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은 왜 자꾸 규제법안을 발의할까
IT 산업을 취재하다보면 규제 때문에 신음하는 업체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현행법상 금지된 것이 아니어서 사업을 시작했는데 규제가 법개정으로 새로 규제가 생기거나 기존 법을 확대해석해서 사업의 발목이 잡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대부분의 정부는 규제개혁, 규제혁파를 외쳐왔지만 규제는 오히려 늘고 있다. 심우민 경인교대 입법학센터장이 지난 2월 ‘대한민국 ICT 규제 대변혁을 위한 토론회’에서 발표한 바에 따르면, 지난 20대 국회에 발의된 IT 관련 법안 중 73%가 규제였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IT관련 법안 1044건 중 815건이 규제법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발의된다고 통과되는 건 아니다. 이들 법안의 69%는 논의조차 없이 폐기됐고, 97%는 소관위원회와 소위원회에 장기 체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대체 국회의원들은 왜 제대로 논의하지도 않으면서 규제법을 마구잡이로 발의하는 걸까?
27일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주최로 열린 ‘여의도에서 생각하는 디지털의 미래’ 토론회에는 현직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이하 과방위) 소속국회의원 보좌관(비서관)이 참석해 디지털 산업의 발전 방향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국회의원이 규제법을 발의하는 이유
더불어민주당 윤영찬 의원실의 박지현 비서관은 잘못된 평가체계를 규제법 남발의 원인으로 꼽았다. 박 비서관은 “언젠가부터 법안 발의 개수가 역량처럼 느껴지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법안이 가져올 파장을 면밀하기 분석하기에 앞서 개수를 늘리기 위해 법안을 발의한다는 지적이다.
박 비서관은 “규제는 약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약은 시기에 맞게 정확하게 처방이 이뤄져야 건강하다”고 말했다. 그는 “산업발전을 위해서 최소 규제를 원칙으로 하되 필요할 때는 제때에 규제를 해야한다”고 덧붙였다.
국민의힘 이영 의원실 이혜인 비서관은 “지난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법안을 다 처리하려고 하면 한달에 500개씩 심사해야 한다”면서 “발의된 법안을 물리적으로 심사할 시간이 없기 때문에 우선순위를 정해야 하는데 그걸 정할 보편적 기준이 없다”고 말했다.
이 비서관은 “현재의 입법 프로세스 개선이 이뤄지지 않으면 규제법이 많아지는 건 어쩔 수 없다”면서 “결국 중요한 것은 신산업에 대한 의지나 미래 산업에 대한 전문성을 담보로 강한 결기를 지닌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더불어민주당 이도경 보좌관은 법 기술적인 현실에 대해 설명했다. 이 보좌관은 “진흥법과 규제법을 비교해보면 규제법 난이도가 훨씬 낮다”고 설명했다. 국회의원 입장에서는 많은 법안을 발의해야 의정활동을 열심히 한 것으로 평가받기 때문에 만들기 쉬운 규제법에 손이 먼저 간다는 것이다.
이 보좌관은 “입법은 팔길이 원칙이라는 말이 있는데 팔길이 정도로만 지원은 하되 통제 하지 않는 수준으로 가는게 올바르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김영식 의원실 진성오 보좌관은 “규제라고 꼭 나쁜 건 아니다”면서 “(인기협이 통과를 원하는) 인앱결제 금지법이야말로 강도높은 규제법안”이라고 지적했다. 진 보좌관은 “국회의원의 실적, 인지도, 차기 공천 등이 걸려있기 때문에 시행령이나 시행규칙 수준의 법안이 발의될 때도 있지만 발의가 된다고 다 통과되는 건 아니기 때문에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덧붙였다.
과방위는 찬밥
이 자리에 참석한 보좌진들은 국회 과방위가 비인기 상임위라고 입을 모았다. 국토위나 산자위처럼 지역구에 선심성 예산을 끌어올 수 있는 상임위를 국회의원들이 선호한다고는 것이다. 이 때문에 과학기술을 담당하는 상임위원의 숫자는 계속 줄고 있다.
진 보좌관에 따르면, 19대 국회에서는 과학기술 관련 상임위원이 30명 안팎이었는데 20대 국회에서는 26명, 현재 21대 국회는 22명이다. 국회 안에서 IT 산업의 발전을 고민하고, IT산업의 목소리를 대변할 국회의원들의 목소리가 줄고 있다는 의미다.
진 보좌관은은 “예전에는 방통위를 담당하는 상임위여서 방송에 자주 나오는 장점이라도 있었는데 이제는 지상파 방송에 자주 나오는 게 의미가 없어졌다”면서 “티도 잘 안 나고 해봐야 욕만 먹을 때가 많지만 어떤 상임위보다 진취적이고 시대에 앞서간다는 자부심이 있다”고 말했다.
“제도 우선주의 탈피해야”
과방위 소속 보좌진들은 규제에 신중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혜인 비서관은 “코로나19 백신 예약 시스템 문제를 보면 결국 민간에 SOS를 쳐서 문제를 극복했다”면서 “민간의 자율성을 정부가 좇아갈 수는 없기 때문에 민간을 자율성을 믿고 정말 필요한 법안인지 신중히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지현 비서관은 “ICT 산업에는 국경이 없기 때문에 신중하게 입법을 준비해야 한다”면서 “다른 산업의 의견이 있어서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지만 과방위는 IT업계에서 가장 필요한 게 뭔지, 다른 상임위에서 할 수 없는 법안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심재석 기자>shimsky@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