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알못을 부탁해] 내 마음대로 설계할 수 있는 칩 ‘FPGA’
주변에서 인공지능(AI) 서비스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시대다. 각자 들고 다니는 스마트폰과 태블릿PC에는 AI 음성비서가 탑재돼 있다. 콘텐츠 플랫폼에서도 내 취향을 파악한 AI가 나에게 맞는 콘텐츠를 제공해주고, 심지어 이제는 면접도 AI가 봐준다. AI는 우리 일상 속 다양한 분야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한 가지 생각해 볼 것은, 여기에 적용되는 AI가 모두 같지 않다는 것이다. 분야별로 AI가 요구하는 알고리즘도 다르고, 특화된 기능도 제각각이다. 또한, 각 분야에 적용되는 AI를 구동하기 위한 프로세서도 요구사항이 상이하다. 이 모든 것을 충족시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에, 기업들은 커스터마이징이 쉬운 프로세서를 찾기 시작했다. 기본적인 프로세서에 내가 원하는 기능을 프로그래밍 해서 나에게 딱 맞는 프로세서를 만들 수 있다면?
그러면서 FPGA(Field Programmable Gate Array)가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첫 목적은 ‘자체 제품’ 아닌 ‘테스트용’
FPGA는 Field Programmable Gate Array의 약자로, 프로그램이 가능한 반도체 소자를 말한다. 여기서 프로그램은 칩의 설계를 의미하는데, 사용자에게 맞게 커스터마이징할 수 있다. AND, OR, NOT 등과 같은 논리 알고리즘의 기본 단위를 자유자재로 조합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사용자는 자체적으로 특수한 목적의 칩을 설계할 수 있는 것이다.
처음 FPGA는 실제로 칩을 생산하기 전, 미리 칩을 설계하고 검증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됐다. 반도체 생산 과정에서는 작은 결함도 막대한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양산한 후 다시 결함을 수정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 했다. 다시 처음부터 개발해야 하는데, 이 말은 곧 그간 진행한 모든 과정이 모두 수포가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전에 검증하는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
기존에 검증을 위해 사용한 방법의 하나는 컴퓨터로 시뮬레이션을 돌리는 것이었다. 소프트웨어상에 회로 설계를 구현하고, 가상으로 이를 구동하며 결함을 수정하는 방식이다. 실수가 생겨도 어렵지 않게 설계도를 수정할 수 있고, 바로 기능을 추가할 수 있다. 하지만 소프트웨어 자체가 지나치게 무거워 시뮬레이션이 느리게 가동된다는 한계가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FPGA는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었다. 물론 FPGA는 일반적인 CPU보다 작동속도가 느리다. 하지만 컴퓨터로 시뮬레이션을 하는 속도보다는 빠르다. 또한, 설계한 칩 프로그램을 입력하고 작동시키면, 그대로 출력값을 보여준다. 언제든 사용자 임의로 재프로그래밍도 가능하다. 실제로 FPGA는 아직 설계를 진행하고 있는 개발자들 사이에서 널리 사용됐다.
유연성 요구하는 4차산업, FPGA의 확산
FPGA의 유연성은 다양한 업계가 눈독을 들일 만한, 매력적인 요소다. 4차산업 시대에 접어들면서, 특히 AI 산업이 활성화되기 시작하면서 FPGA에 대한 주목도도 높아졌다.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이에 맞는 프로세서를 기술 발전 속도에 맞춰 지속해서 개발해야 했기 때문이다.
기존 AI 산업에서는 GPU와 ASIC(주문형 반도체)를 사용하곤 했다. 우선 CPU는 데이터를 직렬 처리하기 때문에 효율적인 작업을 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GPU는 많은 양의 데이터를 한 번에 동시에 처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TPU와 같이 AI 개발과 딥러닝에만 특화된 반도체를 개발하는 업체도 속속 등장했다.
GPU와 ASIC는 처음부터 제품이 완성된 채로 생산된다는 점에서 한계가 분명 존재했다. 이미 회로가 찍혀 완성되어 나온 제품은 변화한 기술에 맞는 알고리즘을 새롭게 적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FPGA는 다르다. 칩을 바꾸지 않아도 프로그래밍만 다시 하면 알고리즘을 변화시킬 수 있다. 또한, 특정 연산에 특화되도록 알고리즘을 재배치하거나 회로를 추가할 수도 있다. 기존에 탑재돼 있던 부가적인 기능을 모두 걷어내고 해당 연산만을 극대화할 수도 있다. 자신이 필요로 하는 연산만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면, 언제든 최적의 AI 프로세서를 개발할 수 있는 것이다.
FPGA 인수하는 CPU 대기업, AI 경쟁으로 이어지나
시장조사기관 가트너의 2019년 통계에 따르면, FPGA 시장 1위는 자일링스로, 51.1%를 점유하고 있다. 인텔은 2위로 35.8%다. 인텔은 2015년 FPGA 제공업체 알테라(Altera)를 인수하면서 FPGA 시장에 진출했다. 1984년부터 FPGA 사업을 이어오고 있는 자일링스는 데이터센터, 자동차, 5G, 엔터프라이즈, AI 등의 분야에 FPGA를 공급하고 있다.
그리고 2020년 10월 26일(현지시각)에는 AMD가 이 자일링스를 인수했다. 로이터, 블룸버그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AMD는 자일링스를 350억달러(한화 약 39조원)에 인수했으며, 리사 수 AMD CEO가 자일링스 CEO도 담당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이번 인수를 통해 AMD는 기존에 영위하고 있던 CPU, GPU 사업에 FPGA 기술까지 확보하면서 AI 시장을 적극적으로 노릴 것이라는 분석이다.
AMD와 인텔이 FPGA 기업을 인수하면서, 양사는 AI 반도체 칩의 핵심인 CPU, GPU, FPGA를 모두 차지하게 됐다. AI가 미래 유망 사업인 만큼, CPU 자이언트도 부랴부랴 해당 시장을 공략하고 나선 것이다. 이와 관련해 AI 시장도 양사의 경쟁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한편, 리사 수 CEO는 자일링스 인수 당시 “이번 인수를 통해 AMD는 고성능 컴퓨팅 리더로 성장할 것”이라고 포부를 전한 바 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배유미 인턴기자> youme@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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