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왜 스스로 경쟁력을 차버리려 하나”

김세연 의원_

게임 세계에서의 자산을 현실세계에서 환전해 사용하는 연결 구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힐마 대표_

아이슬란드에서는 ISK(크로네) 라는 화폐를 씁니다. ISK는 아이슬란드에서만 쓸 수 있어요. 그 외에 어떤 국가에서도 못 쓰죠. 한국에선 ISK로 여러분한테 커피를 살 수도 없습니다. 그게 가능하려면 ISK를 원화로 환전해야 하죠. 자산과 돈을 교환하는 면에선,  ‘이브 온라인’이 아이슬란드보다 잘 합니다. 돈이라는 것이 경제적 활동을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 본다면, (게임 머니도) 개념 자체는 동일합니다.

 

이브 온라인‘이라는 게임이 있다. 쉽게 설명하자면, ‘우주’를 배경으로 게임 이용자들이 또 하나의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게임이다. 이 안에서 사람들은 각자의 직업을 갖고 경제 생활을 한다. 유명 유튜버 대도서관은, 이브 온라인에서 ‘해적’으로 활동한다. 물론, 모든 유저가 다 해적 같은 나쁜(?) 직업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함선을 만드는 이도 있고, 택배를 배달하는 사람도 있으며 심지어 경제학자도 존재한다. 해적이 함선에서 물건을 훔치면, 이를 막기 위한 용병이 출동한다. 단일 서버로 운영되기 때문에, 국가에 상관 없이 누구나 게임에 접속해 이 세계의 일원이 될 수 있다.

이브 온라인을 창조한 CCP게임즈의 힐마 베이거 피터슨 대표가 한국을 찾았다. 서울국제경제자문단(SIBAC, 사이벡) 행사에 참여키 위해 방한한 김에 시간을 내 18일 자유한국당 김세연 의원실과 한국게임산업협회가 연 ‘힐마와의 토크콘서트’ 자리에 섰다. 이브 온라인은 인구 30만 명의 아이슬란드에서 만들어졌지만, 4000만 명이 접속해 본 세계적 인기 게임이다. 힐마 대표의 말대로, 내부에서 이뤄지는 경제 규모만 살핀다면 이브온라인이 아이슬란드보다 크다. 가상 게임 안에서 이뤄지는 경제 실험은 심지어 현실의 경제학자가 관심을 갖고 분석할 정도로 유의미하다.

 

힐마 베이거 피터슨 CCP게임즈 대표

 

■ 게임에는 역기능만 있을까?

“이브 온라인은 어려운 게임입니다. 실패할 여지가 굉장히 많죠. 게임을 하면서 빨리 배우고, 가치가 있는 걸 얻을 수 있습니다.”

_힐마 대표

 

누구나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는 상상해 볼 수 있지만, 현실 세계에 적용은 어렵다. 게임은 그걸 가능하게 한다. 그리고 그 게임의 힘이 커지면, 현실세계에 영향도 미친다. 예컨대 이브 온라인은 이용자들끼리 의회를 꾸렸다. 이브 온라인이 어떤 방향으로 건설되고 운영되어야 할지에 대한 주제를 정하고 논의한 후 투표해 개발사인 CCP게임즈에 전달한다. 이들은 게임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관찰하고, 그래서 더 나은 게임 세계를 만드는데 현실의 시간과 열정을 쏟는다.

힐마 대표는, 이들이 게임에 쏟는 열정이 ‘우정’ 때문에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온라인 게임 안에 머무르면서 함께 세계를 건설하는데 시간을 쓰고, 서로를 신뢰하게 되며, 무언가를 배우는 사이 친구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게임이라고 하면 ‘PvP(대전격투)’만 생각하는데, 이용자들은 게임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다른 이의 플레이를 도와주는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게임이 굉장히 어려우므로 다른 사람을 도와주면서 관계를 맺고 실제 스킬을 쌓는 것이 게임에 오래 머물게 만드는 동력이라는 것이죠.”

 

원하는 대로 게임을 하고, 게임을 하면서 스킬을 배운다. 이 스킬은 실제 직업 생활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플레이어로 오래 살아남으려면 게임 안에서 손실도 입어봐야 하고, 친구를 사귀어야 하며, 그로 인해 손실을 회복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 과정에서 게임 사회 내의 지원도 필수적이다. 매 순간마다 이용자는 선택이라는 의사결정을 해야 하며, 커뮤니티의 일원이 되어 파벌 싸움에서 승리해야 하는 미션도 가진다. 갖고 있는 데이터를 분석하고, 필요한 기술을 습득하는 기술들은 실제 현실에서 응용이 가능하다. 무엇보다, 진짜 친구를 사귈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힐마 대표가 말하는 이브 온라인이라는 게임이 가진 긍정적 측면이다.

 

김세연 의원이 사회를 맡아 토론이 진행됐다. 왼쪽부터 김경만 펄어비스 최고사업책임자(CB), 김세연 의원, 힐마 대표, 게임 크리에이터 대도서관.

 

■ 인간이 노동에서 소외되는 때가 오면

김세연 의원의 사회 아래 힐마 대표와 김경만 펄어비스 최고사업책임자(CB), 게임 크리에이터 대도서관이 참여한 토크 콘서트도 이날 있었다. 이 자리에서는 게임에 대해 조금 더 폭 넓게 생각할 수 있는 유의미한 주제가 다뤄졌는데, 가령 “인공지능이 인간의 노동을 대신해서 대다수 사람이 현실 세계에서 직업을 잃게 되고, 소득을 올릴 수 없게 됐을 때 게임이 할 수있는 역할” 같은 것이다.

이 질문은 김세연 의원이 던졌다. 김 의원은 “인간이 노동의 주체에서 퇴장하고 로봇과 AI가 새로운 노동의 주체로 부상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며 “과연 정부가 모든 사람을 다 먹여 살리는 주체가 될 수 있는, 그런 능력이 있는지에는 의구심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속 가능성이 담보될 수 있느냐에 대한 대안적 사회경제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본다”면서 게임이 여기에 어떤 기능을 할 수 있는지 등을 힐마 대표에 물었다.

힐마 대표는 이와 관련해 세계 인구 30억 명 중 15억 명만이 직업을 갖고 있는데, 이중 자신의 일을 좋아하는 이는 2억 명에 불과하다는 갤럽 조사결과를 토대로 사람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가상공간에서 직업을 만드는 것의 필요성을 답했다. 그는 “자기 일자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엔터테인먼트와 관련한 일을 하고 있다”며 “AI와 관련해 가상적인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상상력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가상 현실에서의 직업이 실제 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또 적절한 규제 아래서 가상 세계나 게임을 통해 번 자산을 현실 세계에서 가치 있는 교환 도구로 쓰일 수 있는 가능성도 언급했다.

이와 관련해서는 김경만 펄어비스 CBO도 비슷한 발언을 했다. 그는 “이미 AR이나 VR 같은 기술을 통해 가상에서도 사실적으로 무언가를 해볼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며 “게임 내 직업에서 생기는 재화가 미래에 가지는 가치를 생각한다면 미래 생활에 게임이 큰 역할을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한국은 왜 스스로 갖고 있는 경쟁력을 발로 차려 하나

게임이 이렇게 미래 생활에 중요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상상력을 제공하는데, 국내에서는 게임에 대한 안 좋은 여론이 생겨나고 게임장애를 질병으로 분류하자는 목소리가 생기는 것에 대해서는 힐마 대표와 토론자들이 안타깝다는 의견을 냈다.

사실 힐마 대표가 이날 공들여 소개한 이브 온라인도 한국 게임이라고 볼 수 있는데, ‘검은사막’으로 잘 알려진 국내 게임사 펄어비스가 지난해 CCP게임즈의 지분을 100% 인수해 자회사로 편입했기 때문이다. 세계적 게임을 인수할 만큼, 국내 게임사들은 저력이 있다.

힐마 대표는 “한국은 게임 산업에서 우위 차지하고 있고 뛰어난 국가인데 게임에 대한 콘셉트를 잘못 적용해 경쟁 우위를 잃게 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며 “정부가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 정확히 이해하고 가야 한다”고 말했다. 즉, 한국 정부가 게임과 관련한 정책을 결정할 때 이미 갖고 있는 강점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점을 환기시킨 것이다.

그는 또 한국인들이 마치 게임을 근로시간을 규제하듯 규제한다고 비유하면서, 사람들이 열심히 일을 하는 것은 일중독이라는 표현을 통해서 게임 중독 프레임을 비판했다. 그는 “게임에 부작용도 있지만, 긍정적인 부분도 있다”면서 “긍정적인과 부정적인 것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은 게임 말고도 다른 모든 것이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게임의 역기능에 대한 대표적 시선은, 게임 내 폭력적 행동이 현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폭력 사건의 원인으로 가해자가 어떠어떠한 게임의 유저였다, 는 식의 보도를 쉽게 볼 수 있다. 그런데 이건 검증된 이야기일까?

이와 관련해서는 대도서관이 의미 있는 대답을 줬다. 대도서관은 “나는 이브 온라인에서 초보 해적이지만, 그렇다고 내가 나쁜 사람이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닌 것 같다”며 “많은 사람들이 게임 내에서 폭력 행위를 하는 것에 대해 그게 현실에서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라고생각하는데,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며 게임을 통해 다른 직업이나 생활, 스킬을 체험해볼 수 있는 학습을 해 (오히려) 삶이 업그레이드 되는 걸 느꼈다”고 답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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