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전용 e잉크 단말기를 만드는 회사를 보면, 마이너스 통장 잔고마저 바닥이 난 내 처지를 잊고선 눈물이 난다. 도대체 누가 책을 읽는다고, 누가 10만원이 넘는 돈을 내고 책 전용 단말기를 산다고 적자를 감수하면서 계속해 제품을 만들어내느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을 지치지도 않고 아홉 번째나 시도하는 회사가 있다. 전자책밖에 모르는 바보. 예스24와 알라딘이 주축이 된 전자책 유통 업체 ‘한국이퍼브’는 지치지도 않고 새로운 단말기 ‘크레마 카르타 G’를 내놓았다. 여덟번의 사용자 경험을 모아, 이번에는 정말로 책 보기 편하도록 디자인을 개편했다는 것이 특징이다.

이미 카르타 크레마 플러스와 리디북스 페이퍼 프로를 사용하고 있는지라 알라딘 측에 요청해 샘플을 잠시 빌렸다. 오른쪽이 새로 나온 ‘크레마 카르타G’다. 손으로 잡기 편하게, 오른쪽 베젤을 넓게 만들었다. 왼쪽은 전 세대 모델인 ‘크레마 카르타 플러스’. 카르타G 너머로 보이는 기기는 리디북스의 페이퍼 프로다.

기본적으로 크레마 카르타G는 전작의 편의 기능을 대부분 물려받았다. 달라진 점은 베젤의 두께와 자이로 센서 탑재다. 얼핏 봐서는 거의 2cm 가까운 두께로 제품 오른쪽의 베젤이 넓어졌다. 그 베젤의 끝에는 페이지를 앞뒤로 넘기는 용도의 물리 버튼이 달렸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등 대부분의 모바일 기기가 거의 제로에 가까운 베젤 얇기 경쟁에 들어선 것과는 반대되는 모습이다.

그런데 바로 이 두꺼운 베젤이 책 읽기의 경험 개선을 위한 것이다. 당장 이해하기 어려우면 아래 사진을 보자.

단말기의 넓은 베젤이 책을 보기 쉽도록 말아쥔 가장자리의 역할을 한다.

전철이나 버스에서 한 손으로 독서하려면 저렇게 책을 말아쥐게 된다. 말아쥔 저 부분이 기둥이 되어 책을 편하게 잡을 수 있게 한다. 베젤이 얇으면 단말기를 떨어트리지 않기 위해 손가락에 힘을 주어 가장자리를 꽉 잡게 된다. 그 상태에서는 페이지 넘김 버튼을 누르는 일도 제법 신경 써야 하는 일이다.

베젤이 얇은 크레마 카르타 플러스

 

두꺼운 베젤은 전자책 전용 단말기의 목적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예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에 비해 속도도 느리고 화질도 떨어진다. 하지만 이 단말기를 사람들이 사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만큼 책을 읽기 편한 기기가 없어서다. 즉, 베젤이 조금 두껍더라도 오래 쥐고 책을 볼 수 있도록 편의성에 맞춰 제품을 디자인하는 것이 유리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확실히 이전 제품보다 단말기를 손에 들기 편했고, 또 물리버튼을 이용해 페이지 넘김이 수월했다. 그런데, 제품의 베젤이 한쪽으로 쏠릴 경우 생기는 문제가 있다. 그럼 왼손잡이는?

 

짜잔. 오른손에서 왼손으로, 방향을 바꾸면 화면도 같이 자연스럽게 돌아간다. 어느 손으로 쥐든 똑같이 편리하게 책을 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크레마 시리즈 중에서는 처음으로 자이로센서를 탑재했다. 자이로센서는 물체의 기울기를 인식하는 역할을 한다.

한쪽으로 넓은 베젤과 자이로센서를 제외하면, 다른 부분은 기존의 크레마 시리즈와 유사하다. 자체 탑재 TTS 기술(글을 읽어주는 기술) 기반으로 오디오북을 지원하므로, 책을 읽지 않고 들을 수 있다. 생각보다 TTS  기반으로도 크게 거슬리지 않게 들을 수 있다. 이 이야기는 음원 파일을 단말기에 저장해 노래도 들을 수 있다는 뜻인데, 뭐 굳이.

와이파이로 인터넷에 연결이 된다. 서점으로 접속해 곧바로 책을 구매,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브라우저를 지원해서 기본적인 검색이 되기도 한다. 터치로 스크롤이 가능해 화면을 내리면서 볼 수도 있다. 다만 조금의 답답함은 견뎌야 한다. 속도도 느리고, 무엇보다 흑백으로 화면을 봐야 한다. 흑백 신문을 보는 기분이 든다. 차라리, 오~ 종이책에서 검색이 된다니! 하면 마음이 편할지도 모르겠다. 휴대폰 배터리가 다 되었을 때, 아주 급하게 무언가 검색해야 할 때 쓸 수 있는 부가기능 정도로 생각하면 될 듯하다.

카르타G에서 바이라인네트워크를 검색해봤다. 뜬다. 이 정도면 애사심 100점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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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경험하기에는 배터리 성능도 나아진 것 같다. 왜냐하면, 전작의 배터리 성능이 많이 떨어지는 것이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부분이기 때문이다. 나는 카르타G의 7번째 언니쯤 되는 ‘카르타 플러스’를 샀다가 눈물로 밤을 지새운 적이 있다. 손에 쥐기 쉬운 작은 크기에, 경쟁사인 리디북스의 책까지 읽을 수 있게 생태계를 열어 놓은 것이 맘에 들어 매장에서 바로 구매한 제품이었지만 배터리 수명이 너무 짧았다. e잉크 단말의 강점 중 하나가 긴 배터리 수명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아쉬운 점이었는데 카르타G에서 개선된 것이 느껴졌다.

왼쪽부터 크레마 카르타 플러스, 카르타G, 페이퍼 프로. 셋 다 비슷한 시기에 충전을 하고 조금씩 책을 보다가 이틀 후 전원을 켰다. 왼쪽 카르타 플러스는 배터리가 모두 닳은 데 비해, 오른쪽 두 제품은 80% 이상의 배터리 생존율을 보였다. 며칠을 두고 체크해 본 결과 가장 배터리 수명이 긴 것은 페이퍼 프로였다.

지금까지 꽤 많은 기업이 e잉크 단말기에 도전했었는데, 유의미한 숫자로 시장에 존재하는 것은 몇 제품 안 된다. 아직은 국내 e잉크 단말기 시장의 정확한 통계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알라딘 측에 따르면 크레마 기준, 전자책 이용자의 약 10% 정도가 e잉크 단말기를 이용한다. 다만, 이들은 대체로 도서 시장에서 헤비유저이기 때문에 기기와 콘텐츠의 재구매율이 모두 높은 편이다. 당장은 단말기 자체로 수익을 낼 수 있는 시장은 아니지만, 여전히 가능성은 있다는 뜻이다.

알라딘 관계자는 “제품의 단가는 고객의 예상보다 훨씬 높으며, 실질적인 비용을 생각하면 기기를 판매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수익은 전무하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왜 계속 만들까? 이 관계자는 “아직은 기대보다 작은 시장을 형성하고 있지만 여전히 전자책이 미래의 도서시장에서 한 축을 담당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고 모바일 시대에 종이책을 보완해 편리한 독서환경을 제공해주는 가장 유효한 툴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