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전국에는 113개의 농협 식품가공공장(가공사업소)이 있다. 이 공장들은 지역 농민들이 생산한 농산물을 원료로 다양한 식품을 제조하여 유통한다. 농산물의 수급조절을 통한 가격 안정과 국내 농산물의 부가가치 창출을 통한 수익 환원이 이 공장들의 목표다.

농협의 가공공장 중에서도 매년 상위권에 자리매김할 만큼 좋은 실적을 보이는 곳이 있으니 ‘영월농협 식품가공사업소(이하 영월 가공사업소)’다. 이 공장에서만 연 200억원 가량의 매출이 나온다. 농수축산신문의 보도(농협 조합장들, ‘조세감면 일몰 연장’·‘중소기업 지위 인정’·‘고향사량 기부금 제도 도입’ 요구)에 따르면 지역농협에서 운영하는 가공공장 113개소의 지난해 평균 매출액은 41억원인데, 평균치를 5배 가까이 상회하는 숫자다.

영월 가공사업소에선 ‘동강마루’라는 이름의 식품 브랜드를 운영한다. 동강마루 이름으로 100여종의 상품을 생산, 판매한다. 영월의 특산물인 ‘고춧가루’와 ‘장류(고추장, 된장, 간장)’, ‘벌꿀’을 활용한 제품들이 구색의 대부분을 이룬다.

영월농협 식품가공사업소의 모습. 공장 밖에는 다양한 종류의 장이 담긴 독이 보인다. 이 공장에서 ‘고춧가루’, ‘장류’, ‘벌꿀’, ‘곡분류’와 관련된 제품을 생산한다.

‘동강마루’만 있는 것은 아니다. 위탁생산도 영월 가공사업소 매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예컨대 아시아나항공, 대한항공을 포함하여 글로벌 10개 항공사에 기내식으로 공급되는 고추장을 이 공장이 생산한다. 풀무원, 오뚜기와 같은 식품기업의 고춧가루, 벌꿀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 또한 이 곳이다.

팔리는 상품의 조건

영월 가공사업소가 강조하는 ‘팔리는 상품’의 조건이 있다. 상품을 만들기만 한다고 그냥 잘 팔리는 것은 절대 아니다. 어설픈 상품 기획은 파괴적인 ‘재고’만 남긴다. 대부분이 유통기한이 존재하는 식품 특성상 안 팔리는 상품은 곧 비용이 된다.

잘 팔기 위해선 먼저 시장을 공부해야 한다. 누구에게 상품을 팔지, 어떤 판매채널에 판매할지 알아야 한다. 고객에 맞춘, 시장에 맞춘 ‘상품 기획’이 필요하다. 그렇게 생산한 상품을 고객에게 잘 팔기 위한 ‘스토리텔링’이 필요하다. 김대현 영월농업협동조합 식품가공사업소장(상무)은 이렇게 말한다.

“상품을 잘 팔기 위해선 고객에게 왜 이 상품을 사야 되는지 그 이유를 만들어줘야 합니다. 단순히 우리 고춧가루를 잘 팔아보자는 식의 접근이 아닌 우리 고춧가루는 이래서 다르다는 것을 고객에게 보여줘야 합니다. 심지어 고객이 생각지도 못한 구매 이유를 만들어줘야 합니다. 고객 입장에서 필요하지도, 원하지도 않았던 제품을 필요하도록, 원하도록 만드는 마케팅을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이야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매력적인 이야기로 고객의 마음을 얻어야 합니다”

요컨대 스토리텔링이다. 말이 쉽지 쉬운 게 아니다. 그렇다면 잘 팔리는 스토리란 무엇인가. 김대현 상무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정리해본다. 이 이야기가 정말 매력적인지, 실제 별 생각 없었던 상품까지 사고 싶어지는 지는 독자 여러분이 판단해 줄 거라 믿는다.

포도밭이 덕장이 된 사연

영월 가공사업소로 올라오는 길목에는 양옆으로 포도밭이 펼쳐진다. 바로 지금 이 시기, 포도는 한창 익어간다. 수확이 시작된다.

영월의 포도밭에는 ‘비가림 설비’가 설치돼 있다. 포도가 비를 맞으면 과실에 열과 현상이 생기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포도알에 금이 가고, 터진다. 열과 현상은 포도의 맛 또한 변하게 한다. 달달한 그 포도가 싱겁게 바뀐다. 이 비가림 설비는 포도의 열과 현상을 막기 위한 조치다.

8~9월 포도 출하시기가 지나고 다가오는 겨울. 포도나무의 가지가 하나둘 떨어진다. 굵은 대국 하나만 남는다. 다시 봄이 되면 포도나무에는 새순이 돋는다. 새순이 떨어지지 않도록 하고자 포도밭에는 굵은 와이어가 설치된다. 다시 수확기를 지나 겨울이 되면 이 공간에는 ‘와이어’만 덩그러니 남는다.

겨울은 포도농가의 비수기다. 김 소장에 따르면 영월에서 포도농사를 좀 짓는다 하는 농가는 4000~5000평 정도의 포도밭이 이 시기에 놀게 된다. 적게 짓는 농가더라도 보통 1000평은 된다. 이 땅도 마찬가지로 놀게 된다.

여기서 발상의 전환이 나왔다. 겨울철 놀고 있는 포도밭에 황태를 말리는 ‘덕장’을 만들면 어떨까. 이미 포도밭에 설치돼 있는 비가림 설비는 오염된 비와 눈을 막고 깨끗한 환경에서 황태를 건조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 겨울철 찬바람을 맞아 건조돼 황태가 될 동태(얼린 명태)는 이미 포도밭에 설치돼 있는 와이어줄에 널어두기만 하면 된다.

포도밭에서 건조되고 있는 동태(사진: 동강마루)

포도 농가는 황태 덕분에 더 많은 돈을 벌게 됐다. 포도 농가는 황태 한 마리에 150원 정도의 돈을 받는다. 1000평 포도밭에 건조할 수 있는 황태는 약 3만 마리다. 비수기인 겨울에 약 450만원의 추가 수익을 얻을 수 있게 되는 거다. 김 소장에 따르면 같은 1000평 땅에서 포도를 수확하면 약 1000만원의 수익을 얻을 수 있다. 농민 입장에선 포도밭의 절반가량의 매출이 황태덕장에서 나온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황태를 맛보게 된다.

영월 가공사업소는 연 15만 마리의 황태를 포도밭에서 생산한다. 이렇게 생산한 황태를 원재료로 ‘제수용 황태’, ‘국물내기 표고버섯 황태머리’, ‘황태채’, ‘황태볶음고추장’, ‘황태 미소해장국’과 같은 제품을 만든다. 이 스토리를 상품상세에 녹였다.

영월 가공사업소가 만든 황태 관련 제품들

김 소장은 “덕장이 필요한 황태 말리는 사업자, 겨울에 돈 나올 곳이 없는 포도 농가, 그리고 새로운 상품을 개발하는 농협 모두 좋은 사업이 될 것이라 생각해서 포도밭에 황태를 말리기 시작한 것”이라 설명했다.

멍멍이 심사위원

이렇게 난데없이 강원도 내륙에 위치한 영월에서 ‘황태’가 생산되기 시작했다. 포도는 전부터 영월 특산물로 이름이 높았지만 황태는 아니다. 새롭게 생산되는 상품이다. 그래서 영월 가공사업소는 황태를 활용한 다양한 제품 개발을 고민했다. ‘황태 고추장’이나 ‘황태 미소 해장국’ 같은 기존 영월 특산물인 장류를 응용한 상품들이 나타난 이유다.

김 소장이 전해준 황태를 활용한 한 상품 개발 사연이 재밌다. 영월 가공사업소의 파트너 중에는 황태를 활용해서 강아지 간식을 만들어서 납품하는 업자가 있다. 실제 황태는 강아지 간식의 원료로 각광받는다. 황태로 육포를 만들기도, 개껌을 만들기도 한다.

이 파트너 회사는 강아지 간식 개발을 위해 8명의 심사위원을 초빙했다. 심사위원의 앞에는 8개의 그릇이 놓인다. 서로 다른 레시피로 개발한 황태 간식들이 이 그릇에 동일한 중량으로 담긴다. 심사가 시작되면 심사위원들은 그릇에 담긴 간식 맛을 본다. 심사가 끝나면 그릇에 남아있는 황태 간식의 무게를 잰다. 그 중에서 가장 무게가 적은 한 그릇에 담긴 간식이 최종 개발 상품으로 선정된다.

이쯤 되면 예측했겠지만, 심사위원들은 사람이 아니다. 작은 개, 큰 개, 허연 개… 서로 다른 품종의 8마리의 견공들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한다. 이렇게 만든 강아지 간식이 있다면 어떠한가. 상품상세에 그 스토리가 녹아있다면 어떠한가.

김 소장은 “황태는 생각보다 다양한 음식들의 원료로 활용할 수 있다. 황태 덩어리만 큐브로 만들어 팔수도 있고, 여성들이 피부 미용에 좋다고 황태껍질 가공 식품을 그렇게 좋아하기도 한다”며 “황태로 상품을 만든다면 시장을 생각해야 한다. 어떻게 만들어야 잘 팔릴지 생각해야 한다. 통상 먹태보다 비싼 황태를 왜 먹어야 하는지, 굳이 왜 비싸게 사야하는지 그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영월에 부는 캠핑의 바람

코로나19 이후 불어온 캠핑 열풍으로 영월은 난데없는 특수를 누리고 있다. 영월이 젊은이들에게 캠핑의 성지로 각광받기 시작한 것이다. 영월 가공사업소는 시장의 움직임을 포착하고 움직였다. ‘영월 농산물’을 활용하여 캠핑 마니아들에게 반짝이는 아이디어 상품을 공급하면 어떨까 생각했다.

기자가 최근 방문한 영월 동강변에서 발견한 텐트. 그날도 요즘처럼 비가 오락가락 오는 날이었는데도 다리 밑에서 캠핑을 즐기는 이들이 있었다.

그래서 영월 가공 사업소가 최근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상품들이 있다. 하나는 ‘요리픽’ 시리즈다. 고추장(만능 양념장), 된장(된장찌개박사), 간장(만능 간장) 베이스의 세 개의 라인업으로 나온 이 제품은 캠핑장에서 간편하게 요리를 만들 수 있도록 만든 제품이다. 떡볶이를 만들고 싶으면 떡볶이와 오뎅, 파와 양파를 썰어 넣고 끓는 물에 ‘만능 양념장’을 풀면 끝이다. 된장찌개를 만들고 싶으면 물에다가 야채, 두부를 넣고 된장찌개박사 한 숟가락을 넣으면 끝이다. 제품 포장에는 만능 양념장으로 만들 수 있는 레시피 묶음이 포함돼 있다. 이 또한 영월 공장 포장 작업자가 한 땀 한 땀 감아서 작업한다.

영월농협이 최근 출시하고 있는 요리픽 제품 라인업과 제품 포장에 감긴 레시피북. 이 중 ‘된장찌개박사’와 ‘만능 간장’은 아직 시중에서 구할 수 없는 제품이다. 여기에도 레시피가 감겨 출시될 예정이다.

영월 가공사업소는 ‘간편 식품(HMR)’군도 강화하고 있다. 앞서 설명했던 ‘황태 해장국’처럼 간단하게 포장을 뜯고 냄비에 넣어서 끓이기만 하면 끝나는 제품들이다. 이 또한 캠핑장에서, 심지어 요리를 못 하는 사람도 쉽게 만들어서 먹을 수 있는 식품이다.

영월 가공사업소가 최근 출시한 제품은 지난달 24일 출시한 ‘영월 곤드레 다슬기 해장국’이다. 여기 들어가는 원료 ‘다슬기’는 모두 영월 동강과 서강에서 잡은 것이다. 또 다른 주요 원료인 ‘곤드레’ 또한 영월 특산물로 유명하다. 다슬기 액기스로 만든 국물 맛을 더해주는 ‘된장’ 또한 100% 국산콩을 원료로 강원도 전통 방식을 활용하여 만들었다.

HMR 제품 3종은 제품특성상 영월 가공사업소가 아닌 다른 공장에서 위탁생산한다. 원료는 영월이 공급한다.

김 소장에 따르면 이 제품은 식품 대기업도 쉽게 만들 수 없다. 왜냐하면 원료인 ‘다슬기’를 구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김 소장에 따르면 다슬기를 상품화할 만큼 많이 잡을 수 있는 지역은 국내에 ‘충북 괴산’과 ‘영월’밖에 없다. 이 중 합법적으로 어업허가권을 주고 다슬기를 딸 수 있는 지역은 전국에서 영월이 유일하다는 게 김 소장의 설명이다. 영월군은 다슬기 어업을 합법화하면서 영월의 다슬기가 관내에서만 소비되도록 막았다.

이 제품은 영월군의 유명 다슬기 해장국 식당과 제휴하여 만들었다. 영월 지역 상인의 노하우가 이 상품에 그대로 녹았다. 영월의 재료가 녹은 영월의 상품이다. 김 소장은 “영월군은 정부 지원을 받아 대한민국 장류 1번지로 발돋움하고자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고, 그 결과 중 하나가 다슬기 해장국”이라며 “곧 된장 누릉지와 청국장 개발도 들어가는데 여기에 들어가는 것도 영월의 장이 될 것”이라 말했다.

그는 또 “우리가 팔고자 하는 판매채널의 소비자가 젊은 사람이라면 그들의 니즈를 공략하는 것이 맞다. 캠핑장에서 누구나 간편하게 활용하여 요리를 할 수 있는 상품들을 개발한 이유”라며 “이 외에도 젊은 고객을 공략하기 위해 속이 쓰릴 때 먹을 수 있는 ‘허니스틱’과 같은 상품도 개발했다. 이건 간편하게 스틱 포장을 뜯고 쭉 빨아먹으면 된다”고 밝혔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엄지용 기자> drake@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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