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성 코팅제로 식량 문제 해결하려는 ‘어필 사이언스’

[뜨는 실리콘밸리 테크 기업] 농산물에 코팅제 발라 신선도 유지하는 ‘어필 사이언스’

‘26000억달러( 2900조원)’

매년 유통기한이 지났거나 상했다는 이유로 버려지는 음식물의 규모다. 최근 식량안보 이슈가 떠오르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 다소 생경한 장면이다. 어필 사이언스(Apeel Science)’는 지난 2012년 이같은 이중구조에 의문을 던지며 창업했다. “문제는 식량 생산이 아니라 공급 조정에 있다고 보는 이들은 과연 어떤 기업일까.


유통 기한 늘린 어필만의 ‘식물성 코팅제’


어필 사이언스의 과일과 채소는 보통이 농산물보다 유통기한이 서너 배 길다. 이유는 간단하다. 자체적으로 고안한 ‘식물성 코팅제 (Edible Coating)’를 발라서 판매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과일 및 채소 표면이 점차 갈색으로 물들어가는 상황을 상상해보면 이해가 쉽다. 이는 농산물 표면에 산소가 침투하고 수분이 증발하면서 생기는 현상인데, 어필은 ‘식물성 코팅제’라는 얇은 보호막을 겉에 입혀 산화 과정을 최대한 지연시킨다.

‘코팅제’라고 부르지만 ‘농약’이나 ‘방부제’와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어필의 식물성 코팅제는 기존 농산물의 껍질과 씨앗에서 추출한 지방질을 분말로 만든 것이다. 이미 섭취하고 있었기에 코팅제를 먹어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의미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식물성 코팅제를 일반적으로 안전한 식품’을 말하는 GRAS(Generally Recognized As Safe) 등급으로 인정한 이유이기도 하다.

더 오래 신선도 유지한 코팅제 농산물, 오른쪽 (출처=어필 사이언스)
더 오래 신선도 유지한 코팅제 농산물, 오른쪽  (출처=어필 사이언스)

상하기 쉬운 아보카도는 어필로 인해 수명이 늘어난 대표적인 과일이다. 아보카도는 건강식품으로 인기가 높지만 보관 기간이 짧다는 치명적 단점이 있다. 때문에 섭취 전부터 색이 바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코팅제를 입힌 이후부터는 보관 기간이 최대 30일로 연장됐다. 제임스 로저스 최고경영자(CEO)는 “우리는 시계가 느리게 가도록 만든다”면서 “그만큼 음식을 즐길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고, 더 적은 양의 음식을 버리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음식물 쓰레기, 보관 문제 걱정 덜어준다


신선도 유지는 식량이 쉽게 버려지고 있는 현실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미국 대형 유통체인 코스트코와 크로거에 따르면 과일과 채소의 절반가량은 부패되어 폐기 처분된다. 복숭아부터 아스파라거스에 이르기까지 코팅된 농산물을 늘려 가는 어필의 행보에 큰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어필의 농산물을 판매하는 독일 1위 유통업체 에데카(Edeka)의 마리오 슬루니체크 부사장은 블룸버그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코팅 처리된 농산물이 폐기되는 경우는 최대 50%까지 적어졌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식물성 코팅제는 액화된 상태로 포장 직전 농산물이 입혀진다. (출처=어필 사이언스 유튜브)

어필로 인해 저장 설비에 대한 부담이 줄어든 점도 업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냉동 인프라가 부족한 개발도상국의 경우, 소매업자들은 짧은 보관 기간을 이유로 사업 범위를 좁게 가져갈 수밖에 없다. 시설 투자에도 비용적인 한계가 있었는데, 결국 큰 지출 없이도 신선도가 오래 지속되는 어필의 과일과 채소가 이 같은 문제의 해결책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빌앤멜린다 게이츠 재단의 크리스티나 오웬 국장은 “어필은 아프리카의 생계형 농부들을 상업적 농부로 바꿀 수 있는 큰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식품 유통에 차질을 겪는 코로나19 국면에서 어필을 향한 수요는 더욱 높아졌다. 지역 간 잦은 봉쇄로 신선 식품을 제때 운반하지 못하는 등 여러 가지 변수 속에 어필과 코팅제로 이목이 집중된 셈이다. 사람들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더 오래 신선한 식품을 선호한 것도 어필에게는 호재였다. 회사 측은 자사의 과일과 채소가 유연한 유통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에 수요가 많아졌다고 강조했다.


기업가치 10억달러 달성, 차기 행선지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어필의 성공 배경에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 빌 게이츠가 세운 빌앤멜린다 재단이 있다. 빌앤멜린다 재단은 “음식을 지키기 위해 음식을 사용한다”는 어필의 사업 기조에 이끌려 10만달러(약 1억1200만원)를 후원했다. 당시 어필이 자금 확보에 여러번 부침을 겪고 있던 터라, 10만달러는 창업자금이나 다름 없었다. 훗날 로저스 최고경영자(CEO)는 “제품은 없고 철학만 있었다”고 창업 초기를 회상하기도 했다.

제임스 로저스 최고경영자(CEO) (출처=cnbc 인터뷰 영상)

현재 어필은 기업가치가 10억달러(약 1조1200억원)를 넘을 정도로 성장했다. 미국 유명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를 비롯해 팝가수 케이티 페리와 안데르센 호로위츠 등의 금전적 지원을 받고 있다. 지난해 5월, 싱가포르 국부펀드인 GIC로부터 2억5000만달러(약 2800억원)를 조달받았으며, 10월에는 세계은행(WB) 산하 IFC(International Finance Corporation)로부터 3000만달러(약 336억원)를 투자 받았다. 이에 대해 로저스는 CNBC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고객들의 수요를 감당할 만한 돈이 더 필요했다”고 했다.

어필은 신규 자금을 통해 사업 확장에 나선다는 모양새다. 현재는 미국과 유럽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이지만 거점을 늘려 있는 아프리카와 아시아로 사업 무대 넓히겠다는 취지다. IT 전문매체 테크 크런치는 베트남과 우간다, 멕시코 등을 차기 행선지로 거론했다. 제임스 로저스 최고경영자(CEO)는 “IFC의 펀딩 자금은 공급망 설립을 위한 것”이라면서 “더 오래 지속 가능한 시장을 확보할 것”이라고 했다.

글.바이라인네트워크
<이호준 인턴 기자> nadahojun@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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