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오라클과 휴렛팩커드 엔터프라이즈(HPE)가 본사를 캘리포니아에서 텍사스로 이전한다는 소식에 실리콘밸리가 들썩였다.

이어서 테슬라의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까지 거주지를 텍사스로 옮기겠다고 선언하자, 현지 언론을 중심으로 ‘실리콘밸리 엑소더스’가 현실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됐다.

코로나19로 확산된 재택근무를 이유로 실리콘밸리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 상황에서 ‘탈’실리콘밸리 움직임이 현실로 나타날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실리콘밸리 떠나 텍사스, 콜로라도, 워싱턴으로


12일(현지시간) 블룸버그 통신은 세계 최대 데이터베이스관리시스템(DBMS) 업체 오라클이 본사를 캘리포니아주 레드우드시티에서 텍사스주 오스틴으로 이전한다고 전했다.

오라클은 “많은 직원들이 자신이 일할 회사 위치를 선택할 수 있고, 자택에서 일부 또는 항상 근무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라며 본사 이전 배경을 설명했다. 오라클 측은 오스틴으로 이전하더라도 캘리포니아주를 비롯한 기타 지사를 계속해서 지원할 뜻을 밝혔다.

IT솔루션 업체 휴렛팩커드 엔터프라이즈(이하 HPE)도 지난 1일(현지시간) 본사를 캘리포니아주 산호세에서 텍사스주 휴스턴으로 이전하겠다고 발표했다.

HPE는 블로그에서 “우리의 작업 공간을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우리 사업에 있어서 가장 이익이 되도록 팀과 인재를 배치하기 위해 우리의 부동산 위치를 재평가했다”고 설명했다.

복수의 외신은 관련 보도를 쏟아내며 일명 ‘실리콘밸리 엑소더스’(exodus:탈출)가 현실화되는 것 아니냐고 우려했다. HPE와 오라클은 실리콘밸리의 상징과도 같다. 이에 나머지 테크 기업도 이러한 흐름을 따라가지 않을까라는 게 현지 언론의 설명이다.

실제 두 기업은 실리콘밸리의 탄생과 전성기를 함께했다. HPE는 지난 2015년 컴퓨터 제조회사 HP에서 분리된 회사로, ‘실리콘밸리 조상’급이다. 1938년 스탠포드 대학 동기인 윌리엄 휴렛과 데이비드 팩커드가 캘리포니아주 팔로알토의 어느 ‘차고’에서 휴렛팩커드(HP)를 차린 뒤부터 지금의 실리콘밸리가 조성됐다고 알려졌다.


오라클은 1989년 캘리포니아주 팔로알토에 터를 잡은 뒤, 실리콘밸리 성공 신화를 써나갔다. 당시 오라클은 본사 건물을 원통형으로 짓게 했다. 이후 은빛 색으로 빛나는 이 원통형 건물은 실리콘밸리의 대표적인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다.

이에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들의 본사 이전 소식을 다루며 “실리콘 밸리의 기원과 매우 밀접하게 연관된 회사의 이전은 한때 혁신과 동의어가 되었던 실리콘밸리가 어떻게 빛을 잃고 있는지를 보여준다”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실리콘밸리를 떠나는 테크 기업이 비단 이들 뿐만은 아니다.

1일(현지시간) 사이버보안업체 태니엄도 본사를 캘리포니아주 에머리빌에서 워싱턴주 시애틀로 옮긴다고 밝혔다.

오리온 힌다위 태니엄 최고경영자(CEO)는 “실리콘밸리가 작동하는 방식에 있어 일부 비대칭성은 우리에게 별로 효과가 없었다”라며 “샌프란시스코는 더 이상 20년 전의 도시가 아니다”라고 이전 배경을 설명했다.

앞선 8월에는 데이터 분석업체 팔란티어가 본사를 콜로라도주 덴버로 이전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뿐만 아니라 벤처캐피탈 회사 8VC도 본사를 오스틴으로 이전하겠다고 밝혔으며, 지난 4월 파일트레일 역시 본사를 오스틴으로 옮긴다고 알렸다.

실리콘밸리 주요 인사들의 거주지 이전 소식도 전해졌다. 세계 최대 전기자동차 생산업체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는 거주지를 텍사스로 옮기겠다고 선언했다. 또한 클라우드 업체 드롭박스의 최고경영자(CEO) 드류 휴스턴도 오스틴에 새 거처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일론 머스크는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캘리포니아는 현실에 안주하는 경향이 있고 챔피언 결정전에서 우승하지 않으려는 것 같다”며 “실리콘밸리의 영향력은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세금’, ‘규제’, ‘부동산’…실리콘밸리 떠나게 만드는 세 요인


이러한 ‘탈’실리콘밸리 행렬은 결국 ‘높은 세금’과 ‘규제’ 그리고 ‘부동산 가격’이 원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실리콘밸리가 위치한 캘리포니아주는 미국 내에서 가장 높은 13%의 주별개인소득세(State income tax)를 적용한다.

반면 오라클과 HPE가 향하는 텍사스는 개인소득세를 걷지 않는다. 사이버 보안업체 태니엄이 이전하는 워싱턴주도 소득세가 없으며, 팔란티어의 콜로라도는  4% 수준으로 캘리포니아에 비해 3배 더 저렴하다.

캘리포니아에 내는 법인세 8.8%도 부담이다. 텍사스와 워싱턴은 법인세가 없다. 테크 기업이 많이 찾는 애리조나(4.5%)와 덴버(4.6%), 유타(5%) 또한 캘리포니아의 절반을 조금 웃도는 수준이다.

캘리포니아는 엄격한 규제정책으로도 유명하다.

캘리포니아는 불과 몇 달 전까지 ‘300만달러 이상 상업용 부동산에 대해 매년 시가를 반영해 재산세를 부과하는’ ‘발의안15’를 두고 기업과 각을 세웠다. 최근에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이유로 테슬라 공장에 가동 금지를 지시하며 테슬라와 논쟁을 벌였다. 이 밖에도 2035년까지 내연기관 자동차 판매를 금지하는 환경 규제를 채택한 바 있으며, 텍사스보다 두 배 이상 높은 임금 정책도 유지하고 있다.

아울러 캘리포니아의 악명 높은 부동산 가격도 실리콘밸리를 떠나는 원인으로 꼽힌다.

캘리포니아의 사무실 임대료는 덴버와 텍사스에 비해 세 배 더 비싸다. 이에 코로나19로 재택근무가 확산됨에 따라 비싼 임대료를 낼 필요 없이 실리콘밸리를 떠나는 기업이 늘었다는 게 현지의 공통된 진단이다.

실례로 미국 부동산 정보업체 질로우에 따르면, 올해 들어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의 부동산 매물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96%가 증가했다. 반면 콜로라도주 덴버, 텍사스주 오스틴, 애리조나주 피닉스 등에 위치한 부동산 매물은 최근 빠른 속도로 팔린 것으로 나타났다.

캘리포니아주 산호세의 리카르도 시장은 HPE 본사 이전 소식을 “각성을 부르는 사건”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HPE 본사 이전 결정은 주택, 세금 및 규제 부담을 가진 우리가 어떻게 기업에게 여기서 인재를 고용하는 것을 정당화 해야 할 지, 점점 더 어려워진 상황을 보여준다”고 호소했다.


그래서 실리콘밸리의 몰락은 올까?


다만 실리콘밸리가 테크 산업에서 차지하는 영향력을 감안할 때, 실제 엑소더스 현상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자본시장 조사기관 피치북의 통계를 인용해 “지난해 2500억달러(약273조원)의 벤처 투자가 캘리포니아에서만 이뤄졌고, 상위 10개의 투자 기록 모두 캘리포니아주에 속한 기업들이 차지했다”라고 보도했다.

나아가 미국 정치매체 악시오스는 14일(현지시간) “테크 엑소더스는 실리콘밸리를 두렵게 하지 않는다”라는 기사에서 “‘엑소더스’는 실리콘밸리의 영구적인 특징”이라고 보도했다. 이어 “매 사이클마다 실리콘밸리의 기술자, 기업, 스타트업은 주택 부족을 겪고 다른 기업들이 정기적으로 공간을 마련해 주며 떠난다”며 이번 논란을 일축했다.

해당 매체는 “통계로 볼 때 테크 분야의 성장은 지난 20년 동안 5개의 해안 도시(샌프란시스코, 시애틀, 샌디에이고, 산호세, 보스턴)에 집중되어왔다”라면서 “텍사스주 오스틴 그리고 다른 지역들은 차세대 빅테크 기업이 될 계획이나 희망이 없다”고 보도했다.

추가로 악시오스는  2년 전인 2018년, 애플이  10억원달러(약1조1000억원)를 들여 오스틴에 사업을 확장한 사실을 예로 들었다.  그러면서 “코로나19 이전에도 거대 기업들은 성장을 위해 실리콘지역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면서 “실리콘밸리 지역은 글로벌 네트워크 인재가 모이는 ‘허브’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글.바이라인네트워크
이호준 인턴 기자 <nadahojun@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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