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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리] 양계장이 AI와 만나면 생기는 일

바이라인네트워크에서 스타트업  리뷰를 연재합니다. 코너명은 ‘바스리’, <바이라인 스타트업 리뷰>의 줄임말입니다. 스타트업 관계자분들과 독자님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끔찍한 바이러스가 돌아 3000만에 이르는 생명을 앗아갔다. 바이러스가 퍼지는 속도는 매우 빨랐고, 감염이 됐거나 의심되는 생명체는 갇힌 채 살처분됐다. 잔인한 시간은 인간만의 것이 아니었다. 지난해 10월 발발한 조류인플루엔자(AI)는 삽시간에 퍼져나가 전국의 양계농장을 뒤덮었다.

파이프트리는 “AI(조류독감)를 AI(인공지능)로 감시하는 회사”다. 양계농가 질병예찰과 생산운영효율 향상을 위한 AI 시스템을 개발한다. 이병권 CEO와 장유창 COO가 지난해 6월 공동창업했다. 두 사람은 원래 전기차 배터리의 연비절감을 위한 인공지능을 개발해온 이들이다. 차량 운행 데이터 수집을 사업화 하는 방안을 모색하다가 우연찮게 양계농장 트럭의 출입 이력관리 시스템을 본 후 관심사가 바뀌었다.

이병권 파이프트리 대표는 “조류독감이 정기적으로 발생하고 있었고, 전염여부를 검사하기 위해서는 차량 출입관리 이력을 확인할 장비가 필요하더라”며 “우리가 전기차 기술을 연구하면서 확보한 기술을 적용하면 크게 손 볼 필요없이 더 깊이있게 이 문제에 접근할 수 있겠다고 생각해 방향을 틀었다”고 창업 이유를 설명했다.

이병권, 장유창 파이프트리 공동대표를 지난 16일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프론트원에서 만났다. 프론트원은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디캠프가 만든 협업공간이다. 이 자리에는 최근 파이프트리와 프로젝트를 준비 중인 건국대학교 수의학과 남상섭 교수, 건국대 기술지주회사인 ‘카브’의 김규직 연구원이 함께 했다. 파이프트리와 건국대는 현재 충청북도 충주에서 방역과 동물복지를 겸한 스마트팜 프로젝트를 준비한다.

(왼쪽부터) 김규직 카브 연구원, 이병권 파이프트리 CEO, 남상섭 건국대학교 수의학과 교수, 장유창 파이프트리 COO

닭도 독감에 걸리면 열이 난다


핵심부터 말하자면, 닭도 인간과 같다. 조류인플루엔자라는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열이 난다. 닭의 정상 체온은 40도 정도인데, 닭장에서 한 개체에 발열이 생기면 집단의 체온이 약 0.7도 정도 올라간다. 건국대학교 수의학 팀은 그동안의 연구 결과로 닭의 이상 상태를 확인할 방법을 찾았고, 파이프트리는 양계 농장의 데이터를 확인해 기술적으로 검역을 확인할 수단을 만들어내고 있다.

 

장유창 COO: 작년 11월 말쯤에 처음 조류독감 확진이 나왔고, 약 한 달 반 만에 2400만마리가 살처분됐다(인터뷰 이후에도 닭의 살처분 뉴스는 계속 나와 그 숫자는 거의 3000만마리까지로 늘었다). 농장주가 조류독감을 의심하려면 닭이 죽어야 한다. 조류독감도 잠복기가 있어서 늦게 발견할 수밖에 없고, 발견됐을 때는 이미 늦은 상태다. 양계는 매일 출하된다. 그러다보니 어디까지 바이러스가 퍼져나갔는지 확인할 방도가 없다. 예방적 살처분, 방역 프로세스 말고는 별다른 대응이 어렵다.

 

코로나 19 사태 이후 다른나라에 갔다가 돌아오는 이들은 2주간의 자가격리 시간을 가진다. 혹시 모를 바이러스 잠복을 확인하기 위한 것인데, 닭도 마찬가지다. 바이러스 잠복기가 있지만, 증상이 나타나기전까지는 감염 여부를 알 수가 없다. 파이프트리와 건국대학교 수의학팀이 주목하는 것은 닭의 감염 증상을 조금이라도 빨리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었다.

 

남상섭 교수: 어떻게 하면 몇 시간이라도 빨리 알 수 있을까에 관심을 두다가 체온, 소음, 활동성을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방법에 주목했다. 실시간 바이탈 사인을 체크하기 위해서 열화상 카메라와 소음계를 양계장에 달았다. 닭은 체구가 작아서 한마리씩 체온을 재기 어렵다. 한 계사 안에 몇 만마리까지 들어간다. 따라서 그룹으로 체온을 잴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했다.

 

사람은 한 공간에 수천, 수만명이 살지 않는다. 그리고 덩치도 크다. 한 명씩 체온을 재서 정상 체온에서 벗어날 경우 검사를 받을 수 있다. 돼지나 소처럼 덩치가 큰 동물도 개별 체온을 재는 것이 가능하다. 닭은 그렇지 못하다. 특히, 계란 생산이 주목적인  산란계 양계장의 경우 케이지(닭장)가 다닥다닥 붙어 있어 개별 체온을 잰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한다.

 

남상섭 교수: 사람도 체온이 일주기성이 있다. 새벽 네다섯시에 가장 떨어졌다가 낮 서너시에 정상 체온보다 올라간다. 이것이 24시간 주기로 반복된다. 체온 뿐만 아니라 혈압, 몸 속에 돌아다니는 호르몬 등도 마찬가지다. 닭도 그럴까 하고 살펴봤다. 한마리씩으로도, 꽤 큰 규모의 집단으로도 확인해봤다. 여러 개체의 평균 체온을 가져다가 실험해보니 닭도 사람처럼 일주기성과 같은 리듬이 생기더라.

여기에 덧붙여, 실험실 안에서 한 개체 씩을 대상으로 인위적 조류독감을 감염시켜봤다. 감염된 개체에서 0.7도 정도 열이 더 올랐다. 많은 숫자의 닭을 대상으로 실험을 할 순 없지만, 그래도 여기에서 기본적인 데이터를 얻었다. 닭이 조류독감에 걸리면 발열이 났다가 죽으면 열두시간 내에 체온이 떨어진다. 열화상 카메라로 실시간 감지를 할 수 있는 영역이다. 오차범위를 최소 0.5도로 잡았고, 모든 데이터가 서버로 들어가 분석을 한다. 그리고 농장주는 핸드폰 애플리케이션으로 닭의 이상 유뮤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원헬스라는 개념


동물의 건강과 안녕은 ‘동물복지’의 개념에 앞서, 사람의 건강과 생존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인터뷰 이후인 지난 20일에는 러시아에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 H5N8형 바이러스의 인간 감염 사례가 보고됐다. 극단적 사례가 아니더라도, 닭은 인류가 가장 많이 먹는 육류 중 하나다. 닭의이 무엇을 먹는지, 그리고 건강상태가 어떠한지가 인간에 곧바로 영향을 끼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남상섭 교수: 원헬스라는 개념이 있다. 최근 와서 회자가 되는 개념이다. 예전에 살충제 계란이 나왔을 때처럼, 닭을 가져다가 치료하기 위해 약물을 썼을 때 닭에 영향을 미친다. 그  닭이 낳은 계란을 인간이 먹게 된다. 결과적으로는 닭과 사람의 건강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그걸 인지하고 해결하는 개념의 차원에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하나만 해결해서는 안 된다. 저희가 생각하는 동물에 대한 이해와 복지를 파이프트리가 가진 스마트팜 기술력과 접목한다면 이상적인 농장 환경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장유창 COO: 첨언하자면, 조류한테 발생하는 질병이 사람에도 영향을 미친다. OECD 발표인데, 닭들한테 항생제나 여러 약품을 썼을 때 내성균이 생긴다. 사람이 이 내성균 때문에 감염되어 죽는 사고가 일반적으로 인플루엔자, 결핵, 에이즈를 합쳐 생기는 사고보다 많다고 한다. 조류 질병이 반복되는데 관리가 철저하지 않으면 내성균이 생길 수 있다. 인수공통균이라 처음부터 관리를 잘 해야 한다.

 

닭이 살처분 되면서 계란값도 크게 치솟았다. 지난해 시작된 조류독감 확산은, 사상 최악이라던 2016년 발발 사례에 이어 두번째로 큰 규모라 파악되고 있다. 코로나19가 하도 심각하니 상대적으로 조류독감에 대한 뉴스가 적을 뿐이다. 전국적으로 양계장이 폐사되고 닭이 살처분되면서 평소 6000원하던 서른알짜리 달걀 한판의 가격이 1만원 이상으로까지 올랐다.

 

이병권 CEO: 장기적으로 봤을때 스마트팜은 산업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시장에 얼마나 안정적으로 생산품이 공급되는지에 따라 가격 안정이 결정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고기로 먹는 닭(육계)은 수직게열화가 되어 있으므로 가격이 안정되어 있는 편이다. 그러나 달걀은 가격 변동폭이 크다. 영향을 미치는 것이 질병이다. 그때마다 공급에 차질이 생기고 시장에 큰 리스크가 있다. 저희가 생각하는 스마트팜에 방역이라는 부분이 굉장히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스마트팜은 ‘자동화’를 위한 것이 아니다


그동안의 스마트팜 논의는 대체로 채소 등 식물 쪽에서 이뤄졌다. 축산의 스마트팜 도입은 기술적으로 미진한 부분이 많았다고 이병권 대표는 말했다. 그간 축산 농가에 도입된 여러 하드웨어의 제조사가 각각 다르고, 또 그 하드웨어에서 나오는 데이터를 관리할 소프트웨어 역시 제각각 이었기 때문이다.

이병권 CEO: 축사마다 온도값에 따라서 속도가 달라지는 환풍기를 쓴다. 이 외에도 CCTV, 열화상카메라, 출입문 등 여러 요소를 체크할 하드웨어가 들어간다. 이 모든 하드웨어의 제조사가 각기 달라 가자의 시스템대로 움직인다. 농가에서 돈을 들여 시스템을 도입한다고 해도 관리에 농장주의 손이 많이 갈 수밖에 없다. 이 데이터를 서로가 공유해서 최적의 조건으로 제어가 되어야 하는데 지금까지는 이걸 합칠 기술이 없었다.

남상섭 교수: 실험을 하면서 어렵다고 느낀 것이 열화상 카메라와 소음계의 제조회사가 다르고, 각 제조회사가 주는 프로그래믕ㄹ 별도로 이용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러다보니 통합관리를 할 수 없었다. 두 개의 데이터를 보기 위해 두 개의 모니터를 봐야 하는 것이다. 측정값이 많을수록 개수만큼 모니터가 늘어날 것인데, 이를 하나로 엮어야 할 필요가 있다. 제어 프로그램 하나로 데이터가 들어와 관리된다면, 휴대폰 모니터 하나로 쉽게 문제 원인을 파악할 수 있지 않겠나.

장유창 COO: 파이프트리는 각 하드웨어의 데이터를 하나의 앱에서 제어하도록 수집하기도 하고, 직접 하드웨어를 만드는 것도 준비하고 있다. 카메라와 열화상 카메라, 온도 센서 대기질 측정센서, 마이크 같은 각각의 측정 장비를 하드웨어에 담아서 농장 천장의 이동식 레일에 달아 움직이면서 관측하는 것이다. 개별 정보를 이용해 어떻게 실질적으로 최적의 조건을 찾아갈 수 있는지 그 알고리즘을 개발하고 처방하려 한다.

 

파이프트리가 강조하는 것은 스마트팜의 목적 중 하나는 ‘안전’이라는 부분이다. 스마트팜은 자동화나 무인화 측면에 초점이 맞춰져 왔고, 이런 관점은 중요한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는 것에 파이프트리는 주목했다. 당연히 질병관리 관제를 포함시켜 산업 전반을 같이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스마트팜의 본질이라는 이야기다. 

따라서 파이프트리의 가장 직접적인 카운터파트너는 정부와 기업이 되야 한다고 주장한다. 개별 농가는 방역 시스템을 구축할 돈이 없다. 게다가 전국적인 조류독감 유행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곳은, 아이러니하게도 농가가 아니라 정부다. 

 

남상섭 교수:기술적으로 스마트팜이 발전되더라도 수요자의 요구가 있어야 한다. 정부의 지원이 안 따라갈 수가 없다. 예를 들어서 우리나라의 대부분 축산농가는 정부 보조금에 굉장히 의존도가 높다. 또 조류독감으로 인한 피해를 복구하는데도 정부 예산이 크게 든다. 그런데 만약 스마트팜 기술을 축산 농가에 도입해 효과를 본다면, 그 입소문이 빠르게 퍼질 것이고 정부도 이에 관심을 가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병권 CEO: 파이프트리는 자체 IoT 장비를 통해서 각 축사의 환경 데이터와 가축들의 데이터를 실시간 수집한다. 실시간 수집된 데이터는 보안된 서버에 저장이 된다. 저장된 데이터를 각 축사에 맞도록 알고리즘을 튜닝하고, 각 닭의 질병에 대한 상태나 생육에 대한 상태, 농장관리 측면에서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만든다.

최종적으로는 이 알고리즘이 의사결정에 반영이 되도록 해야 한다. 이 의사결정 주체에는 농장주도 들어가겠지만 조류독감 방역에 역할을 하는 모든 이들을 우선적인 주체로 보고 있다. 카브(동물 백신 연구에서 시작해 지금은 방역 전반 기술을 개발하고 컨설팅하는 건국대 기술지주회사) 같은 백신 연구소를 포함해 방역 시스템을 어떻게 구축할지를 결정하는 최종 의사결정자들 말이다. 저희 플랫폼이 농가에는 생육 정보를 제공하고 관리 시스템을 제공하겠지만, 정부나 지자체 등에는 중요한 순간에 어떤 의사결정을 할 수 있을지를 돕는 곳이 되려한다.

장유창 COO: 소셜 임팩트 적인 관점에서 사업을 바라보고 있고 정부가 가장 중요한 타깃이라고 생각은 하는데 여기서 데이터를 기반으로 여러 비즈니스를 고민하고 있다. 정부 외에도 B2B, B2C를 대상으로 하는 사업도 계획을 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파이프트리와 건국대 수의학 팀, 카브의 공통적인 목표는 “한국형 스마트팜 복지농장 모델을 구축하는 것”이다. 스마트팜 기술, 동물 복지, 다양한 요소를 결합하는데, 이를 위한 실증 스마트팜을 구축 중이다.

 

김규직 연구원: 지금 추진하는 것은 실제 농장을 스마트팜으로 지어서 모든 기술을 테스트해보는 것이다. 이미 있는 농장을 활용하기에는 여건상 어렵다. 방역 문제 때문이다. 그래서 충주의 실습 농장 중 하나를 새로 리모델링해서 실험을 할 수 있도록 갖추는 단계까지 가 있다. 그 농장은 기존의 스마트팜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가, 동물복지까지 가는 수준으로 계획을 하고 있다.

장유창 COO: 같은 열화상 카메라라고 해도 국산이 있고 외산이 있다. 가격이 2000만원 하는데, 저희는 그 몇분의 일 가격으로 만든다. 가격을 현저히 떨어트리려고 하고, 그에 대한 수요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저희의 원래 전문분야인 자동차, 스마트팩토리를 하면서 그와 관련한 연구를 많이 해왔다. 스마트팜을 하면서 느낀 것이 최첨단 기술이라고 하는 인공지능이나 IoT 시스템이 결국은 자본과 함께 가는 구조라는 것이다.

따라서 기술 개발이나 적용도 대기업 위주로 일어난다. 양계 역시 큰 농가에서는 대형화, 자동화가 되어 있다. 시간이 지나면 대농과 소농의 격차가 더 벌어질 것이다. 소규모 농가는 도태될텐데 그런 부분에서 도움이 되고 싶다. 가능하면 저렴한 단가로 동물복지와 스마트팜이 결합된 경쟁력 있는 구조를 가져가고 싶다. 또 이 기술을 동남아 등 다른 국가에도 적용할 수 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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