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마켓 상품 들어왔어요?” 동대문 도매상에서 상품 입고 여부를 확인한 신상마켓 사입 담당자(동대문 용어 ‘삼촌’)가 스마트폰을 꺼내들어 앱 화면을 몇 번 터치한다. 곧바로 그의 허리춤에 찬 휴대용 프린터에서 바코드 라벨지가 출력된다. 그는 그렇게 출력한 바코드 라벨을 작은 봉지(동대문 용어 ‘소봉’)에 붙인다. 소봉에는 동대문 패션 상품을 소싱하는 이커머스 업체, 매장 등 소매상이 주문한 상품이 들어있다. 신상마켓이 올해 초 도입한 ‘동대문 물류 바코드화’ 프로젝트의 눈에 보이는 전부다.

동대문 도매상 앞에 모여 있는 소봉 뭉치에 바코드를 붙이는 신상마켓 사입자. 도매상은 매장에 방문한 사입자가 픽업할 상품을 알아보고 가져갈 수 있도록 각자의 방법으로 수기로 표기해 둔다. ‘신상마켓’이라고 적혀있는 봉투도 있지만, 소매상명으로 기입된 봉투도 있다. 여기서 사입자의 노하우가 있다면 봉투의 더미 속에서 자신이 픽업할 상품이 담긴 소봉을 실수 없이, 빠르게 잘 찾는 것이다.

누군가는 왜 굳이 이런 번거로운 짓을 하냐고 생각할 수 있겠다. 바코드, 그게 뭣이 중허냐고. 사실 바코드 없이도 잘만 돌아가던 동대문 생태계다. 하지만 신상마켓은 이 프로젝트에 큰 의미를 두고 있다. 신상마켓의 B2B 사입 물류 사업인 ‘신상배송’의 데이터화와 향후 물류 프로세스 효율화의 출발점이 된다는 평가다. 대체 왜.

대봉 포장 작업. 사입자는 여러 도매상에 방문하여 픽업한 소봉을 하나의 큰 봉투(동대문 용어 ‘대봉’)에 넣는다. 신상마켓의 경우 눈에 띄는 주황색의 자체 제작 대봉을 사용하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똑같은 하얀색 봉투를 동대문 상가 곳곳에다가 두면서 작업하는 사입자가 많기 때문이라고. 많지는 않지만 헷갈려서 혹은 의도적으로 남의 봉투를 가져가는 사람도 더러 있다고.

바코드 이전의 동대문

불과 작년. 그러니까 바코드 도입 이전, 신상마켓의 사입 담당자는 ‘종이’로 인쇄된 장표를 들고 다녔다. 종이에는 사입자가 그 날 방문할 도매상과 픽업해야 할 상품 정보가 나와 있다. 사입 담당자는 도매상을 돌면서 미리 준비한 필기구로 해당 매장에 방문했다는 표시와 특이 사항을 ‘수기’로 기입했다.

기자가 2018년 만난 사입삼촌의 업무 모습. 그의 손에 들려 있는 종이가 수기 장표다. 그는 도매상에 방문하면서 생기는 여러 이슈와 변화, 예를 들어서 재고 결품과 상품 예약(동대문 용어로 ‘미송’) 요청 여부와 같은 정보를 종이 장표에 수기로 체크했다. 지금도 대부분의 동대문 사입 물류는 이런 방법으로 진행되고 있다.

수기 프로세스로 인해 동대문 사입자들에게 추가된 업무가 있었으니 ‘데이터화’다. 수기로 체크한 정보를 엑셀 파일 혹은 시스템에 입력하는 작업을 별도로 진행해야 했다. 수기로 적은 정보와 동대문 도매상이 소봉 안에 넣어준 간이 영수증(동대문 용어로 ‘장끼’), 실제 픽업한 상품의 내용물을 확인하고 시스템에 입력을 했다. 이 일을 누군가 ‘사람’이 하기 때문에 별도의 운영 시간이 늘어나고, 당연히 사람이 하기 때문에 종이 정보를 시스템으로 옮겨 적는 과정에서 실수가 나올 수도 있다. 이게 다 비용이다.

이게 장끼다. 통상 도매상이 소봉 안에 넣어준다.

바코드가 바꾼 것들

신상마켓이 바코드를 도입한 이후 눈에 보이는 가장 큰 변화는 ‘종이’가 사라졌다는 거다. 신상마켓 사입 담당자는 앱을 통해 그 날 방문할 매장과 상품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휴대용 프린터로 출력한 ‘바코드’에는 해당 매장에서 각 소매상으로 배송되는 상품 정보, 픽업 시점 등의 데이터가 담긴다. 혹여 매장에 재고가 없다면 ‘사입 실패 처리’, ‘미송 요청’과 같은 행동도 수기가 아닌 앱상에서 모두 처리가 가능하도록 했다.

신상마켓 사입자앱 구동화면. ‘오늘 사입’을 누르면 그 날 사입자가 방문해야 할 도매상과 픽업할 상품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앱상에서 ‘바코드 인쇄하기’를 누르면 블루투스로 연동된 휴대용 프린터에서 곧바로 바코드를 출력할 수 있다.

이 말인즉 기존 수기로 진행했던 ‘데이터화’의 실수를 상당 부분 줄일 수 있다는 거다. 더군다나 종전 확인하기 쉽지 않았던 상품의 ‘픽업 시점’과 ‘물류센터 입고 시점’ 데이터 또한 명확하게 체크가 가능하다. 그간 명확하게 보이지 않았던 동대문 물류의 ‘가시성’ 확보가 바코드화를 통해 가능해진다는 거다. 그 전까지 측정조차 제대로 안 됐던 ‘실물 정보’와 ‘전산 정보’의 연동, 요컨대 정물일치를 만들 수 있는 시발 데이터를 만들었다는 데 큰 의의를 갖는다는 신상마켓측 평가다.

예컨대 어떤 이유로 도매상 픽업을 했다고 표기된 상품이 사라졌다고 해보자. 종전에는 이 상품이 분실된 것인지, 사입자가 깜빡하고 도매상에 방문을 안한 것인지, 재고가 없어서 가지고 오지 못한 것인지 명확하게 알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제 데이터를 기반으로 최소한 어떤 특정 시점에 픽업이 진행됐다는 사실은 알 수 있다. 만약 바코드화가 완료된 상품이 물류센터에 입고되지 않았다면, 중간에 ‘분실’이나 ‘바코드 망실’ 같은 이슈가 생겼을 것으로 예상 가능하다.

정창한 신상마켓 CSO는 “기존에는 도매상에 문의를 하기 전까지 특정 상품의 재고가 있는지 없는지 가시성을 확보하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며 “그런데 이제 현장 작업자가 주문건에 대한 사입 성공, 혹은 사입 실패에 대한 데이터 로그를 실시간으로 남기기에 그 순간 재고 정보를 파악할 수 있다”며 바코드화의 의의를 설명했다.

신상마켓의 대봉 픽업 작업 및 분류를 준비하기 위해 물류센터에 쌓인 대봉들의 모습. 사입자는 소봉 합포장 작업이 끝난 여러 개의 대봉을 인근에 주차된 픽업차량까지 운반한다. 그렇게 차량에 실린 대봉들이 인근 물류센터로 이동한다. 물류센터로 이동한 대봉들은 각각의 소매상들에게 전달될 상품으로 분류돼 그날 오후 택배차량을 통해 출고된다. 신상마켓의 경우 픽업 효율화를 위해 최근 동대문 도매시장 바로 옆에 물류센터를 구축했다.

바코드가 바꿀 것들

물론 당장 신상마켓이 바코드를 도입했다고 물류센터 생산성이 엄청나게 치솟은 것은 아니다. 실질적인 생산성 향상까지 이어지기 위해선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는 신상마켓측 설명이다. 하지만 신상마켓이 바코드화를 시작으로 그리고 싶은 그림은 명확하다. 당장 이룬 것보다 앞으로 만들어 나갈 것이 더 많다는 설명이다.

첫 번째는 동대문 물류의 오랜 숙제로 꼽혔던 ‘언제 들어올지 모르는 재고’ 문제의 해결이다. 동대문 도매상이 충분한 상품 재고를 ‘구비해두고’ 장사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이슈다. 그래서 동대문 사입자가 방문하더라도 재고가 없는 ‘결품’ 문제가 다발한다. 도매상은 언제 다시 오라고 이야기를 하기도, ‘주문 예약’을 받기도 하지만 이 또한 절대적으로 맞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사입자는 최대한 상품을 빨리 받기 위해 ‘매일매일’ 도매상에 방문하곤 한다. 비효율이다.

신상마켓은 동대문 시장의 태생적인 ‘재고 결품’ 문제를 바코드로 확보한 데이터로 풀고자 한다. 실마리는 ‘도매상의 상품 출고시점’ 데이터에서 찾았다. 이제 신상마켓은 어떤 도매상은 비교적 출고가 빠르고, 어떤 도매상은 재고 결품 문제가 다발하는지 시스템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정보를 통해 출고가 빠른 도매상에게는 일종의 이익을 주는 방법으로 더 많은 소매상에게 상품을 팔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반대로 재고 결품이 잦은 도매상에는 ‘패널티’를 주는 것 또한 검토한다는 설명이다.

정 CSO는 “신상마켓은 플랫폼이고, 전국에 있는 수많은 소매사업자가 입점해서 트래픽을 만들고 있기에 가능한 방법”이라며 “추후 정책과 기술적인 부분을 고려하여 동대문 도매상의 결품 문제를 풀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신상마켓 물류센터 작업자는 소봉별로 들어있는 상품과 영수증(장끼), 소봉에 들어있는 실물 상품을 대조하고, 시스템에 바코드 데이터를 옮긴다. 방법은 간단하게, 바코드를 스캔하면 끝이다. 이것을 종전에 누군가 수기로 옮겼다는 이야기다.

신상마켓이 두 번째로 하고 싶은 것은 ‘자동화’다. 동대문 도매상 지근거리에 최근 구축한 물류센터에 아마존의 키바와 같은 AGV(Automotive Guided Vehicles) 시스템을 올해 하반기에 넣을 계획이라는 설명이다. AGV는 GTP(Goods To Persons) 방식의 물류 로봇으로 상단에 ‘랙’을 적재하여 상품을 싣고 이동한다. 작업자가 굳이 물류센터를 배회하면서 피킹 업무를 하지 않아도 되도록 지원한다. 이게 가능하려면 당연히 어떤 랙에 어떤 상품이 들어가서 어떤 소매상에게 출고되는지 알아야 되는데, ‘바코드화’가 이를 위한 기반 데이터를 제공한다.

정 CSO는 “기존 대형기업들이 진행하는 수십억원대 물류 투자는 추후 물류 프로세스 변경에 있어 유연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했다”며 “앞으로 신상배송 비즈니스가 어떻게 변화할지 우리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모듈화된 투자가 가능하다는 판단에서 AGV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신상마켓이 동대문 바코드 도입과 함께 추진한 것이 분할 입고다. 과거에는 동대문에서 사입하는 물량 전체를 차량에 모아서 한 번에 신상마켓 물류센터까지 옮겨서 검수 및 분류작업을 했다면, 이제는 오전 1시부터 오후 5시까지 한 시간 단위로 입고 작업을 진행한다”며 “업무 프로세스를 바꾼 이유는 분류 작업 시간을 서둘러서 택배 출고 시간을 종전 오후 4시에서 오전 7시~9시 사이로 앞당기기 위해서다. 당일 택배와 연계하여 소매상에게 전달하는 물류 프로세스를 하루 줄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마지막 세 번째 의미는 풀필먼트와 크로스보더 이커머스 사업을 위한 준비 작업이다. 신상마켓은 현시점 보유한 역량인 국내 소매상까지의 물류를 ‘최종 소비자’까지 배송해주는 형태인 풀필먼트로 확장하고자 준비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한국 동대문 도매상이 갖춘 패션 상품의 글로벌 진출을 돕는 크로스보더 이커머스 비즈니스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고자 한다. 사실 일부 상품을 해외로 배송하는 테스트는 이미 진행되고 있다.

풀필먼트와 크로스보더 이커머스가 본격화 된다면 당연히 신상마켓의 물류 난이도도 치솟아 오른다. 현재 하루 8000개의 소봉을 출고하는 프로세스가 소봉에 들어있는 상품 단위로, 혹은 서로 다른 소봉에 들어있는 상품을 합포장하여 개별 고객에게 출고되는 복잡한 형태로 바뀐다. 여기에 크로스보더 이커머스가 더해진다면 그 난이도는 글로벌까지 이어지기에 더 높아진다.

여기서 바코드는 복잡해진 공급망 안에서 동대문 상품의 가시성을 확보하는 데 역할을 하게 될 전망이다. 정 CSO는 “동대문 패션 상품이 물 건너 이동하기 위해서는 재고 가시성이 필수다. 없으면 답이 없다고 판단했다”며 “그래서 바코드화를 준비한 것이고 여기 더해 특정 경로 주문에 대한 재고 우선 배분이나 일정 수량 이상을 보장 판매하도록 하는 방법들을 구상하며 글로벌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엄지용 기자> drake@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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