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 파괴의 시대, 이커머스 핵심 키워드 5가지

10명의 학계 전문가(이동일 세종대 경영경제대학 교수, 박철 고려대 글로벌비즈니스대학 교수, 김승현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 박민영 인하대 아태물류학부 교수, 이장혁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 김용진 서강대 경영대학 교수, 서희석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유리 서울대 생활과학대학 의류학과 교수, 박지수 서울대 생활과학대학 의류학과 강사, 양석준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들이 모여 ‘이커머스의 파괴적 혁신’을 주제로 리포트를 17일 발행했다.

기획 기관인 스타트업얼라이언스는 리포트의 핵심 키워드로 ‘파괴적 혁신’을 꼽았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에 따르면 비즈니스와 기술, 국경 등 과거 이커머스를 규정하던 경계가 급속히 확장, 변화하고 있다.

리포트 공동저자인 이동일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산업간 영역 붕괴’에 주목했다. 이 교수는 “기존 우리가 생각했던 제조업체, 도매상, 소매상(Retailer), 판매자(Seller), 공급자(Vendor), 플랫폼과 포털, 물류서비스 참가자들이 각자 자기 영역을 깨고 새로운 영역을 수렴, 통합하거나 비즈니스를 영위하기 시작했다”며 “이런 것들이 기업 경쟁력의 원천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는데, 한 편에서는 파괴되고 나서 생성되는 것은 무엇인지, 그냥 부수기만 하면 되는 것인지 고민이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경계 파괴 이후 기업들의 역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온라인이 기회처럼 언급되는 한 편에서는 물류센터 과부하나 특정 카테고리 투자에 따른 불확실성 증가와 같은 위기 상황이 동시 노출된다는 게 이 교수의 설명이다.

기회와 위기가 공존하는 시대에 이커머스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 17일 <이커머스, 파괴적 혁신으로 진화하다> 출간 기념 발표회에 참석한 학계 전문가들이 바라보는 ‘핵심 키워드’를 중심으로 알아본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에 모인 리포트 저자 6명. (왼쪽부터) 이장혁 고려대 교수, 양석준 상명대 교수, 서희석 부산대 교수, 김용진 서강대 교수, 이동일 세종대 교수, 박철 고려대 교수(사진 제공 : 스타트업얼라이언스)

키워드1 : 연결, 그리고 통합

경영정보시스템(MIS) 전문가인 김용진 서강대 경영대학 교수는 이커머스 핵심 키워드로 ‘연결’과 ‘통합’을 꼽았다. 먼저 연결. 생산과 공급, 결제, 라스트마일 물류까지 이어지는 이커머스 프로세스는 다양한 기술 제공 업체와 오퍼레이터가 협력하여 만들어진다. 어떤 업체도 혼자서 이 모든 프로세스를 수행하기는 어렵다. 요소요소에서 다양한 협력과 연결이 관측된다.

김 교수는 연결을 위한 핵심 기술로 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를 꼽았다. API가 있기 때문에 요소별로 탁월한 역량을 가진 작은 기업들의 솔루션들을 전체 프로세스 안에 녹여서 쓸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여기에 직구와 역직구라 불리는 ‘크로스보더 이커머스’가 확산되면서 글로벌까지 수평적 협력이 일어나고 있다.

김 교수에 따르면 API로 연결된 기술은 다양한 방법으로 ‘통합’ 된다. 과거 웹 환경을 중심으로 발전한 이커머스 산업은 모바일이 들어오면서 ‘앱’을 중심으로 재통합되고 있다. 김 교수는 “자바(JAVA)가 등장하면서 해결하고자 한 가장 중요한 문제의식은 플랫폼에서 사용하는 독립된 언어”라며 “모바일에서는 IOS와 안드로이드 생태계가 따로 만들어지고 있는데, 이것이 웹앱(Webapp)이라는 형태로 재구성이 되고, 다시 통합되는 형태의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연결과 통합이라는 큰 흐름이 이커머스 비즈니스와 기술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라 강조했다.

키워드2 : D2C

디지털 마케팅 전문가인 이장혁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는 핵심 키워드로 ‘D2C(Direct to Customer)’를 꼽았다. 이커머스 시대가 오면서 제조사가 직접 소비자에게 팔 수 있는 유통채널이 생겼다. 아마존과 같은 마켓플레이스를 활용하든, 쇼피파이(Shopify)와 같은 자사몰 구축 기능을 지원하는 이커머스 플랫폼을 활용하든, 누구나 이커머스 환경에서 글로벌 소비자에게 자신의 상품을 직접 판매할 수 있게 됐다.

이 교수에 따르면 D2C의 확산에는 초기 제조사의 유통 형태가 보인다. 과거 자동차 회사들이 시내 작업장에서 고객의 주문을 받아 재화를 제조하여 고객에게 직접 판매하던 행태가 이커머스 플랫폼을 통해 현대에 재현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과거 제조업체들의 D2C 판매는 제조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중간 유통채널의 영향력이 커지고 생산과 판매가 분리됐다. 하지만 이커머스를 통해 제조업체들은 규모와 상관 없이 중간 유통채널을 건너 뛴 판매가 가능해졌다.

D2C에서 SME(중소기업)가 찾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 과거 수출은 어느 정도 규모와 자본이 있는 제조사만이 건드릴 수 있는 영역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소형 제조사도 충분한 아이디어와 역량만 있다면 해외 소비자에게 상품을 판매할 수 있는 기술적인 기반이 마련됐다는 이 교수의 설명이다.

이 교수는 “이커머스는 산업과 사회를 조금 더 평등하게 만들었다”며 “과거에는 제조사가 좋은 상품을 만들더라도 한정된 오프라인 유통채널 매대에 들어갈 수 있느냐가 사업 성공의 중요한 열쇠였다. 이커머스는 그 한정된 매대를 무한대로 확장시켜 큰 회사뿐만 아니라 작지만 좋은 아이디어를 가진 회사까지 잘 될 수 있는 공정한 기회를 만들어줬고 이게 우리가 생각하는 파괴적 혁신”이라 설명했다.

키워드3 : 다양성

농식품 산업은 과거부터 쉽사리 ‘온라인’이 침범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됐다. B2B 오프라인 대량유통의 효율성을 B2C 온라인 택배의 효율성이 넘지 못할 것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농식품 산업에서도 변화는 관측된다. 농식품 유통 전문가인 양석준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이커머스가 만든 ‘다양성’에 주목했다.

양 교수에 따르면 ‘생산’ 측면에서 온라인은 기존 오프라인에서 유통하지 못했던 상품의 새로운 판로가 돼 나타났다. 양 교수의 예시에 따르면 과거 도매 시장 중심의 농식품 유통 구조에서는 ‘대량 유통’이 안 되는 상품은 철저하게 배제됐다. 못난이 과일이라고 불리는 비품과, 유기농 제품은 과거 도매시장에서 유통이 되지 않았던 대표적인 품목이다. 과거에는 생산자가 ‘도매시장’이 원하는 상품을 공급했다. 하지만 온라인 채널의 대두로 생산자는 소비자의 니즈에 맞춘 판매가 가능해졌다.

양 교수는 ‘소비’ 측면의 변화에도 주목했다. 과거 오프라인 시대에는 한정된 식재료를 가정에서 제조한 레시피로 조리해서 소비했다. 온라인 시대에선 수많은 업체들이 ‘레시피’와 함께 식재료를 통합 패키지로 만들어 판매하는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 하나의 솔루션 패키지로 조리 되는 ‘가정간편식’, ‘밀키트’라 불리는 상품이 소비 측면에서 큰 변화를 만들고 있다는 게 양 교수의 설명이다.

키워드4 : 소비자 편의

소비자 전문가인 박철 고려대 글로벌비즈니스대학 교수는 ‘소비자 입장에서의 편리함’을 이커머스 시대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로 꼽았다. 박 교수가 이야기하는 ‘편리함’에는 많은 의미가 내포되는데, 먼저 소비자에게 도움이 되면서 유용해야 한다. 동시에 소비자에게 ‘재미’를 주는 측면이 강조돼야 한다.

박 교수에 따르면 이커머스는 보이지 않는 비대면 서비스다. 그렇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상품을 구매하는 소비자에게 ‘신뢰’를 주는 것이 핵심이나 다름없다. 여기서 신뢰를 주는 여러 방법이 있는데, 이곳에서 ‘재미’가 대두된다. 예컨대 콘텐츠를 기반으로 재밌는 상품 소개 방법을 개발한 ‘블랭크’, 힙한 느낌의 온라인 리뷰를 제공하는 ‘스타일쉐어’ 같은 서비스가 박 교수가 주목한 서비스다.

박 교수는 “이커머스 생태계에서 소비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도도하게 밑에서 흐른다”며 “결국 이커머스 역시 인간의 삶에 잇대어야 하고, 이커머스 기업들은 스스로가 해결사로 고객들이 보다 편리하고, 쉽고, 편하고, 재밌게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마케팅에서 ‘리테일 섭스크립션’이라는 용어가 대두되는데, 리테일 자체가 통째로 구독경제에 들어올 수 있다는 의미”라며 “여기에 혁신의 기회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키워드5 : 합리적 규제

소비자 법률 전문가인 서희석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커머스 생태계의 건강한 발전을 위해서 ‘합리적 규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서 교수에 따르면 현재 이커머스 업계에서 진행되고 있는 입법 작업은 크게 두 가지 흐름으로 나눠 볼 수 있다. 하나는 ‘입점업자와 플랫폼 사이의 규제’, 또 다른 하나는 ‘플랫폼과 소비자 사이의 규제’다. 두 가지 모두 업계에 큰 영향을 줄 것이 자명하다는 게 서 교수의 설명이다.

입점업자와 플랫폼 사이의 규제에서 대두되는 이슈는 ‘투명성’이다. 과거 불투명했던 입점업체와 플랫폼 사이의 관계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공개된 내용 중에 불공정한 점이 있었다면 공정하게 가자는 것이 규제의 핵심 내용이라는 서 교수의 설명이다.

소비자와 플랫폼 사이의 규제에서는 ‘플랫폼 책임론’이 대두된다. 플랫폼 안에서 판매자가 판매한 상품을 구매한 소비자가 입은 손해에 대해 플랫폼이 책임지는 방향으로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 현 상황이다.

서 교수는 “이커머스 생태계가 갖고 있는 장점을 죽이고 일반 규제론으로 가면 이 산업 자체가 완전히 죽을 수도 있다. 장점을 최대한 잘 살리는 방향으로 규제를 진행해야 한다”며 “법학자 중에서는 이커머스 플랫폼과 판매자를 똑같다고 보는 시각이 존재하는데, 현실 세계에서 판매자와 플랫폼이 담당하는 역할은 다르다. 우리나라의 규제 체계가 이커머스 생태계를 과연 제대로 담고 있는지 먼저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엄지용 기자> drake@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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