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의 파운드리 사업, 잘 될까

인텔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채비를 하는 가운데, IDM(Integrated Device Manufacturer) 기업이라는 특징과 반도체 수급난이라는 상황의 특수성에 의해 시너지 효과가 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다만 여전히 여러 변수가 있기 때문에 마냥 안심할 수는 없다는 의견도 함께 나오고 있다.

팻 겔싱어(Pat Gelsinger) 인텔 CEO는 지난 3월 23일 ‘인텔 언리쉬: 미래를 설계하다’ 온라인 행사에서 IDM 2.0을 선언한 바 있다. 인텔의 IDM 2.0은 인텔의 파운드리 역량 및 사업 확대를 골자로 한다. 여기서 IDM은 종합반도체기업의 약자로, 설계부터 생산까지 모두 담당하는 기업을 말한다.

팻 겔싱어(Pat Gelsinger) 인텔 CEO (출처: 인텔)

인텔이 파운드리 사업 확장을 선언한 가장 대중적인 이유는 아시아권과 유럽 및 미주권의 반도체 생산 균형을 맞추기 위함이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2020년 TSMC는 54%, 삼성전자는 17%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했다. 그만큼 아시아권에 생산라인이 밀집돼 있는 것이다. 이를 분산하기 위해 인텔에서 파운드리 사업을 확장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실제로 인텔은 EU에 파운드리 협력을 제안했으며, 이번 주 내에 유럽을 방문할 예정이다.

하지만 인텔 파운드리 사업의 의미는 단순히 밸런스를 맞추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박민진 인텔코리아 상무는 “인텔은 이미 기존 공급망을 다수 구축하고 있으며, IDM 기업이라는 것 자체가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인텔은 인텔만의 아키텍처를 갖추고 있는데, 인텔 파운드리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인텔의 저작권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결국 인텔 파운드리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IP와 아키텍처도 인텔에 맞춰 사용해야 하고, 생산도 인텔 파운드리에서 하게 되고, 결국 인텔의 손을 거쳐야 만들어지는 제품을 생산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시너지 효과가 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인텔 오코틸로 생산라인 (출처: 인텔)

익명의 증권업계 관계자는 인텔 IDM 2.0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우선 인텔의 생산기술 자체가 타 파운드리에 비해 아주 뒤처지는 편이 아니다. 인텔의 칩은 타사에 비해 제품에 들어가는 칩의 밀도보다 높다고 것이다. 이는 다시 말해 인텔의 10나노 공정은 타 기업의 7나노 공정과 비슷한 성능을 갖추고, 인텔의 7나노 공정은 타 기업의 5나노 공정과 비슷한 성능을 갖춘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만,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인텔의 IP와 아키텍처를 사용해야 한다는 한계는 존재한다.

하지만 지금은 반도체 물량 자체가 부족한 상황이고, 이 같은 양상은 5년까지 지속될 것이라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따라서 이미 기존 파운드리사를 이용하던 대기업은 차치하더라도, 물량을 확보해야 하는 기업, 특히 새롭게 위탁생산을 하려고 하는 기업들은 인텔 아키텍처를 이용해서라도 위탁생산을 하는 방안을 생각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또 다른 반도체 시장 애널리스트도 “인텔이 추구하는 전략은 단순히 파운드리만 제공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며 “인텔은 GPU, FPGA, NPU 등 전반적인 포트폴리오를 다 갖추고 SoC처럼 SoP를 개발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SoP는 System on Package의 약자로, 하나의 패키지 안에 여러 칩이 복합되어 있는 것을 말한다. 쉽게 말해, 고도화된 SoC라고 생각하면 된다. 프로세서에 필요한 모든 요소를 다 아울러서 고객사에게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인텔의 전략은 처음 PC 제조업에 뛰어들었을 당시 취했던 ‘윈텔’ 전략과도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다만 그는 올해 하반기에 생산 예정인 인텔의 차세대 코어 프로세서 ‘엘더레이크(Alder Lake)’의 성공 여부에 따라 IDM 2.0의 성공 여부도 결정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엘더레이크는 IDM 2.0의 첫 시작이라고 봐도 되는데, 이를 토대로 고객사의 반응이 갈릴 것이고, 인텔 또한 사업 방향을 결정할 것이라는 의견이다.

인텔 오리곤 생산라인 (출처: 인텔)

한 반도체 시장 애널리스트는 “장기적으로 인텔이 애플의 물량도 확보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원래 애플은 기술 유출 문제로 인해 삼성전자를 비롯한 IDM이 아닌 파운드리 전문업체 TSMC에만 위탁생산을 맡겨 왔다. 게다가 현재 인텔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미 정부에 의해 인텔이 애플의 물량을 확보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에릭 슈미트 전 구글 최고경영자(CEO)는 미국 NSCAI(인공지능에 관한 국가안보위원회) 보고서를 통해 “미국 기반의 칩 제조 시설이 몇 개 없다면, 미국은 경쟁 압박과 공급망 부족으로 인해 위험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처럼 반도체 자급자족을 노리고 있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기조에 맞춰, 애플이 아시아 기업인 TSMC가 아닌 자국 기업인 인텔에 물량을 맡기라고 부추길 것이라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배유미 기자> youme@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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