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세데스 벤츠의 본사가 있는 슈투트가르트는 전형적인 독일의 공업도시였다. 이승용 메르세데스 벤츠 코리아 연구원에 따르면, 벤츠의 독일 본사에서는 슈투드가르트를 스타트업의 불모지라고 평가했다. 공장이 즐비하고 대기오염도가 높은 도시가 스타트업이 나기엔 힘든 환경이라 봤기 때문이다.

2016년, 벤츠가 속한 다임러 그룹은 이 도시를 대기업과 스타트업이 공존하는 도시로 탈바꿈하겠다는 전략을 세운다. 스타트업이 가진 기술과 혁신 비즈니스 모델이, 자신들이 가진 미래 비전과 부합한다면 도입하는 것이 미래를 위해 맞다고 판단한 것이다.

스타트업의 인재와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서 꽤 괜찮은 조건도 내걸었다. 하나는 경쟁사까지 포괄하는 오픈 플랫폼이고, 다른 하나는 벤츠 자체가 스타트업의 클라이언트가 된다는 당근이었다. ‘돈’만 투자하는 투자자는 많을지 몰라도, 당시에는 직접 ‘고객사’가 되는 투자사는 드물었다는 것이 벤츠가 착안한 부분이다.

그 핵심에는 그룹 내 오픈 이노베이션 조직이 이끄는 ‘스타트업 아우토반’ 프로젝트가 있다. 모빌리티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이다. 가능성 있어 보이는 스타트업을 발굴, 100일간 집중 육성한 다음 결과를 보고 다임러 그룹에서 나오는 제품에 도입하는 시스템이다.

독일의 슈투트가르트에서 시작된 이 프로그램이 미국과 중국, 인도, 싱가포르 등을 거쳐 한국에 도착했다.

10일, 한국에서의 100일간 여정을 마친 스타트업 아우토반이 스파크랩과 손잡고 그 결과물을 발표하는 ‘엑스포데이’를 가졌다. 메르세데스 벤츠 코리아의 직원들과 협업해 다임러의 제품에 도입할 수 있는 기술을 고도화한 다섯개 스타트업 ‘서울로보틱스’ ‘코코넛사일로’ 해피테크놀로지’ ‘서틴스플로어’ ‘베스텔라랩’ 등이 그간의 노력을 소개했다. 이 자리에는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참석, 이들을 독려했다.

다임러 그룹은 어떤 목적으로 글로벌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을 운영할까? 또 한국의 스타트업에 기대하는 부분은 무엇일까. 메르세데스 벤츠의 오픈 이노베이션을 총괄하는 필립 나이팅 박사가 10일 오후 한국의 기자들과 화상 인터뷰를 가졌다. 필립 나이팅 박사는 산업에서 대기업의 역할로 ‘벤처투자자’라기 보다 ‘벤처 클라이언트’를 강조했다.

투자사와 고객사를 결합한 개념으로 스타트업에 접근하는 것이 서로에게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다는 것을 얘기한 것이다. 스타트업의 기술을 고도화해 제품에 직접 도입하는 협력 사례를 꾸준히 만들어내는 것은 국내 산업에도 시사점을 주는 부분이다.

또, 독일의 스타트업 지원 환경에 대한 이야기도 언급했는데, 이는 언뜻 국내 사정을 떠올리게 한다. 다음은 필립 나이팅 박사와 나눈 대화들이다.

필립 나이팅 박사


 

다임러 그룹이 제공하는 스타트업 발굴 프로그램의 특징은 무엇인가?

대부분의 지원 프로그램은 이 스타트업이 과연 좋은투자 기회이냐에 초점을 맞추는데, 스타트업 아우토반에서는 그것이 중요한 일이긴 하나 1차 목표는 아니다. 우선적인 것은, 전략적으로 봤을때 과연 이 업체의 기술과 비전이 우리와 잘 매칭이 되느냐다. 내부 전문가가 논의해 이 기술을 발전시켰을 때 메르세데스 벤츠라는 다국적 기업의 서플라이로 성장할 수 있는지 여부가 중요하다. 즉, 벤처케피탈이라기보다 벤처클라이언트적 접근 방식이다. 다른 벤처투자자와는 다른 고유의 장점이라고 본다.

산업계에서도 이런 부분을 흥미롭게 여긴다. 돈으로 초기 투자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업의 초기 단계에서 대규모 고객사와 협력사가 생기는 것과 마찬가지다.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큰 기업의 파트너가 어떤 걸 요구하는지, 또 어떻게 해야 큰 기업의 협력 업체로 활동할 수 있는지에 대한 아주 좋은 경험과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중요한 레퍼런스가 생기는 것이다.

또, ‘오픈 플랫폼’ 형태라는 것이 스타트업 아우토반이 전달하는 가장 독특한 셀링포인트이자 DNA다. 단순히 스타트업에게만 ‘오픈’ 되는 것이 아니라, 생태계 내의 여러 협력 기업들에게도 열려 있다. 스타트업이 메르세데스 벤츠와 같은 OEM사와만 일한다고 해서, 멋진 아이디어를 모두 현실화시키기는 어렵다. 때로는 여러 티어의 업체가 들어와야 한다. 서른개가 넘는 파트너사가 플랫폼에 참여한다. 예컨대 포르셰나 현대차와 같은 다른 자동차 업체, 보쉬 같은 부품 업체나 에너지, IT 기업 등을 포괄한다. 다양한 주체의 국제적 협력이 일어나는 것이다.

스타트업 아우토반에서 선정된 스타트업과 협업 사례를 설명해 달라

현재 50개 정도 프로젝트가 스타트업 아우토반을 통해 저희와 프로젝트 준비 작업을 하고 있고, 실제 (제품에) 도입된 프로젝트는 15개 정도다. 더 많은 프로젝트가 제품에 반영되길 바란다.

구체적 도입사례로는, 스타트업이 개발한 AI 알고리즘으로 용접 장비에서 잠재적으로 일어날만한 다운타임을 예측하는 것이 있다. 생산 현장에서의 효율성과 생산성을 증대시키려는 목적이다.

자동차 안에 솔루션을 넣어, 주차장을 빠져 나올 때 주차권을 찾느라 애먹을 필요 없이 뒷단에서 지불 관련 작업을 심리스하게 해주는 기술도 독일 시장에서 도입을 했다.

또, 왓쓰리워즈(W3W)라는 스타트업은 세계를 가로세로 삼미터로 나누고 한 정사각형마다 세 개 단어로 주소를 부여하는 기술을 갖고 있는데, 이를 벤츠의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인 ‘MBUX’에 도입했다. 예를 들어, 런던에는 ‘처치 바’라는 스트리트 이름이 세 군데나 위치한다. 왓쓰리워즈의 솔루션은 이렇게 이름이 겹쳐 내비게이션의 정확도가 떨어지거나, 혹은 거리 이름이 정확하게 없는 오프로드 환경을 잘 찾아갈 수 있게 한다.

아직 진행 중인 프로젝트는 구체적으로 공개하긴 어렵지만, 환경이나 지속가능성과 관련한 사례 몇가지에 대하 살짝 말하겠다.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의 한 업체가 개발해 낸 촉매 프로세스를 통해 공기 중에 있는 이산화탄소를 파악, 이를 기반으로 플라스틱 부품을 만드는 작업이 추진 중이다. 준비가 잘 되고 있고, 이 기술로 자동차 부품 생간도 가능할 거라고 생각한다.

이스라엘의 스타트업 유비큐도 한 사례다. 주택에서 나오는 생활폐기물을 재활용해 재생 플라스틱을 만들어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데 이미 프로토타입이 나왔다.


  스타트업 아우토반에는 메르세데스 벤츠만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차나 포르셰 등 경쟁사들도 들어온다. 경쟁사에 개방하는 이유가 있나?

가장 매력적인 최고의 플랫폼을 만들어서 모빌리티나 자동차 관련 기술을 가진 스타트업이 모두 오고 싶어하는 플랫폼을 만들고자 했다. 단순히 원칙적이거나 이상적인 말이 아니라, 이렇게 해야 실질적으로 유리한 결과를 가져온다고 봤다. 최고와만 협력하고 싶은데, 그런 스타트업을 유인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원하는 요구를 잘 파악하고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플랫폼에 경쟁사라 일컬어지는 업체도 참여해야한다. 어느 스타트업이 탁월한 기술과 아이디어를 갖고 있다면 개별 기업을 따로 만나기보다는 전체 산업계서 한 번에 피드백을 받는 걸 당연히 선호할 거다. 그렇지 않다면 그 스타트업이 자체적으로 별도 플랫폼을 구축하거나, 혹은 그걸 가능하게 할 다른 플랫폼으로 가지 않겠나. 그래서 처음부터 오픈 플랫폼을 제공했고, 어떤 경우에는 이렇게 하는 것이 훨씬 유리한 결과를 가져왔다.

메르세데스 벤츠는 어떤 기술에 강점이 있는 스타트업에 특별히 관심을 갖나?

메르세데스 벤츠가 가진 기본전략 요소가 있다. 그 요소에 적합하고, 또 가능하게 하는 기술에 관심을 갖고 있다. 전기화, 디지털화, 효율성 제고, 지속 가능성 제고, 럭셔리 요소 등이 그것이다. 럭셔리라는 것은, A지점에서 B지점으로 이동할 때 가장 럭셔리한 형태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을 말한다.

스타트업 아우토반은 한국을 비롯해 여러나라에서 개최됐다. 한국 스타트업이 다른 곳과 다른 특징이 있나?

높은 교육수준과 기술 수준이다. 이러한 상대들과 협력했을 때 상호가치를 극대화 시킬 수 있다. 또, 한국 시장 자체가 선진화되어 있고 신기술을 적극적으로 조기에 도입한다. 한국 업체들은 이런 시장의 특징과 고객의 요청을 아주 잘 이해하고 있어서, 저희 입장에서는 이런 시장의 발전 내용을 (협업을 통해)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한국 스타트업이 고객의 요청을 잘 파악하고 있으므로 큰 도움이 된다.

개선의 여지도 동시에 있다. 분명히 더 배우고 나갈 부분이 있는데, 한국의 스타트업이 워낙 국내 시장에 집중하다보니 국제적인 협업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지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일례로 한국 스타트업의 웹사이트에 들어가보면, 한국어로만 되어 있는 경우가 있다. 국제 협력을 원하는 대상이나 잠재적 파트너에게는 접근성이 떨어진다. 국제적으로 가시성과 접근성을 제공하는 노력이 추가로 필요해 보인다.

스타트업의 DNA가 벤츠의 기업 문화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보나? , 벤츠 역시 변화의 필요를 강하게 느끼는가?

벤츠는 기업가 정신과 관련한 활동에 관심이 많이 있다. 기업가 정신을 갖고 스타트업과 관련한 민첩한 마인드셋을 가지는 게 유익하다고 본다. 몇년 전 메르세데스 벤츠 그룹의 오픈 이노베이션 그룹이 출범했을때 발표한 ‘리더십 2020’에 그런 내용이 반영돼서 여러 다양한 활동을 진행했다. 그 중 하나가 스타트업 아우토반이다. 수백개의 파일럿 프로젝트와 수천개 스타트업과 대화를 통해서 당연히 임팩트를 받는다.

하지만 이런 임팩트는 일방향으로만 전달되는 것은 아니다. 일종의 문화 교류가 실행이 된다. 스타트업으로부터 기술과 마인드셋에 대해 배우지만, 역으로  스타트업도 우리와의 대화를 통해 다국적 기업이나 대기업이 가진 여건과 요구사항, 그 규모에서 진행할 프로젝트는 어느정도 퀄리티를 가져야 하는지, 확장성의 요건은 무엇인지 등을 배울 수 있다. 문화적 임팩트는 상호간에 일어난다.

모빌리티, 자동차 산업에 전환이 일어남녀서 디지털 서비스 부문이 확장되고 있다는 것도 말하고 싶다. 스타트업이 차지하고 담당하는 역할이 더 커진 것이다. 과거에는 자동차 협력사라고 하면 장비나 생산시설에 많은 투자를 해야했고, 따라서 스타트업은 산업에 진입하기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나 디지털 서비스 영역의 확장으로 현 시점에서는 컴퓨터와 멋진 아이디어만 있다면 규모와 상관없이 산업에 진입할 가능성이 열렸다. 메르세데스 벤츠 입장에서도 스타트업은 고객과 기존 협력사 다음으로 세번째로 중요한 파트너다.

독일에서는 대기업 같은 기존 산업계와 정부가 스타트업을 어떻게 지원하고 육성하나, 또는 협업하나?

정부 자체에서 독일 내 스타트업 생태계를 장려시키는 것에 관심을 갖고 있다. 그리고 거기에 큰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지난 몇년간 다양한 산업 부문별로 장려‧진흥 정책이 많이 나왔다. 관계 부처가 프로그램을 선보이기도 했다. 시드 투자, 현지 다양한 산업 부분의 큰 기업과 연결을 제공한다. 또, 유수의 싱크탱크를 통해 어떻게 하면 시스템적으로 관료 장벽을 해소시키고 스타트업의 활동을 장려시킬 수 있느냐를 고민하는 등 정부 차원의 관심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문화적인 요인일지 모르겠지만, 다른 서구 국가들에 비해 독일에서는 젊은이들이 대학 졸업 후 창업에 대한 관심을 많이 보이지 않는다. 리스크를 피하려는 성격과 문화가 있지 않은가 생각한다. 창업을 하는 것도 쉽지가 않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구비해야 할 조건도 굉장히 많다보니 그 자체가 창업의 장벽이 될 수도 있다. 스타트업이 어느 정도 발전한 이후에는 독일 내에서 대규모 투자를 받기 위한 네트워크가 부족한것도 실질적 문제다. 독일이 아닌 다른 국가에서 투자를 받는 형태도 많다.

글.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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