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2주 정도 됐을까요. 당근마켓에서 자전거를 하나 구매했습니다. 집에서 그만 뒹굴고 나가서 운동이라도 하라는 어머니의 성화가 첫 번째 이유였고, 요즘 인천에도 흔히 보이는 자전거 배달을 직접 해보고자 함이 두 번째 이유였습니다. 기왕 운동을 해야 한다면 효과가 좋을 것 같은 전기 동력 없는 자전거를 선택했죠.

거리의 상점들이 하나둘 어둠에 묻히는 오후 10시면 자전거를 끌고 밖으로 나갑니다. 이 더위에 무슨 배달이냐고 많이들 물어보는데, 나름 할 만합니다. 욕심을 내지 않으면 됩니다. 한 시간에 6~7건 이상도 거뜬한 오토바이 라이더들과 다르게 저는 2건 정도의 주문만 처리 합니다. 안전을 위해 교통 신호도 잘 지키고, 힘들다 싶으면 중간중간 쉬어가며 속도를 조절합니다.

천천히 동네를 유랑하다 보면 전에 보지 못했던 기시감이 펼쳐집니다. 현판이 닳아 내려 동호수를 알아볼 수 없는 오래된 빌라 단지에서 헤매고, 엘리베이터 없는 4층 건물 옥상에 좌절하고, 스쳐갔던 장어집 사장님과 안부를 나눕니다. 이곳은 ‘안녕하세요, 많이 파세요’로 시작해 ‘맛있게 드세요’로 끝나는 작은 세상입니다.

평소와 같았던 어느 날

평소와 같았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늦은 10시 동네 카페에서 기사 마감을 하고, 자전거를 끌고 밖에 나왔습니다. 평소처럼 주문을 하나둘 수행하다 보면 어느덧 체력의 한계가 다가옵니다. 익숙해진 600원짜리 편의점 PB 물통이 2개 정도 바닥을 보이면 이제 집에 돌아갈 시간이 됐구나 싶습니다.

집에 돌아가기 직전의 마지막 주문은 특별합니다. 전의 주문들은 아무 생각 없이 적당히 리듬을 타며 수행해도 된다지만, 마지막 주문은 최대한 집과 가까운 목적지의 주문을 잡아야 합니다. 이미 체력을 소진한 상황에서 집까지 이동하는 거리까지 약간의 체력 안배를 해둬야 하기 때문입니다.

마침 괜찮은 주문 하나가 떴습니다. 집에서 자전거로 10분 정도 걸리는 음식점에서 1km가 안 되는 가까운 거리의 목적지까지 이동하는 주문입니다. 이 거리에 3500원이면 단가도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기쁜 마음에 주문을 잡고 음식점까지 마지막 힘을 내 자전거를 달렸습니다.

평소처럼 힘찬 ‘안녕하세요’로 가게의 문을 열었습니다. 자연스럽게 가게 테이블에 놓여있는 수많은 봉지 중에서 앱에서 확인한 주문번호와 맞는 봉지를 찾아 배달가방에 담으면 끝이 납니다. 이제 목적지까지 기분 좋게 달릴 일만 남았죠.

그런데 웬걸. 사장님이 봉지를 담으려고 하는 저를 슬쩍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 얼굴로 달려옵니다. “가방으로 배달하세요? 이거 안 돼요. 배달 취소해주세요”

힘들게 여기까지 달려왔는데 무슨 말이냐고 묻는 저에게 사장님이 답합니다. 파전과 찌개 주문이 들어왔는데, 이건 가방으로 배달하면 음식이 다 망가진다고요. 사장님은 전에 한 번 자전거 배달 라이더에게 음식을 맡겼다가 전은 찌그러지고 찌개는 넘쳐흐른 적이 있었다고 제게 전했습니다.


그래도 아쉬움이 남습니다. 음식점부터 목적지까지 거리가 워낙 가까웠고, 이게 저에겐 마지막 주문이었거든요. 마지막 주문을 이렇게 끝내면 오늘 잠을 못 잘 것 같았습니다. 어떻게든 하고 싶은 마음에 사장님에게 제 나름의 논리를 펼쳤습니다. 국물 배달은 가방으로 이미 많이 해봤고, 사용하는 가방은 피자도 배달할 수 있고 흔들리지 않게 결박도 가능한 배달 플랫폼 공식 제작 가방이라고요. 믿고 맡겨주시면 안 되냐고요. 정 걱정되면 봉지를 가방에 넣지 않고 손으로 들고 가도 괜찮다고요.

배달에 사용한 자전거와 배달가방

안타깝게도 제 주장은 사장님을 설득하지 못했습니다. “안돼요, 빨리 배달 취소해주세요”라는 격양된 목소리만 돌아올 뿐이었습니다. 더 이상 주장을 관철하는 것도 예의는 아닌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앱 상에서 저 스스로 수행하고 있는 배달 주문을 취소할 수 있는 기능은 없었습니다. 물론 라이더센터에 요청하여 강제 취소 요청을 할 수는 있는데, 이렇게 하면 추후 주문 배정에 패널티를 받을 수도 있어 걱정됐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사장님에게 전하니 “그게 저랑 뭔 상관인데요? 거지 같네 진짜”라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만약 배달 중에 음식이 잘못되면 그 모든 책임은 사장님 혹은 배달 정책에 따라서 라이더인 제가 질 것입니다. 사장님은 배달이 잘못 되면 고객에게 음식을 다시 배달해주거나 환불을 해줘야 할지 모릅니다. 앱에는 좋지 않은 평점이 달릴 수 있고, 언젠가 다시 음식을 주문할 수 있는 소중한 고객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라이더가 패널티를 받는 것 또한 사장님 입장에선 상관없는 일이 맞습니다. 어차피 우리, 다시 볼지 안 볼지 모르는 사이잖아요.

물류는 어디에든 있습니다만

물류는 어디에든 있습니다. 제가 오늘 아침 카페에 방문하여 주문하고 직접 픽업한 커피에도, 오늘 오후 15시~17시 사이 도착 예정이라 문자를 받았지만 6시가 넘은 지금도 오지 않은 택배에도, 곧 있을 저녁 식사 자리에서 만날 어떤 음식의 재료에도 모두 물류가 있습니다.

IT 또한 어디에든 있습니다. 제가 지금 노트북으로 글을 쓸 수 있는 이유는 문서 작성을 위해 개발된 소프트웨어가 있기 때문입니다. 독자 여러분이 바이라인네트워크 홈페이지에서 이 글을 볼 수 있는 이유는 기사 작성을 위한 관리자 도구가 있고 트래픽을 받쳐주는 서버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오늘 저는 집에 돌아가면서 평소처럼 유튜브 추천 영상을 볼 것이고, 왓챠로 영화 한 편을 보고 잠에 들 것입니다. 물류에서 유형의 재화가 흐르는 것처럼, IT에서는 무형의 정보가 흐르고 있습니다.

애석하게도 이러한 재화와 정보의 흐름은 어딘가에서 어긋나기도 합니다. 자연스럽게 흐르는 것이 아니라 어디선가 고이거나 막힐 수 있습니다. 생산현장에서는 ‘병목’이라, IT현장에서는 ‘부하’라 표현하기도 하는 그것입니다. 물류현장에서 그렇게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좀처럼 완벽하게 들어맞지 않는 정보와 재화의 일치, ‘정물일치’라는 개념이 여기서 나옵니다.

다시 배달현장으로 돌아와서 저는 IT가 제시해주는 정보의 흐름을 따라서 저의 몸을, 배달가방을 움직였습니다. 라이더 앱에 ‘자전거 라이더’로 등록했고, 앱이 추천해주는 단건 배달 주문을 받았습니다. 앱의 안내를 따라서 음식점의 위치를 찾아 방문했습니다. 고객이 주문한 음식이 무엇인지도 사전에 앱에 노출된 정보를 통해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음식점에 도착한 저에게 돌아온 것은 사장님의 픽업 거부였습니다. 앱이 저에게 추천해준 모든 경로가 무의미해졌고, 더 이상 재화와 정보는 흐르지 못하게 됐습니다. 라이더인 저는 수동으로 CS담당 직원과 채팅을 하여 배차 받은 주문을 취소했고, 결국 아무런 돈도 벌지 못했습니다.

만약 처음부터 배차 시스템이 저에게 자전거 라이더에게 적합한 음식 주문을 추천해줬으면 어땠을까요. 파전이나 찌개는 자전거보다 조금 더 안정적인 배달통이 있는 ‘오토바이’나 ‘자가용’ 혹은 ‘도보’ 라이더에게 배정해줬으면 더 좋았을텐데요. 이 이야기를 한 이륜차 물류업체 대표에게 이야기하니 이런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배달 플랫폼도 인식하고 있는 문제일 것 같고, 기술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아마 라이더가 부족해서 급한 대로 배정한 것이 아닐까요”

굳이 배달 플랫폼의 기술을 탓하고자 이 글을 쓴 것은 아닙니다. 음식점 사장님에 대한 원망을 전하기 위해 쓴 글도 아닙니다. 라이더의 권리 장전을 외치려고 쓴 글 또한 아닙니다. 그저 어디선가 멈춰있는 흐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정보와 재화의 흐름이 불일치하는 지점에서 생기는 어떤 일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아마도 우리 산업 현장에서는 이미 저마다의 병목을, 정보와 재화의 불일치 지점을 찾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맞지 않는 부분을 최대한 맞게 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고 개선하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런 고민을 하고 있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습니다. 어느 하루, 배달 현장에서 생긴 어떤 사건뿐만 아니라 세상에 펼쳐진 더욱 다양한 이야기를 전하고 싶습니다. 제가 생각하고 독자 여러분에게 전하고 싶은 물류 이야기입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엄지용 기자> drake@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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