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제품에 대한 기사를 보다보면  “ARM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한다”는 말이 종종 나온다.  이건 어떤 의미일까? 아마 당신은 ARM이 어떤 제품을 출시했다는 기사는 보지 못했을 것이다. ARM은 자체적으로 칩을 생산한 것이 아닌, 다른 기업들이 사용하는 설계도를 판매하는 기업이기 때문이다. 제품 판매 없이도 수익 창출이 가능한가, 싶을 수 있지만 ARM은 일반 기업과 다른 전략을 취해 모바일 시장을 꽉 잡은 기업이다.

ARM은 스마트폰의 확산으로 승승장구했다. 모바일 기기에 탑재되는 프로세서는 대부분 ARM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제작됐다. 특히 2010년 이후 스마트폰에서 CPU 역할을 하는 AP가 보급되면서 ARM은 대중에게 더 알려졌다.

ARM이 칩 없이도 모바일 시장을 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칩 없이 지적재산만으로 승부 본 ARM

ARM의 사업은 다른 일반 반도체 기업과는 조금 차이가 있다. 우선 ARM은 자체 칩을 생산하지 않고, 다른 기업이 사용할 수 있는 설계도를 판매한다. ARM처럼 설계도를 비롯한 지적재산권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반도체 기업을 IP(Intellectual Property) 기업이라고 한다. ARM을 검색했을 때 “ARM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한다”는 이야기만 찾아볼 수 있는 이유다.

처음부터 ARM은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이 아니었다. 본래 ARM은 영국 내에서 컴퓨터를 생산하던 ‘아콘 컴퓨터(Acorn Computer)’에 탑재되던 프로세서 구조의 이름이었다. 같은 ARM이라는 표기를 작성했지만, 정식 명칭도 지금과 다른 아콘 RISC 머신(Acorn RISC Machine)이었다. 모토로라 6502 CPU를 탑재하고 있던 아콘 컴퓨터는 1985년부터 ARM 코어를 탑재하기 시작했다.

ARM 코어는 세대를 거듭하며 발전해 나갔다. 그리고 1990년 애플, VLSI 테크놀로지와 손잡고 ‘Advanced RISC Machine’이라는 이름의 정식 회사를 설립했다. 이후 1998년 기업공개를 통해 런던증권거래소와 나스닥에 상장하고, 정식 사명도 ARM 홀딩스로 정했다.

ARM이 1994년 처음 공개한 아키텍처 ARM7TDMI는 모바일 단말, PDA, 고성능 컨트롤러 등 PC 외의 다양한 영역으로 뻗어갈 수 있는 초석이 되었다. ARM은 이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지속해서 설계도를 개발해 나갔다. 전력 효율성을 높였고, 자바를 비롯한 다양한 명령어 프로그램의 구동 속도도 높여갔다. ARM은 반도체 칩 아키텍처를 지속적으로 개발해 2002년, 11세대인 ‘ARM11’까지 출시했다.


이후에는 코텍스(Cortex)라는 새로운 시리즈를 선보였다. 애플리케이션, 실시간, 임베디드 제어용으로 출시됐으며, 사용처에 따라 ▲코텍스-A ▲코텍스-R ▲코텍스-M으로 구분했다. ARM 아키텍처는 각 분야에 맞게 발전을 거듭했다. 특히 스마트폰 프로세서 AP(Application Processor)와 모바일 시장 등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세 종류의 아키텍처 모두 지속해서 발전했다.

ARM의 경쟁력은 ‘효율성과 유연성’

컴퓨터 시장에서 인텔과 AMD가 양대산맥을 이루고 있다면, 모바일 시장에서는 ARM이 절대적 강자로 자리잡고 있다. 실제로 모바일에는 ARM 아키텍처가 더 적합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ARM 아키텍처 자체가 명령어를 최소로 줄여 단순하게 구성한 RISC(Reduced Instruction Set Computer)이기 때문이다. 구조적 특성으로 ARM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하면 제품의 소비전력과 발열을 낮출 수 있다. 인텔과 AMD가 사용하는 명령어 집합 구조 x86은 복잡한 명령어로 연산하는 CISC(Complex Instruction Set Computer) 방식이다. 고성능을 자랑하는 반면, 소비전력과 발열 또한 높다.

특히, ARM은 ‘유연성’을 앞세워 모바일 시장을 점할 수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빅리틀(big,LITTLE) 솔루션’이다. 빅리틀 솔루션은 모바일에서도 고성능을 갖추기 위해 출시한 솔루션이다. 간단한 작업을 할 때에는 가볍고 효율이 좋은 코어를, 무거운 작업을 할 때에는 거대한 슈퍼스칼라 코어를 사용해 효율성을 높인 ‘하이브리드’ 구조를 갖추고 있다. 이 솔루션은 2011년 10월 공개된 코어 코텍스-A7에 처음 적용됐으며, 이를 적용한 스마트폰 칩은 2013년 출시된다.

구글은 빅리틀을 적용하기 위한 OS 업데이트를 준비했고, AP(Application Processor) 기업들은 해당 솔루션을 응용한 자사만의 새로운 구조를 제작했다. 삼성전자와 퀄컴과 같은 대기업은 ISA와 솔루션을 구입하고, 코어를 스스로 설계했다. 미리 빅리틀을 적용할 수 있도록 준비과정을 거친 덕분에 이 솔루션을 어렵지 않게 확장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ARM만의 독특한 사업 전략 덕분에 모바일 시장에서 기술이 부족한 기업을 끌어들이고, 저전력 다목적 AP를 설계할 수 있는 기반을 시장에 제공할 수 있었다.

소프트뱅크에서 엔비디아 품으로, 사업 영역도 넓어지나

그 후 2016년, ARM의 주인이 바뀌었다. 주인공은 소프트뱅크. 일각에서는 예상치 못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미 IP 기업 생태계의 중심에 서서 운영하고 있는 ARM이기에 ‘그 누구도 ARM을 사지 못할 것이다’라고 추측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6년 7월 18일, 소프트뱅크는 24억파운드(한화 약 35조원)에 ARM을 인수했다.

소프트뱅크가 ARM을 인수했을 당시, ARM이 영국 트렌드에 맞춰 수익을 더욱 창출하기 위함이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KT경제연구소의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영국에서는 벤처기업이 일정 수준에 오르면 사세 확장보다 매각을 추진하고, 또 다른 창업을 시작하는 ‘셀링 이코노미(Selling Economy)’가 확산돼 있었다. 더 큰 규모의 기업으로 매각되면 그 규모도 커진다는 것이 당시의 의견이다. 소프트뱅크는 규모가 큰 기업이면서 사업 분야가 달라 본래 ARM의 생태계를 유지할 수 있는, 최적의 기업이었다.

당시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은 ARM을 인수하면서 “ARM은 전 세계 소비자와 기업이 필요로 하는 제품의 기반이 되며, 소프트뱅크 그룹은 일본과 미국에 있는 1억명 이상에게 통신 서비스를 매일 제공한다”며, “우리는 인공지능과 IoT를 비롯한 신규 벤처 사업을 육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실적 악화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19가 세계를 휩쓸면서 소프트뱅크는 최악의 경영난을 겪었다. 결국, 소프트뱅크는 2020년 9월 13일 ARM을 GPU 생산업체 엔비디아에 매각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총 인수 금액은 400억 달러(한화 약 47조원)으로, IoT 서비스 그룹 부문은 인수 대상에서 제외됐다.

국내 언론은 엔비디아가 ARM을 인수하면서 양사는 모바일 그래픽 칩셋용 IP에 가장 주력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양사의 강점이 모바일과 그래픽 프로세서인데, 현재 모바일 시장에서의 그래픽카드는 전체 시장에 비해 영향력이 작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AI, 서버 등에도 집중할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ARM이 점차 영향력을 넓혀 갈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되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ARM 아키텍처가 이번 애플 M1 공개를 시작으로 PC 시장에도 진출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대부분의 PC 및 노트북은 여전히 무선랜의 비중이 높다. x86은 통신칩을 장착할 수 없지만, ARM 아키텍처를 활용하면 4G 통신지원이 가능하다. 따라서 ‘통신이 가능한 PC’라는 점에서 PC 시장에서도 우위를 차지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배유미 인턴기자> youme@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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