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PA는 물류업체의 단순 업무를 사라지게 할까

RPA(Robotic Process Automation). 단순 용어만 보면 물류나 제조현장에 로봇 하드웨어가 들어가서 운영 프로세스를 자동화하는 개념처럼 보이는 데 그건 아니다. RPA란 기업에서 사람이 수행하는 단순 반복 작업을 로봇 소프트웨어가 대신 해주는 솔루션이다. RPA 솔루션을 쓴다면 로봇이 내 PC를 통제, 제어하여 알아서 귀찮은 일을 대신해주는 게 가능해진다는 이야기다.

RPA가 사람의 인사이트나 네트워크가 들어가는 높은 수준의 업무를 자동화하지는 않는다. 반복적인 패턴이 있는 단순 작업을 자동화한다. 물류기업의 단순 반복 작업이라 함은 대표적으로 ‘엑셀 노가다’다. 예를 들어서 고객사로부터 물건을 어디에서 어디로 옮겨달라는 발주서가 이메일을 통해 들어온다면 그게 ‘이미지 파일’이든, ‘텍스트 파일’이든, ‘pdf 파일’이든 다시 자사 시스템 혹은 엑셀 양식에 옮겨 적는 작업이 필요하다. 단순히 텍스트와 숫자를 옮겨 적는 일이기 때문에 오늘 뽑은 알바도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사람에 따라서 이런 일만 계속 하다 보면 자괴감을 느낄 수 있다.

실제 포워딩 업체 직원인 지인에게 확인 결과 선하증권(B/L), 항공운송장(AWB) 등을 화주사 요청에 따라서 이메일, 카카오톡 등으로 전달 받고 EDI(Electronic Data Interchange) 시스템에 옮겨 적는 등의 일을 하는데 통상 3분이 걸린다고 한다. 중소 포워딩 업체인 이곳에서 이 직원은 많게는 하루 50개 정도의 서류를 처리하는데 물리적으로 걸리는 단순 업무의 시간은 약 150분인 셈이다. 어려운 업무는 아니지만, 귀찮은 일은 맞다.

RPA 입력 자동화 프로세스와 기존 수작업 프로세스 비교(자료: 햄프킹)

RPA 솔루션 기업 햄프킹의 김승현 대표는 13일 GSDC(Global Shipping&Logistics Digitalization Consortium) 가 주최한 3차 기술소위원회 회의(기술소위)에서 “대형관세법인의 경우 150명 중 120명 정도가 송장(Invoice) 데이터를 추출하고 검증 등 전처리를 거쳐 통관 시스템에 입력하고 유니패스에 신고하는 업무를 한다. 관세법인에 관세사는 몇 분 안계신다”며 “현재 햄프킹은 3개 관세법인에 솔루션을 도입했는데, 고객사 정보를 입력하는 과정에서 자동화를 적용하여 굉장히 많은 업무시간 단축 효과를 보고 있다”고 전했다.

물류 RPA는 뭐가 다른데?

물류업계의 RPA 도입 관심은 분명히 있다. DHL과 같은 글로벌 물류기업도 유아이패스(UiPath)의 RPA 솔루션을 도입했다. 유아이패스에 따르면 DHL(Global Forwarding, Freight)은 직원 30명 중 15명의 수동작업을 사라지게 했고, 부가가치가 더 높은 작업에 재투입했다. 한국에서도 몇몇 대형 물류기업을 중심으로 RPA의 효율성을 검증하는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는 단계다.

RPA 솔루션 기업 비에이템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RPA는 2017년부터 금융 및 보험업(30%) 대형 제조사(24%) 중심으로 도입이 되고 있다.(자료: 비에이템 리서치센터)

이에 따라서 물류 전문 RPA 솔루션을 전면으로 내세우면서 영업에 나서는 업체도 등장했다. 물류 RPA 솔루션의 자동화 방법론이 여타 RPA 솔루션과 크게 다른 것은 아니다. 이메일이든, 웹시스템에서든, 송장, 원산지 증명서 등 관련 서류를 다운로드 받고, 서류 안의 내용을 추출해서 또 다른 시스템이든 엑셀파일이든 입력하는 과정을 로봇이 자동화한다는 것이다. 데이터 추출 과정에서는 전자 서류나 이미지를 인식하는 기술인 OCR(Optical Character Recognition, 광학 문자 인식)이 활용된다.

물류 전문 RPA 솔루션 기업의 특장점이 있다면 ‘전문성’을 기반으로 한 개발 기간과 비용의 감축이다. RPA 솔루션 도입을 위해서는 각각 다른 기업, 현업 부서의 업무 프로세스에 따라서 시나리오 개발 기간이 소요된다. 이 때 물류 전문 RPA 솔루션 기업은 이미 많은 부분 물류 관련 업체의 프로세스를 경험했기 때문에 개발 기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승현 햄프킹 대표는 “햄프킹에는 물류기업 입력 자동화에 필요한 기능을 중심으로 개발한 전문 인력과 관련한 RPA 코어엔진, OCR 엔진을 개발하는 사람이 함께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기존 2주 이상 소요됐던 시나리오 개발 기간을 4~5일 수준으로 단축할 수 있고, 개발기간이 짧기에 당연히 개발비도 타사 대비 40% 수준으로 제공 가능하다”고 강점을 밝혔다.

RPA의 숙제

물류업계 현장에서 제기하는 RPA가 해결해야 할 숙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 중 하나는 OCR 기술의 한계다. 여러 서로 다른 화주사의 양식을 다양한 방식으로 받는 물류업계 특성상 해상도가 낮거나 인식하기 어려운 형태로 돼 있는 서류라면 데이터 추출이 완벽하게 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RPA를 도입하더라도 사람이 개입해서 ‘검수’하는 과정이 필요할 수 있다.

RPA 솔루션을 테스트해봤다고 밝힌 한 물류대기업 관계자는 GSDC 기술소위에서 “선하증권(B/L)에는 다양한 규격표기가 있다. 예를 들어서 1,000단위 표기에 사용하는 ‘반점(,)’과 ‘마침표(.)’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8과 3도 당연히 다른 숫자인데 RPA 솔루션이 헷갈려 하는 경우가 있더라”며 “RPA 솔루션을 도입해서 거의 100%에 가까운 자동화가 가능해야 효과가 있지, 사람이 중간중간 무엇인가 하고 있다면 또 다른 단순 업무가 생길 수도 있는 것 아닌가”라며 해결책을 묻는 질문을 했다.

이에 대한 RPA 솔루션 업체들의 답변은 아직까지 기술의 한계는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김승현 햄프킹 대표는 “(지적한 문제는) 우리가 관세법인과 일을 할 때도 똑같이 받았던 질문이다. OCR 정확도와 관련해서는 이것저것 검토를 해봤지만, 현재 기술로는 완벽한 해결책을 제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며 “그래서 우리는 관세법인, 물류업체 고객사와 협의하여 ‘인식 품질이 좋은 문서’를 중심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이게 아무래도 현시점에서는 가장 현실적인 해결책이라 본다”고 설명했다.

서우석 비에이템 DX사업부장은 “이미지에서 텍스트로 추출한다면 적게는 80%, 많게는 99% 가까운 인식률이 나온다. 하지만 100%까지는 도달하지 않기에 중간중간 원본 파일과 OCR을 거친 결과를 비교하여 사람 작업자가 검수 처리할 수 있는 UI를 적용했다”며 “많은 데이터를 사람이 직접 입력한다면 휴먼에러가 나올 수 있는 부분은 여전히 존재한다. 우리는 RPA를 쓴다면 기존 사람이 하는 방식에 비해 시간과 정확도가 높아질 수 있다고 판단하고 사업을 하고 있는 것”이라 말했다.

RPA가 못하는 것

요약하자면 RPA는 도깨비 방망이가 아니다. 물류현장의 니즈는 있지만,  아직까지 RPA 솔루션이 단순반복 업무를 100% 사라지게 하는 것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경우에 따라서, 예컨대 검수해야 하는 서류의 양식이 많다면 그에 대한 시간과 비용도 분명히 늘어날 수 있다.

따라서 RPA 도입을 검토하고 있는 물류기업이라면 기존 사람이 업무를 처리하는 상황과 로봇이 업무를 대체하는 상황의 생산성을 필히 비교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RPA도 공짜가 아니기 때문에 도입 비용과 생산성의 상충관계도 확인해야 한다. 이건 기업에 따라서 RPA를 도입하는 것이 좋을 수도, 조금 불편하긴 하지만 그냥 사람이 하는 게 낫다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

경영진을 설득하기 위한 묘수도 필요하다. 단순히 사람의 업무가 줄어든다고 하면 직원은 좋을 수 있지만 사장님은 좋아하지 않을 수 있다. 사장님을 설득하기 위해서 RPA로 사라진 업무시간을 어떻게 생산성이 더 높은 영역에 재분배할 것인가에 대한 계획 보고서도 잘 작성할 필요가 있겠다. 이런 건 아직까지 로봇이 해줄 수 없는 감성의 영역이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엄지용 기자> drake@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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