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벤츠, BMW 부품을 ‘적시 공급’ 하기 위해 필요한 것
4000여개의 오프라인 자동차 정비소 고객사를 대상으로 빌스타인(BILSTEIN), 텍스타(TEXTAR) 등 40여개 자동차 부품 브랜드사의 제품을 납품한다. 2011년 한-EU FTA 이후 21.6%(한국수입자동차협회, 2020년 12월 기준)까지 치고 오른 국내 수입차 점유율에 맞춰, 벤츠, BMW, 아우디, 폭스바겐, 재규어 랜드로버 등 유럽 자동차 브랜드 부품 공급에 특화했다. 88년 역사의 글로벌 자동차 부품 유통업체 타이순(Tye-Soon Limited)의 한국법인 ‘세종파츠플러스’의 이야기다.
비즈니스 모델은 단순하다. 정비소에 유통한 제품 판가에서 부품 브랜드사로부터 공급받은 제품 원가와 운영비를 제한 금액이 세종파츠플러스의 이익이다. 그렇게 세종파츠플러스가 한국에서 만든 지난해 매출이 400억원 규모, 최근 월매출은 35억원 수준이다.
단순해 보이는 이 비즈니스 모델을 운영하는 것은 쉽지 않다. 영세한 국내 정비소들은 엔진오일, 필터, 와이퍼 같은 자주 나가는 기본 소모품 재고를 제외하고는 부품을 미리 구비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유는 단순한데 재고를 구비했다가 안 팔리면 그 리스크를 정비소가 가져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통상 정비소가 차주에게 제시하는 정비까지 걸리는 시간에는 기존에 없던 재고를 매입해서 가지고 오는 물류 리드타임이 포함돼있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자동차 부품 유통업체가 ‘재고 없는’ 장사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치열한 경쟁상황에서 정비소에 방문하는 ‘고객’은 정비소의 상황을 마냥 이해해주지 않는다. 당연히 있어야 할 것 같은 부품이 없고, 정비 시간이 늦는다면 곧바로 다른 정비소를 찾아 떠난다. 이 때문에 재고가 없는 정비소에 적시에 부품을 공급해야 하는 역할은 유통업체의 몫이자 경쟁력이 된다.
적량의 재고를 찾아서
세종파츠플러스는 부산과 인천에 입지한 두 개의 물류센터에 재고를 매입해 쌓아둔다. 정비소까지 신속한 납품을 위해서다. 세종파츠플러스가 부산과 인천에 있는 물류센터에 쌓아놓은 재고 SKU(Stock Keeping Units)만 9만9000개다. 재고 자산의 가치를 환산하면 120억원이 넘는다. 월매출의 3배가 넘는 재고를 미리 구비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유통업체가 모든 재고를 구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통상 내연기관 자동차 한 대에 들어가는 자동차 부품의 숫자는 2~3만여개가 넘는다. 차종마다, 같은 차종이라도 연식마다 필요한 부품도 어느 정도 차이가 있다. 그리고 이 부품들이 모두 잘 나가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엔진오일이나 필터와 같은 소모품, 브레이크 디스크 로터, 쇼크 업소버(속칭 ‘쇼바’)와 같은 부품은 잘 나간다. 이런 부품들은 재고로 쌓아둬도 어느 정도 소진시킬 수 있다.
문제는 잘 안 나가는 부품이다. 이 부품을 모두 구비하는 것은 유통업체 입장에서도 비용이다. 그렇다고 아예 재고를 안 가져가면 정비소 고객을 놓칠 수 있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요컨대 잘 팔릴 상품 리스트를 예측하여 큐레이션하는 적절한 ‘구성’이 필요하다. 재고를 쌓아두더라도 필요한 것만 쌓아두는 운영의 묘가, 동시에 예측치 못한 수요의 변동성에 대응할 수 있는 민첩한 공급망을 구축해야 한다.
적정 재고 마련하는 ‘수요예측’
재고를 쌓아둔다고 해서 물류센터가 평화로우면 좋겠지만 항상 평화로운 것은 아니다. 언제고 어떤 이유에서든 쌓아둔 재고를 초과하는 수요가 발생할 수 있다. 그렇기에 업체들은 적정 재고를 확보하는 ‘수요 예측’을 위해 노력한다.
세종파츠플러스에도 수요예측을 위한 방법론은 있다. 여러 해 판매를 통해 확보한 데이터를 수요예측 담당자의 경험과 결합했다. 세종파츠플러스가 가장 중요하게 보는 기준 데이터는 ‘완성차 판매량’이다. 자동차 판매이력에 따라서 앞으로 해당 차량이 얼마나 정비시장에 나올지 미리 예측한다.
예를 들어서 벤츠 e클래스는 판매시기에 따라 ‘w211’, ‘w212’, ‘w213’이라는 코드넘버를 사용한다. 세종파츠플러스에 따르면 지금 시장에 나와 있는 모델은 w213이지만, 자동차 정비 시장에서 가장 많이 움직이는 차종은 w212다. 그렇다면 세종파트플러스는 w212의 보증기간이 언제 끝날지 계산한다. 보증기간이 끝나면 완성차 센터에서 일반 정비소로 차주의 니즈가 이동하기 때문이다.
완성차 판매량 데이터는 절대로 감으로 입력해서는 안 된다는 게 세종파츠플러스의 강조 사항이다. 국토교통부 자료를 전산에 입력하여 자사 시스템으로 환산하는 작업을 거친다. 여기에 계절 변수를 함께 고려한다. 자동차 부품 시장도 패션산업과 마찬가지로 ‘계절성’을 띤다. 예를 들어서 배터리 제품은 겨울에 자주 나가고, 쇼크 업소바는 여름에 자주 나간다. 박재현 세종파츠플러스 대표(타이순 한국법인장)의 말이다.
“우리는 경험에 따라서 자동차 부품의 중요도를 알파벳으로 구분했습니다. 예를 들어서 A등급 부품은 무조건 재고로 가지고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비율로 보면 전체 부품에서 대략 30%를 차지합니다. 뒤이어 B, C등급으로 분류되는 부품은 전체에서 60% 정도 됩니다. 나머지 D, E등급 부품은 10% 정도 니즈가 있죠. 근데 고객은 항상 A, B, C등급 부품만 요구하지 않습니다. D, E등급도 함께 필요한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자동차 부품 업계는 D, E등급 부품까지 고객의 니즈에 맞춰서 어떻게 모두 구성할 수 있는 역량에서 게임이 갈립니다. 때문에 우리 회사의 재고자산만큼 중요한 것은 지난 10년 동안 구축한 우리의 전산 데이터입니다. 축적된 판매 데이터가 우리의 구성력을 만드는 기반이 됩니다”
적시성 만드는 도심거점
물류센터에 필요한 재고 수량을 미리 예측하여 구비하는 것은 확실히 ‘속도’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이 된다. 그렇게 한다면 B2B 기업택배망(세종파츠플러스는 ‘경동택배’를 이용한다.)을 활용해 전국 정비소까지 며칠 안에 배송하는 프로세스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때로는 이 ‘며칠’이라는 시간도 정비소에게는 느리다고 여겨지는 품목이 있다. 박 대표의 예시에 따르면 브레이크 패드와 같은 부품은 차주 입장에서는 당장 정비소에 들려서 갈고 나갈 수 있어야 하는 품목이다. 만약 정비소가 브레이크 패드 교체에 며칠이 걸린다고 답한다면, 차주는 곧바로 다른 정비소를 찾아 이탈할 수 있다. 고객이 이탈한 정비소의 분노는 오롯이 유통업체 영업팀의 몫이 돼 다가올 수 있다.
세종파츠플러스는 신속한 공급을 원하는 정비소를 위한 대응책을 마련했다. 그 방법은 세종파츠플러스가 전국에 18개 구축한 영업지점을 도심 물류거점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수요의 30%가 몰리는 A등급 부품 3000여개(SKU)를 영업지점에 비치한 선반에 보관해둔다. 영업지점은 산발적인 지역 정비소의 발주에 대응하여 영업지점부터 정비소까지의 긴급 물류망을 구축했다. 자체 차량을 활용하기도 하고, 급하다면 퀵서비스 이용을 병행하기도 한다.
일례로 까다로운 차주가 많은 강남 지역 영업을 담당하는 세종파츠플러스 강남지점은 30분 단위로 차량을 순회하면서 정비소에 물품을 공급한다. 다른 영업지점에서도 강남지점만큼은 아니지만 하루 1~3회 가량 고정차량을 배차하여 정비소의 부품 공급 니즈를 빠르게 충족시킨다. 요컨대 세종파츠플러스의 영업지점은 그 자체로 정비소의 산발적인 니즈에 대응하는 마이크로 풀필먼트 센터의 역할을 한다.
수요예측이 어려운 이유
하지만 여러 노력에도 불구하고 수요예측은 틀릴 수 있다. 언제고 예측치 못한 외부 돌발 변수로 인해 재고 이상의 수요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 대표가 전한 세종파츠플러스가 겪은 일화가 하나 있다.
“2018년 필터 대란이 일어났습니다. C3698이라는 이름의 우리 파트너가 공급하는 필터였습니다. 우리 구매조직은 이 전까지 팔았던 데이터를 기반으로 3개월치의 안전재고를 구비하면 넉넉할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그런데 그 3개월치가 3주만에 동이 났습니다. 필터는 정말 잘 나가는 아이템이고, 그래서 우리는 미리 어마어마한 양을 창고에 재고로 구비했지만 그게 틀렸습니다. 준비한다고 준비하더라도 수요예측은 우리가 생각하는 수식대로 안 굴러갑니다. 정말 안 맞습니다”
세종파츠플러스는 예측을 벗어난 결품이 발생하면 크게 세 가지 요인에서 원인을 찾는다. 하나는 경쟁사가 결품이 난 부품을 확보하지 못했을 때다. 고객은 대체재가 없기 때문에 세종파츠플러스에 몰리고, 재고는 동이 난다. 둘은 부품이 필요한 특정 차량의 판매 급증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차가 잘 팔리기 시작하면 관련 부품의 수요는 함께 늘어나기 마련이다. 마지막 세 번째는 세종파츠플러스의 영업지점이 너무 잘 해서다. 영업팀에게는 축복이지만, 구매팀에게 이는 재앙이 될 수도 있다. 박 대표는 ‘필터 대란’ 당시 문제의 원인은 ‘경쟁사가 물량을 구비하지 못했던 것’이 원인이었다고 기억한다.
결품에 대응하는 방법
어떤 이유에서든 결품은 발생할 수밖에 없다면, 일어난 결품에 대한 대응은 신속해야 한다. 세종파츠플러스가 선택하는 결품 대응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첫 번째는 대체 부품 수급 네트워크 파악이다. 먼저 경쟁사 재고 파악부터 들어간다. 물론 경쟁 유통사들이 재고를 쉽게 넘겨줄 리는 없다. 그렇기에 여러 유통사를 이용하는 정비소 고객사를 활용하여 최대한 대체 부품을 수급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수배한다. 그 다음에 할 일은 결품이 발생한 부품을 요구하는 정비소에 양해를 구하는 것이다. “사장님 우리는 텍스타 제품을 전문적으로 하는데 이게 재고가 없습니다. 근데 마침 브렘보 부품이 있네요. 같은 가격에 드릴테니 어떤가요?”
두 번째는 완성차업체의 센터에 가서 순정 부품을 구매하는 방법이다. 이럴 경우 당연히 세종파츠플러스의 이익에는 타격이 갈 수밖에 없다. 공식 계약한 유통망을 벗어난다면 그만큼 구매력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세종파츠플러스는 결품 이슈를 해결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봤다.
마지막 세 번째는 ‘항공운송’이다. 세종파츠플러스는 유럽에 있는 부품 브랜드사로부터 통상 해상운송을 통해 부품을 공급받는다. 하지만 결품 상황이 닥치고, 동시에 유럽에 있는 부품 공급사에 재고가 있다면 급히 항공운송을 수배한다. 물론 물류비 부담은 해상운송에 비해 확실히 커지지만 이 또한 신속성에 우선을 둔다. 추가되는 항공 물류비는 고객사인 정비소와 협의하여 부담한다. 통상 결품 대응을 위해서 세종파츠플러스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법이다. 앞서 2018년 세종파츠플러스를 덮친 ‘필터 대란’의 경우에는 어떻게 문제를 해결했을까.
“다행히 강원도 원주 근처에 해당 필터 제품을 재고로 구비해둔 한국 물류센터가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약간의 물량이나마 구할 수 있었죠. 잠깐 고객의 아우성을 막은 사이에 글로벌 부품 공급사에는 긴급 발주를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웬걸. 부품 공급사가 3개월치 물량을 한 번에 보내주더군요. 우리는 월단위로 한 컨테이너씩 세 번의 발주를 요청했는데 세 컨테이너가 한 번에 들어온 것입니다. 부품 공급사가 이야기하길 그들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다음에 물량이 있을지 없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최대한 물건을 당길 수 있는 만큼 당겨서 미리 보냈다고요. 공급업체 입장에서도 물량 대란이 일어나서 그런 것인데, 어쩌겠습니까. 우리는 이 시기에 물량을 준다는 것만 해도 감사했습니다.
창고에 박스의 산이 쌓였습니다. 컨테이너 안에는 오만가지 상품이 뒤죽박죽 섞여있고, 카톤박스에 담긴 아이템 수량도 균일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저는 인천 물류센터에서 1주일가량 필터작업조로 투입했습니다. 우리는 인보이스(송장)와 패킹리스트를 보면서 수량 검수를 하고 입고 바코드를 붙였습니다. 입고 바코드를 붙이면 판매, 또 붙이면 판매되는 과정의 반복이었습니다”
박 대표는 ‘결품 제로’의 운영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렇기에 그는 결품에 대비한 민첩한 공급망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한다. 결품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결품이 덜 일어날 수 있도록 적량의 재고를 구비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를 위해서 무엇보다 물류가, 공급망관리(Supply Chain Management)가 중요하다는 것이 그의 강조사항이다. 이것은 그의 이야기만 아니다. 오늘도 속을 끓는 우리 물류현장의 이야기다.
“솔직히 현금이면 저게 돈이 얼만데 재고를 120억원 이상 가지고 장사를 하겠습니까. 그런데 자동차 부품업은 절대적으로 재고의 싸움입니다. 오늘이 특정 부품이 잘 팔리는 시즌인데 납품까지 2~4일 지연이 발생한다면 영업 조직에서는 그야말로 난리가 납니다. 확실한 것은 재고가 결품되는 것보다는 남는 것이 낫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고객 니즈를 적시에 충족시키는 JIT(Just In Time) 운영을 위해 노력합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엄지용 기자> drake@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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