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CES2020에서도 단연 화제는 ‘모빌리티’다. 가전제품 전시회(Consumer Electronics Show)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이곳은 세계 완성차 기업의 전시장이 된지 오래다. 완성차 기업들은 스스로를 제조기업이 아닌 모빌리티 기업으로 정의한다. 이동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겠다는 기지 하에 제품과 서비스를 공개한다.

사람의 이동만이 모빌리티는 아니다. 모든 것이 이동할 수 있다. 다른 한 축은 사물의 이동인 물류라 할 만하다. 이번 CES 2020에서는 물류 측면에서도 새로운 컨셉들이 공개됐다. 토요타, 현대자동차, 포드, 델타, 댄비 등 물류기업이 아닌 이들이 ‘물류’를 하겠다고 들어오는 모습이다.

물류는 혼자서 만들 수 없다. 여러 파트너사들이 연결해서 만든다. 모빌리티 안에서의 물류 또한 마찬가지다. 혼자서는 끊김 없는 연결을 만들 수 없다. CES 2020 안에서 ‘연결’을 추구하는 여러 기업들의 물류를 들여 봤다.

현대차 : 온디맨드 모빌리티가 결합된다면

토요타가 CES 2018에서 e팔렛(e-Pallette) 컨셉을 공개, ‘모빌리티 기업’으로 전환을 선언한 이후 수많은 유사한 아이들이 튀어나왔다. CES 2019에서는 타이어로 유명한 기업 콘티넨탈이 자율주행 셔틀에 물류 로봇을 결합한 큐브(CUbE, Continental Urban Mobility Experience)를 공개했다. CES는 아니지만 네이버랩스가 지난해 10월 DEVIEW 2019 행사에서 발표한 ALT프로젝트가 또 유사하다.

ALT프로젝트 개념도. 석상옥 네이버랩스 대표는 지난해 10월 DEVIEW 2019 행사에서 “무인 딜리버리, 무인샵 등 다양한 목적으로 커스터마이징 가능한 도로 위 자율주행로봇 플랫폼”이라 ALT프로젝트를 설명했다. 여기도 물류는 들어간다.(사진: 네이버)

이들의 공통점이 있다. 하나는 ‘자율주행 셔틀’의 군단(Fleet)을 다루는 플랫폼이라는 거다. 또 다른 공통점이 중요하다. 이 자율주행 셔틀이 사람을 나르는 여객 운송 외의 목적으로 전환된다는 거다. 예컨대 토요타 e팔렛은 사용자의 목적에 따라서 ‘음식점’이 되기도 하고, ‘제조기지’가 되기도 하고, ‘숙박업소’가 되기도 한다. 당연히 ‘운송수단’ 역할도 한다. 토요타가 CES 2020에서 공개한 스마트시티 ‘우븐시티(Woven City)’의 모든 택배를 이 e팔렛이 수행할 계획이다.

현대차가 CES 2020에서 공개한 PBV(Purpose Built Vehicle) 컨셉도 토요타의 그것과 같다. ‘목적 기반 모빌리티’라는 이름처럼 목적에 따라 다른 용도로 전환되는 자율주행 셔틀이다. 현대차의 설명에 따르면 사람을 싣고 나르는 도심 셔틀 기능뿐만 아니라 식당, 카페, 호텔 등 여가 공간에서부터 병원, 약국 등 사회 필수 시설까지 다양한 공간으로 연출될 수 있다.

현대차가 공개한 PBV 콘셉트 ‘S-Link’. PBV는 차량 하부와 상부의 완전한 분리가 가능하고 차량의 목적에 맞춰 기존 길이 4m에서 최대 6m까지로 확장된다. 차체 내부는 목적에 맞게 모듈화된 제품을 활용한 맞춤 제작이 가능하다.(사진: 현대차)

PBV에도 ‘물류’ 기능은 들어간다. 현대차 관계자는 “PBV간의 자율 군집주행이 가능해 개인별 수화물은 물론 미래도시 내 물류산업의 새로운 변화를 일으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토요타에는 없는 새로운 개념도 추가됐다. 현대차는 서로 다른 목적을 수행하는 PBV는 모빌리티 환승 거점인 허브(Hub)에서 만나 하나의 ‘복합 공간’을 만든다고 강조했다. 현대차의 예시에 따르면 공연장과 전시장 영화관으로 제작된 PBV가 허브에 모이면 ‘문화 복합 공간’이 된다. 외과, 치과, 안과, 약국 등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PBV가 허브에서 결합하면 종합병원이 된다. 현대차의 예시는 아니지만 제조, 보관, 포장, 운송, 리테일과 관련된 PBV가 허브에 모이면 ‘물류 복합 공간’이 된다는 거다. 이용자의 목적에 따라서 모듈 형태로 조립하면서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다.

현대차의 미래 모빌리티 비전 개념도. 이 글에서 다루지 않은 CES 2020에서 현대차가 공개한 또 다른 모빌리티 솔루션은 UAM(Urban Air Mobility: 도심 항공 모빌리티)이다. 육상의 PBV가 하늘의 UAM과 허브에서 만나 결합하는 컨셉 영상이 함께 공개됐다.(사진: 현대차)

현대차는 ‘UAM-PBV-Hub’를 축으로 하는 미래 스마트 모빌리티 비전으로 고객에게 끊김 없는(Seamless) 이동의 자유로움과 차별화된 경험을 제공하겠다는 의지를 구체화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은 CES 2020 행사장에서 “우리는 도시와 인류의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깊이 생각했다”며 “UAM과 PBV, Hub의 긴밀한 연결을 통해 끊김 없는 이동의 자유를 제공하는 현대자동차의 새로운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은 사회에 활기를 불어넣고 ‘인류를 위한 진보’를 이어 나가게 할 것”이라 밝혔다.

델타 : 물류현장에 들어서는 엘리시움

현대차가 ‘끊김 없는’ 이동의 자유를 만들겠다고 했지만, PBV에서 물류 작업을 한다고 했을 때 끊길 것으로 예상되는 부분이 있다. 예를 들어서 PBV 안에 상품을 넣고 꺼내는 작업은 누가할 것인가. 상품을 검수하고 포장하고 보관하는 작업은 누가할 것인가. 현실 세계의 물류에서는 이와 같은 역할을 ‘사람’이 한다. 콘티넨탈의 큐브처럼 개로봇(Robo dog)이 튀어나와 배송을 하더라도 개로봇에 화물을 얹어준 누군가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콘티넨탈이 CES 2019에서 공개한 컨셉 모빌리티. 자율주행 셔틀에서 박스를 등에 진 개로봇이 튀어나와서 배송을 마무리하는 개념이다.(사진: 콘티넨탈)

글로벌 항공사 델타(DELTA)는 CES 2020에서 모빌리티의 중간을 연결하는 사람의 업무 효율을 증진시키는 기술을 공개했다. 로봇업체 사코스(Sarcos)의 외골격 로봇 가디언XO(Guardian XO)를 당장 2020년 1분기 실제 물류업무 환경에 도입하여 테스트한다는 계획이다. 델타 화물기로 적재되는 중장비와 부품 등 무거운 화물 취급과 물류센터 유지보수, 물량 이전 등에 이 로봇을 착용한 사람이 활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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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타가 도입 예정인 사코스의 가디언XO 모델. 산업용 로봇이지만 전투 장비라 불려도 손색없는 디자인이다. 물론 현장에 들어가는 로봇의 디자인은 아래 사진과 같다. 조금 궁색해졌다.(사진: 사코스, 델타 유튜브 캡처)

그간 외골격 로봇은 주로 재활 목적의 의료보조 기구로, 혹은 전투력 증강을 위한 군사용으로 활용됐다. 영화 <엘리시움>, 조금은 거창하게 <아이언맨>에 나오는 로봇수트를 생각하면 된다. 물류 분야에서 외골격 로봇 활용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더딘 편이었는데, 이제 현실 세계의 물류 현장에서 외골격 로봇을 볼 수 있다.

가디언 XO는 장착한 작업자의 힘을 최대 20배 증폭할 수 있다. 60kg의 화물을 마치 3kg처럼 들 수 있다는 이야기다. 로봇의 적재하중은 최대 200파운드(90.7kg)다. 한 팔당 최대 50파운드까지 들어 올리며 부드럽게 움직일 수 있다. 완충시 최대 8시간 구동 가능한 전기 장비다.

포드 : 사람이 없어지는 지점

델타의 외골격 로봇에 사람이 남아 있다면, 완성차회사 포드(Ford Motor Company)는 완전 무인 물류 로봇을 처음으로 사람이 오고가는 현실 세계에 도입한다고 CES 2020에서 공개했다. 로봇의 이름은 디짓(Digit). 어질리티로보틱스(Agility Robotics)가 만든 모델로, 포드가 이 로봇을 이용하는 첫 번째 고객이다. 올해 초 두 대의 디짓 로봇이 포드의 자율주행 배송 테스트에 실제 투입된다.

포드가 투입 예정인 디짓 로봇의 모습. 포드는 CES 2020 자사 부스에 디짓 로봇 시제품을 전시했다.(사진: 포드)

포드와 어질리티로보틱스의 만남은 지난해 5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포드가 자사의 자율주행차와 결합할 라스트마일 물류 솔루션 개발을 위한 파트너로 어질리티로보틱스의 디짓 로봇을 선택했다.

5월과 달라진 것은 상용화에 대한 준비가 끝났다는 거다. 어질리티로보틱스에 따르면 디짓의 디자인이 개선됐고 생산과 고객 대상 판매가 가능하도록 준비를 마쳤다. 기능 개선도 진행됐다. 로봇이 장애물을 탐색하고 한 발로도 균형을 잡을 수 있게 됐다. 주변 환경을 인식하는 매핑(Mapping) 센서가 강화됐다.

디짓은 포드 자율주행차 트렁크에 접혀 보관된다. 자율주행차가 목적지에 도착하면 차량에서 접혀 있는 디짓 로봇이 튀어나온다. 그렇게 차량에서 내린 로봇이 고객의 상자를 들고 목적지까지 이동한다.

만약 배송 중에 예기치 못한 장애물이 나오면 해당 이미지를 차량으로 전송해 추가적인 컴퓨팅 성능을 활용한다. 포드 차량은 클라우드 시스템을 통해 디짓이 더욱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지원한다. 예컨대 디짓은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통해 고객이 택배를 받기를 선호하는 장소에 박스를 놓는 등의 결정을 할 수 있다. 포드의 커넥티드 차량과 디짓 로봇은 클라우드 기반의 지도를 공유하고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한다.

디짓이 배송 업무를 수행하는 모습은 아래 영상을 통해 확인하자.

댄비 : 무인 배송의 영역으로

이렇게 로봇이 배송까지 한다고 하더라도 받아줄 사람이 없으면 또 다른 문제가 나온다. 무인셔틀 안에 박스를 얹은 개로봇을 넣어서 라스트마일 물류를 해결하고자 한 콘티넨탈을 예로 들어본다. 콘티넨탈 개로봇의 마지막 업무는 초인종을 누르고 문 앞에 박스를 떨구는 거다. 수취인이 박스를 빨리 수거하지 않으면 택배 박스를 도난 당할 수 있는 구조다.

초인종을 누르고 있는 콘티넨탈 로보독(사진: CCJDigital 유튜브 캡처)

이 문제를 풀고자 한 회사가 있으니 캐나다 가전제품 제조회사 댄비(Danby)다. 이 업체는 CES 2020에서 스마트 무인보관함 ‘파슬가드(Parcel Guard)’를 전시했다. 지난해 11월 미국 시장에 출시돼 실제 판매되고 있는 제품이다.

파슬가드 사용법은 간단하다. 부재중인 고객의 자택에 방문한 배송기사가 파슬가드의 문을 열고 택배 박스를 올려놓고 문을 닫으면 자동으로 박스가 파슬가드 아래 칸으로 이동해서 잠긴다. 파슬가드를 이용하는 고객은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실시간으로 배송 완료 메시지를 받는다. 잠겨 있는 칸을 열고 닫는 것도 어플리케이션으로 원격 조정할 수 있다.

파슬가드에는 보안 기능도 들어가 있다. 움직임을 자동으로 인식해서 활성화되는 카메라를 통해 누가 박스를 배송 했는지, 내 집 앞에서 어슬렁거리는 수상한 사람이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잠금 장치된 박스를 누군가 강제로 개봉하려고 할 경우 경보 알람을 울린다. 파슬가드에 들어가지 않는 거대한 화물을 받을 경우 배송기사에게 하단 잠금칸을 열 수 있는 ‘고유 코드’를 추가 전달할 수 있다.

집 앞에 설치된 댄비 파슬가드의 모습. 올해에는 미국에 이어 영국시장에도 출시하는데, 가격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사진: 댄비)

이 제품은 댄비 온라인 사이트와 미국 코스트코, 베스트바이, 더브릭 등 소매업체를 통해 구매 가능하다. 스마트 기능이 들어간 무인보관함은 549달러, 스마트하지 않은 보관함은 349달러다. 두 제품은 앱으로 열고 닫느냐, 열쇠로 열고 닫느냐의 차이가 있다. 한국이라면 공짜로 쓸 수 있는 아파트 경비실이나 서울시 여성안심택배함, 편의점 앞에 설치된 모 이커머스 업체의 무인보관함을 이용하자.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엄지용 기자> drake@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