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게임을 예술이 아니라고 했나

한국 온라인게임 25주년을 기념하는 전시 ‘게임을 게임하다/invite you_’가 18일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에서 시작한다.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국내 온라인게임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시각화해 게임에 대한 사회, 문화적 인식 변화와 온라인게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전시를 통해 제안한다는 목적으로 기획됐다.

넥슨재단이 주최하는 이 전시는 온라인 게임의 핵심 특징인 ‘참여’와 ‘성장’을 모티브로 삼았다. 관람객은 현장에서 ID를 만들어 (혹은, 자신이 이미 갖고 있는 넥슨 ID를 이용해) 전시장에 로그인한다. 입장 때 주어지는 밴드를 손목에 차고 다니면서, 작품에 태깅하는 방식으로 전시에 참여할 수 있게 했다. 그 과정에서 게임을 바라보는 시선이 성장 할 수 있도록 한다는 의도다.

넥슨재단이 사회공헌의 일환으로 주최한 이번 전시는 넥슨 내 두 조직이 없었다면 성사가 불가능했다. 한 곳은 회사에서 가장 예술적인 파트를 맡은 ‘넥슨컴퓨터박물관’이고, 다른 곳은 넥슨의 미래 기술을 책임질 ‘인텔리전스 랩스’다. 미술관 대표 출신으로, 넥슨 컴퓨터박물관을 이끄는 최윤아 관장은 개막 하루 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인텔리전스 랩스의 기술이 더해지면 차별화된 온라인게임 전시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함께 기획하자고 강대현 부사장을 쫓아다녔다”면서 “예술과 기술이 접목된 전시를 통해서 게임에 대한 새로운 시선이 만들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최윤아 넥슨컴퓨터박물관장(왼쪽), 강대현 넥슨코리아 인텔리전스랩스 부사장

전시는 게임이 현대 예술의 하나로 보이도록 구성됐다. 게임 내 예술적 요소를 작품화하고, 그 안에 최신 테크놀로지를 녹인다는 부분에 두 조직이 의견일치를 봤다. 전시를 둘러보면, 이용자의 시선을 추적하는 ‘아이트래킹’ 이나 게임 내 오가는 수많은 대화에서 욕설만 걸러내는 ‘초코’ 등인텔리전스랩스가 가진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처리 기술이 작품 속에 녹아 있는 걸 볼 수 있다.

게임 플레이어의 시선 위치와 머무는 시간, 동공의 크기, 눈 깜빡임 등을 추적하면 게임 경험을 개선할 수 있다. 작품 ‘아이트래킹’은 넥슨 이용자들의 시선 데이터를 활용, 각 게임의 장르마다 유저들이 화면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시각화했다. 강대현 부사장은 “초보에서 숙련으로 못 넘어가는 이유가 무엇인지, (유저가) 어떤 장면에서 지루해하는지, 또는 좋아하는지를 알 수 있다”며 “이 작품을 보는 것만으로도 어떤 장르의 시선 데이터인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1,000,000/3sec’는 3초당 100만 건의 욕설을 탐지해 제거하는 욕설탐지 프로그램 초코를 시각화했다. 과거에는 단어나 문법, 어간 같은 규칙에 의해 욕설을 걸러냈으므로, 특수문자로 조합했거나 새롭게 표현된 단어를 잡아내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신경망 알고리즘을 통해 개발한 초코의 경우, 맥락을 파악해 해당 단어가 욕으로 쓰였을 가능성을 보다 정확하게 잡아낸다. 강 부사장에 따르면 초코가 ‘이런 조카 신발’이라는 단어를 욕설이라 알아챌 확률은 78.04%다.

 

수많은 대화 중 욕설만 탐지해 삭제하는 프로그램 ‘초코’. 삭제되는 욕설을 사라지는 별로 표현했다.

최 관장은 이번 전시의 특징을 ‘유저 특정적 전시’라고도 표현했다. 현대미술의 개념적 하나인 ‘장소 특정적 미술’에서 따온 말이다. 기존에 넥슨 ID를 갖고 있었던 이라면 체험할 수 있다. 그간의 게임 이력을 조회해 사교적 유저인지 아니면 전투 목적을 위해 곧장 달려가는 스타일인지, 동료가 게임을 못 할 때 도와주는 스타일인지, 아니면 어뷰징을 하는 유저인지를 판별해 개인의 프로파일을 구성, 캐릭터화해 보여준다.

관람객이 가상 세계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ID와 캐릭터를 부여받고, 같이 있는 동료(함께 관람하는 이들)과 전시를 체험하며 또 다른 데이터를 쌓아간다는 점에서 유저 특정적 전시라 명명한 것이다. 하루 100테라바이트, 즉 책 5억 권 분량의 데이터를 인텔리전스랩스가 매일 처리하면서 유저 데이터를 쌓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장소 특정적 미술이 미술관이라는 장소(혹은 권위)에 갇힌 모더니즘 미술을 비판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예술과 게임을 구분 짓고 게임을 하위문화로만 보는 시선에 대한 비판이 기획 의도에 깔려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서양화와 미술교육을 전공하고, 미술관을 운영하기도 했던 최 관장은 “예술을 하는 사람들 눈에는 게임 역시 예술로 보일 것이라 생각한다”며 “문화예술 콘텐츠로서의 온라인게임에 대한 다양하고 성숙한 논의가 시작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관람객이 비어있는 캠프파이어의 의자에 앉으면 가상의 캠프파이어가 피워지고, 바람이 불고, 연기가 피어오르며 음악이 연주되다. ‘마비노기’에서 게이머들의 소통공간으로 표현되던 캠프파이어를 전시 공간에 구현한 작품이다.

전시는 또, 게임이 현대 사회에서 가장 진보적인 커뮤니케이션의 한 방법이라고 강조한다. 이 때문에 작품들에는 게임 내 플레이어 간 소통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또 게임 내 여러 장치와 플레이어가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는지를 시청각화해 반영하기도 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게임이용장애 질병분류를 통과시킨 것이 전시에 직접적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니지만, 게임을 질병을 일으키는 요인으로 볼 것이 아니라 문화의 하나로 보길 바란다는 메시지는 동일하다. 전시를 주최한 김정욱 넥슨재단 이사장은 “게임은 어떤 장르보다 사람에 상상력을 자극하고 신선한 기억을 심어왔다”면서 “기술적으로나 내용적으로 크게 성장, 진화한 게임을 알릴 필요가 있다”고 기획 의도를 설명했다.

전시는 9월 1일까지 한다. 무료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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