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머스BN 비즈니스는 커머스 가치사슬을 구성하는 다양한 기업들이 어떻게 돈을 버는지, 효율을 만들고 있는지 비즈니스 모델 관점에서 전합니다. 생활 속에서 만날 수 있는 사례를 중심으로 재미있게, 의미있게 전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Content Brief

한국에서 ‘환상’처럼 느껴졌던 물류센터 로봇 자동화가 조금씩 현실이 돼 다가오고 있습니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이커머스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었지만, 물류센터에서 그만큼의 생산력을 만드는 인력 수급이 쉽지 않았거든요. 여기 더해 인력이 밀집돼 작업하는 물류센터 특성상 발생할 수 있는 감염병 확산과 언제고 있을 수 있는 ‘셧다운’에 대한 부담도 자동화에 대한 업계의 관심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MFC(Micro Fulfillment Center)라고 불리는 도심 소형 물류센터 자동화에 대한 관심도 늘어나고 있는데요. 이번 글에서는 최근 소프트뱅크가 지분을 인수해서 화제가 된 노르웨이 로봇 자동화 기업 ‘오토스토어’ 한국 대표와의 대담을 통해서 물류 자동화, 더 나아가 도심 물류센터 자동화의 방향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요.

한국에는 이커머스 물류센터 자동화에 대한 판타지가 두 개 있습니다. 하나는 아마존의 키바(KIVA)로 대표되는 AGV(Automated Guided Vehicle)입니다. 선반을 짊어진 로봇이 물류센터를 오가면서 창고 작업자의 피킹을 돕습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는 로봇의 도입가격 부담과 일반적으로 층고가 높게 설계되는 한국의 물류센터에서 효율을 만들기 어렵다는 이유로 현장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로봇이었죠.

이건 키바는 아니고요. 신세계건설이 공급하고, 중국업체 무샤이니(Mushiny)가 개발한 AGV입니다. 이런 AGV 업체들이 굉장히 늘어나고 있어요.


하지만 최근에는 AGV를 도입하는 물류센터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는 추세입니다. 롯데글로벌로지스가 지난 4월 공개한 덕평 풀필먼트센터에 이 로봇들이 들어갔고, 디자인 상품 전문 쇼핑몰 텐바이텐도 지난해 5월 이커머스 물류센터에 AGV를 도입하여 활용하고 있음을 발표했습니다. 동대문 패션 도매 플랫폼 신상마켓 또한 물류센터 안에서의 AGV 활용을 테스트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업체들의 AGV 도입이 늘어나는 이유 중 하나는 AGV의 도입 비용이 과거에 비해 낮아졌기 때문입니다. 로봇을 물류센터에 넣어서 실제로 ‘효율’이 나오는지 여부는 논외로 하더라도, 과거에 비해 부담 없이 도입해 테스트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습니다.

두 번째 판타지는 영국 이커머스 업체 ‘오카도’ 덕분에 유명해진 그리드 로봇입니다. 개념은 아마존의 AGV와 동일합니다. 물류센터 작업자들의 피킹을 위한 이동 동선을 줄여주는 GTP(Goods To Person) 방식을 사용합니다. 상품 재고가 담긴 선반을 얹히고 작업자에게 이동하는 AGV와 다르게, 이 로봇은 격자 형태로 촘촘하게 설계된 보관 공간을 수직, 상하 이동하면서 상품을 피킹하여 포장 작업자에게 전달합니다. AGV에 비해 공간 활용도 측면에서는 더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오카도 물류센터에 도입된 그리드 로봇. 격자(Grid) 설비 중간중간에 상품을 담는 여러 개의 박스(Bin)가 촘촘히 쌓여있는 구조입니다. 이 설비를 로봇이 수직 및 수평이동하면서 상품을 피킹합니다.


아직 한국에서 이 로봇을 도입한 업체들이 많지는 않습니다. 2015년 신라면세점이 면세점 고객 응대 용도로 이 로봇을 도입했습니다. 2019년 3월 롯데슈퍼가 의왕 물류센터에 이커머스 고객 주문 처리 용도로 이 설비를 도입했고, 현재는 롯데마트가 롯데의 통합 온라인몰 ‘롯데온’의 식품 주문 대응 용도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장도 최근 들어서 업계의 관심이 모이는 모습입니다. 네이버의 투자를 받은 풀필먼트업체 ‘파스토’가 그리드 로봇을 물류센터에 도입할 예정이고, 쿠팡을 포함하여 그보다 더 많은 여러 업체들이 도입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예전에는 환상처럼 여겨졌던 로봇들이 서서히 현실세계에 스며들고 있습니다.

오토스토어가 한국을 공략하는 방법

국내외 수많은 로봇업체들이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AGV판과 다르게, 그리드 로봇의 한국 레퍼런스는 한 업체가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얼마 전에 소프트뱅크 자회사 SB매니지먼트가 지분을 인수하면서 77억달러(약 8조6000억원)의 기업가치를 평가받은 노르웨이 자동화 설비 업체 ‘오토스토어’입니다. 이 업체는 지난해 11월 한국지사를 설립하고 물류센터 자동화 영업을 강화하면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오토스토어가 한국시장에서 당장 집중하는 타깃 고객은 대기업이 아닙니다. 대기업에서 연락이 오기는 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중소기업들이 오토스토어 도입에 관심을 갖고 연락이 오고 있고 여기 영업 역량을 집중한다고 합니다. 사실 대기업 실무자들에게 오토스토어는 SI 파트너인 LG CNS가 열심히 영업을 해서 어느 정도 익숙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오토스토어의 그리드 로봇

물론 중소기업들이 자동화 설비 도입에 의구심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자동화 설비라는 것이 수십억~수백억 이상 단위 이상의 돈이 움직이는데, 망하면 큰일 나거든요. 자동화 설비 업체들이야 모두 설비를 도입한다면 생산성과 효율성이 높아진다고 이야기하지만, 설비 도입 비용이 공짜는 아닙니다. ‘가성비’를 고려해야 하고, 사실 그간 한국의 물류센터 자동화가 지지부진했던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사람 작업자를 쓰는 것이 기계보다 저렴했거든요. 오토스토어의 경우에도 통상 인건비가 높은 유럽권 국가에서는 투자비용 회수 기간을 2년 정도 제시하지만, 한국에서는 3년 반~4년 이상 걸릴 것이라고 예상하는 배경이기도 합니다.

자동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지만, 여전히 시장에 존재하는 이 의구심을 오토스토어는 어떤 형식으로든 해소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오토스토어가 내세우는 가치는 ‘저렴함’과 ‘유연성’입니다. 오토스토어 설치에는 다른 자동화 설비 대비 비교적 저렴한 최소 10억원 정도의 비용만 투자하면 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성과가 좋다면 종전 움직이던 물류 설비의 가동을 멈추지 않고 새로운 설비를 추가할 수도 있습니다. 김경수 오토스토어 파트너 매니저(한국 대표)의 이야기를 들어보죠.

“고객사 입장에서 가장 고민이 되는 부분은 자동화 설비를 도입했다가 잘못되는 것입니다. 그런 고민을 하고 있는 사장님들에게는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사장님, 한 번에 20억 투자하지 말고 조그맣게 2~3억원짜리로 한 번 도입해보라고요. 성과를 보고 감이 잡히면 그때부터 확장해도 늦지 않다고요. 만약 소규모 투자를 하고 잘못됐다면, 거기서 멈추면 됩니다. 실제로 오토스토어의 글로벌 프로젝트 중에서는 약 3억원을 투자해서 300개의 빈(Bin, 그리드 설비에 들어가는 재고 보관용 박스)으로 구성된 소규모 설비를 운영하는 고객사도 있습니다

물론 한국에서는 10억원 정도가 현실적인 최소 투자금액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중소기업은 전산화가 잘 안돼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토스토어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기존 ERP나 WMS에 대한 연동 작업이 필요하고, 이러한 소프트웨어 인프라 도입도 자동화의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연동 작업이야 오토스토어와 제휴하고 있는 LG CNS 같은 SI업체들이 해준다고 하지만, 자체 시스템이 없는 업체라면 시스템 개발비용이 추가로 들 수 있기에 이 부분을 고려해야 합니다(김경수 오토스토어 파트너 매니저)”

MFC로 스며드는 자동화

오토스토어는 한국에서 MFC(Micro Fulfillment Center)라고 불리는 도심 물류 자동화에 관심이 많습니다. 지금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생각하지만, 김 대표가 처음 오토스토어에 들어왔을 때 편의점 한 편 3~4평의 공간에 오토스토어를 설치하는 그림도 그렸다고 하네요. 그도 그럴 것이 오토스토어의 설치 규모는 정해져있지 않거든요. 고객사의 상황에 따라서 작은 장소든, 거대한 장소든, 맞춤 설치가 가능하고 규모에 따라 비용을 지불하면 되는 것입니다.

물론 한국의 MFC는 글로벌에서 아마존이나 월마트와 같은 대형 유통업체들을 중심으로 확산되는 MFC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 있었다고 합니다. 오토스토어가 생각하는 한국 MFC의 특이점은 ‘속도’와 ‘규모’입니다.

한국에서 MFC라고 한다면 익일배송 혹은 시간 제약이 없는 당일배송 수준의 용도로 사용되지 않습니다. 이륜차 라이더가 고객 주문 발생 이후 30분 안에 최종 고객의 자택까지 갖다 주는 속도를 화주사들은 기대합니다. 30분 안에 고객 배송이 완료되기 위해서 오토스토어 시스템은 불과 7분 안에 출고를 마무리해야 합니다. 로봇이 고객이 주문한 상품을 정확히 피킹하고, 그렇게 피킹한 상품을 작업자들이 포장까지 끝마쳐야 됩니다. 이런 속도전을 하고 있는 시장은 전 세계를 봐도 ‘한국’이 최고라는 것이 오토스토어의 평가입니다. 미국 아마존, 영국 오카도가 요구하는 속도의 2배 이상의 속도를 한국 시장은 요구한다고요.

또 다른 한국 MFC의 특이점은 ‘규모’입니다. 한국은 불과 수십평~수백평 규모의 공간을 MFC로 활용합니다. 재고로 보관된 상품 구색(Stock Keeping Units)만 하더라도 1000개 미만에 불과한 정말 자그마한 물류센터가 한국에는 있습니다. 미국만 하더라도 MFC의 사이즈가 한국에 비해서 훨씬 크고, 다루는 SKU는 10만개가 넘어간다는 게 김 대표의 설명인데, 한국의 MFC는 진정한 의미의 ‘마이크로 센터’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이죠.

“전 세계 어떤 대도시를 봐도 한국의 서울만큼 인구밀도가 높은 도시를 찾기 어렵습니다. 서울만 1000만명, 경기도까지 합치면 2000만명이 훌쩍 넘는 인구가 몰려 있습니다. 높은 인구밀도는 이커머스나 MFC 컨셉을 적용하기에 굉장히 좋은 환경임을 뜻합니다. 한국에서 시장을 조사하면서 다른 나라와는 다른 초고밀도 도시에서 적용되는 MFC는 이렇게 다르구나 느꼈습니다. 미국업체, 독일업체들도 속도전으로 진화를 하고 있다지만, 제가 보기에는 여전히 속도에서는 한국이 1등입니다(김경수 오토스토어 파트너 매니저)”

오토스토어는 이런 한국 MFC 환경에 맞는 자동화 설비를 보유하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작은 공간 효율을 극대화하면서 ‘속도’를 만드는 자동화 시스템 설치가 가능하다는 것이죠. 예컨대 오토스토어는 평면 공간에 ‘바닥’만 있으면 어디든 설치할 수 있습니다. 이론적으로는 계단에도 설치가 가능하다는 설명입니다. 속도 측면에서도 많은 부분을 개선하여 ‘셔틀(이마트 김포 물류센터에 있는 그 설비입니다.)’의 평균속도는 이미 따라왔다는 게 오토스토어측 설명입니다.

물론 숙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 업체들은 대부분 ‘창고’나 ‘(창고처럼 쓰기 위한)사무실’을 임차하여 물류센터 운영을 합니다. 그들이 부동산의 소유주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오토스토어 설치를 위해서는 ‘기계’가 그 공간 안에 들어가야 하기에, 결국 임대인과의 협의가 필요합니다. 이 문제를 푸는 것이 쉽지 않을 수 있어서, 도심 물류센터의 자동화 설비 확산은 당장 쉽지 않은 이슈가 될 수 있습니다. 많은 도심 물류센터들이 자동화 설비가 아닌 비교적 설치 및 철수가 용이한 상품보관 선반과 냉장고를 집어넣는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토스토어에게 MFC의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최근 도심지의 유휴공간을 ‘물류 부동산화’해서 임차인에게 임대하고자 하는 부동산 업체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위험성이 큰 상가 투자 대비 물류센터 투자에 돈이 몰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저도 들었는데, 한 주유소 네트워크 운영업체는 기존 주유소가 있던 공간을 밀어버리고 물류센터를 짓는 방식으로 도심 거점을 확보하는 것을 고민하고 있더군요. 주유소를 운영하는 가맹점 사장님 입장에서도 그게 더 돈이 될 것 같다나요. 이렇게 된다면 물류센터 설계 단계부터 MFC를 위한 자동화 설비가 들어설 여지가 생길 수 있겠습니다.

가까운 미래에 우리 동네에서 격자형 자동화 로봇이 물건을 나르는 모습을 볼 수 있는 날이 올까요? 어찌 보면 자율주행 로봇이나 드론이 상공을 나르면서 화물을 운송하는 모습보다는 이런 날이 더 빨리 올 수 있겠습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엄지용 기자> drake@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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