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석의 입장] 내가 넷플릭스를 오해했구나
최근 넷플릭스코리아 관계자와 잠시 미팅을 할 기회가 있었는데, 흥미로운 이야기를 몇개 들었다. 그의 이야기를 간단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아래와 같은 내용이다.
“넷플릭스는 플랫폼이 아니다”
“넷플릭스에는 AI가 없다”
“넷플릭스는 테크 기업이 아니다”
나에게는 이와 같은 이야기가 낯설게 느껴졌다. 넷플릭스에 대한 나의 관점이 잘못됐었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다.
넷플릭스는 플랫폼이 아니다
나는 지금까지 넷플릭스를 당연히 플랫폼이라고 생각했다. 플랫폼이란 공급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장을 만드는 비즈니스다. 넷플릭스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유한 콘텐츠 공급자와 시청자를 연결하는 장이라고 생각했다.
일반적으로 플랫폼은 쉽게 독점화된다. 플랫폼에 참여하는 이들이 많아질수록 가치가 늘어난다는 네트워크 효과 덕분이다. 당연히 넷플릭스도 성공한 플랫폼이 되어서 시장을 독점할 계획일 것으로 생각했다.
이 때문에 넷플릭스가 오리지널 콘텐츠를 다수 만드는 것이 나는 다소 의아했다. 오리지널 콘텐츠에 대한 투자가 늘어나면 외부 콘텐츠를 수급하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예산이 오리지널 콘텐츠에 집중되기 마련이고, 외부 콘텐츠는 넷플릭스 안에서 오리지널 콘텐츠에 비해 소외될 수 있다. 이로 인해 콘텐츠 업체들을 넷플릭스 파트너가 아니라 경쟁자로 만들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가 다수 등장한 이후 디즈니는 디즈니플러스라는 자체 서비스를 만들었다.
그런데 애당초 넷플릭스는 플랫폼이 목표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넷플릭스는 궁극적으로 오리지널 콘텐츠에 더 집중해 나가는 것이 목표”라고 덧붙였다. 넷플릭스는 디즈니나 HBO 등과 콘텐츠 경쟁을 벌일 계획이었던 것이다.
“넷플릭스에는 AI가 없다“
기술을 취재하는 나같은 기자들에게 넷플릭스가 유명해진 것은 추천 시스템 때문이다. 넷플릭스는 데이터 분석을 가장 잘 하는 회사로 알려져있다. 요즘은 데이터분석 기술은 AI와 한몸처럼 여겨진다. 그런데 의외로 넷플릭스는 AI 기술을 잘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넷플릭스 추천의 핵심은 A를 본 이용자에게 B를 추천하는 것이다. 이렇게 추천하기 위해 넷플릭스는 이용자들을 수천 개의 그룹(커뮤니티)으로 나누고 있다. 같은 커뮤니티에 있으면 같은 영화를 좋아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다. 이 과정이 알고리즘에 의해 진행되지만, AI는 아니라는 설명이다.
오히려 넷플릭스에는 수작업이 많다. 넷플릭스에 올라온 영화나 드라마에는 수없이 많은 태그가 붙어있다. 제작국가, 감독, 배우, 장르 등 기본적인 태그가 아니라 해피엔딩인지 새드엔딩인지, 기분이 좋아지는지 나빠지는지, 얼마나 잔인한지, 성적인 내용은 얼마나 나오는지 등 다양한 주제의 태그가 붙어있다.
이 태그를 붙이는 일은 철저히 수작업으로 이뤄진다. 새로운 콘텐츠가 올라오면 넷플릭스의 직원이 감상하고 가이드라인에 따라 이 태그를 붙인다. 이 가이드라인만 36페이지 분량이라고 한다.
이 태그들은 콘텐츠를 설명하는 메타데이터가 된다. 이후 이 메타데이터를 기반으로 넷플릭스는 자신의 회원들이 어떤 콘텐츠를 좋아하는지 분석하게 된다.
“넷플릭스는 테크기업이 아니다“
몇년전까지 FANG이라는 표현이 IT업계에서 유행한 적이 있다. 페이스북(F), 아마존(A), 넷플릭스(N), 구글(G)의 머릿글자를 따서 만든 표현으로, 하드웨어의 시대가 가고 IT 기반의 플랫폼 시대가 왔음을 보여주기 위한 용어였다.
그러나 요즘은 이 표현을 잘 안쓴다. 대신 GAFA(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애플)라는 표현을 쓴다. FANG에서 넷플릭스가 빠지고 애플이 들어갔다.
넷플릭스는 왜 FANG에서 빠졌을까? 넷플릭스 영향력이 약화되어서? 그렇지 않다. 넷플릭스의 영향력은 날이 갈수록 커져가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에는 더욱 그럴 것이다.
넷플릭스가 FANG에서 빠진 것은 페이스북, 아마존, 구글 등 IT 기업과는 결을 달리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테크기업이라고 정의할 수 있지만, 넷플릭스 입장이 좀 다르다. 넷플릭스에 기술이란 시청자들에게 콘텐츠를 잘 전송하기 위한 수단일 뿐, 비즈니스의 본질이 아니다.
예를 들어 넷플릭스는 AWS 클라우드 위에서 서비스 되고 있다. 넷플릭스 비즈니스의 본질이 기술이었다면 서비스의 기반이 되는 IT인프라를 남의 손, 특히 경쟁사의 손에 맡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스스로를 어떻게 정의내리느냐는 전략에 큰 차이를 가져온다. 그 정의에 따라 기업이 갖고자 하는 경쟁우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기술 회사로 정의하는 회사는 차별화된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회사의 자원을 최우선 분배할 것이다. 그러나 넷플릭스는 스스로를 콘텐츠 기업이라고 정의하기 때문에 차별화된 콘텐츠를 수급하는 데 자원을 최우선 투입한다.
그런 점에서 넷플릭스는 아마존 구글 애플과 같은 선상에서 볼 것이 아니라 디즈니, HBO,폭스 등에 대한 관점으로 봐야겠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심재석 기자>shimsky@byline.network
어찌보면 겸손해 보이기 까지 하는군요. Netflix tech blog 보면 사실 내용이 업청나기 때문이죠.
이글을 보기전까지, 넷플릭스는 좋은 플랫폼 기업이라고만 생각했는데, 편견을 깨뜨리게 되었습니다.
알고리즘 뒤에는 사람의 노력이 있다는 점두요.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윗분 말처럼 테크 기업이 아니라 하기엔 테크 기업 이상의 서비스 경험을 제공하고 있는지라 겸손한 기업으로 보여지네요. ㅋㅋㅋ
오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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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코로나19 이후에는 더욱 그럴 것이디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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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스키님 기자 잘 읽고 있지만, 이번 기사는 공감하기가 힘드네요 ㅎㅎ
넷플릭스는 플랫폼 기업입니다. 다만 플랫폼 경쟁이 치열해지다보니 차별화를 위해 오리지널 콘텐츠 투자를 늘리는 것 뿐이고, 본질적으로 플랫폼 경쟁에서 뒤지지 않는 것이 본질입니다. 플랫폼 간 차이를 결정하는 것이 콘텐츠니까요
또한 넷플릭스의 장점으로 보여주는 것이 큐레이션인데, 7만여 영상을 구분해주는 기술에 수작업이 들어간다고 AI기술이 없다고 단언하기에 더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ㅎㅎ
테크기업 정의는 하기 나름이기 때문에 큰 의미는 없다고 보는데… 작명의 차이라고 여겨집니다. 넷플릭스가 클라우드를 선택한건 전략적인 선택이지, 아마존 클라우드를 쓰는걸 테크기업이 아니라는 근거로 주장하기엔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넷플릭스가 빠진건 급의 차이 아닐까요? 넷플릭스는 애플 시가총액의 1/8 수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