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가 인수한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어떤 회사일까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MIT 교수로 재직한 마크 레이버트(Marc Raibert)가 1992년 설립했다. 초창기에는 군사용 3D 시뮬레이션 소프트웨어를 만들었다. 이후 방위고등연구계획국(Defense 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 DARPA)과의 협의에 의해 4족 보행 로봇을 만든다. DARPA는 미국 국방성의 R&D 조직이다. 보스턴 다이내믹스가 DARPA의 지원을 받아 처음으로 만들어낸 로봇은 BigDog이다. 이후의 4족 보행 로봇 대다수가 빅독의 개량 버전일 정도로 보스턴 다이내믹스에 가지는 의미가 뛰어난 제품이다. 빅독은 ‘큰 개’처럼 직역해도 좋은 의미가 되지만 우두머리라는 의미도 갖고 있다.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제품들
빅독의 초창기 영상이다. 첫 제품이지만 실제로 걸어 다니는 동물들처럼 험지를 자연스럽게 올라 충격과 공포를 선사했다. 하버드대학과 공동 개발한 제품으로, 키는 일반적인 큰 동물(0.91m) 수준이며 길이는 동물들보다 짧은 0.76m 수준이었다. 무게는 110kg 수준이었으며, 속도는 시속 6.4km 수준으로 사람을 보조해 조금 빨리 걷는 수준이다. 가솔린엔진을 사용했다.
빅독의 걸음걸이는 왠지 동물보다 사람과 유사해 이러한 패러디가 등장하기도 했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이 영상을 처음 보는 사람 대부분은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제품으로 착각한다.
DARPA와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물건을 수송할 수 있는 빅독과 별개로 리틀독(LittleDog) 프로젝트도 함께 진행했다. MIT, 스탠포드 등 여러 대학이 함께 참여했으며 높이 14cm 정도로 작은 개만 한 제품이다.
빅독은 추후 LS3(Legged Squad Support System)의 이름으로 군용 버전으로 개선 제작됐다. 보병을 보조하는 제품이다. 보병이 갈 수 있는 어디든 갈 수 있으며, 센서와 AI를 통해 자율보행한다. 미 해병대에 투입될 예정이었으나 엔진 소음이 너무 커서 취소됐다.
빅독류 제품은 물건을 지고 다니는 것 외에도 머리 부분에 손을 달아 무거운 물건을 들거나 집어던지는 등의 시연을 보여주기도 했다. 무섭다.
빅독과 별개로 치타(Cheetah)와 와일드캣(Wild Cat) 시리즈가 등장했다. 천천히 걷고 많은 물건을 질 수 있는 빅독과 다르게 빠르게 달릴 수 있는 제품이다.
2015년에는 빅독류와 치타류 제품이 융합된 제품이 등장했으며, 이름은 스팟(Spot)이다. 최근 판매되고 있는 스팟 미니의 초기 버전이다. 빅독류에 비하면 다리 방향이 4족 보행 동물처럼 바뀌었고, 몸무게도 성인 남성 수준(약 75.5kg)으로 줄어들었다. 또한 걷거나 뛰는 등의 행동이 모두 가능해졌다. 너무 동물 같이 걷고 뛰는 모습 때문에 동물 학대 아니냐는 말이 밈으로 벌어지기도 했다. 진지하게 로봇 학대라는 말도 나왔다.
빅독에서는 사람형 로봇도 파생됐다. 인간의 발꿈치-발끝 보행을 흉내 낸 제품이다. 그러나 초창기 제품인 펫맨(PETMAN)은 지지대 없이 제대로 걷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다 아틀라스가 등장하고 인간은 공포에 휩싸인다.
아틀라스(Atlas)는 빅독처럼 복잡한 지형에서 이족보행할 수 있는 로봇이다. 등장은 2016년으로 비교적 최근이다. 키가 6피트(183)에 달하는 인간형 로봇이다. 대부분의 인간형 로봇들이 그렇듯 사람이 가야 하는데 가지 못하는 상황에 투입되기 위해 개발됐다.
아틀라스는 걷고 뛰는 것은 물론 공중제비를 돌고 파쿠르를 하는 모습까지 선보였다. 인류는 아틀라스를 보며 이것이 터미네이터의 조상이라는 인식을 갖게 된다.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첫 컨슈머 로봇은 스팟을 기반으로 제작됐다. 과거의 스팟은 빅독에서 파생된 것으로, 엔진과 유압식 구동을 사용했지만 새롭게 등장한 스팟은 전기를 사용한다. 따라서 훨씬 더 조용한 건 물론 포복 이동, 머리에 달린 손 사용, 자동 기립 등 다양한 특징을 보유하고 있다. 판매용 로봇은 레이더를 없애고 기계가 잘 안 보이는 미끈한 다리를 장착해 점차 동물보다는 사이버 무기 같은 모습으로 진화하고 있다.
또다시 동물학대 소동이 있었다. 2019년 정식 출시됐다.
2017년 등장한 핸들(Handle)은 다리에 바퀴를 단 제품이다. 물류창고에서 사용할 수 있는 형태로 계량됐다.
아틀라스, 스팟이 사람이나 강아지와 비슷하기 때문에 패러디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동생(스팟)을 들고 도망가는 아틀라스의 모습이 사랑스럽다.
보스턴 다이내믹스 인수의 역사
구글이 한창 AI 회사들을 사들이던 시기인 2013년 구글에 인수됐다. 알파벳 X 산하에 편입됐는데, 생각보다 빠른 시기인 2016년 매물로 나왔다.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원래 안드로이드 제작자인 앤디 루빈이 로봇공학 프로젝트를 만들 때 인수를 추진했다. 그러나 앤디 루빈은 구글을 떠났고, 이때 로봇 프로젝트의 방향이 애매해졌다고 한다. 구글은 방산업체가 될 생각이 없었고, 2015~2016년은 보스턴 다이내믹스가 상용 제품을 내놓기 이전이라 수익성 보장도 어려운 시기였던 것이 판매의 주 요인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구글은 매일 검색에서 생성되는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하는 소프트웨어 로봇을 주로 양성하고 있던 터라 네발로 뛰어다니는 터미네이터가 특별히 필요하지 않았다.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다음 행선지는 소프트뱅크 그룹이다. 손정의 회장은 이미 앨드배런 로보틱스(Aldebaran Robotics)를 인수해 페퍼(Pepper)로 휴머노이드 로봇을 상용화한 바 있고, AI 업체 상당수에 투자를 진행하고 있었던 터라 매각이 더욱 쉬웠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프트뱅크는 소비자 중심의 사이보그 산업이 일본에서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로보틱스에서 항상 최고의 기술을 가졌다고 평가받고 있었으나 제대로 수익화를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상용화에 능한 사람을 만난 것이다.
그러나 소프트뱅크는 우버와 위워크의 가치하락 이후 2019년 회계연도에 약 10조원의 손실을 기록했다고 밝힌 바 있다. 손 회장은 알리바바, T모바일 등 알짜 회사들의 지분까지 판매하며 2020년 2분기에 흑자로 전환했다. 따라서 현재 수익성을 당장 보장할 수 없는 회사들은 판매 대상이 되었고 보스턴 다이내믹스도 이중 하나가 된 것으로 예측된다. 이를 사들인 것은 현대자동차그룹으로, 인수 금액은 8억8000만달러(약 9600억원)이며 정의선 회장 취임 이후 처음으로 이뤄지는 대규모 인수합병이다. 현대차그룹은 지분 중 총 80%를 인수했다. 현대차그룹에서 현대차, 현대모비스, 현대글로비스, 정의선 회장이 공동으로 참여했으며 회장 개인이 20%를 가진다. 이를 위해 사재 2400억원을 사용했다고 한다.
현대차는 로봇으로 무엇을 할까
현대차그룹은 앞으로 자율주행차, 도심항공모빌리티, 스마트팩토리 기술을 개발할 것으로 발표했다. 2018년부터 현대차는 AI와 라스트마일 모빌리티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20-018년, 로보틱스랩팀을 로보틱스랩으로 확대했고, 제조 공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착용형 의자 로봇 CEX(Chairless EXoskeleton)와 작업용 착용로봇 VEX(Vest EXoskeleton)를 개발하기도 했다. 이 외골격 제품들은 올해 10월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에서 투입됐다.
또한, 지난해 5월에는 로봇 스타트업인 ‘리얼타임 로보틱스’에 투자했으며, 2020년 9월 ‘뉴 호라이즌스 스튜디오’를 개설해 모빌리티 핵심분야를 구체화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퍼셉티브 오토마타, 알레그로.ai, 딥클린트, 엔비디아 등과 협의해 자율주행과 AI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2020년에는 자동차 매장에서 차량에 대해 설명하고 판매하는 달이(DAL-e)를 발표했다. 이번 달부터 실제로 매장에 투입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차가 뛰어다니는 로봇을 활용할 수 있는 영역은 다양하다. 우선은 핸들을 통해 물류센터용 로봇을 만들어낼 수 있고, 스마트 팩토리용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 풀필먼트에 사용할 수 있는 로봇과 라스트마일 물류에 투입할 수 있는 여지도 있다. 스팟과 아틀라스가 쌓아온 다양한 지형 데이터를 V2X 등에 사용할 수도 있다. 활용법은 무궁무진하지만, 완성차 제조사로서 핵심 제품 간 연결이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보스턴 다이내믹스 연구 특성상 연구개발비가 상당히 높은데, 그 이상의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는 앞으로 현대차의 사업 방향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이종철 기자> jude@byline.network
첫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