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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페이커의 의자, 일할 때 써봤다

사회인이 되고 나서 좋은 회사를 다녀야겠다고 생각한 첫번째 계기는 의자였다. 네이버에 취재를 갔더니 말도 안 되게 편한 의자가 있었다. 이름은 허먼 밀러였다. 폭 싸이는 느낌도 아니고 단단한데 엉덩이도 아프지 않았다. 회사로 돌아오니(지금의 회사가 아니다) 가죽이 벗겨져서 그 부분이 굳은 의자가 내 팔과 엉덩이를 찔러댔다. 아마 항문 질환이 있으면 비명횡사했을 것이다.

얼굴도 같이 팔길 바란다

기자에게는 좌골신경통이 있다. 따라서 엉덩이의 통증을 분산시키기 위해 주로 의자를 뒤로 크게 젖혀 엉덩이의 아픔을 허리의 아픔으로 치환한다. 엉덩이는 아플 때 찢어질 것 같지만 허리는 어떻게든 참을 수는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값싼 의자를 사용해 가며 번 돈으로 마트에서 안마기를 천원 어치 사용하거나 가끔 마사지를 받는다. 요즘은 재택을 하는 빈도가 늘었기 때문에 중간중간 누워서 휴식을 하는데 잠깐 쉬고 시계를 보면 저녁이 되는 마법이 가끔 일어난다.

해결책으로 기자는 완벽한 육각수 모양을 자랑하는 벌집 구조의 젤리 방석을 사용한다. 중국 여행에서 가이드의 현란한 말발에 속아서 산 라텍스 방석도, 라텍스보다 뛰어나다고 히트맵까지 그려서 파는 메모리폼 방석도 큰 효과는 없었다. 솜 방석은 아예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여러 시행착오를 겪은 결과 젤리 방석이 제일 낫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렇게 두껍고 굉장하게 생겼다

그러나 젤리 방석도 문제는 있는데, 좌골 신경통이 거의 없다시피 하지만 방석이 높아서 허리는 더 아프다. 이것은 통증 돌려막기가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던 차에 페이커가 쓴다는 의자를 마주하게 됐다.

페이커가 누군가. 김연아·박지성보다 유명하다는 LoL의 마이클 조던, 아니 이제는 마이클 조던이 농구계의 페이커라는 별명을 붙여야 할지도 모른다. 플레이를 보면 오빠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신계의 인물이다. 이 의자의 브랜드는 시크릿랩, 페이커가 쓰는 모델은 T1 팀 전용 에디션인 T1 에디션이지만 의자 자체는 동일하다.

시크릿랩 타이탄 모델
시크릿랩 오메가 모델

대부분의 PC방 의자가 그렇듯 이 의자도 레이싱 카 시트의 형태를 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의 레이싱 카 시트보다는 가로 면적이 훨씬 넓다. 따라서 허리 옆부분을 잡아주는 영역이 등 전체를 화려하게 감싸지 않는다. 꼭 맞기보다는 넉넉한 사이즈에 가깝다. 등만큼은 크리스 햄즈워스만큼 광활한 입장에서(근육 있다고는 안 했다)는 만족스럽다.

의자가 비싼 대신 여러 부분을 조절할 수 있는데, 특히 팔걸이 조정하는 부분이 좋다. 팔걸이는 높이, 각도, 앞뒤 위치를 모두 조절할 수 있다. 모든 의자에 다 있는 높이 조절은 아주 높은 부분까지, 거의 책상 높이까지 높일 수 있다. 이만큼 높여서 게임하면 편하다. 그러나 이곳은 회사이므로 게임을 했다는 것은 독자 여러분과 기자만의 비밀로 해줬으면 좋겠다.

회사에서 이러고 있으면 게임 모드다. 암레스트와 책상 높이를 정확하게 맞출 수 있다

앞뒤 조절도 생각보다 쓸모가 있다. 그러나 더 쓸모있는 것은 각도 조절이다. 업무를 할 때는 11자 형태로 팔걸이를 두지만, 책을 읽을 때는 높이를 최대한 올리고 八의 형태로 팔걸이 각도를 조절하면 팔에 아무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가끔 이 모드로 키보드를 치기도 한다.

독서하는 지식인의 모습
팔걸이 각도가 세단계로 조절된다

의자의 높이 조절은 당연한 거고 등받이 각도가 카 시트만큼(165도) 제쳐진다. 누울 수 있을 정도까지 젖혀진다는 의미다. 사무실에서 낮잠을 잘 때의 용도로 사용하기 좋다. 물론 사무실에서 낮잠을 자려면 의자의 각도보다는 상사의 부재가 더 중요할 수 있다. 어느 날은 재택을 하다 오후에 사무실에 왔더니 상사가 이 의자에서 자고 있었다. 곧 이 의자를 뺏길 것만 같다.

상사가 의자를 탈취해 영상을 찍고 있다. 영상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의자가 온 뒤부터 술마신 다음 날 이런 사람을 꼭 볼 수 있다

놀라운 점이 있는데, 등받이를 젖힐 때 힘을 주지 않으면 의자가 아주 세게 허리를 때린다. 이건 아마 의자를 뺏은 상사에게 복수하는 용도가 아닐까 한다.

이외에도 의자 자체의 각도도 틸팅이 가능해서 리클라이너처럼 허리와 엉덩이 부분 각도를 고정해놓은 상태로 젖힐 수도 있다. 의자도 뒤로 젖히고 등받이도 뒤로 젖히면 마사지샵가서 처음 등을 누를 때처럼 뚜둑뚜둑 소리가 난다. 의자를 제대로 할 때는 잠금장치를 해제하고 등으로 세게 밀어야 하는데, 뒤로 민 뒤 앞으로 돌아올 때 세게 돌아오므로 뽀잉 하면서 튀어 오르는 느낌이 든다.

등받이와 의자를 모두 젖힌 상태다. 깊은 편안함이 느껴진다

기자에게 가장 중요한 건 그것보다 좌골신경통을 얼마나 방어할 수 있느냐다. 사실 젤리 방석보다 엉덩이 통증이 심하다. 다만 이 제품이 다른 제품들보다는 확실히 부담이 덜하다는 정도만 알아두자. 딱딱한 메모리폼을 사용해 푹신한 느낌은 아니지만 경험상 어설픈 푹신함보다는 딱딱한 것이 훨씬 낫다. 그리고 허리가 정말 편하다. 이 의자만 있다면 8시간 이상 근무도 너끈히 할 수 없다.

의자는 사실 저렴하지 않다. 한국의 긍지 페이커의 의자인데 저렴할 리가 있나. 일반적인 가정용 PC 의자의 대여섯배에 달하는 가격이다. 기자가 사용한 것 시크릿랩 타이탄(TITAN 2020 Series Black PRIME™ 2.0 PU Leather) 모델이고 타이탄 모델이 페이커 이상혁 님이 사용하는 의자다. 54만9000원의 가격이 책정돼 있다. 그것보다 조금 저렴한 모델인 시크릿랩 오메가(OMEGA) 모델도 있다. 두 모델은 엉덩이 부분의 형태가 조금 다르다. 오메가 제품은 엉덩이를 조금 더 감싸는 형식이다. 재질은 패브릭이나 폴리우레탄 등 다양한 것이 있는데 기자가 사용한 것은 블랙 무광 폴리우레탄 재질이다. 인조가죽 대부분이 번쩍이고 기름이 잘 묻는 편인데 이 제품은 신기하게 기름이 묻지 않는다. 이 역시 PC방 의자보다는 카 시트에 가까운 느낌이다.

타이탄 모델 전용 기능도 있다. 럼버 서포트라고 해서 등받이 아랫부분을 볼록하게 조절하는 기능이다. 의자 등 부분에 굳이 쿠션을 대는 사람들을 위한 기능으로, 의자 뒷부분의 다이얼로 조절한다. 그러나 거북목이 너무 심해서 바다로 돌아가는 게 빠른 기자에게는 평평한 쪽이 더 편하다.

실제론 앉은 상태에서 팔을 뒤로 뻗어 조절해야 등받이의 느낌을 알 수 있기 때문에 팔이 꺾인다
얼굴도 같이 팔기 바란다
평평할 때(왼쪽)와 볼록할 때(오른쪽)인데 생각보다 많이 튀어나오지만 사진에서 티가 나지 않아 속상하다

비싼 대신 여러 선택권이 있다는 게 특징인데, 다른 제품에는 거의 없는 사이즈 구분이 있다. 오메가 제품은 S, M, 타이탄 제품은 L 사이즈이며 키와 몸무게에 맞춰서 구매하면 된다. L사이즈만 해도 PC방 의자보다 충분히 크다. 유연성이 없는 기자가 PC방에서 한번도 성공하지 못한 양반다리를 할 수 있을 정도다.

목베게가 기본으로 딸려 오는데 보시다시피 비듬이 잘 붙는 재질이다

비싼 대신 5년의 보증기간을 제공한다는 것도 다르다. 한국 중소기업 평균 근속연수는 4.8년이다. 그러니까 회사에서 이 의자를 뺏기지 않을 경우 회사를 다니는 동안은 어떻게든 보증이 된다는 의미다. 물론 부서지는 것보다 뺏기는 게 빠를 가능성이 높다. 대기업 근속연수는 더 높으니 가능하다면 네이버에 다니자.

사실 이 의자 때문에 페이커 님이 게임을 잘 하는 건 아닐 것이다. 페이커는 포장마차 의자에 앉혀놓고 게임을 하라고 해도 다 씹어먹고 다닐 것이다. 그러나 페이커, 다른 프로 게이머들을 비롯한 우리 직장인 모두는 성과에 가기까지의 과정에서 의자를 사용한다. 의자 위에서 직장인은 성장하고 성과를 낸다. 그러니까 의자는 전쟁터에 나가는 직장인의 무기인 것이다. 그런데 대강 비슷한 모양, 대강 푹신한 쿠션감을 고르며 우리의 허리는 부서져 왔다. 전쟁에 나가려면 제대로 된 무기를 갖춰야 하는 것이 아닐까. 대강 만든 솜뭉치를 내던지고 무기를 장착하고 전쟁터에 나가 소환사의 협곡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회사에서 게임한 건 비밀로 해주기 바란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이종철 기자> jude@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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