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7일 쿠팡 이천 덕평 물류센터가 화마에 휩싸였다. 불길은 22일이 돼서야 진화됐다. 뼈대만 남은 수만평의 건물, 수천억원의 재산피해, 무엇보다 소중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사고였다.

화재가 발생한 17일, 쿠팡 김범석 의장의 의장 직위 및 등기이사 사임 소식이 쿠팡 공식 보도자료를 통해 전해졌다. 이를 두고 몇몇 정당, 노동단체들은 쿠팡 김범석 의장이 2022년 1월 27일 시행 예정인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의 처벌을 피하고자 하는 의도라 비판했다.

쿠팡측은 “김범석 전 의장이 이번 화재 발생 이후 사임했다는 일부 언론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라며 “김범석 전 의장의 국내 등기이사 및 이사회 의장 사임일자는 5월 31일로 이번 화재가 발생하기 17일 이전에 이미 사임이 이뤄졌음을 법인 등기부등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고 해명했다.

진보당 대변인실은 “물류센터 내부는 종이상자, 비닐 등 인화성 물질이 많고 대피하기 어렵게 복잡하고 폐쇄적 구조로 설계돼 있다. 그럼에도 책임져야할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은 화재 발생 5시간 만에 모든 국내직책을 다 사퇴하는 발표를 했다”며 “쿠팡측은 화재 이전에 사임 결정이 있었다고 항변하지만, 비겁한 책임회피용 꼼수가 아닐 수 없다. 당국은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책을 내놔야 할 것”이라 논평했다.

정리하자면 쿠팡 덕평 물류센터 화재사건에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되지는 않는다. 덕평 물류센터 화재사건 발생시에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 헌법(제 13조)은 형법 불소급의 원칙에 의거하여 적법한 행위에 대하여 사후에 형사책임을 지우는 소급법을 제정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이번 사고가 법 시행 이후에 발생한 사고라고 가정하더라도 쿠팡 덕평 물류센터 화재가 중대재해에 포함되는지, 김범석 의장에게까지 처벌이 적용되는지는 법리적인 판단이 필요하다.

하지만 쿠팡은 법을 넘어선 도의적인 책임은 피할 수 없었다. 실제로 쿠팡은 덕평 물류센터 화재사고 이후 노동환경 개선과 안전 조치 마련 미흡과 관련하여 여론과 시민단체의 뭇매를 맞았고, 소비자 불매운동까지 번졌다. 모바일 데이터 플랫폼 아이지에이웍스의 발표에 따르면 덕평 물류센터 화재가 발생한 이후 4일 동안 쿠팡 이용자 숫자 47만명이 감소했다.

쿠팡만의 이야기는 아니야

쿠팡을 덮친 중대재해처벌법 이슈가 쿠팡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쿠팡과 같은 물류센터 화재사고는 어제오늘 발생한 일이 아니다. 불과 1년 전인 2020년 한익스프레스 이천 물류센터 신축공사 현장에서 화재사고가 발생해서 38명이 사망했다. 쿠팡에 비해 재산 피해 규모는 작았지만, 인명 피해는 훨씬 컸던 사고였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피해 규모는 다르지만 해마다 물류센터 화재 사고는 연례행사처럼 발생해왔다. 진보당의 조사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18년까지 물류센터 화재로 사망한 노동자는 1500명에 달한다. 박스, 부자재 등 인화물질이 많고 폐쇄적이고 복잡한 구조로 인해 물류센터는 화재 발생시 대형참사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평가를 받는다.

화재사고가 끝은 아니다. 2018년 CJ대한통운 대전 허브터미널에서 컨베이어 라인 누전 사고로 사망한 상하차 노동자를 우리는 기억한다. 같은 해 같은 장소(CJ대한통운 대전 허브터미널)에서 상차작업을 하던 하청업체 직원이 트레일러에 치여 사망한 사건을 우리는 기억한다. 지난해 국정감사를 뜨겁게 달궜던 이슈인 택배 노동자들의 연이은 사망 사고를 우리는 기억한다.



향후 물류센터에서 근로자 사망을 포함한 중대재해가 또 발생하지 않으리란 법은 없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는 2022년 1월 27일 이후에도 발생하지 않으리란 법은 없다. 또 다시 소중한 인명이 희생되는 사망사고가 물류현장에서 발생한다면 그때 다시 한 번 ‘중대재해처벌법’이 도마에 오를 수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까지 앞으로 6개월여가 남은 상황에서 사고대응 체계 마련을 위한 물류업계의 선제적인 움직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중대재해처벌법이 뭐길래

중대재해처벌법은 사망자 1명 이상이 발생하는 산업재해를 포함하는 ‘중대재해’에 대한 경영책임자, 공무원 및 법인의 처벌을 규정하기 위해 제정된 법이다. 종전 산업재해에 대한 벌칙을 규정했던 산업안전보건법(이하 ‘산안법’)에 대한 실효성 논란이 중대재해처벌법이 만들어진 배경으로 꼽힌다.

김명준 안전보건정책연구실 정책제도연구부장은 보고서(중대재해기업처벌법 등장 배경과 시사점)를 통해 “산안법 위반 사망사고에 대한 1심 법원 처리 결과를 살펴보면, 법원이 피고인에게 징역이나 금고 등 유기자유형을 선고한 경우는 매년 3~5건에 불과하며, 실형기간은 평균 9.3개월에 그쳤다. 대검찰청 범죄분석 자료에 의하면 2017년 기준 산안법 위반으로 검거된 피의자들의 약 93%가 전과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기업은 비용과 이익을 비교하여 산안법 위반으로 기소되는 불이익보다 안전보건조치를 이행하지 않음으로써 얻는 이익이 더 크다면 그 이익을 추구하게 될 것이고, 이미 몇 번의 전과가 있는 경우라면 전과가 없거나 초범보다 이익 추구의 유혹에 더 쉽게 빠지게 될 수 있다”며 중대재해처벌법의 등장 배경을 설명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종전 산안법과 다르게 현장을 관리할 수 있는 능력, 의무가 있는 사업자까지 강한 책임을 부여한다. 쿠팡 덕평 물류센터 화재 사고에서 김범석 쿠팡 전의장의 책임론이 대두됐던 배경이 여기 나온다.

이와 함께 중대재해처벌법은 산안법 적용대상인 ‘근로자’를 넘어서 ‘종사자’까지 보호대상을 확대하고 안전보호 의무를 강화했다. 종사자에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뿐만 아니라, 1) 도급, 용역, 위탁 등 계약 형식에 관계없이 그 사업의 수행을 위하여 대가를 목적으로 노무를 제공하는 자, 2) 사업이 여러 차례 도급에 따라 행하여지는 경우에는 각 단계의 수급인 및 수급인과 관계가 있는 자가 포함된다. 말인즉 종전 산안법과 달리 하청업체의 직원, 혹은 하청업체의 용역 직원 등이 사망하면 법리적 판단에 따라서 원청까지 중대재해 사고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박영만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중대재해처벌법은 도급, 운영, 위탁 등 업무를 맡기는 사람은 종사자 보호조치를 해야 한다고 명기했다. 여기서 도급, 운영, 위탁이란 결국 시설, 장비, 장소에 대해서 실질적으로 지배운영 관리체계가 있는 자를 의미한다”며 “발주자나 도급인이라는 명칭과 무관하게 장소를 실질적으로 지배, 운영, 관리하는 규범적인 책임이 있느냐에 따라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여부를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물류업계의 대응책

법조계에 따르면 중대재해처벌법은 아직까지 법의 적용 범위 등에 대해 불확실성이 크다. 바꿔 말하자면 물류기업이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법위반 처벌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의사결정의 합리성과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는 나름의 시스템과 프로세스 마련이 선제적으로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시원 율촌 중대재해센터 변호사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에 위임한 4가지(직업성 질병의 범위, 안전보건 확보의무의 내용, 중대재해발생 시 경영책임자 등이 이수하여야 하는 안전보건교육 및 불이행 시 과태료, 중대재해 발생 사실의 공표)를 제외하고 형벌 법규 구성요건은 법률에 명시적인 위임이 없는 이상 하위법령인 시행령이 그 의미를 규정할 방도가 없다. 나머지 여러 개념 요소들은 결국 대법원 실제 판결이 축적되면서 해석 기준이 확립될 것으로 보인다”며 “결국 법이 구체적인 기준과 절차를 제안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업의 규모와 사업종류, 역량에 비춰서 산출할 수 있는 나름의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의사결정시스템을 만들고, 이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면 처벌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특히 다단계 위탁구조가 일반적인 물류업계에서는 도급, 용역, 위탁을 받는 하청업체의 안전보건 역량을 원청이 관리하고 평가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이 변호사는 “조사 권한을 갖고 있지 않은 기업이 위탁업체가 공개하지 않는 내용까지 샅샅이 조사하여 안전보건관리 역량을 평가하는 것은 무리”라며 “때문에 평가대상과 기준을 명기한 체크리스트를 마련하고 그 체크리스트를 반영한 질의서를 도급위탁 받을 업체에게 보내 회신 받는 두 가지 방법을 제안하고 싶다. 특히, 체크리스트와 질의서에는 그 사업에 고유하게 필요한 안전관리역량은 반드시 포함될 수 있도록 잘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에는 위탁업체의 안전보건 관리 기준 마련을 위한 요청이 있었음에 불구하고, 무시하고 작업을 하다가 재해가 발생하면 원청 경영자까지 책임을 질 수 있다. 때문에 만약 도급, 위탁업체가 안전관리 기준 마련을 위해서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짧다거나, 안전관리를 위한 비용을 더 높게 책정해달라고 요청이 들어온다면 이를 수렴하고 사후조치를 취하는 절차 또한 준비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종전처럼 원청이 하청업체의 의견을 마냥 무시할 수는 없게 된다는 뜻이다.

이 변호사는 “중대재해처벌법은 기업 안전보건조치 의무와 경영책임자의 안전보건 확충의무와 같은 층위가 다른 새로운 의무를 부여했다”며 “이행점검이 이뤄질 수 있도록 조직을 개편하고 관련 규정과 역할을 정비할 필요성이 매우 높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엄지용 기자> drake@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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