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밝히자면 기자는 허리디스크 환자다. 2018년 여름 확진 판정을 받았고, 지금도 종종 허리를 치료하러 병원에 방문한다. 기자가 가끔 현장에서 물류 까대기를 했다지만, 그것도 다 옛날이야기다. 허리 디스크 환자가 된 뒤로 지속가능한 물류 노동은 불가능하다. 요즘 같이 종잡을 수 없이 비가 오는 날에는 허리도 종잡을 수 없이 쑤신다. 디스크 환자라면 다들 공감할텐데, 삶의 질이 급격하게 떨어진다.

뜬금없이 디스크 이야기를 꺼낸 이유가 있다. 기자와 같은 허리 환자도 물류 까대기를 할 수 있는 마법의 장비가 이름을 밝힐 수 없는 모 대형 유통업체 물류센터에 도입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오늘 경기도 오산에 왔다. 마법의 장비를 직접 착용하고 까대기를 해보기 위해서다.

물류센터 현장에 도입된 제품은 파나소닉이 출자한 사내벤처 아토운(ATOUN)이 개발한 제품 ‘모델Y’다. ‘외골격 로봇’이라고도, ‘웨어러블 슈트’라고도 부르는 녀석이다. 누군가는 외골격 로봇이라고 하면 영화 <아이언맨>이나 <리얼스틸>에 나오는 그것을 상상할 수 있겠다. 이런 제품도 없는 건 아니다. 박스 나르는 현장에서 만나기에는 너무 과하고 비쌀 뿐이다.

검색해보니 아토운(ATOUN)사가 개발하고 있는 제품 중에 NIO라는 코드명의 로봇이 있는데 이 아이가 풍기는 기운은 <리얼스틸>의 그것과 흡사하다. 처음엔 이 로봇을 차고 일할 줄 알고 신이 났었다. (사진 : 파나소닉)

기자가 물류 현장에서 건네받은 물건은 마치 배낭처럼 생긴 소소한 로봇(?)이었다. 착용법도 간단한데 로봇을 등에 매고 구명조끼를 착용하듯 벨트를 고정하면 끝난다. 이 로봇의 용도는 ‘근력 증강’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근력 중에서도 ‘허리’의 증강이다. 그러니까 로봇의 힘을 빌어 무거운 물건도 쉽게 들 수 있는 힘세고 강한 허리를 만들 수 있다.

아토운사의 모델Y 제원. 제원상 완충시 4시간 사용 가능한데, 실제 현장에서는 6~7시간 정도는 돌아간다고 한다. 중간중간 쉬는 시간이 있기 때문이라고. 로봇 완충까지 걸리는 시간은 한 시간으로 나름의 지속가능한 노동이 가능하다.(사진 : 로지스올컨설팅앤엔지니어링)

로봇의 제원상 무게는 4.5kg. 다소 무게감은 있는데, 동종의 웨어러블 로봇 중에서는 가벼운 편이라고 한다. 로봇 양옆에는 네 단계로 근력증강 강도를 조정할 수 있는 장치가 달려있다. 마치 마사지 기계의 강도를 올리듯 플러스(+) 버튼을 누르면 조금 더 로봇의 힘을 더 받아 무거운 물건을 수월하게 들어 올릴 수 있다는 뜻이다. 아쉽게도 이 로봇에 마사지 기능은 없다.

마치 마사지 기계 버튼처럼 생긴 양옆의 플러스(+)와 마이너스(-) 버튼을 눌러서 근력증강 강도를 설정할 수 있다.

로봇은 기자가 방문한 유통업체 물류센터 출고 과정이 시작되는 ‘컨베이어 라인’ 초입에서 일하는 작업자가 착용한다. 약 2개월 전부터 작업자 한 명에게 적용하여 테스트하고 있는 과정이다. 여기서 물류 작업자가 하는 업무는 파렛트에 쌓인 박스들을 들어올려 컨베이어에 올리는 단순 업무다. 단순하다고는 하지만 하루에 작업자가 처리하는 파렛트 숫자는 적게는 20개에서 많게는 40~50개가 넘는다고 한다. 통상 로봇이 현장에서 가동되는 시간은 하루 6~7시간인데 만만치 않은 노동량이다.

기자도 로봇을 착용하고 두 파렛트 분량의 박스를 옮겨봤다. 로봇의 근력증강 강도는 최대 단계인 4단계로 설정했다. 신기하다. 박스를 줍고 허리를 피는데 내가 피는 느낌이 아니다. 마치 누군가 강제로 허리를 들어 올려주는 느낌이다.

가끔씩 내가 이러려고 기자됐나 싶다.

솔직하게 말하면 기자가 옮긴 박스는 ‘과자 박스’다. 알다시피 과자 포장의 8할은 질소이기 때문에 무거운 게 아니다. 로봇 없이도 슥슥 옮길 수 있는 물건이라 큰 효과를 봤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래도 땀이 뻘뻘 났다. 이 로봇은 같은 물류센터에서도 ‘식용유’와 같은 무거운 품목들이 나갈 때 활약한다는 게 현장 관계자의 설명이다.

로봇이 도입된 이유

이 로봇은 로지스올컨설팅앤엔지니어링(이하 LCE)이 위탁 운영하는 유통업체 물류센터에 도입, 테스트를 지난 6월 말 마쳤다. LCE는 올해 1월부터 총 4개 로봇 제조사의 6가지 제품을 테스트하고 있다. 실제 물류현장에 도입된 로봇은 아토운의 모델Y가 최초다. 물류센터 현장의 박스 이적 및 적재 작업을 ‘웨어러블 슈트’가 도울 수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주목적이었다. 7월부터는 물류센터 위탁 운영사와 임대계약을 체결하여 상용화에 들어갔다.

LCE는 앞으로 물류뿐만 아니라 다양한 산업현장에 웨어러블 슈트를 도입하여 테스트한다는 계획이다. 예컨대 LCE는 허리를 계속해서 굽히고 일을 해야 하는 농업 현장에도 로봇을 도입할 계획이다. 농업 현장에는 같은 웨어러블 슈트더라도 허리를 지속적으로 굽히고 피면서 작업하는 물류 현장과는 다른 기능의 로봇이 필요하다.

최태호 LCE 오토메이션파트장은 “같은 웨어러블 슈트더라도 제조사별로, 제조사가 개발하는 제품별로 장단점이 극명하다”며 “이걸 실제로 써보지 않으면 물류현장에선 모를 수밖에 없는데, LCE는 현장 작업 특성별로 로봇의 용도를 쪼개서 적절한 로봇 모델을 발견하여 컨설팅을 통해 현장에 최적 모델을 제안, 공급하는 것을 사업모델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LCE는 웨어러블 슈트뿐만 아니라 AMR(Autonomous Mobile Robot)과 같은 자동화 로봇 테스트 또한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LCE가 첫 번째 테스트 로봇으로 ‘웨어러블 슈트’를 선택한 이유는 있다. 완전 자동화 설비는 기존 현장 레이아웃을 변경해야 하고, 도입에 오랜 시간이 걸려 비용이 많이 든다. 하지만 웨어러블 슈트는 그렇지 않다. 부담 없는 가격으로 실효성 검증이 가능하다.

최 파트장은 “자동화에 대한 한국 물류현장의 관심은 굉장히 높지만 아직까지 실효성 검증과 사업 활성화 과정은 더디다고 판단했다”며 “그래서 큰 비용이 들어가는 자동화 설비가 아닌 현장 작업자를 도우면서 공존할 수 있는 제품이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웨어러블 슈트에 대한 POC(Proof Of Concept)를 시작한 것”이라 설명했다.

‘생산성’은 오르니?

물류현장 담당자에게 있어서 중요한 건 ‘로봇’이 아니다. 그래서 로봇을 도입하면 물류센터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냐는 거다. 여기에 더해 ‘비용 절감’까지 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원래부터 인력을 구하기 어려웠던 물류현장의 분위기는 더욱 암울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자동화에 대한 물류업계의 관심이 몰리는 건 그야말로 필연이다.

먼저 생산성에 대한 질문부터 답하자면 올라간다. LCE가 약 2개월 동안 모델Y 로봇을 현장에서 테스트해본 결과 시간당 생산성은 평균 10~15% 정도 늘어나는 것으로 파악했다. 여기서 생산성의 기준은 로봇슈트를 착용한 작업자가 한 시간 동안 출고 컨베이어에 올리는 박스의 숫자다. 이 숫자가 종전 시간당 약 1600~1700박스에서 평균 14% 가량 올라갔다는 게 LCE측 설명이다.

물론 로봇을 도입한다고 바로 저 정도 숫자의 생산성이 나오지는 않는다. 아무래도 로봇 자체의 무게가 있기 때문에 처음 착용한 작업자는 기존보다 불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적응 기간이 끝난다면 생산성은 분명히 올라갈 수 있다는 게 LCE측 설명이다. LCE에 따르면 적응 기간은 통상 하루 6~7시간씩 3~5일 정도다. 물론 작업 환경과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빠르면 이틀, 늦어도 일주일 정도면 생산성 향상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최 파트장은 “모델Y 도입으로 인한 생산성 증가 등 정량적인 효과는 나타나는 것으로 확인했다. 이 외에도 로봇 도입에 따른 작업자의 피로 감소, 근골격 질환 예방과 같은 정성적인 효과가 분명히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며 “작업자 환경 개선과 같은 정성적 효과를 수치로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생산성 증대보다 더 큰 의미가 있을 것이라 본다. 그래서 우리는 이 로봇을 ‘웨어러블 슈트’나 ‘외골격 로봇’이라 부르기도 하지만 ‘어시스트 슈트’가 가장 적절한 명칭이라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LCE는 향후 현재 ‘허리’를 사용한 작업을 돕는 로봇뿐만 아니라 양팔의 근력을 증강할 수 있는 로봇도 도입을 계획하고 있이다. 해당 모델은 내년 초 도입 예정인데, 이렇게 된다면 물류 현장 작업자는 힘세고 강한 허리뿐만 아니라 강력한 팔 또한 얻게 될 전망이다.

그래서 얼만데?

어떻게 보면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이 로봇은 대체 얼마인가. ROI(Return On Investment)를 뽑으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인가. 아무리 좋은 로봇이라도 비싸면 소용없다. 자동화에 대한 니즈가 치고 오르는 와중에도 실제 국내 물류현장에서 자동화 물류센터를 보기 힘든 이유가 여기 있다.

LCE가 밝힌 모델Y의 현재 국내 판매가는 대당 1050만원이다. 물류업계 한 관계자에 따르면 3년 전까지만 해도 웨어러블 슈트 모델의 가격이 2000만원대에 형성돼 있었는데 많이 떨어졌다.

그렇게 LCE가 산출한 모델Y의 투자 손익분기점은 25개월에 나온다. 현장 작업자의 인건비를 월 300만원으로 가정했을 때 이 로봇은 월 약 42만원(생산성 14% 증대 기준)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로봇 공급가 1050만원을 이 42만원으로 나누면 25개월이라는 숫자가 도출된다. 요컨대 25개월 이후에는 로봇 투자에 대한 수익을 남길 수 있다는 이야기다.

물론 이건 단순 계산식이기 때문에 실제 현장에서 ROI 도출은 상황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예를 들어서 ‘가벼운 제품’을 주로 옮기는 물류현장에서는 웨어러블 슈트 도입이 큰 의미가 없을 수 있다. 굳이 로봇 도움이 없어도 사람이 곧잘 물건을 옮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속칭 ‘똥짐’이라고 불리는, 예를 들어서 타이어 같은 제품군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사람이 옮기기에는 무겁거나 번거로운 물건들이 많은 환경에서 웨어러블 슈트는 더욱 빛날 수 있다. LCE측에 따르면 실제 일본에서는 타이어 물류센터에 웨어러블 로봇이 도입된 사례가 있다고 한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여전히 물류 현장에 도입하기엔 로봇 가격이 부담스러울 수 있다. 그래서 LCE는 향후 이 로봇의 외부 판매를 위해서 ‘공급가’를 낮출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당장은 POC를 위한 시제품을 몇 대만 구매하여 사용하고 있지만 점차 시장의 수요가 늘어난다면 규모의 경제를 기반으로 공급가 인하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LCE측 예측이다.

LCE는 고객사가 로봇을 직접 구매하지 않고도 렌탈 형태로 필요한 만큼만 사용하고 금액을 받는 ‘RaaS(Robotics as a Service)’ 형태의 모델을 시작으로 사업을 하고자 구상하고 있다. 물류뿐만 아니라 제조, 농업 등 다양한 1~2차 산업 현장에서 로봇에 대한 수요가 있을 것이라 보고 시장 테스트를 지속하며 제품을 개선하고 있다.

최 파트장은 “로지스올 그룹의 계열사 한국로지스풀이 물류 장비 렌탈에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회사이기 때문에 우리는 로봇 또한 렌탈 공급 모델을 중심으로 비즈니스를 시작하고자 준비하고 있다”며 “렌탈을 한다면 유지보수 측면에서도 우리의 강점을 살릴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아차,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이 로봇에 허리디스크 치료 기능은 없다. 다만 디스크 환자도 두 파렛트 정도는 박스를 나르고 멀쩡할 수 있다는 건 확인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엄지용 기자> drake@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