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대한민국에 ‘파렛트풀’이라는 개념을 처음 도입한 기업이 로지스올이다. 파렛트란 물류현장에서 여러 박스를 한 번에 올려서 지게차로 나르는데 사용되는 깔판이다. 이 파렛트를 기업이 필요할 때, 필요한 수량만큼 빌려주고 회수하고 다시 필요에 따라서 다른 기업에 재배치하고 돈을 받는 비즈니스 모델이 ‘파렛트풀’이다.

쿠팡 물류센터에 쌓여있는 로지스올(KPP) 파렛트의 모습.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파렛트는 이커머스 물류센터에서도 사용된다. 쿠팡 같은 경우는 중국, 프랑스, 미국 등지에 있는 해외 물류거점에서 로켓직구 상품을 들여오기도 하는데 그 때도 파렛트 단위로 한국에 들어온다. 담당자가 아니라면 별 관심 없을지 모르겠지만, 그 파렛트를 회수하고 재배치하는 누군가가 있으니 ‘파렛트풀’ 업체다.

소유에서 공유로 넘어가는 게 트렌드라고 하는 요즘 세상이지만, 로지스올은 한참 전에 그 개념을 적용했다. 현시점에 와서 장당 5만원 상당의 파렛트를 직접 사서 쓰는 물류센터가 어디 있는가. 너무나 당연히 빌려 쓰고 있다. 파렛트를 직접 구매하는 비용도 비용이지만, 물류 특성상 거래처 곳곳에 퍼진 파렛트를 회수하고 재사용하는 일이 만만치 않게 번거롭기 때문이다. 반면, 파렛트풀을 이용한다면 알아서 필요할 때 파렛트가 물류센터에 쌓이고, 알아서 필요 없을 때 파렛트가 물류센터에서 사라진다. 이런 일을 로지스올이 한다.

물론 파렛트풀이 쉬운 비즈니스는 아니다. 여러 공유 비즈니스가 그렇듯 이 영역도 일단 돈이 많이 든다. 로지스올이 현시점 전국에 깔아둔 파렛트만 1500만장. 이렇게 파렛트를 전국에 깔아두는 데만 30년 이상 부은 돈이 1조원이 넘는다고 한다. 여기에 더해 초기에는 파렛트를 퍼 나를 지게차도 물류현장에 없어서 이것까지 세트로 보급 했다고 한다. 그렇게 쓴 돈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 가능하다.

고정 투자비만 많이 드는 것이 아니다. 사실 파렛트를 구매하는 비용보다 ‘관리비’가 더 많이 든다는 로지스올측 설명이다. 파렛트도 그냥 막 쓰는 것이 아니다. 물동량이 도는 업체가 있다면 배치하고, 물동량이 돌지 않는 곳이 있다면 회수하고, 더러워지면 세척하고, 망가지면 수리한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회수 지점과 재배치 지점의 수요예측이다. 근데 그렇게 로지스올이 깔아놓은 파렛트를 이용하는 직접적인 고객사만 4000여개, 공급망과 연결되는 유관 기업까지 포함하면 15만개다. 15만개의 거점에서 사용하는 1500만개의 파렛트를 관리한다는 건데 결코 쉽지 않다.





로지스올 파렛트 세척장. 이런 세척장과 회수거점이 전국구에 있다. 제 때 파렛트를 회수해서 세척이 필요하다면 세척하고, 필요한 곳에 시간 맞춰 재배치하는 것이 로지스올이 하는 일이다.

운영 과정에서 생기는 대표적인 문제가 ‘분실’이다. 요즘 시대의 공유자전거나 공유킥보드가 허구한 날 사라지는 것처럼 파렛트 역시 그랬다. 혹자는 대체 파렛트를 가져가서 뭐에 써먹느냐 생각할 수도 있겠다. 생각보다 써먹을 구석이 많다. 당연히 불법이지만 이걸 줍줍하고 갈아서 플라스틱으로 만들어 되파는 업자가 있다. 어떤 물류센터 흡연장 테이블로 이용되고 있는 것을 뒤늦게 발견하기도 한다. 그래서 로지스올에는 우스갯소리로 이런 이야기까지 나온다. 누군가 파렛트 색상이나 디자인이 왜 저러냐고 묻는다면, 너무 예쁘면 가져간다고 답한다고. 적절히 소유하고 싶지 않은 색상과 형태가 중요하다고.

국내 흔한 이커머스 물류센터 야드에 쌓여 있는 파렛트들. 로지스올의 KPP 파렛트뿐만 아니라 다른 업체 파렛트도 보이는데, 이것을 알아서 자기 회사 것만 나눠서 회수해 가는 것도 파렛트풀 회사의 일이다. 이렇게 분류해서 차량에 싣는 과정만 3시간이 걸린다는 로지스올측 설명이다. 현장에서 생기는 운영 시간을 절감하기 위해 영업사원들이 ‘사전 분류’를 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고.

김영석 로지스올 전략개발팀장은 “파렛트풀은 여러 사업자가 경쟁하기보다는 하나의 강력한 독점업체가 공동 물류 인프라로 제공해야 효율이 극대화되는 비즈니스”라며 “로지스올 또한 30년 이상 계속해서 파렛트를 사고 투입하느냐 쓴 비용으로 인해 수익을 낸지 얼마 안 됐다. 파렛트가 차고 꽉 차니까 이제 숨기고 싶은 사람도 없어지고 선순환을 만들어내기 시작한 것”이라 말했다.

한국 파렛트, 글로벌을 향해

로지스올은 이제 글로벌 파렛트풀을 바라본다. 한국에서는 1조2000억원의 매출을 만들만큼 공고해진 파렛트풀 비즈니스를 글로벌로 확장하는 것이 로지스올의 다음 단계다. 그 과정은 로지스올이 한국에서 했던 과정과 유사하다. 한국 전역에 파렛트를 깔아뒀듯 글로벌 각지에 파렛트를 깔아둔다. 한국과 차이가 있다면 로지스올이 글로벌에 깔아두는 모든 파렛트가 RFID 태그를 입혀서 위치추적이 가능한 파렛트(RRPP)라는 점이다. 고작 300~400km 범위 안에서 움직이는 한국 파렛트와는 달리 중국이나 유럽, 미국으로 가면 수천km까지 퍼져버릴 수 있다. 어디에 있을지 모를 파렛트를 제대로 회수하기 위해선 파렛트의 위치 정보를 트래킹할 수 있는 수단이 필요했다는 로지스올측 전언이다.

김 팀장은 “향후 로지스올 파렛트에 내장된 RFID를 활용해 단순 위치 정보뿐만 아니라 화물 이동정보까지 저장한 집하 바코드 개념으로 활용하고자 한다”며 “지금은 단순히 화물 운반용 깔판이지만 나중에는 화물의 움직임 전 과정을 트래킹할 수 있는 물류 IoT의 근간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설명했다.

파렛트 회수 및 재배치를 위한 거점도 구축한다. 한국의 경우 회수와 세척, 재배치를 위한 거점을 로지스올이 직접 구축했지만, 글로벌은 다르다. 필요하다면 현지 운송사, 물류업체의 공간을 활용하는 방식의 제휴까지 염두에 둔다. 김 팀장은 “로지스올이 독자노선으로 해외 인프라를 까는 것은 한국이면 가능하겠지만 글로벌에서는 엄청나게 많은 돈이 드는 일”이라며 “국가별로 흐름을 잡기 위해서는 이미 해당 국가에서 파렛트를 깔아놓고 있는 업체들과 흐름과 공간 측면의 제휴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로지스올이 우선 집중하고자 하는 시장은 중국, 미국, 유럽이다. 이 지역은 기존 로지스올의 대형 고객사인 삼성전자, 롯데케미칼, 웅진코웨이와 같은 업체가 해외 진출한 국가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미 로지스올의 파렛트가 해외까지 나가고 있던 국가고, 해당 국가로 퍼진 파렛트를 회수, 관리하기 위한 로지스올의 글로벌 지사망도 이미 존재한다. 여기에 더해 한국에서 상품을 수입하는 한국업체 해외지사와 현지에서 물동량을 다루는 업체를 새롭게 영업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글로벌의 숙제 넘으려면

로지스올이 글로벌 진출을 본격화 하면서 부딪힌 생각지 못한 많은 문제들이 있다고 한다.  국내에서는 상상도 못했던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대표적인 이슈 중 하나는 국가마다 다른 규제(Compliance)다. 경우에 따라서 특정 국가에서는 한국에서 이동한 파렛트를 그대로 쓰지 못하는 문제가 생긴다. 이것을 한국으로 재반입을 하려고 해도 규제에 걸려서 돌아오지 못하는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김 팀장은 “회계, 공정거래 등 해외에서 파렛트풀 비즈니스를 하는 데 생기는 국내에서는 예상치 못한 리스크가 굉장히 많다. 법무 및 회계 검토를 국가마다 진행하고 있는데 다 틀리다”며 “로컬 파렛트풀과 마찬가지로 글로벌에서도 국가대국가, 거점대거점, 항만대항만의 순환을 만들어야 하는데 쉬운 일은 아니다. 현재는 기존 왕복물량이 있는 특정 기업, 특정 국가를 대상으로 최대한 단순화해서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사업을 확장하는 단계”라고 밝혔다.

두 번째로 생기는 이슈는 ‘표준화’다. 한국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표준 파렛트 11형(1100x1100mm 사이즈)이 유럽이나 미국으로 나가면 호환이 안 되는 것이 문제였다. 유럽은 일반적으로 12형(1200x800mm 사이즈)의 파렛트를, 미국에서는 1219x1016mm의 파렛트를 사용한다. 중국의 표준 파렛트는 한국과 같은 11형이나, 유럽과 거래가 많아지면서 12형 유로 파렛트도 함께 섞였다.

이 말인즉 한국의 수출업체가 11형 파렛트를 독일에 상품을 보내면 그 파렛트를 그대로 현지 공장이나 물류센터 보관 공간에 적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애초에 유럽 물류센터가 한국의 11형 파렛트에 맞춰서 설계돼 있지 않기 때문에 사이즈가 맞지 않는다. 이 때문에 생각지도 못한데서 비효율이 나온다. 김 팀장은 “11형 파렛트를 유럽에 보내면 거기 실린 모든 상품들을 전부 내려서 12형 유로 팔렛에 다시 싣고 현지 거점까지 보내는 작업을 추가로 수행해야 한다”며 “이렇게 하면 물류비는 2~3배는 늘어나는데, 가능한 일관물류를 만들기 위해 처음부터 도착지 규격에 맞는 파렛트를 사용하도록 한국 업체를 설득하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김 팀장이 강조하는 글로벌 풀링 사업의 성공 요건은 전체 공급망의 유기적 통합이다. 앞서 설명한 예시를 다시 꺼내보자면 우리 부서의 비용이 아니라고, 우리 일이 추가되는 것이 아니라고 유럽에 11형 파렛트를 보내는 것과 같은 행동은 지양해야 한다. 그보다 처음부터 12형 파렛트를 이용하고 도착지의 환경에 맞는 패키징 등의 조치를 출발지부터 취한다면 전체 공급망의 운영 효율을 크게 높일 수 있다는 게 김 팀장의 설명이다.

그는 “파렛트로 글로벌 풀링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전체 공급망을 이해하고 유닛로드(Unit Load)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며 “해외에서 영업을 하더라도 전략을 설정할 때부터 전체 공급망을 염두에 두고 실행해야 한다. 타깃고객을 유사하게 맞추고 전체 공급망이 유기적으로 소통해야 글로벌 풀링이 가능할 것”이라 강조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엄지용 기자> drake@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