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라인네트워크에서 스타트업  리뷰를 연재합니다. 코너명은 ‘바스리’, <바이라인 스타트업 리뷰>의 줄임말입니다. 스타트업 관계자분들과 독자님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국내 모든 화물차주의 오랜 고민은 그놈의 ‘공차율’이다. 국토교통부의 국가교통조사에 따르면 2017년 기준 국내 화물차의 거리 기준 공차율은 41.38%, 시간 기준 공차율은 41.27%다. 화물차가 하루 통상 이동하는 거리와 시간인 113.34km, 190.2분 중에 41% 이상을 빈 차로 돌아다닌다는 뜻이다. 공차율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의 이동 시간이 아무런 가치도 만들지 못하고 비용만 쏟아내고 사라진다는 의미다. 차주 입장에서 쉽게 말하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날리는 거다.

2015년 조달청의 자료(정부계약물자 화물정보 공개를 통한 화물차량 공차율 개선방안 타당성 조사, 2015.09.)에 따르면 국내 공차율(당시 40.2%)은 미국(27%)과 영국(28.7%) 등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아 개선될 여지가 크다. 사실 이런 이야기가 나온 건 비단 최근 몇 년의 이야기가 아니라 10년도 한참 더 된 상황인 게 아이러니다.

한국교통연구원이 2011년 발표한 보고서(대도시 화물통행수요 추정을 위한 방안 연구)에 나타난 국내 화물자동차 공차율. ‘공차율 감축’은 오랫동안 물류학계에서 고민했던 논의 중 하나지만, 현재까지 수치상 큰 변화는 나타나지 않았다. (자료: 한국교통연구원, 2011.12.)

육지 사람은 모를 제주도민의 고민

이 공차율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한 업체가 있다. 국가 단위 연구처럼 국내 화물운송업계 전체의 공차율 감축을 꿈꾸는 거창한 목표를 두지는 않는다. 이 업체는 작다면 작은, 제주도와 육지를 오가는 화물차의 공차율을 조금씩 줄이고자 한다. 지난해 제주도에서 창업한 업체 ‘제주박스’ 이야기다.

제주박스의 시작을 알기 위해선 제주도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창업자 이현경 대표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한다. 이 대표에 따르면 제주도는 섬이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물류 불모지’가 됐다. 소비자가 지불하는 택배비는 육지에 비해 수배 이상 비쌌고, 제주까지의 배송 자체를 거부하는 온라인 판매자도 많다. 제주에서 자라고 대학 진학과 함께 육지로 올라온 이현경 대표는 육지에 비해 느리고, 비싸고, 심지어 산간벽지와 함께 배송 불가 지역으로 묶이기도 하는 제주 물류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체감했다. [미리 보면 좋은 콘텐츠 : 아무도 모르는 제주 물류 이야기]

마켓컬리 제주도 배송 불가 안내. 제주도는 마켓컬리의 새벽배송뿐만 아니라 전국구로 배송 되는 ‘택배배송’도 안 되는 지역으로 분류된다. 마켓컬리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제주도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이었어요. 온라인 쇼핑몰에서 택배를 주문하려고 하는데, 배송이 안 되는 품목이 너무 많은 거예요. 처음부터 제주도 배송이 안 되도록 차단한 쇼핑몰도 있고, 주문은 되는데 나중에 배송불가 지역이라고 문자가 날라 오는 쇼핑몰도 있었어요. 설령 배송이 되더라도 육지와 비교해서 제주도의 물류비는 최대 15배까지 높고, 배송 기간은 늦으면 21일까지 걸리기도 합니다. 이 문제가 10년도 더 넘게 공론화가 됐는데 아직도 해결이 안 됐습니다” 이현경 대표의 이야기다.

사실 제주도 배송이 안 되는 이유는 판매자 입장에선 어찌 보면 당연하다. 제주도는 쇼핑몰의 잠재고객이 될 수 있는 ‘인구’가 적었고, 물동량이 부족하기에 물류비는 비쌌고, 배송 중 파손이나 교환 및 반품과 관련된 CS가 얽히면 귀찮기까지 하다. 굳이 힘들게 배송 서비스를 확장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쿠팡이 출동한다면 어떨까? : 제주도에 오픈한 쿠팡 물류센터(?)의 비밀]

제주 물류의 오랜 고민


여타 육지 물류와 마찬가지로 제주도를 오가는 화물차에도 통상의 화물차처럼 ‘빈 공간’이 있는 것은 매한가지다. 제주박스에 따르면 매달 육지와 제주를 오가는 약 1만5000여대의 화물차가 있다. 제주로 향하는 차량들은 통상 2박 3일 정도 육지에서 최대한 많은 화물을 모아서 제주로 내려오는데, 그렇다고 화물칸을 꽉꽉 채워서 내려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너무 늦는다면 화주사의 클레임이 발생할 수 있기에 화물차에는 통상 30%의 유휴공간이 발생한다.

이현경 대표가 실제 촬영한 제주도로 오는 차량들의 유휴 공간들. 말이 30%지 꽤 많은 화물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남는다.(사진 : 제주박스 제공)

이 빈 공간에 제주도민의 고민을 결합시켜본다면 어떨까. 그러니까 ‘제주도 배송불가 품목’을 화물차의 유휴 공간에 넣어준다면 어떨까. 차주는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지 않을까. 제주도민은 기존에 안 되던 제주도까지의 물류를 더 저렴한 가격에, 빠르게 제공받을 수 있지는 않을까. 이현경 대표는 이렇게 생각했다.

“제주도로 향하는 화물차가 성수기 기준 하루에 800대, 비수기 기준으로는 하루에 400대 정도 있어요. 이 차량들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하루이틀 이상 육지에서 화물을 모아옵니다. 그 차량의 화물칸을 살펴보니 통상 30% 정도의 빈 공간이 있더라고요. 이 공간이 별 쓸모없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았는데, 거기에 제주 배송 불가 품목인 가구, 전자제품, 신선식품과 같은 물량을 채우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차주 분들은 유휴공간을 통해서 부가 수익을 올릴 수 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는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여기에 더해 우리는 당일 물량 매칭을 통해 차주들이 더욱 빠르게 제주도로 내려갈 수 있도록 만들어줄 수 있습니다. 제주 물류의 속도까지 끌어 올릴 수 있는 거죠. 사업모델을 만들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주도판 ‘배대지’ 등장?

제주박스는 이 두가지 고민을 결합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었다. 쉽게 말해 제주도판 ‘해외 직구 배송대행지 모델’이다. 몰테일 같은 배송대행 사업자가 해외배송이 불가능한 상품을 미국 물류센터에 모아서 한국으로 보내주는 것처럼, 제주박스는 제주배송이 불가능한 상품을 육지 물류센터에 모아서 제주도로 보내주는 모델을 설계했다. 예컨대 제주도에 거주하는 사람은 쇼핑몰에서 주문한 ‘제주 배송불가 품목 상품’을 제주박스의 육지 물류센터 주소지를 쇼핑몰에 입력하는 방식으로 배송대행을 맡겨서 제주도 자택까지 받을 수 있게 된다.

여기서 제주박스에게 필요한 것은 제주로 이동할 육지화물을 모을 ‘공간’과 육지에서 제주도까지 이동할 ‘화물차’다. 제주박스는 육지의 ‘배송대행지’를 의약품 전문물류업체 용마로지스의 안성 물류센터 공간을 공유 받아 구축했다. 용마로지스는 제주 전역 약국에 공급되는 의약품 물류를 처리하고 있는 회사고, 그렇기에 안성 물류센터에는 제주도로 이동하는 화물차들이 모인다.

이 대표는 “안성 물류센터에 들어오는 제주로 향하는 화물차에는 통상 파렛트 2개를 적재할 수 있을 만큼의 공간이 남아있다”며 “제주까지 파렛트당 운송 단가가 건당 10만원임을 감안했을 때 이 유휴공간을 가득 채운다면 차주는 20만원 정도의 추가 수익을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제주박스는 화물차들의 유휴공간에 제주까지 이동하는 물량을 추가로 실어 보낸다. 그렇게 물량이 도착하는 곳은 제주박스의 제주 물류센터다.  이렇게 제주박스 물류센터까지 도착한 상품을 물건을 받을 고객이 직접 픽업을 하거나, 용달차(실비 추가 요금 부가)로 집앞까지 배송 받을 수 있다. 재밌는 건 제주박스 고객 중 약 50%가 물류센터에 방문하여 상품을 직접 픽업해 간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감귤 농가가 많은 제주 특성상 트럭이 있는 집들이 많아서 그런 것 같다는 제주박스측 설명이다.

제주박스의 제주 물류센터 모습. 제주박스는 이 공간 또한 공유를 통해 구축했다. 제주 물류업체 JBL의 제주 제2 물류센터 일부 공간을 제주박스가 활용하고 있다. 그러니까 제주박스의 물류센터, 차량 네트워크는 모두 기존 물류 사업자들에게 공유 받아서 만든 것이나 다름없다.

제주박스의 주력 카테고리는 대형 가구, 전자제품 등 이형화물이다. 아무래도 제주까지 배송이 안 되는 품목들이 많다. 최근에는 신선식품 배송대행 요청도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그 중 ‘마켓컬리’ 상품 배송대행이 늘어나고 있다는 이야기가 재밌다. 제주박스를 통해 그간 받고 싶어도 받을 방법이 없었던 마켓컬리 상품 수령이 제주도에서 가능해졌다. 제주박스에 따르면 신선식품 배송대행 서비스를 제공할 때는 제주로 내려가는 식자재 공급 물류를 처리하는 냉장냉동차량의 유휴공간을 매칭 해준다. 마켓컬리의 자랑 ‘풀콜드’도 사라지지 않는다.


제주박스 이현경 대표와 제주 물류센터 야드에 적치된 상품들. 볼륨이 꽤 큰 이형화물(의자)이다.

제주박스가 그리는 가까운 미래

제주박스의 매출은 아직 규모 자체는 그렇게 크지 않지만,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지난 3월 기준 전년 동기대비 200% 이상의 물동량 증가율을 보였다. 제주박스가 이미 ‘이익’을 보면서 사업을 하고 있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특히 최근에는 제주도의 소비자뿐만 아니라 제주까지 물류를 처리하길 희망하는 기업 고객의 의뢰도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일례로 제주박스는 다나와 컴퓨터와 협업하여 우도와 마라도를 포함하여 제주도 전역의 학교에 1400대의 컴퓨터를 납품하는 주문을 수행했다. 이 외에도 이커머스 마켓플레이스, F&B를 포괄한 다양한 기업 화주 문의가 하나씩 들어와서 논의 중인 단계다.

향후 제주박스는 제주도를 출발하여 육지로 가는 화물차의 빈 공간까지 채우고자 한다. 이현경 대표에 따르면 제주도에 오는 화물차들은 통상 빈 차를 채울 물량을 찾고자 2~3일을 제주도 곳곳을 돌아 다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량에 물건을 채워 가는 차주의 숫자는 한정돼 있다. 제주도를 나가는 물량의 상당수는 ‘월동농산물’이고, 수확철인 겨울이 아니면 물량이 떨어지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제주박스가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해 고민인 차주를 위해서 ‘물량’을 제공해준다면 차주 입장에서 마다할 이유가 없다.

제주박스는 아웃바운드 물동량을 만드는 방법 중 하나로 현재 ‘제주육지 택배대행’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육지로 이동하는 택배 화물을 제주박스 물류센터에 모아서 제휴 물류업체에 한 번에 전달하여 육지까지 배송하는 형태다. 이를 통해 택배단가를 기존 4000원 수준에서 3000~3500원까지 절감하여 소비자에게 제공한다. 현시점 이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들은 대부분 기존 C2C 택배로 육지로 상품을 보내던 지역 감귤 농가인데, 감귤뿐만 아닌 다른 상품까지 아웃바운드 물량을 확장하고자 제주박스는 고민하고 있다.

이 대표는 “제주박스는 2021년까지 제주와 육지를 오가는 차주의 ‘유휴공간’을 채워주는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나아가고 있다”며 “플랫폼이 완성된다면 약 1000여대의 제주도를 오가는 화물차주 DB에 주문을 전달하여 유휴공간을 매칭할 수 있을 것”이라 밝혔다. 그는 “시스템만 잘 갖춰진다면 향후 제주도 진출을 생각하는 여러 이커머스 업체들의 물류를 돕는 역할을 우리가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앞으로 제주도를 중심으로 풀필먼트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로 키워나갈 것”이라 강조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엄지용 기자> drake@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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