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혹 떼려다 붙였나…인앱결제법 상임위 통과
일명 ‘인앱결제 강제 금지법(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이하 개정안)’이 국회 상임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와 본회의를 통과해 하반기 안에 시행될 가능성이 커졌다.
국회 과학기술방송통신위원회는 20일 안건조정위원회와 전체회의를 연이어 열고 개정안을 의결했다. 개정안은 구글 인앱결제 의무화를 막기 위해 발의된 법안 6개를 통합한 것이다.
개정안은 앱마켓 사업자를 대상으로 한 금지행위를 규정한 했다. 금지행위는 아래와 같다.
- 특정 결제방식을 강제하는 행위 (제50조1항 9호)
- 다른 앱마켓에 등록하지 못하도록 부당하게 강요·유도하는 행위 (10호)
- 심사를 부당하게 지연하는 행위 (11호)
- 앱마켓에서 모바일콘텐츠 등을 부당하게 삭제하는 행위 (12호)
- 모바일콘텐츠 등 제공사업자에게 차별적인 조건·제한을 부당하게 부과하는 행위 (13호)
이중 핵심은 특정 결제방식을 강제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현재 애플과 구글은 디지털콘텐츠 앱의 경우 자사 인앱결제 사용을 강제하고 있다. 구글의 경우 게임을 제외한 앱들은 외부 결제시스템 사용을 묵인해왔지만, 내년 3월부터는 예외없이 인앱결제를 강제할 방침을 발표한 바 있다. 인앱결제를 하면 애플과 구글이 15~30%의 수수료를 가져간다.
법안이 국회를 통과한다면 애플 앱스토어, 구글플레이, 원스토어 등 앱 마켓은 자사 결제시스템을 강요할 수 없게 된다. 물론 앱 개발사가 결제의 편의를 위해 수수료를 감수하고 인앱결제를 선택하는 것은 가능하다.
정치권 공방
이날 전체회의에 국민의힘 의원들은 참여하지 않았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통상마찰 가능성을 제기했다. 애플과 구글을 견제하기 위한 법을 만드는 것이 WTO나 FTA 협정에 위반이 될 수 있다는 우려다. 실제로 ITI코리아(미국 정보기술산업협회 한국지부)는 안건조정위에 “WHO 협정과 한미 FTA를 위배하는 것”이라며 “미국 회사만을 선별적으로 적용대상으로 하는 것은 한미 FTA상 내국민 대우 위반”이라는 의견을 냈다.
그러나 이 법은 미국 기업만을 대상으로 하는 게 아니라 원스토어와 같은 국내 기업도 따라야 한다. 더불어민주당 조승래 의원은 “국내 기업에도 똑같이 적용되기 때문에 내국민 대우 위반이라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정치권은 전체회의 직후 입씨름을 이어갔다.
국민의힘은 “공정위의 규제에 중복되는 규제라는 의견, FTA 위반 소지 등 통상문제가 우려된다는 의견 등 입법 이후에 생길 부작용에 대해서도 충분히 논의되어야 한다”면서 “충분한 논의와 숙의가 필요한 사안인데도 민주당은 7월 통과라는 시나리오에 맞춰 강행처리 수순을 밟았다”고 비판했다.
과방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도 “국민의힘은 관련법안 대표발의를 2건이나 했음에도 법안 2소위를 계속 파행, 지연시켜 왔다”며 “관련업계와 이용자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었다”고 반박했다.
동등접근권은 빠져
이번 개정안에 일명 ‘콘텐츠동등접근권’에 대한 내용은 빠졌다. 콘텐츠동등접근권은 앱 개발사가 특정 앱마켓에 콘텐츠를 제공할 때 다른 앱마켓에도 앱을 제공하도록 규정하는 개념이다. 민주당 한준호 의원의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에서 이 개념이 처음 등장했다. 구글, 애플 등 글로벌 앱 마켓뿐 아니라 중소 앱마켓도 활성화시키자는 취지다. 이를 통해 특정 기업의 앱 마켓 독점을 막자는 아이디어였다.
그동안 동등접근권은 인앱결제 강제 금지법 논의의 주요 갈등요인이었다. 독점 방지를 위해 필요하다는 의견과 지나친 규제라는 의견이 맞섰다. 인터넷·스타트업 업계는 동등접근권에 반대했다. 구글과 애플 등 독점 앱 마켓의 횡포를 막자고 만드는 법에 갑자기 앱 개발사를 규제하는 내용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어느 앱마켓에 출시할 지 정하는 것은 앱 개발사의 자유인데 모든 앱 마켓에 의무적으로 출시해야한다면 앱 개발사에겐 큰 부담이 된다.
업계의 반대가 심하자 더불어민주당은 일단 동등접근권에 대한 논의는 뒤로 미루고 문제의 핵심인 인앱결제 강제화만 막는 내용의 개정안을 만들어 상임위에서 통과시켰다.
인터넷·스타트업 업계 “환영”
개정안이 전체회의를 통과하자 국내 인터넷·스타트업 업계는 일제히 환영을 표했다.
국내 스타트업 업계를 대표하는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은 “본 개정안은 국내 스타트업과 콘텐츠 산업의 미래에 큰 위협 요인을 해소한 것으로 환영한다”면서 “스타트업이 성장해도 결국 앱마켓 사업자에 종속될 것이라는 우려를 상당부분 불식시킬 수 있는 조치”라고 밝혔다.
박성호 한국인터넷기업협회장은 “드디어 상식이 국회에서 통한 것 같다”고 평했다.
게임업계도 인앱결제 벗어날까
구글의 인앱결제 강제 정책에 가장 큰 반발을 한 것은 웹툰 등 디지털 콘텐츠 업계였다. 만약 인앱결제가 의무화되면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곳들이다. 당장 15~30% 정도 수익성이 떨어지고, 어쩔 수 없이 콘텐츠 가격을 올려야 할 가능성이 높다.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다면 이들은 수익성 하락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기존과 달라지는 것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어차피 안 내던 수수료를 계속 안내게 되는 것뿐이다.
그런데 게임업계는 다르다. 게임업계는 이미 구글과 애플에 수수료를 30%씩 꼬박꼬박 내왔다. 애플에 비해 유연했던 구글도 이미 게임사 대상으로는 인앱결제 의무화 정책을 펼치고 있었다.
하지만 개정안이 통과되면 달라진다. 게임사들도 자체 결제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다. 이 경우 앱마켓에 내는 수수료가 대폭 줄고, 게임사들의 영업이익이 대폭 늘어날 수 있다.
구글 입장에서 보면 수수료 수익을 늘리기 위해 인앱결제 의무화 대상을 확대했는데, 개정안이 통과되면 지금껏 받던 모바일 게임의 수수료마저 놓칠 수 있게 된다. 혹 떼려다혹 붙인 격이다.
물론 게임사들은 국내뿐 아니라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인앱결제를 끊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해외 유저들에게는 인앱결제가 접근하기 가장 용이하기 때문이다.
게임사들이 구글과 애플의 눈치를 봐야하기 때문에 개정안이 통과돼도 인앱결제는 계속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인앱결제를 쓰지 않으면 구글플레이 피처드 등의 혜택을 못 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다.
게임업계 한 관계자는 “수익성이 커지면 좋기는 하겠지만 자체결제 시스템을 도입해서 구글에 밉보이는 것이 오히려 손해일 수도 있다”면서 “게임업계에서는 개정안 통과가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조용히 지켜보는 중”이라고 말했다.
<심재석 기자>shimsky@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