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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26일. 나는 처음으로 남의집의 문을 두드렸다. ‘남의집이력서’라는 이름이었다. 호스트인 김성용님의 집에서, 김성용님의 이력을 소개하고 참가자들과 커리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다.

<남의집>은 누군가가 의미 있는 공간에 누군가를 초청해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그런 커뮤니티다. 사진은 그 날의 김성용님(사진: 남의집)

당시 나는 한 작은 언론사의 기자였다. 바로 한 달 뒤인 9월부터는 팀장을 맡게 된다. 혼자서 알아서 일하면 됐던 기자와는 다르다. 팀원들과 함께 일해야 했다. 새로운 업무를 정의해야 했다. 책임을 정의해야 했다. 그 중압감이 나를 눌렀다.

당시 기자가 남의집프로젝트에 제출했던 참가 신청서

그래서 남의집의 문을 두드렸다. 김성용님의 이력이 나를 이끌었다. 그는 한 중견 언론사에서 근무했고, 이후 카카오와 카카오모빌리티에서 사업개발을 해왔다. 그가 언론사에서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면서 느낀 고민은 무엇인지, PM이란 무엇인지, 커뮤니케이션이란 무엇인지, 그의 이야기에서 새로 시작하는 나의 일에 대한 힌트를 얻고 싶었다.

연희동 어딘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언덕을 오르다보면 그의 집이 보인다. 벽면을 가득 채운 서재가 눈에 띈다. 고소한 향과 함께 포트에 무엇인가 끓는 소리가 들린다. 먼저 도착해 담소를 나누고 있는 누군가가 보인다. 그리고 어색함을 숨길 수 없는 내가 있었다.

전혀 모르던 누군가의 집에서, 전혀 모르던 누군가를 만난다니. 내향적인 내 성격으론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어쩔 줄 몰라 하는 나를 보고, 호스트는 커피 한 잔과 다과를 권한다. 그의 이야기가 시작됐다.

몇 차례 질문이 이어지고, 우리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때를 생각하면 왜 그렇게 벅차올랐는지 모르겠다. 어딜 가서 쉽게 꺼낼 수 없는 진솔한 이야기를 참 많이 했다. 처음 만났던 그들 또한 그랬다. 어색한 공간과 어색한 사람들 사이에서 묘한 운치가 만들어졌다.

당시 남의집은 ‘남의집프로젝트’라는 이름의 페이스북 페이지로 운영됐다. 김성용님은 카카오모빌리티에서 근무하면서 겸사 이 프로젝트를 함께 운영했다. 운영 방법은 이렇다. 호스트가 특별한 의미가 있는 공간에 불특정 다수의 게스트를 초청한다. 그 공간에서 게스트와 함께 그의 취향, 그의 공간, 그의 삶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눈다. 호스트의 이야기는 우리의 이야기로 확장된다.

영화평론가 호스트와 과거 고물상이었던 공간에서 나누는 공포영화 이야기. 그래피티 아티스트 호스트와 브루펍에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그래피티 스팟에서 함께하는 새로운 도전. 회화작가 호스트의 작업공간에서 함께 나누는 순수미술 전공자의 일상 이야기. 현재 남의집에 열려 있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누군가의 공간과 이야기다.

남의집에 개설된 <나도 한 번 그래피티> 모임 사진. 호스트와 브루펍에서 맥주 한 잔 하면서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만의 그래피티 태깅을 구상하고, 신촌에 있는 그래피티 스팟에서 함께 작업을 한다.(사진: 남의집)

지금까지 남의집은 150명의 집주인이 300회 이상의 모임을 개최했다. 그 날의 호스트 김성용님은 카카오모빌리티를 퇴사하고 지난 4월부터 본격적으로 남의집을 사업화하여 운영하고 있다. 오늘은 카카오벤처스와 MYSC 등으로부터 3억원의 시드 투자를 유치했다.

솔직히 ‘남의집’이 비즈니스가 될 줄은 몰랐다. 나에게 남의집은 그날의 조금은 어색했던 공간과 특별한 이야기들로 기억된다. 비즈니스보다는 조금 더 개인적인 기억으로 남겨두고 싶은 욕심이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엄지용 기자> drake@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