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희 CJ대한통운 대표이사가 22일 최근 발생한 택배기사의 연이은 사망에 대해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이 달에만 3건 이상(8일 CJ대한통운 택배기사, 12일 한진 택배기사, 20일 CJ대한통운 택배기사) 연이어 과로사로 추정되는 택배노동자 사망이 발생한 것에 대해 CJ대한통운이 공식 입장을 밝힌 것.

박근희 CJ대한통운 대표

박근희 CJ대한통운 대표는 “연이은 택배기사님들의 사망에 대해 회사를 맡고 있는 대표이사로서 책임을 통감하며, 국민 여러분께 큰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서도 머리 숙여 깊이 사과드린다”며 “몇 마디 말로 책임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코로나로 물량이 늘어나는 과정에서 현장 상황을 세밀하게 챙기지 못했던 부분은 없었는지 되묻고 살펴보고 있다. 저를 비롯한 CJ대한통운 경영진 모두는 지금의 상황을 엄중하게 받아들이며, 재발방지 대책에 전력을 기울이겠다”고 전했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20일 국무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코로나는 특수고용노동자 등 기존 제도의 사각지대에 있는 노동자들의 삶을 더욱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최근 연이어 발생하고 있는 택배 노동자들의 과로사 문제가 단적인 사례일 것”이라며 “더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특별히 대책을 서둘러 주기 바란다”고 강조한 바 있다.

CJ대한통운은 향후 택배노동자의 작업시간과 업무 강도를 낮추는 방향으로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먼저 택배 상품 분류작업에 별도 인력 4000명을 투입하고 ‘적정 배송량’을 산출하여 택배기사의 하루 배송량을 제한한다. 두 번째로 산재보험 가입에 대해서는 전체 집배점(대리점)을 전수조사하고 택배기사들의 가입을 의무화 한다. 이 외에도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추가 방안을 마련한다. 세 번째로 자동화시설 확대를 통해 작업강도를 낮춘다. 마지막으로 상생협력기금을 마련해 택배기사들의 복지확대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방안1 : 분류지원 4000명 투입 및 적정 배송량 산출

그간 택배기사들은 허브터미널에서 도착한 택배 간선차량이 내리는 배송 상품들을 오전 시간을 할애해서 자체적으로, 혹은 개별 비용을 투자해서 알바를 고용해서 진행해왔다. 택배기사는 배송과 집화물량 한 건당 돈을 받지만, 이 분류작업에 대해서는 돈을 받지 못했다.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택배노조)이 오랫동안 ‘분류작업’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요구해왔다.

택배노조측은 지난 17일 “분류작업은 택배노동자들이 새벽같이 출근하고, 밤늦게까지 배송을 해야만하는 장시간 노동의 핵심적인 이유”라며 “하루 13~16시간 중 절반을 분류작업 업무에 매달리면서도 단 한푼의 임금도 받지 못한다. 그래서 분류작업 인력투입이 택배노동자의 과로사를 줄일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 실효성 있는 대책”이라 강조했다.

CJ대한통운이 택배노조의 이 주장에 처음으로 공식 화답했다. CJ대한통운은 택배기사들의 인수업무를 돕는 분류지원인력 4000명을 내달부터 단계적으로 투입한다. 인력 규모는 현장에서 이미 일하고 있는 1000명을 포함해 모두 4000명이다. 추가 인력 투입에 따라 매년 500억원 정도의 추가 비용이 들 것으로 예상되는데, 인력 채용 등 구체적인 내용은 집배점과 협의해 나간다.

지원인력 투입으로 분류작업을 하지 않게 된 택배기사들은 오전 업무개시 시간을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는 ‘시간선택 근무제도’를 활용할 수 있게 된다. 지역 상황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아침 7시부터 12시 사이에 업무개시 시간 조정이 가능해져 전체 근무 시간을 크게 단축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는 CJ대한통운의 설명이다.


택배기사의 하루 최대 배송량에도 제한이 들어간다. CJ대한통운은 전문기관에 의뢰에 건강한 성인이 하루 배송할 수 있는 ‘적정량’을 산출한다는 계획이다. 앞으로 택배기사들이 적정 배송량을 초과해서 일하지 않도록 바꿔 나간다는 계획이다. 만약 초과물량이 나오는 경우 택배기사 3~4명이 팀을 이뤄 물량을 분담해 개별 택배기사에게 부담이 쏠리는 것을 방지하는 ‘초과물량 공유제’ 도입도 검토한다.

방안2 산재사고 예방 방안 마련

택배기사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로 일반 근로자에게는 적용되는 4대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었다. 산재보험의 경우 정부가 지정한 14개 특수형태근로종사자 직종에 대한 산재보험 적용에 따라 가입은 가능했지만, 절반의 보험료는 근로자가 부담해야 됐다.

CJ대한통운은 내년 상반기까지 모든 택배기사가 ‘산재보험’을 가입할 수 있도록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올해 말까지 전체 집배점을 대상으로 산재보험 가입 여부 실태조사를 진행하고, 상반기 이후에는 산재보험 적용 예외신청 현황도 주기 점검한다. 이를 위해 신규 집배점은 계약시, 기존 집배점은 재계약시 산재보험 100% 가입을 권고하는 정책을 더욱 강화한다.

또한 CJ대한통운은 전체 택배기사를 대상으로 지원하는 건강검진 주기를 내년부터 2년에서 1년으로 줄이고, 뇌심혈관계 검사 항목도 추가하기로 했다. 여기 소요되는 모든 비용은 CJ대한통운이 전액 부담한다.

CJ대한통운은 외부 전문기관의 컨설팅을 통한 택배기사의 체계적인 건강관리 방안도 마련한다. 건강검진시 이상소견이 있는 택배기사들을 대상으로 한 집중관리체계를 도입하고, 근로자 건강관리센터와 협력해 연 3회 방문상담을 진행한다. 고위험군으로 판정될 경우 건강이 회복될 때까지 집배송 업무 배제 또는 물량축소 등을 강력히 요청한다는 계획이다.

방안3 자동화 설비 구축

택배기사 작업강도 완화를 위한 자동화 설비 구축도 가속화한다. 2022년까지 1600억원을 들여 소형상품 전용분류장비(MP. Multi Point)를 추가 구축해 현장 자동화 수준을 높이기로 했다. 2019년 말부터 35개 서브터미널에 도입한 소형상품 전용 분류장비 또한 2022년까지 전국 100개 서브터미널로 확대 도입할 계획이다. CJ대한통운 앞서 전국 181개 서브터미널에 자동분류장치 휠소터를 설치해서, 현재 95%의 물량을 자동 분류하고 있었다는 설명이다.

CJ대한통운에 따르면 회사가 처리하는 물량 중 소형택배화물 비율은 전체의 90%에 이르기 때문에 MP를 설치할 경우 전체 작업시간을 감소시키는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CJ대한통운은 현장 자동화를 위한 기술개발과 투자를 계속해 나갈 계획이다.

방안4 상생협력기금 마련


CJ대한통운은 2022년까지 100억원 규모의 상생협력기금을 조성한다. 기존에 시행 중인 택배기사 자녀 학자금 및 경조금 지원과는 별개로 긴급생계 지원, 업무 만족도 제고 등 복지 증진을 위한 활동에 사용할 예정이다.

CJ대한통운은 2019년 택배기사와 간선운송사, 물류센터 인력도급업체, 집배점과 회사(CJ대한통운) 등 택배산업 5주체를 구성원으로 하는 택배상생위원회를 구성해 각종 활동을 벌이고 있다. 택배상생위원회는 상생협력기금의 일부 재원을 활용해 택배종사자 소통, 자긍심 고취 및 사회공헌 활동을 펼쳐 나가기로 했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 측은 이번 CJ대한통운의 대책 발표에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입장을 발표했다. 다만, CJ대한통운의 발표에 대한 이행계획과 집행 상황의 점검, 추가 현안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사회적 대화기구’ 설립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는 점에는 아쉬움을 피력했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 측은 “전반적으로 이번 CJ대한통운의 발표는 택배산업 현장에 상존하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첫 걸음으로 의미 있는 진전으로 평가한다”며 “롯데와 한진, 로젠, 우체국택배 등도 CJ의 전향적 조치에 화답해 주길 기대한다”고 논평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엄지용 기자> drake@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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