 2022년에는 신규 EUV 노광장비인 NXE3600D를 본격적으로 생산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최신 노광장비는 3400C이며, 주력 제품은 3400B인데, NXE3600D는 기존 장비에 비해 생산효율이 18% 향상됐으며, 정밀도가 개선됐다. 따라서 업계에서는 NXE3600의 등장과 함께 장비 생산량이 증가하고, 반도체 수급난도 해결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ASML의 NXE3600D (출처: ASML)

귀하신 몸 EUV 노광장비, 없어서 못 판다

7나노 이하 공정을 위해서는 이 EUV 노광장비가 필요하다. 또한 지금은 반도체 수급난이 심하므로 EUV 노광장비가 있어야 하는 곳이 많다. 하지만 현재 ASML이 모든 EUV 노광장비 수요를 채울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우선 EUV 노광장비 출하량이 1년에 50대가 채 되지 않는다. ASML은 올해  EUV 노광장비 예상 출하량이 45~50대가 될 것으로 예측했다. 지난 7월에는 2023년까지 EUV 노광장비 생산량을 60대까지 확대할 것이라고도 밝혔는데, 아무리 늘려도 100대가 채 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수요는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현재 세계적으로 생산라인을 지속해서 증설하고 있는데, 특히 7나노 이하의 고부가가치 반도체를 생산하는 TSMC, 삼성전자, 인텔 등도 생산라인 증설을 계획하고 있다. 이 때문에 EUV 노광장비에 대한 수요도 함께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장비 출하량이 제한적이라서 ‘없어서 못 파는’ 상황이 됐다.

이와 관련해 ASML 측은 “현재 사용되고 있는 EUV 노광장비보다 양산성이 개선된 장비 출시를 계획하고 있으며, 출하량도 점차 늘리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당장은 부족할 수 있지만, ASML은 지속적으로 장비를 개발해 출하량과 양산성도 늘려 나가 반도체 수급난을 해결해 나갈 전망이다.

당분간 반도체 생산업체가 첨단공정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ASML의 EUV 노광장비를 필수로 구매해야 한다. 반도체 장비업계 관계자는 “일단 현재 ASML이 대부분의 특허를 차지하고 있다”며 “타 기업도 개발하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진입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뒤이어 해당 관계자는 “하지만 업계에서는 EUV 외에도 7나노 미만의 공정을 진행할 수 있는 장비를 개발하기 위해  지속해서 시도하고 있다”고 전했다.

결국, 획기적인 첨단 공정용 장비를 개발하지 않는 이상 ASML의 슈퍼 을 자리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오랜 기간 전문성을 살려 외길을 걸어온 것이 현재의 슈퍼 을 자리를 만들어준 것이 아닐까.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배유미 기자> youme@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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