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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류스타트업은 뜨지만 뜨지 않는다

물류스타트업은 뜨지만 뜨지 않는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22일 오픈서베이와 함께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 현황을 조사한 ‘스타트업 트렌드 리포트 2019’를 공개했다. 동조사에서 창업자 149명을 대상으로 ‘향후 5년간 가장 급속히 성장할 업종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라고 질문한 결과 AI/머신러닝(38.3%), 콘텐츠/미디어(16.8%), 헬스케어(9.4%), 핀테크(8.7%), O2O(7.4%)순으로 나타났다. 물류 업종은 순위권에 존재하지 않았다.

위에서부터 스타트업 창업자와 대기업 재직자, 대학생이 꼽은 스타트업 유망 업종. 스타트업 창업자에게는 ‘향후 5년간 가장 급속히 성장할 업종’에 대해 물었고, 대기업 재직자와 대학생에게는 ‘만약 창업을 한다면 도전하고 싶은 업종’은 무엇인지 물었다. (자료: 스타트업 트렌드 리포트 2019)

스타트업얼라이언스는 같은 날 김장현 성균관대학교 글로벌융합학부 교수 연구팀의 ‘온라인 영역과 학술분야에 비친 스타트업 인식 경향성’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에서 국내 SNS(클리앙, 뽐뿌)를 표본 조사한 결과 스타트업 산업 이슈로 ‘물류 서비스’가 부각됐다. 김장현 교수는 “SNS에서는 특정 서비스에 대한 언급이 많이 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배송과 음식배달에 대한 언급이 많았다”고 밝혔다.

김장현 교수의 ‘온라인 영역과 학술분야에 비친 스타트업 인식 경향성’ 연구결과에 따르면 물류 서비스가 스타트업 산업 이슈의 한 축으로 나타났다. 함께 나타난 이슈 산업은 ‘게임’이다.(자료: 김장현 교수 발표 자료,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제공)

물류는 뜨는 걸까

같은 날 발표된 두 개의 설문은 서로 다른 결과를 이야기하고 있다. SNS에서 이슈 되는 서비스는 물류지만, 스타트업 창업가들이 바라보는 뜨는 업종은 물류가 아니다. 이를 어떤 의미로 해석해야 할까. 김 교수는 이렇게 설명한다.

“물류 서비스의 경우 최근 수년간 경쟁이 굉장히 치열했습니다. 특히 소프트뱅크벤처스의 쿠팡 투자 이후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던 부분이 있습니다. 새벽배송을 필두로 새로운 형태의 배송 서비스가 체감되기도 합니다. 앞으로의 창업 전망과는 별개로, 숱한 화제를 몰고 왔다는 측면에서 (물류가) 사람들의 인식에 크게 자리 잡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설문조사를 담당한 오픈서베이측은 이렇게 설명한다. 설문조사 문항은 객관식으로 제시됐고, 그 안에 ‘물류’라는 답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니까 스타트업 트렌드 리포트 2019의 성장 업종 조사는 ‘물류’라는 답이 나올 수 없는 구조다. 김재영 오픈서베이 팀장의 말이다.

“김장현 교수님의 생각에 공감합니다. SNS 버즈 측면에서는 쿠팡의 로켓배송이나 새벽배송 키워드가 충분히 잡혔을 것 같습니다. 아울러 오픈서베이에서 설문조사를 진행할 때 ‘물류’를 별도의 산업 카테고리로 분류하지 않았습니다”

같은 자리에 함께한 초기 스타트업 투자업체 매쉬업엔젤스에도 물류 업종 투자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최윤경 심사의 답변이다.

“물류는 아무래도 인프라 구축에 큰 비용이 드는 산업이고, 기존 대기업들이 너무 잘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때문에 스타트업이 진출하기에는 장벽이 있지 않나 생각이 됩니다. 하지만 물류에도 다양한 포지션이 있어서 매쉬업엔젤스의 포트폴리오 중에도 물류기업을 투자한 사례가 있습니다. 이 기업은 해외 수출입을 할 때 낮은 견적비교를 제시해주는 서비스를 하는 곳입니다. 아직 인프라를 설치하는 물류 외에 분야에서는 다양한 물류스타트업들이 나올 기회가 존재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스타트업

스타트업 트렌드 리포트 2019에서는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스타트업에 대한 설문조사 또한 진행했다. 조사 결과 표본마다 약간의 순위 차이는 있지만 공통적으로 ‘비바리퍼블리카(토스)’, ‘우아한형제들(배달의민족)’, ‘쿠팡’, ‘카카오’가 거론됐다. 일하는 방식을 알고 싶은 스타트업에 대해서도 같은 업체들이 순위권에 거론됐다.

이 중 쿠팡과 우아한형제들 두 기업은 어떤 방식으로든 물류를 내재화해서 운영하고 있는 업체다. 우아한형제들의 계열사 우아한청년들(배민라이더스)이 그렇고, 쿠팡의 물류자회사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배송 조직)’와 ‘쿠팡풀필먼트서비스(물류센터 운영 조직)’가 그렇다. 조사 결과 TOP3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순위권에 들어간 마켓컬리 역시 최근 물류자회사 프레시솔루션을 통해 택배사업에 진출했다.

스타트업 창업자, 스타트업 재직자, 대기업 재직자, 대학생에게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스타트업’과 ‘일하는 방식을 알고 싶은 스타트업’을 질문한 결과. 물류를 내재화하거나 자회사로 물류업체를 두고 있는 회사들이 상당수 눈에 띈다.

카카오도 간접적으로나마 물류를 하고 있다. 지난 6월 시작한 C2C택배 서비스 카카오페이 배송이 그렇다. 카카오페이 배송의 운영은 카카오와 롯데글로벌로지스, 카카오인베스트먼트가 투자한 크로스보더 물류 스타트업 델레오가 함께 설립한 합작법인 ‘이지고’가 담당하고 있다.

카카오모빌리티가 최근 물류 플랫폼 업체들을 만나고 다니면서 ‘시장 조사’를 하고 다니고 있다는 업계의 증언이 나온다. 물론 이건 비단 최근의 일은 아니고, 예전부터 왕왕 그랬다. 언제고 물류로 치고 들어올 가능성은 있다는 업계의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또 하나의 지표 ‘투자’

스타트업 업계의 트렌드를 가늠하는 또 다른 지표로 투자가 있다. 투자자는 기본적으로 돈을 넣고, 더 많은 투자수익을 거두고자 한다. 성장하지 않을 것 같은 스타트업이나 업종에 돈을 넣는 이상한 투자자는 없을 거다. 때문에 돈이 몰리는 곳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2018년까지 네이버, 현대자동차, SK네트웍스 등으로부터 누적 930억원의 투자를 달성한 라스트마일 물류 플랫폼 메쉬코리아 이야기를 하지는 않겠다. 올해만 1350억원(누적 2245억원)의 투자를 유치한 마켓컬리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것도 아니다.

2019년 투자유치 사례 중에 기억나는 것만 정리한다. 콜드체인 전문 물류기업 팀프레시는 창업 1년만에 누적 투자금 70억원(현재 누적 120억원)을 유치했다. 지난 6월 근거리 물류 IT플랫폼 바로고는 120억원 규모의 추가 투자를 유치하고, 1000억원 이상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다. 풀필먼트 전문기업 위킵은 지난 11일 30억원 규모의 시리즈A 투자를 유치했다. 바로 오늘(22일) B2B통합운송관리 서비스 기업인 로지스팟은 100억원의 시리즈B 투자를 유치했다. 화물운송 플랫폼 센디는 비슷한 규모의 투자 라운드를 올해 안에 마무리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여기까지 ‘물류업’을 하고 있는 기업들의 명단이다.

우아한형제들처럼 물류업을 하지 않으면서 물류를 직접 운영하고 있는 업체들을 포괄하면 그 숫자는 더 늘어난다. 즉시배달 온라인 편의점 나우픽은 롯데엑셀러레이터 엘캠프 5기에 선정된 이후 26억원의 후속 투자를 유치했다. 이번달 100억원의 투자를 유치한 반려동물 용품 커머스 펫프렌즈는 2시간 배송 서비스 ‘심쿵배송’을 무기로 성장한 업체다. 이번에 유치한 투자금 또한 자체 배송기사 역량 강화와 새벽배송 물류망 확장에 사용한다. 이륜차 기반 편의대행 플랫폼 허니비즈 또한 추가 투자 라운드를 진행하고 있다.

물류 투자 목적의 펀드를 결성하는 투자회사들의 모습도 관측된다. 아이파트너스자산운용은 물류 투자 펀드를 만들고 1호 투자 기업으로 팀프레시에 투자를 진행했다. 롯데 계열사 연합(롯데쇼핑, 롯데GRS, 롯데하이마트, 롯데홈쇼핑, 코리아세븐, 롯데면세점, 롯데글로벌로지스, 롯데정보통신, 롯데액셀러레이터)은 최근 KDB산업은행과 함께 627억원 규모의 오픈이노베이션 펀드를 조성했다. 물류, 유통 분야 스타트업 투자를 가속화하기 위한 목적이다.

뜨는 것은 딱히 중요하지 않다

여러 번 했던 이야기지만 물류는 어디에든 있다. 그렇기에 이런 상황에서 물류가 뜨고 안 뜨고는 딱히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산업간 경계 자체가 퇴색됐기 때문이다.

IT기업을 표방하는 전자상거래 기업 쿠팡은 물류자회사를 보유하고 있고, 미디어/콘텐츠커머스 업체를 표방하는 업체 블랭크는 나름의 방법으로 물류를 내재화했다. 또 다른 물류를 품에 안은 전자상거래 기업 마켓컬리는 ‘인공지능’ 기술 기반의 수요 예측을 강조한다. 어쩌다가 이제는 개사료도 직접 배달하는 IT기업 우아한형제들은 어떠한가. 경계는 파괴된 지 오래다.

물론 물류업을 하기 위해서는 인프라 투자가 선행되고, 인프라 투자에는 많은 돈이 투하되는 것이 사실이다. 쿠팡과 마켓컬리 적자의 원인 대부분이 ‘물류’에서 나온다는 것을 생각해 보자. 하지만 이들의 엄청난 성장을 만든 무기 또한 물류였다는 것을 기억하자. 우아한형제들이 무섭게 확장하고 있는 비조리식품 배달 신사업인 ‘배민마켓’이 가능한 이유도 배민라이더스로 돈 쓰면서 구축한 물류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인프라 투자가 선행되지 않는 물류업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서 화물자동차운송주선사업이나 국제물류주선사업(포워딩)은 모두 인프라를 가지고 있는 사업자를 연결하는 사업자다. 인프라가 아닌 네트워크가 이들의 자산이다. 예컨대 실리콘밸리 대표 엑셀러레이터 와이컴비네이터가 투자한 업체인 플렉스포트(Flexport)는 국제물류주선사업자(포워더)를 표방하는 업체다. 디지털 기술을 적용하여 아날로그 종이 서류로 굴러가는 국제물류업을 좀 더 투명하게, 좀 더 신속하게, 좀 더 효율적이고 이익을 볼 수 있는 방향으로 만들고자 한다. 한국에도 그런 업체가 없는가하면 있다. 밸류링크유나 트레드링스와 같은 국제물류 플랫폼 업체가 대표적이다.

물류는 대부분 B2B거래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실무를 경험하지 않고 창업하기 어렵다는 한계도 지적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물류를 경험한 실무자만 창업하는 것은 아니다. 오늘 100억원 투자 유치를 발표한 화물운송 플랫폼 로지스팟의 창업자 박준규 대표는 물류 실무자 출신이 아니다. 하지만 나름의 방식으로 물류를 배웠다. 로지스팟 관계자는 “로지스팟은 창업을 시작할 때부터 운송사 한 군데를 인수했고, 지금도 계속해서 화물운송주선사의 인수 작업을 하고 있다”며 “실제 화물운송업계에서 필요한 니즈와 개선점을 파악하고 직접 운송업을 경험하기 위해서 인수 작업을 한 것”이라 설명했다.

어찌됐든 물류스타트업은 뜨지만 뜨지 않는다. 그럼에도 물류는 어디에든 존재한다. 각각의 형태로, 때로는 물류가 아닌 모습으로 어디엔가 있을 뿐이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엄지용 기자> drake@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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