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은 11번가에 돈을 부어 뭘 하고 싶은 걸까

지난 10월. 아마존이 11번가에 입점 판매를 논의하고 있다는 내용을 한 이커머스 업계 관계자에게 들었다. ‘굳이, 왜?’라는 생각이 따라왔다. 아마존 마켓플레이스 입점 3자 판매자들을 단순히 11번가에 옮겨놓는 정도라면, 11번가가 상품 측면에서 얻는 이득이 얼마나 클지 의문이었다. 이어진 그의 설명을 듣고 이해가 됐다. 그냥 아마존 상품이 아니라 ‘데이터’와 ‘풀필먼트’가 붙은 아마존 상품이 들어온다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SK텔레콤이 16일 ‘아마존’과 이커머스 사업 영역에서 협력을 추진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SK텔레콤에 따르면 현재까지 확정된 비즈니스의 방향은 11번가에 ‘아마존의 상품’을 판매한다는 것 하나다. 11번가와 아마존은 론칭 준비가 되는 대로 상세한 서비스 내용을 밝힌다는 계획이다.

주목할 만한 또 다른 내용은 아마존이 11번가에 ‘투자’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이다. SK텔레콤은 아마존과 지분 참여 약정을 체결했다. 이에 따라 아마존은 향후 11번가의 사업성과에 따라 IPO(기업 상장) 등 일정 조건이 충족되는 경우 신주 인수권리를 부여받을 수 있다.

취재 결과를 종합해 보면 이번 제휴는 아마존이 11번가에 투자를 한다는 것을 전제로 약정이 됐다. 물론 아마존이 실제로 거래가 진행되기 전 신주 인수권리를 포기할 수 있는 것은 맞지만, 아마존이 처음부터 투자를 염두하고 11번가와 사업을 논의한 것은 맞다고 전해졌다.

이제부터는 시나리오다. 과연 아마존은 11번가에 돈을 부을 생각까지 하면서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일까. 추후 아마존과 11번가의 제휴가 본격화 된다면, 국내 이커머스 업계에 미치는 파급은 무엇일까. 몇 가지 가능성을 열어 놓고 살펴본다.

11번가가 아마존 상품을 직매입 한다?

IB업계 관계자의 멘트를 인용한 몇몇 매체는 11번가가 아마존 상품을 선매입 해 국내 물류센터에 보관해두고 배송하는 방식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보도했다. 11번가는 이에 대해 맞다, 아니다 답변하지 않았다. 아마존이 11번가에 상품을 판매하는 것은 맞지만, 그 이상의 협업 방향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는 것이 11번가의 입장이다.

하지만 11번가가 아마존 상품을 매입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이는 11번가의 최근 비즈니스 전개 방향을 보면 유추할 수 있다. 2018년 이후 11번가는 ‘흑자 경영’을 기조로 전략을 짜왔다. 이에 따라 기존 적자의 원인으로 지목됐던 ‘직매입 부문’은 축소됐다. 11번가가 물류센터 운영을 하면서 발생할 ‘비용’을 감내하면서 직매입 부문을 다시 확대할 이유가 없어 보이는 이유다.

11번가가 아마존 상품을 수입해서 국내에서 다시 판매하는 형태가 ‘가격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아마존이 일부 PB 상품을 제조하긴 하지만, 아마존에서 판매되는 상품 대부분은 제조, 브랜드, 유통업체 등지에서 공급받는다. 11번가가 아마존의 상품을 다시 매입해서 판매한다면 유통 단계를 늘려 가격 경쟁력을 악화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방식의 다단계 판매는 아마존이 추구하는 ‘고객 집착’ 문화와도 맞지 않는다. 11번가에 투자까지 검토하면서 아마존이 고려할 방식으로 보이진 않는다.

‘아이허브’에서 찾는 힌트

그러다가 한 이커머스 업계 관계자로부터 재밌는 이야기를 들었다. 11번가 안에서 아마존 프로젝트를 맡은 사람과 아이허브 프로젝트를 맡은 사람이 동일하다는 것이다. 11번가와 아마존의 제휴 방향이 ‘아이허브’와 했던 그 방식을 따르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게 된 배경이다.

11번가는 지난해 10월 아이허브의 11번가 입점을 발표했다. 11번가 해외직구 탭에는 아이허브 전용관이 만들어졌고, 아이허브 독립몰에서만 구매할 수 있었던 PB 브랜드 역시 11번가에서 판매가 시작됐다. 그러니까 한국 소비자는 아이허브 상품을 마치 11번가에서 구매하는 것처럼 살 수 있다. 물류는 11번가가 하는 것이 아닌 입점업체인 ‘아이허브’가 알아서 한다.

11번가 아이허브 전용관과 상품상세. 11번가에서 한국까지의 예상배송 시간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으로 배송되는 아이허브 상품은 전량 미국 물류센터에서 출고된다.

여기서 이런 의문이 나올 수 있다. 아이허브는 원래부터 한국 소비자가 구매 가능한 자체적인 독립몰을 운영하는 사업자다. 한국 소비자까지의 물류 서비스도 원래부터 제공됐고, 그게 아이허브가 내세우는 강점이었다. 아이허브는 11번가 제휴 이전부터 미국 캘리포니아 물류센터에서 한국 소비자까지 72시간 이내 배송이 가능한 물류망을 설계했다. 아이허브가 물류센터에 재고를 직매입해서 비치했기에 만들 수 있는 ‘속도’다.

한국에서 접속하여 구매 가능한 아이허브 사이트. 사실 소비자 관점에서 아이허브 독립몰에서 구매하나 11번가에서 구매하나 뒷단의 물류는 별반 차이가 없다. 하지만 확연히 느껴지는 차이가 있다면 ‘인터페이스’다. 왜인지 불편한 느낌을 받았다면, 그것을 이야기하는 게 맞다.

그렇다면 굳이 왜 아이허브가 11번가에 들어서는가. 아이허브는 11번가가 갖고 있는 국내 소비자의 ‘트래픽’을 확보하고 싶었을 공산이 크다. 아이지에이웍스에 따르면 2020년 6월 안드로이드 OS 월간순방문자수(MAU) 기준 11번가(682만명)는 쿠팡(1384만명)에 이은 2위 쇼핑앱 사업자로 위치한다. 쿠팡과의 격차가 크긴 하지만, ‘682만’이라는 숫자를 무시할 수는 없다. 별달리 아이허브 직구를 해볼 생각을 하지 않았던 많은 소비자들이 11번가를 통해 아이허브에 자연히 유입될 수 있는 것이다.

11번가 관계자는 11번가 안에서 아마존과 아이허브 제휴 담당자가 동일한지 묻는 기자의 질문에 “11번가에서 제휴 담당 부서는 하나이고 아이허브와 아마존건 외에도 국내외 제휴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며 “하지만 11번가 주도로 체결한 아이허브건과 달리 아마존건은 SK텔레콤 주도로 만들어진 프로젝트가 11번가에 내려온 것”이라 답변했다.

아마존, FBA로 한국 넘보나

다시 아마존으로 돌아와 본다. 아마존은 아이허브처럼 물류센터에 상품을 직매입해 재고로 보관하여 판매하는 방식을 중심으로 성장한 기업이다. 2006년부터는 FBA(Fulfillment By Amazon)이라는 이름의 비즈니스 모델을 시작함으로 아마존이 아닌 3자 판매자의 상품 역시 아마존 물류센터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요컨대 아마존은 FBA를 기반으로 3자 판매자의 배송 속도를 통제한다. 물류 시스템과 운영은 아마존의 제휴망, 혹은 아마존이 직접 수행하는 방법으로 말이다.

아마존 네트워크 현황(자료 : 아마존글로벌셀링, 2020)

풀필먼트를 통해 아마존 물류센터에 들어선 3자 판매자의 상품은 해당 국가에서만 판매되지 않는다. 3자 판매자의 상품은 아마존 글로벌 배송망에 올라타서 전 세계로 배송된지 오래다.

더군다나 아마존은 한국 소비자들의 직구 상품 소비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다. 이를 추측할 수 있는 사례가 있다. 기자가 미국 아마존닷컴에 ‘한국 주소’가 입력된 아이디로 접속하면 아마존은 한국까지의 해외배송이 가능한 상품만 개인 취향에 맞춘 추천 알고리즘으로 추천해준다. 아마존은 특정 국가의 개별 소비자가 어떤 상품을 직구로 소비하는지 알고 있다는 뜻이다.

아마존은 물류센터에 보관된 상품의 부피와 무게 데이터를 기반으로 ‘확정된 배송비’를 소비자에게 알려준다. 아마존 입장에서는 크로스보더 이커머스 상품 판매를 위한 가격 정책을 세울 수 있는 근거가 된다. 각 국가의 규제를 고려하여 관세와 부가세 면제 기준이 되는 상품 객단가에 맞춰서 비용 절감에 유리한 입지에 상품을 선배치 할 수도 있다. 예부터 3자 판매자에게 입고 물류센터를 지정하는 것은 아마존의 역할이었다.

아마존재팬에서 2255엔짜리 안경을 사니 자동으로 노출되는 765엔의 배송비가 장바구니에 안경 하나를 추가하니 825엔으로 늘어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요컨대 상품 무게나 포장 컨디션에 따라서 배송비는 ‘변한다’. 아마존이 그만큼의 데이터를 쥐고 실제 판매에 활용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판매는 브랜드업체(3자 판매자)가, 물류는 아마존이 처리한다.

유사한 사례가 글로벌에서 없는 것이 아니다. 알리바바그룹의 해외 역직구 플랫폼 ‘알리익스프레스’는 지난 9월 중국 웨이하이에 한국 시장 전용 물류센터를 구축했다. 알리바바에 따르면 웨이하이 물류센터에는 한국인이 알리익스프레스에서 많이 구매한 상품 데이터를 분석해 전자제품, 스포츠 관련 용품 등 한국인이 선호하는 상품 중심으로 입고 시켰다. 한국전용 물류노선도 함께 구축하여 종전 20~50일 이상 걸리기도 했던 한국까지의 배송기간을 3~7일 이내로 감축했다. 웨이하이 시정부로부터는 창고 사용 비용을 면제 받아 물류 관련 비용을 절감했다. 알리바바가 하고 있는 것을 아마존이 못할 이유가 없다.

요컨대 11번가는 아마존의 글로벌까지 연결되는 풀필먼트망을 활용한다면 굳이 비용을 감수하고 아마존의 상품을 매입하여 한국 물류센터에 보관하는 방법을 쓰지 않고도, ‘빠른 배송 속도’를 만들 수 있다. 아마존은 이미 전 세계 175개의 물류센터를 운영하고 있고, 한국과 지근거리인 일본에만 13개의 물류센터가 있다.

아마존은 한국 소비자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팔릴만한 상품을 한국 소비지 인근, 혹은 정책 측면에서 혜택을 받는 지역 물류센터에 선입고하여 빠른 배송 속도를 만들 수 있다. 그간 한국 사이트가 아니었기에 자연히 발생할 수 있었던 아마존 직구의 불편함은 한국 소비자에게 친숙한, 국내 2위 수준의 트래픽을 갖춘 ‘11번가’라는 채널을 활용하여 해소할 수 있다. 아마존이 굳이 한국에 마켓플레이스를 열지 않더라도 한국 시장에 우회 진출하는 효과를 11번가를 통해 누릴 수 있다는 뜻이다.

이커머스 업계에서는 이렇게 만들어지는 아마존 직구 상품의 한국 유입을 경계하고 있다. ‘물류’ 관점에서 11번가가 확보할 수 있는 경쟁우위가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품 관점에서 아마존 상품이 한국 소비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올지에 대해서는 판단을 보류하는 목소리가 함께 존재한다.

크로스보더 이커머스 업계 한 관계자는 “아마존이 일본 물류센터에 상품을 보관해두고 한국 11번가에 해당 상품을 노출하여 판매를 한다면 확실히 속도 측면에서 우위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상품 측면에서는 결과를 두고 봐야 될 것 같다”며 “한국 직구 소비자들은 유행에 따라서 특정 상품 소비에 몰리는 특성이 있는데, 일반적으로 아마존 직구는 롱테일 상품이 팔리는 경향이 있다. 막상 가격을 봐도 아마존의 상품이 한국에서 판매하는 상품과 비교해서 그렇게 차이나지 않는 경우도 많은데, 향후 아마존이 어떤 가격 정책을 가지고 11번가를 활용하는지 뚜껑을 열어봐야 알 것 같다”고 예측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엄지용 기자> drake@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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