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석의 입장] 딜레마에 빠졌던 공정위가 놓은 ‘신의 한 수’
공정거래위원회가 독일 딜리버리히어로(이하 DH)의 우아한형제들(이하 우형) 인수에 대한 결론을 내렸다. 알려진 대로 공정위는 딜리버리히어로코리아(이하 DHK) 매각을 전제로 합병을 승인했다. 배달의민족과 요기요의 서비스 합병을 막은 것이다.
스타트업 업계는 이와 같은 결정에 불만이 많은 듯 보인다.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이하 코스포)은 공정위 결정에 “공정위가 산업계와 많은 전문가의 반대 의견에도 이런 결정을 내린 데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코스포는 “공정위 결정은 우리나라 스타트업의 글로벌 가치 평가에 악영향을 끼치고 글로벌 진출에 막대한 손실을 초래할 것”이라며 “디지털 경제와 스타트업 생태계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고 혁신 성장을 저해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하지만 나는 공정위의 판단이 모든 관계자들을 어느 정도 만족시킬 수 있는 신의 한수였다고 본다.
일단 공정위 입장에서 보면 이번 이슈에는 딜레마가 있었다. DH의 우형 인수를 그대로 승인하면 배달앱 시장의 90% 이상을 점유하는 거대 사업자의 등장을 묵인하게 된다. 공정위의 존재 이유는 시장의 독과점을 막고 경쟁을 유지토록 하는 것이기 때문에 DH의 우형 인수를 그대로 승인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반면 혁신경제를 신성장동력으로 삼고 있는 현 정부의 정책기조상 무조건 합병을 불승인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국내 스타트업 사상 최대 규모의 엑시트를 공정위가 막는다면, 국내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는 위축될 것이고, 스타트업 생태계에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 공정위는 우형의 엑시트를 허가하면서 배민과 요기요의 합병은 막아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었다.
공정위는 1년 동안 고심한 끝에 딜레마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냈다. DH의 요기요 매각을 조건으로 우형의 엑시트를 허가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코스포는 비난 성명을 냈지만, 이번 거래의 관계자들은 모두 공정위의 해결책에 만족하는 듯 보인다.
DH는 공정위의 명령에 따를 방침을 내비쳤다. 니클라스 외스트부르크 딜리버리 히어로 CEO는 공정위의 결정에 “우형과의 파트너십을 승인하는 것은 우리 회사와 운송 산업 모두에게 좋은 소식”이라면서 “특히 김봉진을 우리 기업가 가족으로 맞이하게되어 기쁘다”고 밝혔다.
그는 “DHK를 한국에서 매각해야하는 조건에 대해 안타깝다”면서도 “DHK가 미래를 위해 최선을 다하기를 바라며, 영향을 받는 모든 직원이 가능한 한 원활하게 전환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공정위의 결정이 나오자마자 DH가 한치의 고민도 없이 DHK를 매각하겠다고 나선 것은 미리 준비가 되어 있었다는 이야기다. 아마 물밑에서는 이미 DHK를 매각할 대상기업을 물색하고 있었을 것이다.
DH의 이런 결정은 자연스럽다. DH가 우형을 인수하려는 목적은 ‘배민과 요기요의 시너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배민과 요기요는 별도로 운영할 생각이었다. M&A 이후 배민은 김봉진 의장이 이끌 우아DH아시아에서 관리하고, 요기요는 DH 본사에서 직접 관리할 계획이었다. DH는 중국을 제외한 아시아 시장에서 제일 크고 중요한 한국시장을 지배하고 싶은데 요기요로는 역부족이니 배민을 인수했던 것이다. DH가 배민을 인수하면 조직 내에서 요기요의 가치는 많이 줄어든다.
또 DH에게는 김봉진이라는 인물이 중요했다. 김봉진 의장은 한국의 배달앱 시장을 세계에서 손꼽히는 규모의 시장으로 키운 1등 공신이다. 디자이너 특유의 감성을 경영에 접목시켜 새로운 사용자경험을 만들어냈다. DH는 우형 인수로 이런 능력을 보유한 김봉진 의장을 영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목표였다. 우형 인수로 김 의장을 영입해 아시아 지역을 그에게 맡기는 것이 DH의 전략이다.
이 때문에 김봉진 의장은 우형 매각 대금을 현금이 아닌 DH 주식으로 받는다. 그 결과 김 의장은 DH 주식을 보유한 개인 중에는 최대주주가 된다. 김 의장 개인 입장에서 보면 엑시트가 아니라 DH를 접수한 셈이다.
DH 입장에서 공정위의 결정은 이같은 기존 전략을 실행하는데 전혀 방해가 아니다. 요기요를 제값에 팔 수 있다면 한국시장 1위 사업자로 등극하는 비용이 최소화 될 수 있어 오히려 긍정적일지도 모른다.
배민 입장에서도 역시 나쁠 게 없다. 계획대로 투자자들은 엑시트하고, 김봉진 의장은 글로벌 리더로 나아간다.
리스크도 줄어들었다. 아마 요기요 매각 없이 배민만 피인수됐으면 계속된 독점 논란에 발목이 잡힐 지도 모른다. 언론과 시민단체, 소상공인협회 등 이익단체, 공정위 등 정부기관 등으로부터의 계속된 시비에 몸살을 앓았을 것이다. 물론 지금도 그런 면이 있지만, 90% 점유율이 되면 더 심해질 것은 자명하다. 다만 요기요를 누가 사느냐에 따라 경쟁이 더 치열해질 우려는 있을 것이다.
나는 심지어 DHK에도 이번 결정은 좋은 일이라고 본다. 당장 불투명해진 미래에 DHK의 임직원들은 불안할 수밖에 없지만 어쩌면 전화위복이 될 수 있다. 공정위가 그냥 배민 인수를 승인했다면 DHK의 입지는 애매해질 수밖에 없다. DH는 한국시장을 배민을 중심으로 공략할 것이기 때문에 요기요의 역할이 줄어든다. 이 경우 DH 본사는 요기요에 대한 투자보다는 수익성 강화를 요구할 것이고, 요기요는 점차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
한 시장에 같은 종류의 서비스 두 개를 운영하는 회사가 둘 다 열심히 투자한 사례는 없다. 요기요-배달통의 사례에서 보면 배달통은 사실상 시장에서 사라졌고, 지마켓-옥션의 사례에서도 옥션의 존재감은 갈수록 줄어들었다. 차라리 요기요가 괜찮은 새주인을 만난다면 투자도 늘어나고 배민하고 다시 한번 가열차게 경쟁을 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배달앱 소비자와 음식점주 입장에서도 공정위의 판단은 나쁘지 않다. 최근 쿠팡이츠가 강력하게 치고 올라오고 있지만 2위 사업자인 요기요가 배민하고 강하게 경쟁을 해줘야 할인 쿠폰도 많이 나오고 수수료 인하 경쟁도 펼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최대 승자는 공정위다. 국내 스타트업 사상 최대 엑시트 사례를 발목 잡았다는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고, 거대 독점 기업의 탄생을 방관했다는 욕을 먹지 않아도 된다. 오랜만에 공정위가 머리를 잘 썼다.
<심재석 기자>shimsky@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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