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전 대한민국 이커머스 업계에 ‘미디어 커머스’ 열풍을 불러온 기업이 있으니 블랭크(사명: 블랭크코퍼레이션)다. 2016년 2월 설립한 이 기업은 창업 첫해 42억원, 2017년 478억원, 2018년 매출 1169억원을 기록하면서 빠르게 성장했다. 통상 많은 마케팅 비용 투하로 적자를 보면서 규모를 만드는 여타 이커머스 플랫폼과 다르게 블랭크는 거대한 매출 성장에 불구하고 돈을 벌었다. 블랭크의 영업이익은 2017년 77억원, 2018년 139억원으로 성장과 함께 큰 폭으로 늘었다.

블랭크가 제작한 이미지 및 영상 콘텐츠. 콘텐츠가 고객을 유입하는 마중물이 돼 블랭크가 전개하는 브랜드의 성장을 지원사격하는 모델이다.

2019년 블랭크의 실적에는 적신호가 떨어졌다. 매출 성장률(2019년 기준 매출 1315억원, 2018년 대비 매출 성장률 24.8%)은 예전 같지 않았고, 실적 또한 적자(영업손실 90억원)로 전환했다. 소셜 네트워크에 올린 콘텐츠를 기반으로 상품을 잘 팔던 기업 블랭크는 소셜 네트워크와 콘텐츠의 역공을 받았다. 블랭크가 판매하는 제품의 품질을 지적하는 많은 콘텐츠가 SNS에서 양산됐다.

블랭크측은 당시 “단순히 콘텐츠로 잘 파는 것뿐만 아니라 상품에 투자한 것이 적자 전환에 영향을 줬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블랭크의 사업방향도 미디어 혹은 콘텐츠 커머스가 아닌 ‘브랜드 인큐베이터’로 전환했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20여개의 브랜드 중에서 수익성이 좋지 않은 브랜드는 과감히 제거했다. 어느 정도 규모와 성과를 만드는 브랜드는 자회사 형태로 분사했다.

흑자 전환에 성공한 이유

블랭크가 2020년 연결실적 기준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3월 31일 블랭크의 공시에 따르면 2020년 매출은 1624억원으로 전년(1315억원) 대비 23.5% 상승했다. 2020년 영업이익은 16억원으로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아직 미미한 숫자이지만 블랭크가 다시 한 번 성장을 노리기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블랭크가 흑자 전환에 성공한 이유는 ‘글로벌 사업’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블랭크의 해외 사업이 2020년 만들어낸 매출액은 364억원으로 전체 매출의 21%를 차지했다. 블랭크의 글로벌 사업이 만든 영업이익은 61억8000만원으로 블랭크의 국내 사업 대비 오히려 높은 이익률을 기록했다.

글로벌 사업의 성장세도 국내를 뛰어넘었다. 블랭크는 2018년 8월 글로벌 사업을 시작한 이례로 3년 연속 국내 사업보다 높은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2018년 49억원 매출을 시작으로 2019년 매출 225억원(영업이익 19억8000만원)을 기록했다. 2020년에는 전년 대비 매출 55.6%, 영업이익 212%가 상승했다. 어찌 보면 초기 블랭크가 한국에서 만든 파괴적인 성장이 ‘글로벌 사업’에서 재현되는 모습이다.

블랭크의 글로벌 사업 진출 방향은 국내에서 블랭크가 만든 성공 방법과 유사하다. 블랭크가 전개한 브랜드별로 ‘자사몰’을 만들어서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한다. 블랭크는 일종의 멀티 브랜드 매니지먼트 회사가 돼서 브랜드별 상품기획과 마케팅, 물류, CS 전략을 설계한다. 본사가 구축한 인프라와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브랜드들이 중간 유통상을 뛰어넘고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할 수 있도록 돕는 D2C(Direct to Customer) 방식이다.


블랭크가 국내에서 성공한 법칙을 글로벌에 이식했다고 하지만, 차이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글로벌은 기본적으로 고객이 다르고, D2C를 만들기 위한 네트워크가 다르다. 공통점도 있다지만, 차이점도 함께 존재한다. 바로 여기서 ‘글로벌 D2C’를 전개하고자 하는 많은 브랜드 사업자들이 참고할만한 힌트가 있을지 모르겠다.

블랭크가 글로벌 사업을 전개하는 방법

블랭크는 현시점 홍콩과 싱가포르, 대만에 법인을 설립하고 자사몰을 운영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한국 브랜드 자사몰의 UX/UI를 글로벌에도 그대로 차용한다.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지키기 위해서다.

블랭크 글로벌 사업을 총괄하는 박준호 블랭크코퍼레이션 프로는 “대만은 현지 커머스 솔루션 업체와 제휴하여, 홍콩과 싱가포르는 마땅한 현지 업체가 없다고 판단하여 글로벌 커머스 솔루션 업체 쇼피파이를 통해 자사몰을 구축했다”며 “쇼피파이는 다양한 기능의 앱이 제공되는 것이 장점이지만 기본 수수료가 비싸고 앱도 무료가 아니다. 반면 로컬 플랫폼의 경우 현지 언어로만 CS 대응이 되고 기능이 제한적인 경우가 많지만, 대신 비용이 저렴하고 기본적인 기능은 대부분 제공한다는 장점이 있다”고 조언했다.

(위에서부터) 블랭크가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에 오픈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바디럽’의 자사몰 페이지. 기본적인 구성은 유사하지만 현지화 측면에서 약간의 차이는 있다.

블랭크의 D2C 전략에 있어 핵심은 역시 ‘콘텐츠’다. 이 또한 국내에서 블랭크가 성공한 문법을 그대로 가지고 왔다. 자체 제작한 상품과 관련한 ‘콘텐츠’를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SNS에 업데이트 하여 소비자 노출을 늘린다. 콘텐츠 설명 텍스트에는 자사몰 상품 구매 페이지로 연결되는 링크를 남겨서 콘텐츠를 열람한 소비자의 자사몰 방문 및 구매 전환을 유도한다. 상품은 제조 파트너와 협력해서 OEM 방식으로 블랭크가 기획, 제조한다. 국내에서 블랭크가 전개한 브랜드를 그대로 해외에도 소개한다.

전설의 마약베개 계란판 깨기 영상 콘텐츠는 ‘자막’을 입혀 대만에서 그대로 활용됐다.

물론 블랭크가 현지 ‘마켓플레이스’ 입점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현재 블랭크는 미국 사업을 ‘아마존’에 입점하여 진행하고 있다. 추가적으로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와 같은 국가에서는 쇼피나 라자다 같은 현지 마켓플레이스에 입점 판매하는 방식의 사업 전개를 고민하고 있다.

하지만 블랭크의 글로벌 사업 매출은 대부분이 마켓플레이스 입점이 아닌 콘텐츠를 기반한 글로벌 자사몰에서 발생하고 있다. 블랭크 글로벌 자사몰을 통한 주문건수는 월 3만건 이상 발생하고 있으며, 2020년 기준 약 200만개 이상의 제품을 현지에 판매했다. 블랭크가 국내에 전개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바디럽’과 ‘공백’, 남성뷰티 브랜드 ‘블랙몬스터’, 주방용품 브랜드 ‘모도리’, 남성패션 브랜드 ‘언코티드’ 등이 동남아시아 현지 소비자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브랜드로 꼽힌다.

박 프로는 “2018년 5월 블랭크에 합류하자마자 해외 직접 진출을 준비했다. 당시 거시 경제 환경, 소비시장에서의 이커머스 비중, SNS 사용률, SNS 광고 단가(CPM), 행정 허들, 법인세 및 관세와 같은 조세환경, 한국에 대한 우호도 등 다양한 요인들을 분석했고 그 결과 직접/간접 진출 국가와 우선순위를 정했다”며 “조사 결과 가장 시급하게 진출해야 할 곳으로 대만, 홍콩, 싱가포르 3개 지역을 정했고 즉시 지역별 법인을 설립하여 현지 사무실 계약, 인력 구성을 진행했다. 8월 대만 서비스를 시작으로 홍콩, 싱가포르에 서비스를 차례로 론칭했다”고 전했다.

글로벌 상품기획 방법론

당연한 이야기지만 D2C 이전에 커머스 사업을 위해서는 ‘상품’이 필요하다. 블랭크 글로벌 사업 조직은 글로벌 판매를 위한 상품기획을 별도로 하지는 않는다. 국내에서 먼저 기획하고 성공한 상품을 해외에 소싱해서 판매한다.


현재 블랭크가 전개한 국내 브랜드 20여개 중 11개 브랜드(바디럽, 공백, 블랙몬스터, 에이노멀, 플렉싱, 언코티드, 모도리, 닥터원더, 아르르, 아이카, 소소생활(홍콩))가 해외에서 판매되고 있다. 그러니까 블랭크 글로벌 사업 조직은 국내에서 전개된 브랜드 중 글로벌 현지에서 잘 팔릴 브랜드와 상품을 픽업하는 ‘큐레이터’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블랭크는 글로벌에서 잘 팔릴 상품을 선택하는 기준으로 ‘현지에서 판매할 수 있을 정도의 상품과 가격 경쟁력’을 전제한다. 블랭크가 현지에 진출한 국가별로 소비자의 니즈, 가격에 대한 저항력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이 부분을 사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예컨대 홍콩과 같은 경우 블랭크의 식품 브랜드가 잘 팔리고 있는데, 기본적으로 홍콩의 식료품 물가가 높아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강점이 있었다는 블랭크측 분석이다. 대만에서는 바디럽과 같은 생활용품 브랜드, 싱가포르는 공백과 같은 생활/청소용품의 반응이 좋았다.

박 프로는 “좋은 아이템을 찾았다면 현지 시장에 대한 세밀한 조사가 필요하다. 외교 관계나 종교, 역사적 특징은 물론 현지 트렌드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살피며 제품 론칭 시기와 이후 운영 방향을 세울 수 있다”며 “요즘은 글로벌 커머스 플랫폼을 통해 해외 브랜드 제품을 쉽게 접할 수 있는 환경이다 보니 소비자들이 제품에 대해 느끼는 효용은 국가별로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명심해야 할 것은 소비자가 지불하는 가치에 부합하거나 그 이상의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 제품을 소싱하는 것”이라 강조했다.

물론 블랭크가 모든 국내 성공 상품을 글로벌에 판매하지는 않는다. 예컨대 글로벌 사업은 한국에서 전개한 상품을 현지로 수입하는 과정이 선행되는 만큼 국가별로 통관이나 인허가와 같은 행정 이슈가 까다로운 상품은 글로벌 판매 카테고리에서 배제했다. 국내에서만 통용될만한 마케팅 기법을 기반으로 잘 팔렸던 상품 또한 배제했다.

그럼에도 일반적으로 한국에서 잘 팔리는 상품이 해외에서도 잘 팔리는 경향이 있는 것은 맞다. 때문에 보편적 경쟁력이 있는 브랜드와 제품 중심으로 상품 구색을 갖췄다는 게 블랭크의 설명이다.

박 프로는 “국내와 해외를 불문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시장, 소비자의 판단과 선택”이라며 “우리는 각 지역별 소비자의 니즈를 이해하고, 브랜드와 제품의 강점이 현지시장에 맞아떨어지는 부분을 찾아, 마케팅과 유통 등으로 힘을 실어주는 것을 기본 전략으로 채택한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콘텐츠 마케팅 방법론

블랭크의 글로벌 사업 조직은 ‘콘텐츠 마케팅’에 있어서도 국내에서 성공한 방식을 대부분 이전했다. 한국에서 제작한 영상과 이미지 콘텐츠 중에서 국가를 초월한 보편적인 정서와 기능을 제공하는 내용이라면 현지 언어 자막을 입혀서 사용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실상 블랭크가 진출한 대만과 홍콩, 싱가포르는 동아시아 문화권과 가까운 특성을 보이는지라 한국과 크게 다른 위화감은 없다는 게 블랭크측 설명이다.

다만 한국에서 제작하는 영상만으로는 제품을 설명하기 부족하다고 판단되거나 현지 프로모션이 있을 경우에는 블랭크 글로벌 사업조직이 직접 콘텐츠를 제작하기도 한다. 예컨대 블랭크가 2020년 1월 법인을 만들고 글로벌 사업을 시작할 예정인 국가 말레이시아는 국민 대부분이 회교도인 특징이 있기 때문에 문화적인 부분을 사전 고려해서 콘텐츠를 제작할 필요가 있다.

박 프로는 “지난해 (블랭크의 뷰티 브랜드) 에이노멀의 고체 향수 제품이 출시됐다. 기획자는 30대 여성을 타겟으로 만들었으나 대만에서는 20대 여성 구매가 대부분이었다”며 “그래서 상품 상세페이지와 영상 콘텐츠를 20대 감성에 맞춰 새롭게 제작했고 그 결과 판매량이 10배 이상 증가했다”고 콘텐츠의 현지화 사례를 전했다.

블랭크가 성공했다고 꼽은 에이노멀 대만의 블로그 링크 활용 콘텐츠

블랭크는 글로벌 콘텐츠의 현지화와 함께 콘텐츠 소비문화 또한 고려해야할 것을 강조했다. 박 프로는 “현지에서 콘텐츠를 제작한다면 현지 소비자들의 콘텐츠 소비 행태에 부합하는 형태로 제작하고 노출하고자 노력한다”며 “예를 들어 대만의 경우 페이스북을 통해 영상뿐만 아니라 기사, 블로그 글 등의 콘텐츠를 소비하는 경향이 있어서 우리도 브랜드 블로그로 콘텐츠를 만들어 광고로 노출했다. 홍콩의 경우 페이스북 영상 러닝타임이 타 국가보다 짧아서 영상보다는 배너 광고를 더 많이 노출하는 경향이 있다”고 조언했다.

글로벌 물류 방법론

글로벌 D2C를 위한 물류 프로세스 설계는 자체 혹은 3PL 물류센터와 택배망을 조합하면 되는 국내 D2C 환경과는 다르다. ‘국제물류’와 ‘통관’를 포함한 글로벌 물류라는 변수가 새롭게 추가된다. 이에 따라서 전에 없던 새로운 범위의 물류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하고 난이도 또한 올라간다.

블랭크는 기본적으로 자사몰을 구축한 3개 지역(홍콩, 싱가포르, 대만)에 한해서 공통 물류 프로세스를 구축했다. 기본적으로 한국에서 현지 소비자에게 바로 보내는 B2C 글로벌 전자상거래 물류 방식이 아닌, 해상운송 컨테이너를 통해 상품을 대량 입고하고 이후 현지 파트너 창고에 물건을 보관하여 판매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이후에는 고객 주문에 따라서 현지 택배사를 통해 B2C 배송을 마무리하는 구조다.

특이점은 국가별로 다른 라스트마일 물류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블랭크가 진출한 국가마다 물류비의 차이, COD(Cash On Delivery, 현장 후불결제) 선호 등으로 인해 국내와는 다른 택배 수취 문화가 나타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대만 같은 경우 ‘편의점 물류’를 통한 출고가 전체의 60% 이상을 차지한다는 블랭크측 설명이다. 이 경우 블랭크의 제휴창고에서 현지 편의점 물류센터까지 상품을 입고시키고 고객 인근 편의점까지 배송하는 프로세스로 진행된다. 통상의 방식과는 다소 차이가 있는 네트워크 설계가 필요하다.

박 프로는 “집집마다 배송하는 것이 어려운 대만의 주거 형태와 골목마다 편의점이 위치한 환경 때문에 편의점 배송이 활성화 됐다고 보면 된다”며 “다만, 편의점 배송으로 주문하고 고객이 편의점에서 상품을 수취하지 않아 반송돼 매출이 취소되는 주문 또한 존재한다. 이는 대만 택배 주문의 6~8% 수준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홍콩의 경우 보관함이나 택배센터까지 고객이 직접 찾아와서 택배로 주문한 상품을 찾아가는 오프라인 픽업 형태의 배송이 가장 많다는 블랭크 글로벌 조직의 분석이다. 이 같은 특성이 나타나는 이유는 홍콩의 기본 물류비용이 한국보다 훨씬 비싸고, 고객의 자택까지 문전배송할 경우 추가 비용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박 프로는 “홍콩의 경우 한국처럼 차를 잠시 정차하고 배송할 수 없고, 오피스 건물이든 주거건물이든 주차장에 들어갈 때마다 비용을 청구하기 때문에 이런 제도가 생겼다고 한다”며 “싱가포르 또한 한국보다 기본적인 배송 비용이 비싸지만 그래도 그나마 한국과 가장 비슷한 형태의 배송이 이루어지는 국가”라 조언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엄지용 기자> drake@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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