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석의 입장] 마이크로소프트는 왜 말을 바꿨나
“윈도우10은 윈도우의 마지막 버전입니다.”
지난 2015년 마이크로소프트 제리 닉슨 수석 개발자 전도사가 이그나이트 행사에서 한 말이다. 회사 대변인이 공식적으로 한 말은 아니지만, 이 발언이 많이 보도된 이후에도 회사 측은 부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공식적 입장으로 받아들여졌다.
윈도우10이 마지막 버전이라는 선언은 마이크로소프트가 더이상 단절된 버전의 윈도우를 만들지 않겠다는 것으로 해석됐다. 마이크로소프트는 3~4년의 주기로 새로운 버전의 윈도우를 출시해왔다. 이는 기업 내에서 적지 않은 문제를 야기했다. 일단 직원들마다 사용하는 윈도우 버전이 달랐다. 오래된 컴퓨터를 사용하는 직원과 새 컴퓨터를 지급받은 직원이 다른 버전의 윈도우를 사용하는 것이 흔한 일이었다. 그러다보니 애플리케이션을 다양한 버전의 운영체제에 맞게 개발해야 했고, IT관리팀의 업무도 복잡해졌다. 또 윈도우 지원기간이 끝나면 큰 혼란이 야기된다. 보안 업데이트를 받기 위해 새로운 버전의 윈도우로 대대적인 교체를 하곤 했는데, 그 과정에서 기존 애플리케이션과의 호환성 확보라는 난관이 있었다.
반면 윈도우10은 매년 2번의 업데이트로 최신 기능과 보안 업데이트를 제공해왔다. 업데이트만 꾸준히 한다면 회사 내에서 누구나 같은 윈도우를 사용하게 된다. 이는 윈도우10이 서비스화 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더이상 윈도우 버전의 구분은 의미 없어지며 앞으로 새 버전 윈도우를 ‘구매’할 필요도 없어진다는 의미였다. 이 때문에 마지막 윈도우라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선언은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런데 마이크로소프트는 말을 바꿨다. 지난 24일(현지시각) 새로운 버전의 윈도우11을 발표했다. 결국 윈도우10은 마지막 윈도우가 아니게 됐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우10이 마지막 윈도우라던 기존의 정책을 버리고 새로운 윈도우11을 내놓았을까. 그런데 새로 바뀐 윈도우11에서 윈도우10와의 큰 차이를 찾기가 어렵다. 평소에 6개월마다 하던 업데이트에서 해도 될 법한 진화였다. 마이크로소프트가 말을 바꾼 이유는 무엇일까?
돈 때문에?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금전적인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가 클라우드 회사로의 변신에 성공했지만, 윈도우는 여전히 마이크로소프트의 핵심 자원이다. 윈도우 라이선스 판매를 통한 매출 역시 여전히 큰 비중을 차지한다.
윈도우10이 마지막 윈도우라면 마이크로소프트의 큰 수익원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우를 서비스화 하면서 과금 방식을 서브스크립션과 같은 서비스 요금체계로 전환했다면 지속적인 수익이 창출되겠지만, 윈도우는 여전히 라이선스 판매 방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윈도우11이 새롭게 출시되면 새로운 운영체제를 이용하기 위한 PC 교체 수요가 생기고, 이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수익으로 이어질 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우10에 대한 지원을 2025년 10월 14일에 종료한다고 밝혔다. 이는 그 전까지 모두 윈도우10에서 윈도우11로 갈아타라는 메시지다.
마케팅이 안되어서?
윈도우가 서비스화 되면서 대두되는 가장 큰 문제중 하나는 마케팅이었다. 6개월마다 기능이 업데이트 되는 방식은 3~4년마다 대대적인 신제품을 출시하는 것에 비해 사람들의 관심을 덜 끌었다. 새로운 버전의 윈도우가 출시되면 언론과 분석가, 컴퓨터 애호가들이 제품에 대해 테스트도 하고 평가도 하면서 널리 알려지는데, 정기적인 패치와 같은 업데이트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실제로 지난 몇년간 IT 미디어의 기사에서 윈도우는 점차 사라졌다. 반면 윈도우11 출시가 발표되자 언론들은 이 소식을 전하기에 바빴고, 공식 발표 이전부터 윈도우11이 유출되며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바이라인네트워크에서도 많이 본 기사 리스트에 오랜만에 윈도우 관련 기사가 올라왔다.
사실 윈도우11은 윈도우10에 비해 크게 달라진다고 보기 어렵다. 작업표시줄 왼쪽에 있던 시작버튼이 가운데로 가는 게 그렇게 대단한 변화는 아니다. 윈도우는 이미 너무 성숙한 운영체제여서 UI에 약간의 변화를 주는 것 이외에 대단한 개선을 이룰 요소가 거의 없다. 그럼에도 새로운 버전의 윈도우가 나온다면 사람들은 관심을 갖게 마련이다.
애플을 견제하려고?
애플이 지난 해 자체 개발한 M1칩을 탑재한 맥 컴퓨터를 발표하면서 마이크로소프트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M1은 x86/64 아키텍처가 아닌 ARM 기반의 칩으로 전원을 덜 사용하면서도 성능이 훨씬 뛰어남을 보여줬다. 특히 iOS용 앱을 맥 컴퓨터에서 돌릴 수 있다는 점이 마이크로소프트에는 큰 위협이었다. iOS의 방대한 앱 생태계가 맥으로 전이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이크로소프트도 윈도우를 인텔 칩이 아닌 ARM 기반의 칩에서 구동시키고 싶어했지만 호환성 문제가 잘 해결되지 않았다.마이크로소프트는 ARM 칩에서 돌아가는 윈도우10X라는 경량 윈도우를 개발하려고 했으나 계획대로 되지 않았고, 윈도우10X을 위해 개발됐던 유산은 윈도우11에 승계됐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애플의 M1 기반 맥 시리즈를 견제할 필요가 있었다. ‘진격의 M1’을 막기 위해 새로운 브랜드의 OS가 필요했다. 또 맥OS가 iOS 앱의 생태계를 집어삼키려는 것에 대항하기 위해 윈도우는 안드로이드 앱 생태계를 포용할 필요가 생겼다. 윈도우11에서는 안드로이드 앱이 구동된다. 이를 위해 인텔 브릿지라는 런타임 기술을 내장했다.
<심재석 기자>shimsky@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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