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를 평론하는 박인하 청강대 교수에게 인터뷰를 요청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년 전쯤, 작가와 플랫폼 간 갈등이 불거졌을 때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웹툰 생태계를 만들 수 있을지 묻기 위해 인터뷰를 요청한 적이 있다. 그때 박 교수는 “더 젊은, 기왕이면 여성 작가들에게 발언의 기회가 주어지길 바란다”고 인터뷰를 거절했었다. 당시에는 미투 논란도 있던 때라, 박 교수의 발언이 기억에 오래 남았다.

다시 인터뷰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박 교수가 그간의 평론을 묶어 ‘시대를 읽는 만화’를 펴냈기 때문이다. 발간 소식을 듣자마자 이번에는 꼭 인터뷰를 성사시키겠다는 마음을 먹고 책을 주문했다. 책은, 1960년대부터 비교적 최근까지 시대별 만화의 서사를 설명함으로써 각 작가와 작품들이 어떻게 현실을 포착하고 읽어왔는지를 설명한다. 예컨대, 이 책은 작가 박인하가 좋아하는 만화를 꼽은 책이 아니다. 지금까지 나온 모든 작품을 서술하는 데 지면을 할애하지도 않았다. 대신, 시대별로 도드라진 특징을 가진, 기존의 만화와는 전혀 다른 색을 낸 작품을 선별해 그 의미를 짚어냈다. 대중문화로서 만화가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발전해왔는지를 잘 알게 하는 구성이다.

박 교수를 지난달 27일 서울 성수동의 카페 대림창고에서 만났다. 폐공장을 카페로 개조해 예술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이다. 청강대 동료인 최호철 작가의 그림이 걸려있는 곳이기도 하다. 커피 한 잔씩을 시켜 놓고 마주 앉아, 신간을 펴낸 이유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달변이어서 하나의 질문이 하나의 강의 주제가 된 것 같은 답이 나왔다. 1995년 신춘문예에 만화 평론으로 등단한 이후, 만화로 글밥을 먹고 살아온 이의 지식과 고민, 자신감 등이 모두 버무려진 그런 강의 말이다.

만화 평론을 하는 작가 박인하. 청강대에서 만화를 가르치는 일도 한다.

이 책을 내야겠다고 생각한 계기는 어디에 있나?

아주 오랜 기간 책을 안 냈다. 그렇지만 꾸준히 글을 쓰고 있었고 기고를 했다. 이렇게 낸 글들을 줄기를 갖고 묶을 수 있지 않나 생각했다. 두 가지 줄기인데, 하나는 서문에 인용한 브레히트의 말처럼 “좋았던 과거의 것들이 아니라 나쁜 오늘의 것들에서 시작해야 한다”에서 나왔다. 개인적으로 최근 5년 정도 화두였던 관점이다. 웹툰이 등장했을 때 출판만화를 좋아하는 이들은 이 새로운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거나 공부하려 하지 않고 나쁜 것, 후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도 2000년대 초반에는 ‘그래도 출판만화’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러다 2008년쯤 생각이 바뀌었다. 대중들이 웹툰을 좋아하고 열광하는데 “왜 출판만화를 안 보느냐”고 이야기하는 것이 예전에 “소설이 있는데 왜 만화를 보느냐”고 말하던 것이랑 무슨 차이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은 출판만화보다 웹툰으로 데뷔할 확률이 훨씬 높다. 그렇다면 나도 새로운 것을 고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안식년을 다녀온 다음 해인 2009년부터 새로 등장한 만화매체를 고민하고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게 첫 번째로 깔린 집필 의도다. 당대의 만화들을 좋았던 과거의 것이 아니라 항상 나쁜 오늘의 것에서 시작해 단면을 바라보면 좋겠다는 거였다. 그 시대에 사랑받은 만화가 왜 인기가 있었는지, 그 만화가 무엇을 바꿔놓았는지를 보자는 것이다.

두 번째는, 만화 역사 이야기를 하는 방법론이다. 1990년대까지 한국 만화에 대한 논의는 대부분 자기가 좋아했던 작품 이야기로 이뤄졌다. 자기 향수의 노스텔지어를 기반으로 한 것이다. 그러다보니 만화 역사의 라인들이 (화자에 의해) 약간씩 비틀어졌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는 굉장히 좋은 작품이라 해도, 당대에도 그런 의미가 있는 작품이었는지는 고민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평등주의적 관점에서 만화 역사를 바라보려 했었다. 어떤 작가나 작품도 빼놓지 않고 모두 담아내려는 시도였다.

그런데 이 두 가지를 반성적으로 결합하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이렇게 모든 작품이 거론되고, 균질하게 평가받아야 하는가다. 내가 한국만화사를 처음 공부하고 들여다볼 때 충격받은 것이, 1960년대 서사만화로 굉장히 중요한 박기정에 대한 서술이 거의 없었다는 점이었다. 박기정 선생님은 작품 면에서도 만화가 단체의 협회장으로서도, 또 ‘합동출판사’라는 만화 산업 그룹과 대항해 소년한국일보를 시장의 플레이어로 끌어들인 사람으로서도 중요하다. 그런데 서사가 빠져 있었다. 한국 만화 역사의 계보를 만들어가는데, 그 시대에 중요한 역할을 한, 당시의 다른 만화와 완전히 다른, 그 만화가 나옴으로써 주요한 변곡점을 만든 작품을 찍어줄 때가 됐다. 이제는 계보를 만드는 일을 하고 싶다.

노스텔지어, 평등주의적 평론에 이은 3세대 평론이라고 봐야 하나?

그 시대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변곡점이 되는 작품에 대해 평가하자는 것이다. 마스터피스를 마스터피스로 평가하는 시대 말이다.  그 작품이 마스터피스라면 왜 그러한지, 왜 변곡점이 되었는지 고민이 필요하다. 나중에 제 꿈은, 한국의 만화사와 일본 만화사를 같이 들여다보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한국 만화는 일본 만화를 빼놓고는 존재할 수 없다. 애써 그걸 무시하거나, 아니면 부끄러워서 살짝 이야기하려고 하는데 나는 (한국만화가) 망가의 자장 안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 망가의 자장 안에서 한국 만화가 어떤 부분에서 영향을 받고 그 영향에서 달라진 만화는 무엇이며, 그 영향 없이 독자성을 가진 부분은 어디인가를 들여다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그 변곡점이 웹툰이 아닐까? 일본의 망가하고도 완전히 달라지는 부분일 것 같다

(일본 망가와) 완전히 달라졌다. 웹툰이 일본의 새로운 디지털 만화에 영향을 준다. 웹툰은 출판만화를 디지털라이징한 것이 아니라, 완전히 달라진 UX에서 달라진 독자들을 대상으로 달라진 연출과 형식, 스토리텔링을 가지고 새롭게 만들어진 매체다. 그러니 당연히 일본 만화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1990년대는 일본 잡지 만화 시스템을 그대로 가져와 재구성을 했었다. 잡지 단행본 시스템 핵심은 여러가지가 있는데, 잡지를 저가에 만들어서 많이 보급해 인지도 올리고, 단행본 팔아 매출을 만든다. 그리고 독자 엽서를 통해서 인기작을 검증했다. 지금으로 치면 인기작 중심의 IP 관리다. 세 번째로 공모전을 통해 신인을 발굴하고, 단편과 중편 연재로 레벨업을 시키는 구조다. 이 시스템이 일본에서 완전히 정착한 때가 거품경제의 정점인 1980년대였다. 어마어마한 수익을 올렸으므로, 만화에 많은 투자가 일어났다. 그걸 보고 자라난 한국의 새로운 세대가 1990년대에 잡지 단행본 시스템에서 신인으로 데뷔했고, 작가로 활동했다. 그 작가들이 그 방식 그대로 웹툰을 그리려다가 실패하기도 한다. 일본의 영향을 받았지만 자기 작업을 만들어나간 작가들은 살아남았고, 영향만 받고 끝난 작가는 살아남지 못하는 거다.

만화의 시대별 서사를 이야기하는데, 주요한 축 하나가 여성이다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한국 만화사의 마스터피스를 골라보면, 1960년대 박기정이 있다. 그 당시 신파서사가 주를 이뤘는데, 박기정은 그 강력한 벽을 뚫고 나오는 만화를 그렸다. 당시 만화는 남자든 여자든 할 것 없이 대부분 강력한 세계에 맞서 대응하지 못하고 자기 비하와 연민에서 끝났다. 당시의 남자 작가들은 여성 캐릭터를 그리지 않았거나, 보조적으로만 활용했다. 그런데 박기정의 만화에서는 여성을 주체로 그렸다. 만화 ‘폭탄아’에서는 주인공인 탄실이(여성)와 탄아(남성)의 비중이 같다. 아니, 오히려 탄실이 더 역동적인 캐릭터다. 이 조그만 꼬마애가 비적의 두목으로 나온다. 좌절하지 않고 자기 운명에 맞선다. 이런 만화가 있구나를 알았다. 그다음 1970년대에는 만화 서사가 일본 만화를 베낀 것이 많았다. 서사 만화 중에서는 고우영의 만화가 독특한 서사성을 가졌지만 빈 곳이 많았다. 그 자리를 허영만, 김혜린, 신일숙이 뚫고 나와 버렸다. 이현세, 허영만과 같은 비중으로 신일숙, 김혜린이 완전히 새로운 서사를 만들었다. 한국의 여성 서사가 시작된 것은 거기서부터다. 이후 여성 만화 잡지가 생기고 BL(보이러브) 같은 콘텐츠가 인기를 얻었다. 여성 서사가 폭발적으로 만들어지고 수용되고 소비될 수 있었던 것은, (그럴 수 있는 공간이) 여성 만화에서뿐이었기 때문이다.

장르로서 만화의 중요성과 가치는 어디에서 온다고 보나?

사람이 눈으로 바라본 세계를 시각적으로 처리하는 방법이 기본적으로 만화적 조형의 방법이다. 만화는 인간이 고안해낸 아주 잘 만들어진 시각매체라고 생각한다. 파워풀한 콘텐츠다. 아주 예술적인 작업도 할 수 있고, 아주 상업적인 것도 가능해서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다고 생각한다. 만화평론을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생각한 것이, 만화라는 매체의 중요한 가치는 개인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각 대중 매체라는 점이다. 영화 같은 산업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게 흥미롭다. 개인이 대중매체로서 시각작업을 할 수 있는 것은 만화밖에 없다.

그림이나 사진도 있지 않나?

사진이나 그림이 만화처럼 산업적, 대중적으로 소비되진 않는다. 전시로 보여주는 느낌이다.

예전과 지금 만화의 위상은 어떻게 달라졌다고 보나?

굉장히 많이 달라졌다. 흥미롭게도 만화의 출발은 어린이 매체가 아니다. 어른을 위한 매체였다. 17~18세기에 처음 만화가 등장하고 분화되어 나가는데, 중요한 라인 중 하나는 풍자로서의 그림이었다. 영국의 윌리엄 호가스나, 프랑스의 오노레 도미에 같은 작가들이 있다. 윌리엄 호가스는 로코코 작가였고, 오노로 도미에는 리얼리즘 작가였다.

만화에서 로코코라니, 새롭게 들린다. 형식이 다르면 내용도 달라지나?

호가스는 당시 왕립화가였지만 그 전에  판화공방에서 일했다. 궁정화도 그렸지만 당시 런던 도심의 풍경을 연작으로 작업했다. 당시에는 화가가 그림을 그리면 그걸 판화공방에서 그대로 찍어서 판매를 했다. 호가스는 판화공방 시스템을 이용해서 도심의 풍경을 연작으로 그렸는데 대표적인 것이 ‘창녀의 편력(매춘부의 편력)’ 이다. 당대 런던의 풍경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풍자적인 시선으로 그린 거고, 이러한 것들이 근대적 매체와 결합이 되면서 신문잡지에 처음 등장한 것이 영국의 ‘펀치’다. 영국 산업혁명 이후 노동자들이 공장까지 출퇴근을 하게 되면서 이들을 겨냥한 싸구려 신문이 만들어졌다. 여기에 만화가 실리게 됐다. 그 만화가 다시 미국으로 넘어가서 대중신문으로 전환될 때 일요판에 만화가 생기기 시작했고. 여기서 우스꽝스러운 캐릭터가 부각되고, 우스개 만화가 만들어졌다. 만화가 인기를 얻으면서 캐릭터 상품도 나오고, 우스꽝스러운 만화가 ‘코믹스’라는 이름도 얻게 됐다.

책을 보면서 그동안 몰랐던 부분도 많이 알게 됐고, 사례도 흥미로웠다. 그런데 아주 최근의 사례는 많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아 아쉬웠다

1960년대 이전의 이야기를 다룬 앞부분은 썼다가 들어냈다. 책이 너무 두꺼워져서 그랬다. 최근의 이야기를 다룬 뒷부분은 더 넣고 싶었는데 시간이 모자랐다. 기회가 된다면 뒷부분의 이야기를 조금 얇게 묶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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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최근의 만화 흐름에서 가장 중요하게 읽히는 시대정신은 무엇이라 보나

웹툰이 등장하면서 가장 중요한 흐름 중 하나가 자기 서사다. ‘나 서사’라고도 한다. 나머지 하나는 전통적인 스토리텔링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전통적인 스토리텔링에서는 주인공이 어떤 욕망이 있고, 그 욕망이 장벽에 부딪혀 갈등하다 극복하고 성장하는 것이다. 그런 스토리는 지금의 웹툰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런 스토리텔링을 하면 독자들이 안 본다. 캐릭터는 성장보다는 처음부터 먼치킨으로 등장하고 시작부터 갈등을 겪는다. 이런 것이 어쩌면 지금의 우리 시대를 얘기하는 것 아닌가 싶다.

개천에서 용이 나지 못하는 현실을 반영하는 건가?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에서 ‘맥락’을 이야기하면 ‘맥락충’이나 ‘선비’가 된다.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은 딱 까서 보여줘야 하는 것이다. 맥락보다는 ‘감각’이 중요하다.

웹툰으로 오면서 플랫폼의 힘이 커졌다. 만화가들이 작가와 노동자 사이에서 고민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조심스러운 이야기다. 복잡한 양면이 있다. 노동자로서의 정체성도 있고 작가로서의 정체성도 있다. 예전 시장은 ‘그들만의 리그’로 작동됐다. 파리미드의 꼭대기에만 데뷔의 문이 있다. 그 문은 좁지만, 거기에 들어만 가면 성공할 수 있었다. 그때와 달리 폭발적으로 성장한 웹툰 시장은 피라미드가 상층부터 하층까지 단절 없이 이뤄져 있다. 누구나 피라미드 안으로 들어올 수 있으므로 노동 계약 이슈가 생길 수밖에 없다. 좋은 방향으로 개선이 되어가고, 작가들에 좋은 대안을 내어주는 사업자가 대우받게 될 거라고 본다.

어떻게 만화 평론가가 될 생각을 했나? 얼핏 생각하기에 만화 평론으로 먹고 사는 게 쉽진 않을 것 같은데

국문과를 졸업했다. 원래는 소설이나 시를 쓰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글을 못 쓴다는 걸 깨닫고 잡지사에 취직을 했었다. 기자로 일을 하다가 회사가 어려워져서 일찍 프리랜서로 독립했다. 어느 날 서점에 갔다가 갑자기 만화가 눈에 들어왔다. 그래, 내가 만화를 좋아했었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에는 서점용 만화가 판매되기 시작했던 때여서 당시에 김진의 ‘바람의 나라’, 김혜린의 ‘불의 검’, 이현세 선생의 ‘사자여 새벽을 노래하라’를 샀다. 너무 재미있었다. 당시에 학교 후배가 만화를 좋아했는데 애니메이션 이야기를 많이 해주기도 했다. 그래서 취재해서 기사를 내야겠다 생각을 했다. 한국 만화와 애니메이션에 대한 기사를 쓰다 보니까 좋았다. 늘 신춘문예에 한 번 뭘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때 스포츠 서울 신춘문예에 영화평론, 만화평론, SF소설을 공모하더라. 예전에 신춘문예에 시를 한 편 보냈었는데 그 잡지가 폐간되는 바람에 원고가 그대로 반송되어 돌아온 적이 있었다. 그래서 이건 아닌가 보다 하던 차에, 만화 평론에 응모하는 사람이 별로 없을 것 같아서 준비를 했다.

생각보다 현실적인 계기로 만화 평론을 시작했다

그때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면서 연애를 하던 시절인데 다니던 잡지사가 어려워져서 프리랜서로 전향했다. 프리랜서가 된 사람이 결혼하기 힘들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신춘문예에 당선하면 내가 결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원래 만화를 좋아했었고, 그 시점 1~2년 전쯤에 만화를 다시 보기 시작하면서 만화 기사를 썼고 그러다보니 만화 시장이 커진 것도 알게 돼서 당선 확률을 높이자고 생각해 만화 평론에 응모한 건데 운 좋게 당선이 됐다.

만화 평론가가 많지 않은데, 계속하게 된 계기가 있나?

그때는 완전 영화 평론의 시대였다. 잡지 ‘키노’도 있었고. 늘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는 게, (등단으로) 데뷔하고 끝날 수도 있었는데 그때도 선후배들과 뜻이 맞아 천리안, 하이텔, 나우누리 같은 PC통신에서 만화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회사를 만들었다. 만화 관련 취재를 해서 제공했는데, 그게 계기가 되어 다른 쪽으로 안 빠지고 만화 글로 먹고살게 됐다. 1990년대 스타트업 아니겠나.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