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대한통운이 집배점(대리점)과 택배기사간 표준 계약서에 ‘물량축소 요청제’ 조항을 명문화 한다고 28일 밝혔다. 이제 CJ대한통운 택배기사는 자신의 배송물량을 줄이고 싶다면 집배점에 정식 요청해 협의할 수 있게 된다.

협의권을 CJ대한통운이 침해하진 않는다. 집배점과 택배기사 사이에서 알아서 결정하면 된다. 예컨대 택배기사가 집배점에 배송물량 축소를 요청할 경우 집배점은 인접 구역 등의 다양한 상황을 고려해 택배기사와 합의 절차를 진행한다.

택배기사가 굳이 물량 증가 및 작업시간 증가에 따른 부담을 감수하더라도 더 많은 물량을 처리해서 수입을 증가시키고 싶다면 그렇게 하면 된다. 반대로 수입이 일부분 줄더라도 배송시간을 줄이고 싶을 경우엔 배송물량 축소 요청을 하면 된다. 각각이 개인사업자 형태인 ‘특수형태 근로종사자’로 일하는 택배기사의 업태를 반영한 제도라는 게 CJ대한통운측 설명이다.

CJ대한통운 관계자는 “물량축소 요청제 이후에도 집배점과 택배기사가 협의를 해서 물량을 조정해야 한다. CJ대한통운 입장에서 물량을 줄여라 빼라 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다”라며 “기존에도 물량 협의는 있었지만 표준 계약서에 명시 없이 진행되던 것을 조금 더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계약서상에 관련 내용을 명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제도가 도입되면 택배기사들은 자발적 선택을 통해 배송 물량을 줄이는 대신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릴 수 있는 토대가 만들어질 전망”이라며 “업계 최초로 도입되는 물량축소 요청제가 택배업계 전반으로 확산될지 여부도 주목된다”고 전했다.

현장의 온도

사실 ‘물량축소 요청제’가 도입된다고 현장에서 크게 바뀌는 것은 없다. 여전히 집배점과 택배기사간 합의를 통해 물량 축소를 결정하기에 택배기사가 물량을 줄이고 싶다고 막 줄일 수 있는 게 아니다. 여기 더해 물량축소 요청제 도입 이전에도 택배기사의 물량 축소 요청 협의는 비교적 원활했다는 집배점측 주장이 나온다.

CJ대한통운 한 집배점장은 “요즘 CJ대한통운 대리점 소속 택배기사들의 분위기는 오히려 배송을 많이 못해서 안달”이라며 “우리 대리점 같은 경우도 바로 옆에 있는 택배기사가 나가서 내가 처리하는 물량이 늘어나길 바랬으면 바랬지, 먼저 내 물량을 줄이려고 하는 택배기사는 많지 않다”며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혹여 택배기사가 아프거나 부득이한 사정으로 인해 처리하지 못하는 물량이 발생하게 되면 집배점장 혹은 택배기사 동료들이 삼삼오오 나눠서 물량을 처리하는 게 일반적이라는 대리점측 관계자의 설명이다. 물론 상황에 따라서 택배기사가 개인 비용을 지불하여 ‘용차’를 구해서 물건을 처리해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 비용도 많이 줄어서 부담이 줄었다는 이야기가 함께 공유된다.

CJ대한통운 한 집배점장은 “예전에 한 건당 3000원 상당의 용차 비용이 요즘에는 수도권이면 1200~1300원 선에서 구하는 게 가능할 정도로 내려갔다”며 “택배기사가 통상 받는 배송 수수료에 몇백원만 얹히면 용차가 가능해진 건데 부담이 많이 줄었다”고 설명했다.

명문화의 의미

요컨대 이번 CJ대한통운의 ‘물량축소 요청제’ 명문화는 현장에서 큰 변화로 느껴지진 않는다. CJ대한통운 본사도, 대리점도 그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CJ대한통운 입장에서 ‘물량축소 요청제’ 도입은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택배기사 사망 사고와 관련한 악화된 여론을 타파하고 정부와 사회에 기업의 노력을 보여주기 위한 수단은 될 수 있다는 현장의 해석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CJ대한통운 내부 관계자는 “사실 물량축소 요청제가 명문화가 된다고 현장에서 달라지는 건 없다고 본다”며 “CJ대한통운 본사도 그것을 알텐데 굳이 언론 보도자료까지 내면서 소식을 알리는 이유는 대외적으로 이슈가 되는 사항에 대한 회사의 노력을 강조하려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 5월과 6월, CJ대한통운 소속 택배기사 두 명이 급성심근경색 등으로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택배현장 노동자의 근무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노동계에서 하나둘 나오고 있다.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은 28일 “택배노동자의 과로사가 계속 발생하는 이유는 코로나19로 인한 물량의 증가와 함께 장시간 고된 노동 속에도 휴식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택배노동자의 비참한 현실이 결합된 것”이라며 “택배노동자의 과로사가 연이어 발생하고 있음에도 정부와 택배사들은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며 논평했다.

실제 코로나19 이후 CJ대한통운을 포함한 택배업체들의 물동량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CJ대한통운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하루 평균 600만개 이상의 물량이 몰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CJ대한통운 택배기사 한 명이 처리하는 물동량 또한 코로나19가 한창이었던 3~5월 기준 많을 때는 20% 이상의 성장률을 기록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월 성장세는 7~8%로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물량은 폭발적이다.

하지만 택배기사의 숫자는 그만큼 늘지 않았다. CJ대한통운이 공식적으로 밝히는 택배기사의 숫자는 1만8000명~2만명 사이로 2019년, 2018년의 숫자와 비교해도 큰 변화가 없다.

CJ대한통운 관계자는 “그동안 택배시장에서는 전체 배송물량이 늘면서 택배기사 개인이 배송하는 물량도 함께 늘어났고 수입증가로 이어졌다”며 “반면 택배기사의 작업강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배송구역의 크기는 배송물량 증가에 따라 역으로 줄어들었다. 보다 작은 구역에서 보다 많은 물량을 배송하게 되면서 배송효율이 높아졌고 동시에 단위 구역당 수입도 증가하는 것이 최근 택배시장의 추세”라 전했다.

한편, CJ대한통운은 이번 물량축소 요청제 도입을 발표하면서 택배기사의 평균수익이 늘어났다는 점을 함께 강조했다. CJ대한통운에 따르면 2019년 택배기사들의 월 평균 수입은 전년대비 3.3% 증가한 597만원(연 7166만원)으로 집계됐다. 여기서 집배점 수수료, 운영비, 소득세, 유류비, 식대 등 각종 비용을 제외한 순수입은 월 449만원(연 5387만원) 수준으로 추정된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엄지용 기자> drake@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