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셨겠지만 저는 안경테 수집을 좋아합니다. 지금 집에는 총 6개의 서로 다른 안경테가 있고, (술 먹고) 잃어버린 것을 포함하면 그 숫자는 10개로 늘어납니다. 갑자기 슬퍼지네요. 미안하다, 젠틀몬스터. 일본에서 만난 카네코안경 한정판도 이제 안녕.

온라인이 오프라인을 무섭게 잠식하는 시대라고 하지만, 저는 안경테라면 무조건 오프라인에서 삽니다. 그 이유는 비교적 명확한데 막상 껴보면 안 어울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처럼 얼굴이 큰 사람은 일단 안경테도 커야 합니다. 누군가에겐 정말 커다란 동그란 안경이 저 같은 사람한테는 개화기 감성을 만들어냅니다. 큰 얼굴이 더 커 보입니다.

그렇다고 안경 구매에 온라인을 이용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틈틈 패션 유튜버들의 영상을 보고 있는데, 왜 이리 예쁜 안경이 많은가요. 몇 달 전에도 그랬습니다. 패션 유튜버 최겨울님 영상을 보다가 그가 끼고 나온 안경을 보고 한 눈에 반했습니다. 통상의 뿔테처럼 생겼지만 개성 있습니다. 이펙터(EFFECTOR)라고 하는 일본 하우스안경 브랜드인데 제 마음 속에 품고 있는 록스피릿을 건드리는 아이덴티티도 맘에 듭니다. 브랜드명인 이펙터는 기타 음향 장비로 쓰이는 그 이펙터 맞고, 모델명도 이펙터 카테고리명을 그대로 차용했습니다.

하지만 온라인에서 맘에 든다고 바로 살 수는 없습니다. 앞서 말한 그 이유 때문입니다. 이 안경이 최겨울님이 착용했을 땐 어울릴 수 있는데, 제가 끼면 별로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쇼루밍’이라는 것을 합니다. 안경이 입고된 오프라인 매장을 방문해서 먼저 착용해 보고, 저한테 잘 어울리면 그 때 가서 구매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가격표인데 온라인보다 오프라인이 비싸면 굳이 오프라인 구매를 고집하지 않습니다. 온라인으로 택배 주문해도 내일, 모래면 오는 훌륭한 나라에 살고 있는 걸요.

제가 오프라인 매장에서 구매한 안경은 처음 온라인에서 본 최겨울님이 착용한 이펙터 ‘부스터’ 모델이 아닙니다. 막상 안경점에 가보니 더 예쁜 모델이 있더라고요. 정확히 말하면 제 눈에 보기에 저와 더 잘 어울려 보이는 모델이겠죠. 20분 이상 고민할 정도로 경합이 붙었는데 결국 구매한 모델은 같은 브랜드의 ‘퍼즈 Limited’ 모델입니다.

저만 그런 줄 알았는데 나름 안경 구매에 오프라인 쇼룸이 주는 영향은 꽤 큰가 봅니다. 데이비드 벨(David R. Bell) 와튼스쿨 마케팅 교수 외 2명이 2018년 MIT슬론 비즈니스 리뷰에 기고한 글(The Store Is Dead- Long Live the Store)에 따르면 미국 온라인 안경점 와비파커(Warby Parker)가 쇼룸을 새로 오픈한 지역의 신규 고객 구매는 온오프라인 막론하고 통상 7% 증가하는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반면, 쇼룸의 영향으로 기존 온라인 채널을 통한 신규 구매자 비중은 75%에서 67%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안경점에 들어선 ‘큐레이션’

제가 안경을 구매하는 기준은 별거 없어요. 과하지 않으면서 독특하고, 동시에 나와 잘 어울리는 안경. 쓰고 보니 굉장히 어려운 기준인 것 같은데, 그래서인지 애써 발품을 팔고도 아무 것도 사지 않고 돌아오는 안경점도 생각보다 많죠.

또 다른 문제는 안경 브랜드가 원체 많아서 이 중 나와 어울리는 안경이 무엇인지 찾는 것부터 난감하다는 겁니다. 제 얼굴에 맞는 안경 브랜드를 발견하는 것부터가 ‘발품’과 ‘노력’과 ‘시간’이 듭니다. 그런 고민을 SNS에 공유하자 한 지인이 신선한 오프라인 안경점이 있다고 소개해주더군요. ‘플로브(Floev)’라는 곳입니다.

플로브는 개인 취향과 감성에 맞는 여러 하우스 안경 브랜드를 큐레이션 해줍니다. 다양한 안경을 추천받고, 브랜드 스토리를 듣고, 직접 써보고 구매할 수 있는 곳이죠. 이곳 시스템이 꽤나 독특합니다. 먼저 온라인을 통해 ‘설문조사’를 진행합니다. ‘성별’, ‘나이’, ‘평소 시력’, ‘안경을 착용하면서 느낀 고민’, ‘평소 착용하는 안경의 모양’, ‘나를 표현하고 싶은 이미지’, ‘추천받고 싶은 안경 모양’, ‘착용하고 싶은 안경테 색상’, ‘선호하는 가격대’ 등을 먼저 체크하고 방문 예약을 합니다.

플로브 사전 설문조사 내용 일부 발췌. 저는 플로브 설문조사에 전문적이고 지적인 이미지를 풍기는 동그란 안경을 찾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갖고 있는 안경 대부분이 선이 강하다 보니 행사 진행이나 인터뷰 자리에 나서 사용할 데일리 안경이 필요했기 때문이죠. 편견이겠지만 괜히 지적인 이미지하면 동그란 모양이어야 될 것 같았습니다.

안경점에 방문하면 전문 상담사가 설문조사 결과에 맞춘 안경을 여러 개 추천해줍니다. 온라인보다 비싸면 당연히 안 살 저 같은 사람을 고려해서 나름의 제휴 할인율도 적용해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인공 지능 아닌 사람 지능의 개인화 추천이 연계된 큐레이션 커머스라 볼 수 있겠습니다.

플로브에서 추천 받은 다양한 안경들. 예쁜 브랜드가 참 많았는데 결국 구매하지 않은 이유는 1번이 기존 제가 보유하고 있는 안경테와 컨셉이 충돌해서, 2번은 보기엔 예쁜데 껴보니 안 어울려서입니다.

하지만 저는 여기서 만족스러운 안경을 찾지는 못했습니다. 플로브의 문제는 아닙니다. 추천받은 안경은 고급스러웠고, 현장 직원의 친절한 설명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하지만 안경 브랜드, 특히나 일본산 하우스 안경 브랜드 몇몇이 갖는 특징인데 저처럼 큰 얼굴을 배려해주지 않습니다. 보기만 하면 정말 예쁜 안경이, 제가 끼면 왜인지 어색하고 큰 얼굴은 더 커 보입니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다음에 또 방문하겠다는 메시지를 남기고 아무 안경도 구매하지 않고 나왔습니다.

현장에서 만난 플로브 직원은 “코로나19 여파로 아무래도 평소보다 브랜드로부터 들어온 안경 재고가 그렇게 많지 않다”며 “다음번에 방문하시면 조금 더 많은 디자인을 보여드릴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온디맨드 안경이 있다고?

그러다가 최근 만난 또 다른 안경점이 있습니다. 페이스북 광고에서 만난 ‘브리즘(breezm)’이라는 업체인데 “내 얼굴에 맞는 안경을 설계해 보세요”라는 캐치프레이즈가 와 닿았습니다. 이 곳이라면 저 같은 사람까지 배려한 안경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을 품고 충동적으로 방문 예약을 신청했습니다. 방문 예약까지는 앞서 설명한 ‘플로브’의 프로세스와 동일합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곳은 ‘설문조사’를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간단하게 방문하고 싶은 오프라인 매장 위치와 시간을 선택하면 끝납니다. 본격적인 차이는 매장에 방문하고부터 느낄 수 있습니다. 굉장히 디지털스러운 로봇팔 앞에 사람을 앉히는데 이 로봇팔에 부착해둔 스마트폰이 상하 좌우로 움직이면서 방문자의 얼굴 크기, 눈, 코, 입의 형태를 3D 스캐닝으로 측정, 분석합니다. 막상 해보면 심히 부담스러운데 다행히 그 시간은 그렇게 길지 않습니다. 몇 분이 채 안 걸립니다.

이런 기계를 사용해서 제 얼굴을 전반적으로 스캐닝합니다. 매장 직원은 그렇게 분석한 결과를 대시보드로 뽑아내 태블릿을 통해 고객에게 설명해줍니다. 사진은 실제 제 얼굴 분석 데이터입니다.

3D 스캐닝이 끝나면 제 얼굴 형태로 산출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분석한 결과를 매장 직원이 설명해줍니다. 역시나 제 얼굴은 브리즘에 방문하는 여타 일반인 데이터에 비해서 거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전 잘 몰랐는데 눈동자 사이 너비도 일반인 보다 조금 넓은 것으로 나타났네요.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인데 숫자로 분석 당하니 더 슬퍼집니다.

사람 직원의 데이터 분석 및 설명이 끝나자 곧바로 태블릿에는 제 얼굴 형태 데이터를 기반으로 로봇이 뽑아낸 3개의 추천 안경 디자인이 노출됩니다. 디자인은 서로 다르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모두 브리즘에서 판매하는 안경 사이즈 중 가장 거대한 사이즈7입니다. 이렇게 제안 받은 안경 프레임 디자인이 좋다면 여기에 색상을 입히고, 안경 다리 디자인과 색상을 결정해서 주문하면 됩니다.

브리즘 오프라인 매장에는 디자인마다 서로 다른 7개 사이즈(1~7)의 재고를 구비해두고 있습니다. 제가 로봇으로부터 추천 받은 안경테는 모두 가장 큰 7 사이즈 모델이었는데, 노파심에 한 사이즈 작은 같은 디자인도 써봤는데 안 어울리더군요. 사진은 브리즘 여의도점에서 만난 사이즈별 안경 보관함과 로봇으로부터 추천 받은 안경 디자인. 사진 가장 오른쪽 안경 디자인은 로봇 아닌 사람 직원이 추천해준 건데 이것도 가장 큰 사이즈입니다.

안경 프레임 색상은 총 15가지, 안경다리는 두 가지 색상을 선택할 수 있는데요. 여기는 로봇이 추천해주지 않습니다. 매장 직원이 추천해주기도 하고, 제가 고르기도 하는 감성의 영역입니다. 저는 녹색빛이 감도는 ‘카키 그레이’ 색상을 선택했습니다. 안경다리는 실버와 골드 중에서 선택할 수 있는데, 골드는 좀 부담스러워 실버로 했고요.

안경 프레임과 안경다리 디자인과 색상은 나름의 온디맨드가 가능한 영역입니다. 브리즘은 이미 만들어놓은 안경 프레임 디자인을 제안하기에 완벽한 온디맨드 제조까지는 아니지만, 모듈별 디자인 및 색상 조합을 통해 나만의 안경을 만드는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원하는 디자인과 색상을 선택하면 바로 조립에 들어갑니다. 안경 프레임과 안경다리는 디자인, 색상별로 각각 모듈화돼 있는데요. 현장에 재고가 있다면 30분 정도의 조립 시간을 기다리고 곧바로 구매 및 픽업이 가능합니다. 만약 디자인이나 사이즈 재고가 없다면 각 모듈을 3D 프린터로 제작해서 조립, 배송해주는데, 이때는 7~10일 이상의 기간이 소요되고 택배로 발송 받는 것이 가능합니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나쁘지 않았습니다. 저는 큰 안경을 찾고 있었고 브리즘은 제 얼굴에 맞는 큰 안경을 만들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물론 제가 로봇이 추천해준 디자인을 구매한 것은 아닙니다. 디자인이 마음에 안든 것은 아닌데, 이미 제가 가지고 있는 여러 안경 모델과 비슷한 형태가 몇 보이더라고요. 저는 동그랗고 커다란 안경을 구매하고 싶다고 하니 직원이 선글라스용으로 나온 모델이라고 하나를 추천해줬고, 저는 그것을 구매했습니다.

최종 구매한 아이의 모습. 디자인도 디자인이지만 흘러내리지 않는 착용감이 마음에 들어 구매했습니다. 거대하고 동그란 안경을 찾아 헤맸던 잠깐의 여정은 여기서 마무리 합니다.

이렇게 브리즘이 이미 존재하는 모듈로 조립해서 만드는 형태의 안경 가격은 16만8000원. 브리즘은 이런 형태를 ‘레디메이드’라고 합니다. 여기에 안경 코패드 변경, 안경다리 사이 넓이 등을 조정하는 작업을 추가하면 조금 더 올라간 21만8000원에 판매됩니다. 브리즘은 이를 ‘커스텀 오더’라 부릅니다. 이 경우 재고가 없기 때문에 제작 기간을 감안하여 상품을 받기까지 걸리는 시간도 길어집니다.

브리즘 가격표. 브리즘의 모든 안경은 3D 프린터로 제작합니다. 오프라인 매장에서 고객 주문을 받자마자 바로 만드는 것은 아니고요. 매장에 재고가 있으면 그걸 조립해주고, 재고가 없으면 별도의 장소에서 제작을 하고 후가공 및 연마, 염색 및 건조, 조립 과정을 거쳐 소비자에게 배송해주는 구조입니다.

브리즘 안경 가격은 웬만한 국산 안경 브랜드 정도입니다. 젠틀몬스터가 대충 저 정도에서 살짝 더 비쌉니다. 브랜드 부심을 뿜뿜하기엔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지만, 이건 브리즘이 앞으로 만들어나갈 결과에 따라 달라지겠죠.

가격은 둘째 치고 안경 품질이 꽤 괜찮습니다. 고가 하우스 브랜드 안경도 많이 써봤는데, 착용감은 이 친구가 꿀리지 않습니다. 무게도 7g으로 매우 가볍습니다. 디자인은 취향의 영역이니 평가하지 않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브랜드고 뭐고 다 필요 없고 저렴한 게 최고다 하는 분들이라면 안경은 역시 알리익스프레스입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엄지용 기자> drake@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